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Y"는 "EIY"이다.
뉴질랜드의 인기 TV 프로그램에는 집수리와 정원관리에 대한 것들이 많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출연자들이 직접 망치와 삽을 들고 마음에 들지 않는 집과 정원을 새롭게 변신시키는 과정을 보여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전문가의 아이디어와 숙련된 기술 인력을 제공받기는 하지만, 작업의 상당 부분을 출연진 스스로가 땀을 흘려 해내어야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DIY(Do It Yourself) 프로그램인 셈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산업화 이전에는 모든 것들을 스스로 고치고 다듬고 만들어야 했기에 DIY는 사실 인류의 오랜 삶의 방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의미로 그 용어가 사용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영국에서부터였다고 한다.
◇당시 영국에서는 전후의 경제난과 생활고를 극복하기 위해
내손으로 직접 집과 가구를 고쳐 사용하자는 국가적 생활운동이 일어났고 주택의 수리와 개선에 대한 정보지 "Do It Yourself"가 발간되었는데, 그 이름이 DIY란 용어로 굳어져서 ‘집을 손수 고치거나 관리하고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손수 만드는 활동’이란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DIY는 그 출발부터가 단순한 취미활동이 아닌 하나의 생활문화로서 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 뉴질랜드의 집집마다 있는 차고(garage)는 DIY의 산실이다.
영연방의 일원인 뉴질랜드도 예외는 아니어서 DIY 문화는 이곳 키위들의 생활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잔디를 깎는 일은 물론이고, 담장을 세우고, 페인트칠을 하고, 차고용 서랍장을 만들고, 자동차를 수리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직접 자신의 손으로 하는 것이 이곳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이곳 키위들의 차고(garage)에는 웬만한 공장 뺨칠 정도의 온갖 연장과 공구들과 물품들이 구비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오랫동안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벽에 못을 박을 때 외에는 망치를 들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이곳의 DIY 문화에 익숙해지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땅한 연장과 공구들도 없었거니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나는 너무나 무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얼마 되지 않는 우리 집 정원의 잔디밭도 옆집의 빌 할아버지께 부탁해서 깎아야 했다. 정원 한 구석에 있는 텃밭의 위치가 마음에 안 들어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도 남들은 하루면 다 할 일을 나는 일주일이나 걸렸다.
익숙하지 않은 삽질 때문에 손에는 물집이 잡혔고 양동이로 흙을 퍼 나르다 보니 어깨가 빠질 것처럼 쑤셨다. 보다 못한 빌 할아버지께서 조금 거들지 않았다면 아마 시간이 더 걸렸으리라. 그렇게 땀을 흘리면서 조금씩 요령을 배워가고 정원을 가꾸고 집을 관리하는데 필요한 연장과 도구들을 하나씩 갖추어 가면서 나도 이곳의 DIY 문화에 차츰 적응해 나갔다.
그래서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기자 나는 거실에 놓을 커피 테이블을 직접 만들기로 했다. 한국에서 장롱을 처분할 때 장롱속 받침대로 쓰였던 하얀 페인트칠이 된 두터운 나무판자들을 버리지 않고 이곳까지 가져왔는데, 그 선반들을 이용하면 멋진 커피 테이블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차고에서 한나절을 뚝딱거려 열심히 커피 테이블을 만들었다. 그런데 만들어 놓고 보니 다리가 흔들거리고 상판의 페인트칠이 긁혀서 몹시 흉한 게 아닌가! 긁힌 상판은 분무 페인트를 뿌려 해결했지만 흔들거리는 다리는 고정쇠로도 단단하게 고정되지 않았다. 조금 무거운 물건은 올려놓기가 영 불안했다. 결국 아내의 눈총을 받으며 커피 테이블을 새로 장만할 수밖에 없었다.
기술을 천시하는 유교문화의 전통과 실력보다는 간판을 더 중시하는 학벌중심의 사회, 그리고 멀쩡한 물건도 쉽게 내던지고 새것으로 바꾸는 소비문화에 물든 한국에서의 지난 세월이 어찌 쉽게 극복될 수 있으랴. 더군다나 일중독자로 불릴 정도로 노동시간이 긴 한국 사회에서는 망치와 삽을 들고 뚝딱거리고 땀 흘릴 시간적 여유마저 없었고 또한 아파트에서만 살다보니 이웃들의 항의가 무서워서 휴일에도 뚝딱거릴 엄두를 낼 수가 없는 상황이었으니, 나의 실패가 꼭 나의 거친 손재주 탓만은 아닐 것이다.
▲ 웬만한 공장 뺨칠 정도로 온갖 연장과 공구와 물품들이 구비되어 있는 키위들의 차고(garage). 이렇게 되려면 나는 아직도 멀었다.
그러나 최근 주 5일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한국에서도 DIY가 하나의 생활문화로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백화점과 대형할인점을 중심으로 DIY 매장이 대폭 확충되고 있으며, 직접 자기 손으로 뚝딱거리며 만드는 공방도 많이 생겼다는 소식도 들린다.
운영하면서 이러한 DIY 열풍을 선도하고 있는 만화가 최정현씨는 “수영, 자전거, 운전처럼 꼭 배워야하는 것이 바로 DIY”라고 말한다. 이는 단순히 손재주 좋은 사람들의 취미 활동 정도로만 여겨져 온 DIY가 사실은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삶의 기술이라는 말일 터이다.
한국에서는 이 말이 아직 일러 보이지만 뉴질랜드에서는 정말 그렇다. 평일에는 그렇게도 조용하던 거리가 휴일에는 잔디 깎는 소리뿐만 아니라 망치 두드리는 소리, 전동 드라이버 돌아가는 소리, 전동 체인 톱으로 나무 켜는 소리로 제법 시끄럽다. 처음에는 소음으로 들리던 이 소리들은 자주 듣다 보니 이제 익숙해졌고 어떤 때는 음악보다도 아름답게 들리기도 한다. 그 소리들은 정원을 다듬고 집을 가꾸는 소리들이기 때문이다. 그 소리 속에서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찬가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번 주말에는 당신도 한 번 망치를 들어 보는 것이 어떤가? 소음 공해라고 인터폰으로 항의하는 아파트 이웃들이 걱정된다고? 그렇다면 가까운 목공교실을 찾아가 보면 어떤가? 뭘 만드는 데에는 전혀 소질이 없다고? 그렇다면 늘 세차장을 이용하는 당신의 차를 이제부터는 스스로 닦는 일부터 시작해보는 것이 어떤가?
가까운 주변부터 둘러본다면 당신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일들을 분명 쉽게 발견할 수 있을 터이다. 크고 거창한 일만 생각하지 말고 작은 일부터 DIY를 실천해 보자. 처음에는 서툴러서 실수도 많고 짜증이 나겠지만 자꾸 하다보면 익숙해지고 요령이 생겨 재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마침내는 땀 흘려 일하고 난 다음에 느끼는 성취의 보람 속에서 실수와 짜증은 모두 사라지고 즐거움만이 남게 될 것이다.
DIY는 EIY(Enjoy It Yourself)이기 때문이다.
정철용 기자 (ccypoet@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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