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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年企業〕 100년 장수기업의 꿈

Paul Ahn 2019. 9. 17. 12:29

100년 장수기업의 꿈

http://news.mk.co.kr/v2/economy/view.php?year=2019&no=487519

 

한국의 장수기업현황.pdf

 

 

장수기업은 모든 기업인의 꿈이다. 대를 이어 회사를 경영하면서 국가 경제성장, 일자리 창출에 한몫한다는 자부심 덕분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독일, 일본 등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장수기업이 극소수에 그친다. 1896년 창업한 두산, 이듬해 설립된 동화약품과 신한은행 등 일부 기업만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중이다. 그나마 수십 년 동안 대를 이어온 가족기업들은 불법 상속, 금수저 등 부정적인 이미지로 여론 지탄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선진국은 수많은 장수기업이 맹활약하며 국가 경제를 이끈다. 각국 정부도 가업승계에 걸림돌이 될 만한 상속세 부담을 덜어주며 장수기업 활성화에 힘쓰는 중이다. 오랜 기간 생존한 가족기업이 사회로부터 대접받고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장수기업이 되려면 어떤 DNA가 필요할까. 우리나라도 장수기업이 대접받는 사회가 될 수 있을까. 독일, 일본 현지 장수기업 실상과 함께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모색해본다.

 

 

100년 기업 일본 3만3079 vs 한국 8

세금·규제·反기업 정서…가업승계 막아

 

지난해 기준 창업 100년을 넘긴 일본과 한국의 장수기업 수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미국 1만2780개, 독일 1만73개, 네덜란드에는 3357개사가 창업 후 100년 이상 생존해 있다.

 

장수기업 범위를 ‘200년 이상’으로 좁혀보면 결과는 더 참담하다. 세계적으로 200년 이상 된 장수기업은 일본 3937개, 독일 1563개, 프랑스 331개, 영국 315개, 네덜란드 292개 등이다. 주로 일본과 유럽 회사다. 중국도 200년 업력을 지닌 기업이 9개 있다.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는 어떤가.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에는 200년 이상 된 기업이 단 한 곳도 없다.

 

1896년 서울 종로에 문을 연 ‘박승직 상점’이 123년간 두산그룹으로 성장한 것이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이어 동화약품, 신한은행(이상 1897년), 우리은행(1899년), 몽고식품(1905년), 광장(1911년), 보진재(1912년), 성창기업(1916년) 등 8개 기업이 100년을 갓 넘었을 뿐이다.

 

S&P지수에 등재된 전 세계 90개 기업 평균수명이 65년인 데 반해 대한상공회의소가 집계한 국내 1000대 기업의 평균수명은 약 28년에 그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내에서는 ‘30년 이상 된 기업’을 장수기업, 45년 이상 된 기업을 ‘명문장수기업’으로 판단할 정도다.

 

해외 장수기업들은 어떻게 수백 년간 영속할 수 있었을까. 세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첫째, 시대와 환경 변화에 발맞춰 사업 포트폴리오를 꾸준히 재편했다.

 

둘째, 끊임없는 연구개발(R&D)로 틈새시장을 개척하는 등 독자적인 경쟁력을 확보해나갔다.

 

셋째, 협력업체·소비자·임직원 등 이해관계자와의 신뢰를 지켜왔다. 실제 장수기업들은 사회적 책임이나 사회적 공헌도를 매우 중요한 기업가치로 생각한다.

 

세계 장수기업 모임인 에노키안협회 회원사가 되려면 200년 이상 된 기업이면서 창업자의 자손이 경영자거나 임원이어야 한다. 이 협회에서 강조하는 장수기업 조건 역시 가족의 화합, 기업가정신과 기술 혁신, 그리고 스튜어드십과 사회적 책임이다.

 

장수기업과 가업승계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중요한 변수다. 장수기업이 많은 독일과 일본은 가업승계를 단순히 ‘부의 대물림’으로 보지 않는다. ‘기술과 경영, 사회적 공헌의 대물림’으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이 덕분에 이들 국가에서는 대기업뿐 아니라 장수기업 요건을 갖춘 중소·중견 장수기업도 상당하다.

 

국내에 장수기업이 유독 적은 이유는 뭘까. 산업화 역사가 짧은 탓도 있지만 기업의 장수를 가로막는 ‘걸림돌’도 원인으로 꼽힌다. 높은 상속세율 등 과한 세금 부담, 노사 문제와 각종 규제, 가업 상속을 ‘부의 대물림’으로만 바라보는 반(反)기업적 정서 등이다.

 

직계비속에 기업을 승계할 때 한국의 상속세 최고 세율은 50%에 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6.6%) 국가 중 일본(55%) 다음으로 높다. 여기서 일반적인 상속 형태인 ‘주식으로 직계비속에게 기업을 물려주는 경우’ 최대 주주 할증이 적용돼 최고세율이 65%까지 치솟는다. 상속세 부담을 낮춰주는 가업상속공제제도가 있지만 요건이 까다로운 탓에 이 제도로 승계하는 기업은 한 해 60여개에 그친다.

 

 

지난해 기준 창업한 지 100년을 넘긴 일본 장수기업은 3만3079개로 한국(8개)의 4000배가 넘는다. 사진은 1875년 창업한 정밀기기 제조업체 ‘시마즈제작소’ 역사기념관(좌)과 1337년 창업한 된장 제조업체 ‘마루야핫초미소’의 전통 유기농 방식의 된장 숙성실(우). <사진 : 노승욱 기자> 

 

 반면 해외에서는 직계비속 기업승계 시 세율을 인하해주거나 큰 폭의 공제 혜택을 부여해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OECD 35개국 중 30개국은 직계비속 기업승계 시 상속세 부담이 없거나(17개국), 세율 인하 혹은 큰 폭의 공제 혜택을 제공(13개국)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기업승계 시 상속세 명목 최고세율을 기존 50%에서 30%까지 낮춰준다. 이외 공제 혜택까지 적용하면 실제 기업 피상속자가 부담하는 최고세율은 4.5%까지 낮아진다.

 

선진국이 상속세를 없애거나 줄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업이 국가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잘 알아서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국내 기업 중 업력 10년 미만, 10년 이상~20년 미만 기업의 고용능력지수는 각각 0.49, 0.87인 반면 60~70년, 70년 이상인 기업의 고용능력지수는 14.17, 27.39까지 급등했다.

 

장수기업일수록 매출액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회사 매출이 늘면 자연스레 일자리 창출로 이어진다. 장수기업의 축적된 기술과 경영 노하우가 기업 경쟁력 향상에 도움을 주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 투자 확대로 이어져 경제성장에 이바지하는 ‘선순환’ 구조다.

 

조병선 중견기업연구원장은 “장수기업은 경제적 부가가치, 일자리 창출 등 국내 경제에 기여하는 것이 많다. 그 첫 단추인 가업승계제도 개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매일경제 & mk.co.kr,

2019.07.04

특별취재팀 = 김경민(팀장)·노승욱·정다운·나건웅 기자 / 그래픽 : 신기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