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O메뉴〕입학·졸업 시즌의 음식&음식점
입학과 졸업은 참으로 멋진 젊음의 축제다. 비록 어떤 새로운 시련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지만 일단은 새 기쁨과 새 희망의 출발점임에는 틀림없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입학과 졸업에는 사건도 많고 사연도 많다. 이제 내 기억의 편린들에 묻어있는 흔적들을 더듬어 입학과 졸업에 관련된 음식과 음식점을 이야기해 본다.
명배우 더스틴 호프먼의 멋진 연기와 남성듀엣 팝 아티스트 ‘사이먼 & 가펑클’의 노래로 더 유명해진 영화 ‘졸업’(The Graduate, 마이크 니콜스 감독)은 처음으로 개봉됐던 60년대 후반부터 세계적 명화의 반열에 오른 걸작중의 하나다.
손위 유부녀 로빈슨 부인(앤 밴크로프트)의 유혹에 빠져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명문대 우등졸업생 벤저민(더스틴 호프먼)이 마침내 그 관계를 끝내고 사랑하는 엘레인(캐더린 로스)을 쟁취한다는 그렇고 그런 통속적 이야기지만, 니콜스 감독의 치밀한 연출과 더스틴 호프먼 특유의 이미지와 연기 덕에 2~3류 치정극을 면했을 뿐 아니라 품격까지 유지한 고급 영화다.
게다가 졸업이 어떤 성취일지언정 완성이 아니며 새로운 시련의 시작일 뿐이라는 걸 일러주는가 하면, 젊은 시절에 실수하더라도 결국은 제 길을 찾게 된다는 이를 테면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兵家之喪事’ 라는 투의 자못 비장한 교훈까지 웅변하는 계몽주의적 낭만파 영화이기도 하다.
아닌 게 아니라 입학과 졸업은 참으로 멋진 젊음의 축제다. 비록 어떤 새로운 시련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지만 일단은 새 기쁨과 새 희망의 출발점 임에는 틀림없기 때문이다. 입학과 졸업을 위한 갖가지 축하행사가 열리고 소비시장에 입학·졸업 대목이 크게 서는 이유다. 이래 저래 입학과 졸업에는 사건도 많고 사연도 많다. 이제 내 기억의 편린들에 묻어있는 흔적들을 더듬어 입학과 졸업에 관련된 음식과 음식점을 이야기해 본다.
⊙ 초등학교 졸업-중학교 입학 & 사은회
6.25 전쟁과 1년여의 피란생활, 그리고 정전에 의한 귀향과 복교 등 참 힘들고 고단한 초등학교 6년간이었다. 하지만 그 어려움에서도 나는 밉지 않은 모습으로 졸업한데 이어 기특하게도 중학교 입학식에서 신입생 대표로 선서문을 읽는 영광을 차지했었다. 그래서 부모님께서는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전교 선생님들(30여명)을 모시고 집에서 사은회를 열었는데 그냥 불고기 파티라 하는 게 좋을 만큼 단출한 메뉴였다.
소고기 석쇠구이와 소 갈비찜 등 당시에는 귀할 수 밖에 없는 두 가지를 중심으로 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함경도식 가자미 식해’를 밑반찬으로 내 놓았으니 인기를 끌 수 밖에 없었다. 부엌에서 불고기와 갈비찜을 계속 날라 왔지만 놓기가 무섭게 접시는 바닥이 나 버렸다. 가자미 식해는 특유의 풍미 외에도 불고기와 갈비찜의 다소 느끼한 뒷맛을 정리해 주는 데에는 제격이었으므로 한 항아리를 텅 비워 버렸다. ‘갈비찜’ 과 ‘가자미 식해’의 인기는 지금까지 이어져서 ‘게장’과 함께 지금도 우리 집의 3대 브랜드 메뉴로 꼽히고 있다. 지적 재산권의 소유자는 어머니시다.
⊙ 고등학교 입학 & 일식 집 ‘미조리’
30인조 밴드부장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중학시절을 보냈던 나는 그야말로 청운의 뜻을 품고 고향 강릉을 떠나 동창생 KMK, PYS와 함께 서울의 어느 고등학교 입시에 도전, 오랜 숙원을 이뤘다. 그 해(1959. 4월) 아버지께서는 내 고교입학을 축하하고 서울의 친척 어른들에게 한 턱 내기 위한 모임을 북창동의 일식집 ‘미조리’ 에서 열었다.
