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좋은글

〔처세〕중용(中庸)은 가운데가 아니다.

Paul Ahn 2019. 12. 23. 10:24

중용(中庸)은 가운데가 아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 중에 중용(中庸)이란 말이 있습니다.

왜 옛날 어르신들이 늘상 하시는 말씀 중에 ‘중용을 지켜라!’는 이야기 여러분들도 많이 들어 보셨을 겁니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자기자리와 분수를 지키며 살라는 연륜 있는 어른들의 무게 있는 충고 말입니다.

 

사실 우리가 늘 중용을 강조하지만 ‘그 중용적 삶이란 정확한 무엇이냐?’를 묻는다면 그 대답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중용은 공자의 손자인 공급(孔汲), 일명 자사자(子思子)가 쓴 책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중용적 삶이란 동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생 방식이란 의미로도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습니다.

 

 

 12세기에 성리학의 완성자인 주자는 중용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중(中)은 치우치지도 않고(不偏), 어디에 의지하지도 않고(不倚) 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상태다(無過不及)!

용(庸)은 언제나라는 평상(平常)이다.’(中者는 不偏不倚無過不及之名이오 庸은 平常也라)

 

어느 체조 선수가 평균대 위에서 균형을 잡고 있는 모습을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한쪽으로 기울지도 않고 평형을 이루고 있는 그 모습 속에는 정지된 평형이 아니라 역동적 평형이 느껴지며, 일시적 균형이 아니라 지속적인 균형이 떠올려 집니다.

 

중용은 간단히 말하면 역동적이며 지속적인 평형입니다.

중용의 삶으로 말하면 하루 정도 중용의 삶을 살았다고 해서 그 삶을 중용의 인생이라 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늘 평생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아야 비로소 중용의 인생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중용의 인생을 산다는 것은 예로부터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중용을 영어로는 golden mean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영어 단어 속에는 mean 즉 ‘중간’이라는 정지되어 있는 수치적 개념의 중용을 강조하고 있어 동양의 역동적인 중용의 의미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중용이란 A와 B의 수치적이거나 기계적인 중간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와 부인의 고부 갈등에 중용을 지킨다고 어머니가 계신 안방도 아니고 부인이 있는 부엌도 아닌 거실에 있는 상태가 중용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중용은 모든 개인들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수학적인 중간이 아니라 개인의 개별적인 상황을 고려하고 역동적으로 그 기준이 움직이는 이성적인 판단에 근거한 수치입니다.

 

중용은 이도 저도 아닌 중간의 위치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때로는 나아가고 때로는 물러설 줄 아는 진퇴(進退)를 아는 것이 중용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조직 내에 옳지 못한 결정이 내려질 때 중용을 지킨다고 가만히 침묵한다거나, 조직의 생존을 위협할 만한 불의에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적당히 타협하는 것 역시 중용은 아닙니다.

 

중용의 중요한 의미 중에 하나가 시중(時中) 사상입니다.

일명 상황(時)의 중(中)입니다.

 

세상은 무한히 변화합니다.

그 변화를 인정하고 그 변화에 맞춰 정확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중(時中)입니다.

 

‘수시이처중야(隨時以處中也)라!’ ‘그 상황의 변화에 따라 정확한 중을 찾아 처해야 한다!’

여기서 수시(隨時)는 상황의 변화입니다.

처중(處中)은 그 상황분석에 따른 정확한 판단과 실행입니다.

 

공자는 군자야말로 중용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며 소인은 중용에 반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君子는 中庸이요 小人은 反中庸이라)

군자와 소인은 지위나 학식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중용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에 달렸다는 것이지요.

 

중용으로 하루를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얼마나 중용의 룰을 실천하셨습니까?

아침에 식사는 적당히 하셨습니까?

가족이나 직원과의 관계에서 정확한 중(中)은 찾아 내셨습니까?

오늘 저녁 혹시 중용에 반하는 스케쥴은 없으십니까?

공자는 중용적 삶의 어려움을 이렇게 강조합니다.

 

‘천하국가도 고르게 다스릴 수 있고, 높은 벼슬도 사양할 수 있고, 하얀 칼날도 밟을 수 있지만 중용만큼은 만만치 않다

(天下國家도 可均也요, 爵祿도 可辭也요, 白刃도 可蹈也나 中庸은 不可能也니라).’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도, 천하의 높은 자리도 사양할 수 있는 의리도, 시퍼런 칼날을 밟을 수 있는 용기도 중용하기 보다는 쉽다는 이 말 속에 중용의 실천이 얼마나 만만치 않은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상을 사는 모습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다만 어떤 모습으로 살던 그 삶의 기준은 중용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에 얼마나 동의하십니까?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으며, 변화하는 상황을 정확히 읽어내고 처지를 정확히 파악하여, 역동적인 변화에 정확한 판단과 지속적인 실행을 옮길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되는 진정한 중용을 실천하는 리더의 모습이라 할 것입니다.

 

2019-07-29

박재희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