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길일수록 돌아가라, 상급자 설득하기의 원칙
http://premium.mk.co.kr/view.php?no=16937
영국의 전쟁사 연구자 리델 하트(Basil Henry Liddell Hart)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사용한 전략 및 전술을 '전격전'이라는 개념으로 압축했다. 그리고 연합군이 이에 맞서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대부분은 우연과 행운이었지만) 등을 모아서 '간접접근(Indirect Approach)'이란 개념을 창안했다. 오늘날 나토 소속 국가의 군대를 포함한 세계의 여러 군대는 이 간접접근을 작전의 주요 원칙으로 삼고 있다.
'간접접근'은 '직접접근(Direct Approach)'의 반대말이다. 직접접근은 말 그대로 일대일로 '맞짱을 뜨는'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전장에서처럼 양측의 맹장이 나와 일대일로 자웅을 가리거나 제1차 세계대전 때 보병부대가 나란히 서서 서로를 향해 돌진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는 사실 군사작전의 관점에서 보자면 가장 무모하고 승률이 낮은 계책이다.
위에서 간접접근은 직접접근과 반대라고 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간접접근일까.
핵심만 정리해보자.
첫째, 적의 강점을 회피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적을 직접 공격해서 그 강점을 무력화, 파괴하는 것이 승리의 요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적인 힘의 우세가 아군에게 있을 때 가능하다. 그리고 그런 조건은 인류사에 몇 번 없었다. 약점을 두고 강점을 노릴 이유가 없다. 노련한 복싱 선수일수록 집요하게 상대의 약점인 턱이나 옆구리를 노린다.
둘째, 적의 강점을 지속적으로 약화시키거나 무력화시켜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최소의 투입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지점을 공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적의 대부대가 오고 있다고 하자. 그 부대를 향해 역습을 하거나 포격을 하는 것은 직접접근이다. 그보다는 상호 간의 통신을 마비시키거나 군수보급을 차단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라크전 '사막의 폭풍작전'에서 미군은 이런 방식으로 이라크군을 무력화시켰다. 있는 강점도 소용없게 만드는 것이다.
이번에는 간접접근의 원칙을 '상급자 설득하기'에 적용해 보자. 어떤 원칙을 도출할 수 있을까.
첫째, 상급자의 전문 분야는 피해가는 것이 좋다.
특정 사안에 대한 상급자의 생각을 바꾸도록 설득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이때는 우선 돌아가야 하며, 특히 그 사안이 상급자의 전문 분야일 때는 더더욱 그렇다.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내 생각부터 앞세우면 곤란하다. 협상의 대가 허브 코헨은 그런 태도를 '주머니칼을 가지고 단단한 삼나무를 베려는 것과 같다'고 했다. 아무리 칼질을 해도 나무는 그대로 있고 상처만 남는다는 뜻이다.
상급자의 자존심이나 체면이 걸려 있는 사안은 결코 논쟁이나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그럴 때는 시간과 공을 들여 조금씩 천천히 설득해 들어가거나 논점 자체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낫다.
둘째, 설득을 위해 내 논리를 펼 때는 상급자가 '잘 모르지만'+'관심 있었던 분야'를 찾는 것이 핵심이다.
석박사 논문을 써본 사람들이 모여서 대화를 할 때 가장 통탄하며 공감하는 대목은 '지도교수가 잘 아는 분야를 골라 논문을 쓴 것'이다. 대부분 그런 실수를 한다. '지도교수님이 잘 모르는 분야를 택하는 게 낫다'고 선배들이 조언을 해줘도 종종 그런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만 바꿔서 석박사 논문 작성과정이 지도교수를 비롯한 심사위원들을 설득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지도교수도 사람이다. 뻔히 알고 있는 내용을 학생이 백 페이지 넘게 써오면 칭찬보다는 지적이 더 많이 나오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보다는 자신이 모르던 새로운 소재를 학생과 함께 알아가는 쪽이 교수로서도 재미있고 보람 있다.
상급자의 설득도 마찬가지다. 뻔히 알고 있는 내용을 가지고 대충 다 아는 고루한 주장을 펴면 지겹고 싫증이 나지 않겠는가. 새로운 사실, 학설 등을 인용하고 기존과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면서 신선한 해법을 제시하는 쪽이 설득에 더 유리하다.
셋째, 상급자와 평소 자주 의견 교환을 하여 상하 간에 존재하는 계급과 인식의 차이를 미리 줄여놓아야 한다.
회의 석상에서만 얼굴을 마주치는 상급자와 의사소통이 가능할까? 의사소통도 되지 않았는데 설득은 가능할까? 아니다. '의사'에는 감정이 포함되고 '소통'에는 지속성이 포함된다. 평소 꾸준한 대화와 공감 형성 없이는 의사소통도 불가능하다. 어렵다고 귀찮다고 상급자를 피하면 평소에는 편하겠지만 결정적일 때 아쉬움이 많다.
2016.11.30
남보람 국방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파견연구원
'말씀•좋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처세〕No라고 말할 용기보다는 '언쟁 없는 No' 노하우 중요 (0) | 2019.12.23 |
---|---|
〔처세〕중용(中庸)은 가운데가 아니다. (0) | 2019.12.23 |
〔처세〕No라고 말할 용기보다는 '언쟁 없는 No' 노하우 중요 (0) | 2019.12.23 |
〔처세〕감정 컨트롤 잘하는 사람, 요런 특징이 있네요 (0) | 2019.12.23 |
〔처세〕인성이 먼저? 능력이 먼저? 그 이면에 숨은 심리 (0) | 2019.1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