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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넷(ARPAnet) / 1969 인터넷의 시초

Paul Ahn 2006. 1. 27. 08:25

⊙아파넷(ARPAnet) / 1969 인터넷의 시초

(wikipedia.org)

 

아파넷(ARPAnet)은 미국 국방부의 고등 연구 계획국(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 약칭 ARPA)의 주도하에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패킷 스위칭 네트워크로 1969년에 시작되었으며, 현재의 인터넷의 원형으로 알려져 있다.

아파넷이라는 글자는 모두 대문자로 ARPANET로 표시되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의 유래는 1960~1970년대 미국 국방부 산하의 고등 연구국(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ARPA)의 연구용 네트워크가 시초이며, 군사용 네트워크는 밀네트(MILNET)로 발전되었다. 동서냉전이 한창이던 때 미국 국방부 고등계획국에서는 핵전쟁 등의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연구하였다.

 

 

연구결과 기존의 회선 교환(circuit switching)방식보다는 패킷 교환(packet switching)방식이 매우 견고하고 생존성이 높았다. 최초의 2 노드간의 상호연결은 1969 10 29 UCLA SRI연구소간에 연결되었다. 이 통신망을 ARPANET이라고 하였으며 현재의 인터넷망의 시초이다.

 

현재와 같이 TCP/IP 기반의 네트워크가 된 것은 1983 1 1 ARPANET NCP 패킷 송출을 중단한 것이 기점이다.

 

1989년에는 그래픽 환경이 개선되고 월드와이드웹이 등장하면서 네트워크 기술에 한 단계 진일보한 기술이 부가되었다. 이를 통해 기존의 교육이나 공공목적으로 주요 사용되던 네트워크 기술에 민간기업의 참여로 상업적 목적의 온라인 서비스가 추가되고 이용자층 또한 사회 여러 계층으로 확산되면서 바야흐로 인터넷은 콘텐츠 면에서나 이용자 면에서 모두 양적질적 팽창을 가져오게 되었다.

 

인터넷의 상업적 이용이 허용되고, 인터넷을 보다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브라우저로서 1993년 모자이크(Mosaic)가 출시되면서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1994년에는 대표적 검색서비스인 야후가 등장했고, 그 이듬해에는 미국의 대표적 온라인 통신업체인 컴퓨서브(CompuServe), 아메리카 온라인(America Online), 그리고 한때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익스플로러와 양대 웹브라우저로 간주되었던 넷스케이프(Netscape)가 선을 보였다.

 

현재는 전 세계 146개국 5,000여 컴퓨터 네트워크와 900만대 이상의 호스트 컴퓨터가 연결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인터넷 역사〉

 

한국 최초의 인터넷은 1982 5 15일 전길남 박사가 주도하여 서울대학교와 한국전자기술연구소( ETRI) 사이에 구축한 네트워크 시스템이다. 한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터넷 연결에 성공한 나라가 되었다.

 

1993년 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실시하였으며 1990년대 후반부터 PC와 초고속 인터넷이 빠르게 보급되었고 1998 6월에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4년 만에 대한민국은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가 1000만 명을 넘어섰었다.

 

2000년대 중~후반의 인터넷 포털은 디지털 카메라의 넓은 보급으로 이전과 다르게 사진, 동영상 등을 개시하는 문화로 이루어졌으며 이에 따라 싸이월드의 미니홈피 서비스가 4000만명이 넘는 가입자 수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인해 인터넷 역시 모바일 문화와 결합되어 시장의 형태가 바뀌게 되었다. 기존의 싸이월드와 네이트는 모바일 서비스에 전혀 대비하지 못해 스마트폰의 대중화가 시작된 2011년부터 외국계 모바일 SNS인 트위터에게 점유율을 뺏기고 시장에서 도태되었으며, 다음과 야후!코리아 등의 기타 포털 사이트들도 스마트폰의 대중화에 위기를 맞았다.

 

현재 2022년 대한민국의 PC 포털사이트는 모바일 시장에 밀려 대중성을 잃었으며, 모바일 시장에 맞춘 구글과 네이버 등만이 대중적으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