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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인 / 요르단강 서안지구 그리심산 사마리아 타운 ‘로자 마을’

Paul Ahn 2007. 2. 15. 09:06

⊙사마리아인 / 요르단강 서안지구 그리심산 사마리아 타운 ‘로자 마을’

 

현재 780명 성경 속 사마리아인은 살아있다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190565

 

요르단강 서안지구 그리심산 사마리아 타운 ‘로자 마을’

그리심산을 성지로 여기는 현대 사마리아인들은 아직도 이 산에 살면서 절기를 지킨다.

 

사진은 매년 세 차례에 걸쳐 행해지는 순례 모습. 오른쪽 위 작은 그림은 사마리아박물관에 전시된 수가성 여인을 만나는 예수님을 표현한 그림. 사마리아박물관 제공

 

국제적 박애의 상징으로 불린다. 이 사람들의 이름이 들어간 구호단체가 여럿이다. 초희귀 소수민족으로 세계적인 보호 대상이다. 한때는 300만명이 넘었으나 2015년 현재 780명만 남았다.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영토 안에 모여 산다. 성경과 연관해서는 북이스라엘의 수도 이름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이웃 사랑의 전범(典範)을 제시하셨다. 그는 강도 만난 여행객에게 자비를 베풀었다(눅 10:25∼37). 예수님을 만나 치유된 한센병 환자 10명 중 유일하게 감사를 표했던 사람(눅 17:16), 사마리아인이다.

 

국민일보는 지난달 27일 요단강 서안지구 나블루스 그리심산(Mt. Gerizim)의 사마리아 타운 ‘로자 마을’을 방문해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봤다.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에서 60번 국도를 타고 1시간을 북쪽으로 달리면 타푸아 교차로를 만난다. 타푸아 교차로에는 이스라엘 군인의 검문소가 설치돼 있다. 오가는 팔레스타인 차량들이 집중 검문 대상이다. 차량 식별은 비교적 간단하다. 번호판 바탕색이 노란색이면 이스라엘, 흰색이면 팔레스타인이다. 검문 시간이 길어지는 날이면 편도 1차로 도로는 주차장으로 변하기 일쑤다. 다행히 이날은 이스라엘군의 타깃이 된 차량은 없어 보였다.

 

긴장 속에서 살아오다

교차로를 통과해 10분 정도 더 북쪽으로 가자 그리심산 이정표가 나왔다.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65㎞ 지점에 위치한 해발 886m 그리심산 정상을 향하는 표시였다. 이정표 방향으로 차를 몰아 산길을 타고 5분쯤을 올라가자 왼쪽으로는 유대인 정착촌 입구가, 오른쪽으로는 로자 마을이 나타났다.

 

 

 

 이날 오후 기온은 섭씨 40도. 상점만 문을 연 듯 동네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한두 명의 아이들만 그 앞을 오갈 뿐이었다. 상점 앞엔 택시 한 대가 정차돼 있었는데 기사는 보이지 않았다. 뜨거운 햇살 사이로 사막의 열풍이 불었다. 발걸음을 떼자마자 땀이 흘렀다.

 

동네를 통과해 전망대에 들렀다. 나블루스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나블루스는 요르단강 서안지구, 즉 팔레스타인 지역이다. 최근 극우 유대주의자들의 방화로 18개월 된 아기가 사망한 곳이기도 하다. 기독교인들에겐 ‘세겜’이란 이름이 더 익숙한 곳이다.

 

전망대에서는 맞은편 에발산(해발 940m)이 손에 잡힐 듯 보였다. 그리심산과 에발산이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구약성경 신명기에 따르면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굳게 하도록 그리심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산에서 저주를 선포한다(신 11:29).

 

이 언약은 오늘날 극소수 사마리아인들이 그리심산에서 떠날 수 없는 이유를 만들었다. 사마리아인들은 3600년 전부터 자신들이 그리심산에서 살아왔다고 믿는다. 모세가 그들에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1년에 세 차례 순례를 시행하라고 명했다는 것이다.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산을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곳으로도 믿는다. 정상 부근의 텔 아라스 성전터는 사마리아인들이 유월절 제사를 드리는 곳이다. 매년 3∼4월이면 거대한 민족적 축제가 펼쳐진다. 양 40마리가 도살되고 남김없이 제사에 바쳐진다.

 

사마리아박물관 해설자 마르샴(25·여)씨는 “사마리아인은 유대교와 비슷한 고유의 신앙을 계승해 왔다”며 “사마리아인 신앙의 핵심은 한 분이신 하나님, 모세의 예언, ‘투라(토라)’로 불리는 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그리심산의 신성함, 심판의 날”이라고 말했다.

