헤이세이(平成)
일본의 역대 덴노 124대 히로히토 덴노 ▶ 125대 아키히토 덴노
http://www.oocities.org/jtaliaferro.geo/akihito.jpg
왕호 아키히토 덴노 (明仁天皇)
이름 아키히토 (明仁)
생년월일 1933년 12월 23일 ~ 현재
출생지 일본 도쿄 황거 산전
재위기간 1989년 1월 8일 ~ 현재
즉위식 1990년 11월 12일
연호 '平成'은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의 "内平外成(안이 다스려짐에 바깥의 일이 이루어진다)"와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의 "地平天成(땅이 다스려짐에 하늘의 일이 이루어진다)"에서 유래했다.
그런데 연호를 정할 당시 <서경>의 해당 부분이 청나라 고증학자들의 연구로 위서라는 사실이 고증되었고, 헤이지(平治, 1159~1160) 연간이 전란으로 혼란스러웠기에 이후 平으로 시작하는 연호를 피하는 것이 관례였으며, 平에는 干(방패)이 있고 成에는 戈(창)이 있으니 곧 '방패와 창'은 전쟁을 의미한다고 해서 다른 걸로 고르자는 반대 의견이 있었다.
어린 시절 ¶
아키히토(明仁) 덴노는 1933년 12월 23일생으로, 히로히토 덴노와 나가코 황후의 2남 5녀 중 장남이자 5번째 자녀이다. 칭호는 쓰구노미야(繼宮). 2살 때인 1936년부터 부모와 떨어져 동궁에서 지냈다. 본래 일본 황족의 자녀들은 태어나자마자 부모와 떨어져 양육되는 것이 전통이었으나, 너무도 소중한 아들이었기에 관례를 깬 것이었다
본래는 왼손잡이였는데 이걸 그냥 둘 리가 없다 어렸을 때 양손잡이로 교정했다. 1945년 당시 13살 때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쿄(도쿄대공습 참조.)를 보면서 평화를 다짐했다고 회상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전쟁 중 피난처에서 전황을 설명받던 중 가미카제에 대해 "그저 병력을 소모하는 것 뿐 아닌가?"라고 되물어 담당 장교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고.
패전 이후에는 서양의 사상과 생활 방식을 배우게 하려는 아버지의 의향에 따라 미국 태생의 엘리자베스 바이닝 부인이 가정교사로 초빙되었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퀘이커 교도 중 하나로, 퀘이커 교도와의 친분은 쇼와 때부터 전통이었다.
황태자 책봉과 결혼 ¶
1952년 11월 10일 성년식과 함께 황태자 책봉식이 거행되었으며 다음해에는 아버지를 대리해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하는 등 반년에 걸쳐 14개국을 순방했다.
1957년 가루이자와에서 테니스를 치던 도중 평민 쇼다 미치코와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되어, 어머니와 숙모 등의 반대를 물리치고 1959년 결혼하여 화제가 되었다. 메이지 덴노 이후 최초로 평민 출신을 황실로 맞아들인 결혼이었기 때문. 젊은 시절의 미치코 황후는 사진에서 보듯 미인으로 매우 유명했지만, 엄청난 시집살이에 시달린 바람에 황후가 되었을 때는 남편보다 더 나이들어 보이게 되었다고 한다.
미치코도 말이 평민이지 실은 대 재벌가의 딸이었는데도 황실 내부에서의 대접이 이랬다는 것이다. 즉위와 재위기간 ¶ 결혼은 1959년이고 즉위는 1989년으로 즉위 당시에 만 56세였다. 1989년 1월 7일 장기 투병중이던 쇼와 덴노가 세상을 떠나자 일본 역사상 2번째로 고령인 55세에 즉위해 헤이세이로 개원했다. 1999년과 2009년 각각 즉위 10주년과 20주년 축하 행사가 있었다.
개념언행 ¶
아키히토 덴노가 外'일본의 황족에 백제인의 피가 섞여 있다'라는 발언을 했을 때 한국의 소위 재야사학계에서 많은 관심을 가졌지만, 그 근거가 고사기에서 무령왕 - 간무 덴노가 모계 방향으로 먼 연관이 있다고 한 문구 수준이었으므로 확대 해석은 삼갈 필요가 있다. 단지 현 덴노가 외교적 수사를 구사하였을 뿐이며, 오히려 저 발언을 악용해서 한국 침략에 대한 정당화를 주장할 수도 있다는 떡밥도 있었다. 실제로 일본 제국의 악명 높은 '내선일체'가 그 떡밥에서 피어난 곰팡이이기도 하고.
고령으로 인한 건강 문제 ¶
2011년 11월 폐렴으로 입원해 19일만에 퇴원했고 그동안의 공식 업무는 장남인 나루히토 황태자가 대신했다. 아키히토 덴노가 77세의 고령이지만 현행 황실전범상 양위하고 상황이 될 수도 없는 노릇이라, 효심야심 높은 걸로 유명한 차남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친왕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덴노정년제를 주장하기도 했다. 2012년, 1년 전에 발견된 관상동맥경화를 치료하기 위해 약물요법을 받았으나 호전되지 않고 증세가 악화됨에 따라 2월 18일에 바이패스 수술을 받기로 결정되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나 다시 공식 업무에 복귀했다.
그 외에 ¶
아버지 쇼와 덴노처럼 어류학자로서 일본 어류학회 회원이기도 하고, 사이언스와 네이처 논문을 포함한 28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오랫동안 망둥어 연구를 한 것을 기려 그의 이름이 들어간 종이 2개나 있다.
Platygobiopsis akihito와 Exyrias akihito가 그것. 외국 방문이 3차례 뿐이었던 히로히토와 달리 해외순방이나 지방순례, 지진현장 방문도 흔해서 인기가 높은 편이라고. 참고로 2003년에 이르러 일본의 도도부현을 모두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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