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치효과〕 메디치가문 우피치미술관
르네상스는 소위 암흑기라 했던 중세를 벗어나 새 시대에 걸맞는 신문화를 창출하기 위해 문학·미술·건축을 위시해 여러 방면에서 활발한 활동이 전개됐다. 이 운동의 중심지는 이탈리아의 수많은 도시 중에서 피렌체가 차지했으며 그 피렌체를 움직이는 주인공은 금융업자인 메디치 가문이었다.
국부 코지모의 손자 위대공 로렌초는 3대에 걸쳐 구축되고 증강된 강대한 경제력과 피렌체 시민의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유럽 최고 명문가의 군주가 됐다. 거기다 어릴 때부터 받은 완벽한 제왕 교육은 그를 풍부한 지성으로 만들었다.
할아버지 코지모는 종종 심포지엄을 열어 손자가 학자나 지식인들과 토론하는 기회를 만들었는데 로렌초도 메디치 궁에 인문학자를 비롯해 예술가들을 초대했다. 로렌초 덕택에 자리를 함께한 이들의 교류는 르네상스라는 찬란한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다양하고 이질적인 요소들이 모여 상호반작용을 통해 융합될 때 상상을 초월하는 새로운 큰 에너지가 분출하게 되는데 이것을 메디치 효과(Effect of Medicis)라고 부른다.
프란스 요한슨(Frans Johansson)이 2004년에 발간한 그의 책 '메디치 효과'에서 서로 다른 지식이나 재능을 지닌 사람의 수많은 생각들이 만나면 그 교차점에서는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고 했는데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 등 다방면에서 천재성을 보인 르네상스 맨이 가능한 이유이기도하다.
메디치가문의 또 다른 업적은 엄청난 후원으로 소장하게 된 작품들을 공작 코지모 1세의 집무실이었던 우피치(Uffizi)에 그대로 전시해 후세에 전한 점이다. 비록 300여년이 지나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1737년 마지막 승계자인 안나 마리아 루드비카는 메디치가문의 재산은 피렌체의 재산이라 말하며 모든 소장품을 토스카나 대공국에 기증했다.
우피치미술관은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꼽히는 루브르나 대영박물관, 메트로폴리탄과에 비하면 작은 규모이지만 역사적 가치는 절대 뒤지지 않는다.
다른 세계적인 박물관들은 소장품 대다수가 다른 나라에서 옮겨온 제국주의의 산물이라면 우피치는 14-16세기에 피렌체에서 발달한 자국의 미술품을 바로 그 미술품이 제작되던 당시에 세워진 건물에 소장되어 있어 소장품과 미술관이 동일한 역사의 현장과 상황 속에 함께 놓여 있는 미술관이자 피렌체란 도시의 예술성과 가치를 증명해주는 증거물로 피렌체의 영원한 유산인 것이다.
정경애 보다아트센터관장
2015-07-14
코시모 메디치
면죄부를 팔아 종교 개혁을 초래한 교황 레오 10세와 불멸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
둘을 하나로 묶을 만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메디치(Médicis) 가문이다.
레오 10세는 메디치가의 일원이고 다빈치는 메디치가의 식객이었다.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은 사람들 명단에는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군주론》을 지은 마키아벨리도 포함되어 있다. 종교재판에서 근신을 명받은 후 여생을 메디치가의 보호 속에서 보낸 갈릴레이는 새로 발견한 목성의 위성에 '메디치의 별'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후발 은행업자인 메디치 가문이 도약한 계기는 1412년 1월 16일 체결한 교황청과의 전속 은행 계약. 메디치는 프랜차이즈 제도를 처음 도입해 유럽 16개 도시에 지점을 깔았다. 돈은 권력으로 이어졌다.
1743년까지 피렌체를 지배한 메디치는 가장 많은 교황(레오 10세, 클라멘트 7세, 레오 11세)을 배출한 집안으로도 유명하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상업 자본으로 출발한 정치권력이 300년 넘게 유지된 사례도 메디치가 유일하다.
중세 후반과 근대 이탈리아 역사를 대변하는 메디치 가문사에서 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두 사람. 코시모(Cosimo de Médicis, 1389 ~ 1464)와 그의 손자 로렌초(Lorenzo de Médicis, 1449 ~ 1492)다. 문화 예술을 후원하고 대학에 막대한 기부금을 낸 '위대한 로렌초'는 수필과 극화를 남긴 르네상스의 문장가로도 기억되고 있다.
코시모는 현대 기업 경영에도 영향을 미친 인물. 상인과 군인, 예술가, 성직자 등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을 모아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창조와 혁신으로 연결시킨 그에게서 '메디치 효과'라는 용어가 나왔다. 코시모는 고리대금업으로 번 막대한 돈을 교회와 도서관·병원 건립, 학문 지원에 쏟아부었다. 면죄부를 팔아 종교 개혁의 빌미를 제공한 교황 레오 10세와 서구적 자선 문화의 선구자가 한 집안에서 나왔다는 점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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