 

지금의 그리심산 부근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상황 가운데 놓여 있다.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영토가 아닌 점령지역은 A지역으로 불린다. 이곳은 통제권과 행정권 모두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갖는다. B지역의 경우 통제권은 이스라엘, 행정권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갖는다. C지역은 통제권과 행정권 모두를 이스라엘 정부가 갖는다. 유대인 정착촌은 C지역에 해당한다. 그리심산의 동쪽 부분은 유대인 정착촌으로 C지역이다. 그러나 그리심산이 속한 나블루스는 A지역에 해당한다.

 

고대 사마리아인에 대한 기원은 BC 721년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멸망시킨 앗시리아가 강제 이주시킨 이방민족과의 혼혈에서 비롯됐다고 알려진다(왕하 17:24). 그러다가 BC 2세기부터는 유대교에서 독립해 독자적인 종교를 형성했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당시 그리심산에는 사마리아인들의 주거지가 건설됐고 그 넓이만 35만㎡(10만 6000평)에 달했다 한다. 인구도 1만명가량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BC 4세기 무렵에는 그리심산 정상에 예루살렘 성전에 필적할 만한 사마리아 성전이 건설되기도 했다. 그러나 BC 113년 하슈몬 왕조의 히르카노스에 의해 파괴됐다.

 

현재 사마리아인들이 지키고 있는 절기는 유대교와 흡사한 면이 많다. 절기는 총 6개가 있는데 유월절을 비롯해 무교절, 초막절(Sukkot), 칠칠절(Shavuot), 새해(Hashanah), 속죄일(Kippur) 등이다. 무교절에는 모든 가정이 자신의 집 천장에 각종 과일을 매달아 장식하는 독특한 풍습을 갖고 있다.

 

유대교와 다른 점이 있다면 모세오경만을 경전으로 삼고 그리심산을 여호와 하나님이 선택한 성지로 여기며, 오늘날에도 유월절 어린 양을 잡는 구약식 제사를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마르샴씨는 “사마리아인들은 매일 해가 뜰 때와 해가 질 때 자신들의 집에서 기도를 드린다”며 “기도와 예배에 충실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박물관에서 만난 사마리아인 제사장 코쓰리(63)씨는 “투라를 보여주겠다. 함께 사진 찍자”고 환대했다. 그는 빨간색 사제용 모자를 썼고 회색의 긴 겉옷을 입고 있었다. 반짝거리는 금테 안경과 긴 수염은 마치 대학자를 연상케 했다. 투라를 직접 들고 펼쳐 보이는 코쓰리 제사장은 “사마리아 오경은 독특한 사마리아의 문자로 기록됐다”며 “문자들은 고대 히브리어로서 기도와 예배 시에 사용한다”고 말했다. 대부분 사마리아인들은 아랍어를 쓴다.

 

사마리아박물관은 아담한 가정집처럼 생겼다. 내부에는 그리심산 전경의 모형이 전시돼 있고 사마리아의 역사가 그림으로 소개돼 있다. 종교적 의식을 담은 사진이나 그림도 볼 수 있다. 투라와 제사의식 복장, 절기와 언어, 달력 등도 아기자기하게 장식돼 있었다. 발굴된 유적들은 이들의 수천년 역사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박물관 입구에는 서명록이 있었는데 지난 5월에 다녀간 한국인의 방명 기록도 볼 수 있었다. “자신들의 신앙을 지켜온 사마리아인들처럼,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세속화 속에서도 신앙의 참 가치와 본질을 굳게 지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그날을 위해

현재 남아 있는 사마리아인들은 총 780명이다. 그리심산에 380명, 텔아비브 인근 홀론에 400명이 모여 산다. 홀론에 사는 400명은 1905년 빈번한 지역 분쟁과 경제적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떠났던 사람들이다. 1917년에는 147명까지 떨어지며 소멸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 사마리아인 인구는 10년 전까지 600여명으로 추정됐고 그동안 180명이 증가했다.

 

이들은 지역적 특수성 탓에 3개의 여권을 소지하고 있다 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요르단이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지역에서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 교사나 법률가, 사업가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팔 갈등의 현장 속에 끼어 있지만 차별은 받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마르샴씨는 “사마리아의 유일한 문제는 인구가 너무 적다는 데 있다. 특히 여성이 부족해 미혼 남성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사마리아인들은 이곳을 떠나지 않는다. 성지를 지키며 기도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강한 유대감 속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전통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요한복음과 사도행전에 따르면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 수가 동네 여인과 빌립의 전도로 인한 것이었다.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요 4:39∼42)

 

예수님은 승천하기 전에 제자들을 향해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하셨다(행 1:8).

빌립은 메시아를 기다리던(요 4:25) 사마리아인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했다. 베드로와 요한은 물세례만 받았던 그들에게 성령을 받도록 기도했다(행 8:14∼17).

 

오늘날 예수 믿는 사마리아인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려지지 않는다. 선교적으로 보자면 그들은 ‘미전도 종족’이다. 제2의 빌립과 베드로, 요한이 필요하다.

 

국민일보

2015-08-0

그리심산(요르단강 서안지구)=글·사진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