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화백화점(太和百貨店) 1983-1997
• 위치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전동 193-1
• 개점 : 1983년 11월
• 폐점 : 2001년 8월
1994년 촬영한 태화쇼핑의 전경
태화백화점은 1983년 11월 개장한 부산광역시의 향토 백화점이다. 부산 최초로 단위가격을 사용해서 쇼핑계에서 혁명을 일으켰다.
원래 부산진구 부전동 193-1번지 일대는 1962년 9월 12일에 개관한 태화극장 부지였다. 당시 태화극장은 서울의 마포극장을 제외하고 한강 이남에서 가장 수입이 좋은 극장으로 꼽힐 만큼 호황을 누렸다.
이후 독자적인 사업을 모색하던 중 정부의 유통 근대화 5개년 계획 발표에 따라 부산 지역 최초의 슈퍼마켓인 태화슈퍼마켓을 1974년 9월 20일 개점하였지만 슈퍼 연쇄화 사업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곳곳에 슈퍼 체인이 들어서 사업성이 떨어지자 1976년 6월 25일을 기해 슈퍼를 임대 백화점으로 전업한 것이 태화쇼핑의 시초였다.
이후 비디오의 보급으로 극장 사업이 사양길로 접어들고 지하철 공사 시작으로 서면이 중심상권으로 발전할 조짐을 보이자 1982년 2월 1일 창업주인 김갑진이 자본금 5000만원으로 태화쇼핑 법인을 설립하고 같은 해 3월 2일에 20년간 이어왔던 태화극장의 영업을 종료한 후 5월 27일 착공에 들어가 공사비 31억 3000만 원을 들여 착공 1년만인 1983년 5월 12일 지하 1층 지상 6층 매장 면적 약 8,926㎡(2,700평) 규모의 현대식 건물을 완공했고 전관을 직영 백화점으로 개점했으며 같은 해 12월에는 부산지역 최초로 백화점 자체 신용카드의 발급을 실시하였다.
1985년 7월 1호선 개통과 더불어 광복동에서 서면으로 중심 상권이 이동하면서 광복동의 유나백화점을 밀어내고 부산에서 1등 백화점이 되었다. 1983년에는 기존 부산고속버스터미널 맞은 편에 새로운 고속버스터미널 건물이 완공되며 같은 건물에 생겨난 부산백화점이 1등의 입지를 위협하는 듯한 시점이 짧게 있었다.
그러나 부산백화점은 가구 전문 백화점이라고 소문이 나면서 1등의 지위는 서면 롯데백화점 부산본점이 생길 때까지 계속 유지되었다. 서면 롯데백화점이 부산 1등 백화점이 된 후에도 IMF 시기에 오너가 바뀔 때까지 부산을 대표하는 1등 향토 백화점으로 부산 시민들에게서 옛 영광은 계속 인정되었다.
1998년 3월 법정관리 인가를 받은 후 범시민적인 태화쇼핑 살리기 운동을 전개하였고 2000년 11월에는 인터넷 쇼핑몰 "쇼핑투데이"를 오픈하는 등으로 돌파구를 찾으려고 하였으나 이미 쌓인 큰 부채액과 대형 백화점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약한 경쟁력, 매출액의 급격한 감소 등의 이유로 좌절되었으며 결국 2001년 5월 28일 법정관리 폐지 이후 같은 해 8월 27일 파산선고를 받아 9월 22일 상장폐지에 이어 10월 28일 고별전을 끝으로 폐점하였고 법인 자체는 2006년 6월 30일자로 소멸처리되었다.
파산한 후 2003년 백화점 건물을 인수한 ㈜텐커뮤니티가 백화점 건물의 리모델링을 거쳐 그 해 6월 5일에 쥬디스 태화로 개장하였고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주로 패션 및 의류 전문 쇼핑몰로 운영되고 있으며 상가 운영도 병행하고 있고 두껍상회 등 팝업스토어도 운영되고 있다.
