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세〕인성이 먼저? 능력이 먼저? 그 이면에 숨은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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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새 '인성보다는 능력이다' '능력보다는 인성이다'를 제목으로 하는 다른 결론의 두 기사를 보았다. 모두 어떤 연구 결과와 실제 사례를 제시하고 있었다.
오래된 레퍼토리다. '인성이냐 능력이냐'의 담론은 30년을 주기로 한 바퀴 돈다는 샤넬의 블랙 앤드 화이트 패턴처럼 '인성이 우선' '능력이 우선'이라는 상반된 결론을 교차로 내놓는다.
직장인의 능력과 인성을 둘러싼 한국 사회 담화는 이분법적이다. '능력 vs 인성'이다. 그리고 왔다 갔다 한다. 어느 때에는 '능력 위주로 선발하고 대우하는 서구적 사고방식'을 찬양하고 또 조금 시간이 지나면 '이러니저러니 해도 인성이 우선'이라면서 일본 중소기업 사례를 대대적으로 보도한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그거 봐, 역시…' 하면서 댓글을 달고 SNS에 공유한다. 냄비근성이라는 자조적 표현이나 가치 기준이 없는 사회라는 절망적 진단이 전혀 과하게 들리지 않는다.
이분법적 사고는 편리하고 강렬하다. 마치 3분만 끓이면 누구나 맵고 짠 감칠맛을 느낄 수 있는 인스턴트 라면과 같다. 한국 사회 분위기에 딱 맞춤이다.
물론 이분법이라는 게 우리만의, 어제오늘 현상은 아니다. 선과 악, 삶과 죽음은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된 이분법이다. 그러나 심하면 병이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이분법적 사고의 고착은 정신병증으로까지 이어진다. 이것 아니면 저것, 택일을 강요하는 강박증, 집착증이 그것이다.
정신병증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문제는 많다. 심리 범주상 이분법적 사고는 회피 정서에 속한다. 즉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을 해결하려는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대신 단순히 둘 중 하나를 고르려는 태도, 스트레스 상황에서 이를 돌파하지 않고 어느 한 방향을 정해 최단거리로 도망가려는 심리가 이분법적 사고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단·무·지(단순, 무식, 지랄)'가 된다.
단·무·지의 예로 고사리와 MSG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오래전 고사리 시장이 싹 망한 적이 있다. 발암물질이 들어 있다고 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발암물질이 들어 있다→나쁘다→안 먹는다'로 순식간에 결론이 났다. MSG도 마찬가지. 방송과 언론에서 MSG가 만병의 근원이라고 보도하자 다음날부터 제품 판매가 뚝 떨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실제로 생고사리를 몇 바구니씩 먹으면 발암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고 한다. 세상에 누가 생고사리를 몇 바구니씩 먹겠는가. MSG의 경우 건강을 해칠 정도 섭취량은 '국자 단위 첨가'였다. 아무리 짠맛을 좋아하기로 누가 국자 가득 조미료를 들이붓겠는가.
이처럼 이분법적 사고가 불러오는 큰 해악은 극단적 사고와 행동이다. 다양하고 온건한 해법을 찾을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이것 아니면 저것, 'all or nothing'의 방식으로 대처한다.
능력이 우선인가 인성이 우선인가의 문제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능력도(인성도) 중요하지만 사실은'이라고 운을 떼면서 '능력만 있으면 성공한다'든가 '결국 최후의 승자는 인성을 갖춘 사람'과 같은 결론으로 끝나는 것이다. 둘을 대립항으로 놓고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 현실의 직장업무에서 무슨 도움이 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데에 많은 사람들이 혹하고 넘어간다.
극단적 사고, 극단적 논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팩트 확인을 하지 않은 글, 비현실적 추론을 감추기 위해서 언론 등은 극단적 예시를 들어 대중의 눈을 멀게 만든다. 인성은 제로에 가까웠지만 능력은 탁월했던 스티브 잡스라든가, 복종과 인성을 중시하는 일본 직장의 사례를 슬쩍 집어넣는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사람들의 착각이 시작된다. 한국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직장을 다니는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고민이란 실은 굉장히 평범한 것들이다. 고압적 자세로 자신을 무시하는 상사라든지, 책상 정리를 하지 않는 업무습관 같은 것들 말이다.
이분법적, 극단적 사고를 교묘히 이용하는 사람들은 우선 누구나 관심을 둘 만한 평범한 고민을 슬쩍 던진다. 그러고 나서 '능력이냐 인성이냐' 같은 혹하기 쉬운 이슈로 고민을 뒤덮는다. 여기에 더하여 스티브 잡스나 유명한 일본 기업 사례 같은 떡밥을 던진다. 여기에서부터 애초의 실체적인 고민은 사라진다. 사람들은 '능력이 중요하다 vs 인성이 중요하다'를 놓고 버튼을 누르는 텔레비전 쇼의 판정단 같은 로봇이 되어버린다.
이런 촌극에 자주 노출되다 보면 있지도 않은 고민, 우리를 그 어느 곳으로도 데려가지 않는 해법을 찾아다니는, 이른바 '자기계발 중독자'가 된다. 스티브 잡스 인터뷰나 유명 최고경영자(CEO)가 TED에서 강의한 동영상을 찾아보고, 일본의 직장에 대해 쓴 일본인 컨설턴트 책이나 CEO를 대상으로 쓴 피터 드러커의 경영지침서를 구입한다.
길게 썼지만 결론은 이런 것이다. 직장 생활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회의 일원으로 다른 사람들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으며 살기 위해서는 능력도 필요하고 인성도 중요하다. 둘 중 어느 하나가 더 중요한 것도 아니며,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고려할 것들은 능력과 인성 말고도 넘쳐날 정도로 많다. 그리고 그 능력, 인성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가 하나하나 다 밝혀서 말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생각과 태도, 행동을 뭉뚱그려 그렇게 편의상 부르는 것이다. 그것은 삶의 지침이나 직장 생활의 잣대가 되긴 너무 가냘픈 이정표다.
또한 우리가 경제적 여건이 보장된 삶을 살고 일에서 보람을 얻기 위해 필요한 능력과 인성의 수준은 사실 그렇게 높은 것이 아니다. 오늘도 수십억 명의 사람이 큰 문제없이 출근하고 월급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에게 피터 드러커 같은 관리 능력이나 오른뺨을 맞고 왼뺨을 내줄 성인의 인성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언론 기사와 SNS에서 당신과 별다를 바 없는 기자나 일반인이 어딘가에서 읽고 퍼온 글에 일희일비하지 말자.
2016.08.30
남보람 국방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파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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