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통일방안의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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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 통일부 정세분석총괄과(02)2100-5865
◇북한 통일방안의 변천
북한은 한반도 공산화 통일을 목표로 연방 제안을 통일방안으로 제시하면서 시대적 조건과 환경에 따라 그 특징을 변화해왔다. 북한은 1960년 처음 연방제 통일 방안을 제기하기에 앞서 ‘하나의 조선’ 논리에 입각한 ‘민주기지론’에 의한 무력·적화 통일을 내세웠다.
민주기지론은 1960년 4.19 혁명 이후에 ‘남조선혁명론’으로 발전되었고, 이 시기 북한은 과도적 조치로서 ‘남북연방제’를 제기했다. 이후 남조선혁명론과 ‘연방제 통일방안’은 1973년의 ‘고려연방제’를 거쳐 1980년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으로 구체화되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체제방어 논리에 입각한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에 기초한 연방제, 2000년대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전환 되었다.
◇북한의 시대별 통일방안
〔1950년대 : ‘민주기지론’에 입각한 무력통일방안〕
광복 후 6.25전쟁까지 북한의 통일방안은 ‘민주기지론’에 입각한 무력 통일방안이었다. 김일성은 1945년 12월 17일 “북조선을 통일된 민주국가를 위한 강력한 민주기지로 전변시킬 것”을 선언한 이래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하기 위해 무력통일을 시도했다.
〔1960-70년대 : 남북연방제 및 고려연방제〕
북한은 1960년대에 들어와 ‘민주기지론’을 견지하면서 평화통일 제안과 ‘남조선 혁명’이라는 이중전략을 구사했다. 남조선혁명의 실천수단으로 제기된 것이 ‘남북연방제’라 할 수 있다.
북한의 연방 제안은 김일성의 1960년 8월 14일 ‘8.15 광복 15주년 기념연설’에서 처음으로 제의되었다. 김일성은 이 연설에서 “어떠한 외국의 간섭도 없이 민주주의적 기초 우에서 자유로운 남북 총선거를 실시하는 것이 평화적 조국통일의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편”이라고 하면서 “만일 그래도 남조선 당국이…… 아직은 자유로운 남북 총선거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과도적인 대책으로서 남북 조선의 련방제를 제의한다.”고 했다.
그 내용은 당분간 남북의 현재 정치제도를 그대로 두고 “… 두 정부의 대표들로 구성되는 최고민족위원회를 조직해 남북 조선의 경제·문화발전을 통일적으로 조절하는 방법으로 실시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북한의 제의는 표면상으로는 연방제를 나타냈으나 실제로는 국가연합에 가까운 것이었다. ‘남북연방제’에 이어 북한은 ‘조국통일 5대 강령’을 내놓았다.
이 강령의 요지는
①남북 간의 군사적 대치상태의 해소와 긴장상태의 완화,
②남북 간의 다방면적인 합작과 교류의 실현,
③남북의 각계각층 인민들과 각 정당 사회단체 대표들로 구성되는 대민족회의 소집,
④고려연방공화국을 국호로 하는 남북연방제(고려연방제)의 실시,
⑤고려연방공화국이라는 단일국호에 의한 유엔 가입 등이었다.
〔1980년대 :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고려민주연방제)〕
북한은 1980년 10월 10일 노동당 제6차 대회에서 김일성의 사업 총화보고를 통해 기존의 통일방안과 제안들을 재정리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고려민주연방제)을 제시했다. 고려민주연방제 통일방안의 특징은 첫째, ‘과도적 대책’ 또는 ‘당분간’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음으로써 외형상 완성된 형태의 연방국가를 표방한다는 점이다. 둘째, 한국에 대해 무장해제에 가까운 선결조건을 제시하고 있는 점이다.
북한이 제안한 연방제의 구성 원칙을 보면
①남과 북이 사상과 제도를 인정하는 기초 위에서 같은 권한과 의무를 지닌 각각의 지역자치제를 실시하는 연방공화국을 창립,
②남과 북이 동수의 대표로 연방 국가의 최고민족연방회의를 구성하고 그 상임기구로 연방상설위원회를 조직해 남과 북의 지역 정부를 지도하는 것 등이다.
한편 북한이 내건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선결조건’은 남한에서의 민주화 실현이라는 명분으로 반공법·국가보안법 등 폐지, 모든 정당·사회단체들의 합법화 및 모든 정당 사회단체 개별인사들의 자유로운 정치활동 보장, 민주인사.·애국인사들의 석방 등이었다. 또한 긴장상태의 완화 및 전쟁위험의 제거라는 명분으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한 미국과의 협상, 주한미군의 조속한 철수, 조선의 내정에 대한 미국의 불간섭 및 ‘두 개의 조선’ 조작책동의 중지 등을 제시하고 있다.
〔1990년대 :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에 기초한 연방제〕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북한의 연방제는 약간의 전술적 변화를 보였다. 소련의 해체와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외교적 고립과 경제난에 처하자 북한은 체제 유지차원에서 남북공존을 모색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1991년 신년사를 통해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에 기초한 연방제를 제기했다.
북한은 “잠정적으로는 지역자치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되 점차로는 중앙 정부의 기능을 더욱더 높여나가는 방향에서 연방제 통일안을 점차적으로 완성할 것”임을 밝혔다. 북한이 이처럼 외교권, 군사권, 내치권을 갖는 ‘지역자치정부 권한 강화론’을 들고 나온 것은 통일에 앞서 체제 보전에 더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에 기초한 연방제 주장은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보다 수세적 ·방어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통일과정과 관련해 북한은 연방제 실현의 선결조건을 계속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표명하면서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전 민족이 대단결하여 자주적이고 평화적이며 중립적인 통일국가를 창립해야 한다.”는 ‘전민족대단결 10대 강령’을 채택하였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 측에 대해 외세의존 정책 포기, 미군 철수 의지 표명, 외국 군대와의 합동군사연습 영구중지, 미국의 핵우산 탈피 등 4가지 사항을 요구조건으로 제시했다.
〔2000년대 : ‘낮은 단계의 연방제’ 및 ‘조국통일 3대 헌장’〕
북한은 2000년 6.15 공동선언에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제시했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의 원칙에 기초하되 남북의 현 정부가 정치, 군사, 외교권을 비롯한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보유한 채 그 위에 민족통일기구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2002년 5월 30일 노동신문 논평을 통해 6.15 공동선언이 연방제 방식의 통일을 지향하는 것으로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북과 남이 통일방안에 대해 완전히 합의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의 통일방안의 공통점을 인식한 데 기초해 그것을 적극 살려 통일을 지향해 나가기로 했다는 의미”라고 규정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에도 북한의 대남전략과 통일전선전략의 기조는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김정은은 2016년 신년사에 이어 7차 당 대회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의 통일의 전략을 그대로 이어받아 통일문제를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 3대 원칙’과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연방제), ‘전민족대단결 10대 강령’ 등 조국통일 3대 헌장을 기준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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