나로서는 제대로 된 일본식 생선회와 생선초밥을 처음 맛 본 귀한 자리였는데 돼지고기 편육처럼 두툼하지 않고 종이처럼 얇고 싱싱 쫄깃한 생선회가 한결 세련돼 보였다. 연어 알을 얹은 초밥도 일품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연어알 초밥을 으뜸 초밥으로 꼽고 있거니와 일본식 회전 초밥집에서 추가부담을 감수하고라도 연어알 초밥을 주문하는 이유다.
⊙ 고교 졸업, 대학입학 & 중국 음식점 ‘대려도’
1962년 2~3월, 내 고등학교 졸업 & 대학 입학 때 당신의 뜻을 어긴 나의 대학선택으로 심기가 불편해 진 아버지가 바쁘다는 이유로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으셨다. 대신 진외조모님과 나와 동갑인 아주머니가 시청앞 중국음식점 ‘대려도’에서 내 고교졸업과 대학입학을 동시에 축하해 주었는데 탕수육, 유산슬, 깐풍기, 양장피, 잡채 등 요리 너 댓 접시와 자장면으로 이루어진 호화 메뉴가 내 입맛을 사로 잡았다.
당시 ‘대려도’는 인근 ‘아서원’과 함께 최고급 중국음식점으로 유명했었는데 아쉽게도 중국인 주인이 70년대초 문을 닫고 대만으로 철수해 버렸다. 하지만 당시 조리사였던 분이 70년대 중반 동대문 운동장 건너편의 ‘동화반점’을 인수해서 지금까지 그 맥을 이으며 명소로 자리 잡은 게 그나마 다행이다.
⊙ 대학졸업 & ‘라이브 뮤직카페’
1966년 2월의 대학 졸업식은 내게 쓰디 쓴 추억 그 자체다. 내 젊음의 한 스테이지가 쓸쓸하게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사귄 내 여자친구에 대한 이견으로 인한 아버지의 노기 섞인 훈계와 설득이 지금도 귓전을 맴도는 듯 생생하고, 졸업식장에서의 어색한 분위기에 어쩔 줄 몰라 했던 그 친구의 오롯한 모습이 아직도 짠하다. 그런 분위기에서 축하잔치는 언감생심이었지만 이종사촌 자형과 동생이 졸업 축하를 겸한 ‘위로연’을 열어주어 그나마 위안이 됐었다.
그 날 우리는 밴드가 있는 어느 카페에서 통금시간까지 맥주와 위스키를 마셨다. 술을 잘 못 했던 나는 비좁은 무대에 서서 밴드의 반주로 당시의 내 18번이었던 ‘길 잃은 철새’(최희준) 와 ‘불나비 사랑’(김상국) 을 비롯해서 당시의 인기가요를 계속 노래했으니 그 분위기는 또 얼마나 썰렁했을까. 노래가 아니라 차라리 흐느낌이었으리라.
⊙ 공군입대 축하 & ‘유엔 센터 나이트 클럽’
나의 고교·대학·공군장교 동기생인 JKJ(진 씨앤아이 대표)의 큰 형이신 JRJ 회장이 우리들의 입대를 축하한다며 남산 아래 회현동의 유엔센터 나이트 클럽에서 근사한 입대 축하연을 베풀어 주셨다. 비프스테이크와 조니워커 블랙, 그리고 가수들의 노래와 멋진 댄스가 아직도 눈에 삼삼하다.
그 곳은 당시 최고급 사교장으로 유명했거니와 최희준, 유주용, 위키 리, 박형준, 현미, 이금희 등 당대 최고 인기가수들의 라이브 콘서트가 열리던 꿈의 무대이기도 했다. 아무튼 동생들의 친구들까지 챙겨 주었던 JRJ 형님은 지금도 우리와 가끔 자리를 같이 할 만큼 가까운 데, 평생 격의없는 아우사랑으로 우리에게 찐한 감동을 주신다.
2008-03-03
관리자기자, foodbank@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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