1983년 11월, 부산 향토 백화점계의 거물인 태화쇼핑이 문을 열었다.
1985년은 부산도시철도 1호선이 개통하면서 부산의 중심 상권이 광복동에서 서면으로 이동하던 때였는데요. 서면 대로변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을 등에 업고, 부산 매출 1위 백화점으로 우뚝 선다.
태화백화점은 1991년 4월 본관을 확장하고, 1994년 11월엔 태화쇼핑을 상장하기도 했는데요. 1996년 신관도 개점하면서 덩치를 키웠습니다. 하지만 1995년 5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롯데백화점 부산본점이 문을 열었고, 그 이후로 매출은 급격히 감소해 갔습니다. 규모 확장으로 인한 자금난까지 겪으면서 어려움이 가중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태화쇼핑 회장이 극단적 선택을 해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1999년 태화백화점은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당시 향토기업인 태화백화점을 살리기 위한 시민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운영되긴 했으나, 결국 운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2001년 결국 파산하고 맙니다. 지금은 (주)텐커뮤니티가 인수해 지금은 '쥬디스 태화'로 운영되고 있다.
2003년 태화백화점의 간판이 철거되는 모습 / 부산일보DB
태화쇼핑 창업주 김갑진 회장
재벌 그룹에 맞섰던 향토 백화점
골리앗 위세에 IMF겹쳐 파산 불운
태화쇼핑은 현 쥬디스 태화의 전신이다. 1982년 창업주 김갑진 회장이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에 세운 향토 최대 백화점이었다. 1945년 거제리에서 선일직물사를 창업해 크게 성공을 거둔 김 회장이 개관한 태화극장 자리에서 문을 연 토착 백화점이었다.
김 회장 일가가 1970년대 서울 마포극장을 제외하고는 전국에서 가장 관객이 많다는 태화극장을 접고 백화점 사업에 나설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것은 장남 김정태 회장이 1970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면서부터 였다.
미국 위스콘신 대학을 졸업한 장남 김 회장은 1974년 태화쇼핑 건너편 옛 천우장 인근 부지에 태화슈퍼마켓을 열면서 유통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8년 만인 1982년 극장사업이 사양세에 접어든 것을 계기로 '유통업계의 꽃'이라고 불리는 백화점 사업에 투신한 것이다.
그렇게 출범한 태화쇼핑은 개장 첫날 매출 5천200만 원을 기록하고 6개월 만에 고객 3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연속 대박을 터뜨렸다. 1995년에는 전국 백화점 중 '객단가 최고액'을 기록했을 정도로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그런 태화쇼핑에 검은 그림자가 몰려오기 시작한 것은 1993년 롯데와 현대백화점이 부산 진출을 시도하면서부터였다. 막강한 자본력과 최첨단 영업 전략을 앞세운 재벌 그룹 소속 백화점들에 정면 대결을 선언한 것이 결정적인 패착으로 돌아온 것이다. 기존 본관 건물 인근에 초현대식 신관 건물을 신축한 데 이어 울산 울주군에 대형 물류 창고를 짓는 등 과감하게 투자를 것이 무리수였다. 여기에다 넥센과 공동출자로 삼성자동차 부품업체인 태흥산업(현 넥센테크)을 설립하는 등 사업다각화를 추진한 것이 자금 압박을 가져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IMF사태까지 터진 1997년 태화쇼핑은 부도 처리되는 운명을 맞았고 그 충격을 이겨내지 못한 2세 경영인 김 회장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이후 태화쇼핑은 2001년 8월 파산절차를 거쳐 텐커뮤니티로 넘어가는 등 수차례 파란을 거듭하면서 점차 부산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골리앗처럼 거대한 재벌사들의 위세에 다윗이 되고자 했던 향토 백화점이 있었다는 전설만 남긴 채.
2014-11-01 08:24:14
정순형 논설위원 juns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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