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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멜레존〕컬처 융복합에서 공간 융복합으로-공간의 변신

Paul Ahn 2020. 9. 17. 18:52

카멜레존〕컬처 융복합에서 공간 융복합으로-공간의 변신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19/10/862435/

 

이제 단순히 하나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은 재미없다. 시대는 하나의 공간 속에 담긴 풍성한 콘텐츠를 원한다. 그렇게 공간은 진화하고 있다. 이른바, ‘카멜레존(Chameleon+Zone)’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버려진 공장의 모습

 

△옛 공장에 자리한 레스토랑

 

꽤 예전부터 상수역 부근에는 재미있는 공간이 있었다. 지금도 존재하는 그곳은제비다방이라는 이름의 카페였다. 다방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곳은 커피나 차를 파는 곳이다. 그런데 해질녘이면 금세 간판이 뒤집어지며 공간이 바뀌었다. ‘술 취한 제비로 말이다. 이 말인 즉, 낮에는 카페고, 밤에는 술을 파는 술집으로 전환되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공연까지 곁들여진다. 꽤 작은 공간이지만 이곳은 여전히 존재하고, 많은 인디 뮤지션들이 종종 뜨거운 열기를 뿜어낸다. 어쩌면 이 사례는 지금부터 말하고자 하는변화하는 공간에 대한 시발점일지도 모르겠다.

 

현재는 융화와 복합이 활발히 전개되는 시대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인하여, 우리네 사유의 인식이 변화했고, 생활 터전의 많은 곳들이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하고 있다. 그러니까 테크놀로지와 컬처의 융복합은 나아가 공간 융복합의 시대로까지 진화했다는 말이다.

 

사실 공간이 분해되고 조합되는 동시대의 풍경은 물리적 공간의 단순한 재조립을 넘어서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탄생한 새로운 공간에서 소비자는 더 다양한 경험과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그러면 특정 공간이 가진 전문성이 와해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시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변화는 공간 자체의 스페셜리티에는 손상을 가하지 않는 선에서, 되려 더 전문적인 스페이스로의 진화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 같은 움직임은 현재 가장 유력한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중 하나인뉴트로(Newtro)’와도 맥을 같이하며 진행되고 있다.

 

커피콩을 볶던 제비가 해 떨어진 후 술 취한 제비가 되는 방식을 현재의 트렌드 용어로카멜레존이라 부를 수 있다. 이는 보호색을 띄며 생존해 나가는카멜레온(Chameleon)’공간(Zone)’의 합성어다. 그래서 우리는 카멜레존을 공간이 재생, 공유, 체험, 개방, 협업 등의 방식을 통해 고유의 기능을 넘어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가진 곳으로 변화하는 트렌드라 칭한다.

 

△안국동 한옥 카페 어니언에서 열린 구찌 크루즈 컬렉션 전시

 

◇공간 재생, 그리고 부활

‘재생’이라는 단어는 현대 세계에서 가장 큰 화두다. 도시의 형성이 언제나 새로운 것으로만 채워질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한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시도되어 온 인류 터전의 유지 및 보수와 관계된 행위와 맞물린다.

 

더욱이 도시가 가진 역사성을 보존하면서 그 위에 새로움을 덧입히는 방식은 한국뿐만 아니라 이미 세계의 많은 도시에서 실천되고 있다. 유럽 특히 베를린과 같은 도시에서는 냉전 시대의 산물인 동베를린의 많은 건물이재생이라는 이름으로 클럽, 레스토랑, 카페 등의 공간으로 변신해 왔다.

 

이처럼 용도를 다해 버려졌던 공간을 다른 용도로 다시 사용하기 위해 재생하는 방식은 우리 일상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도시 재생의 선두 지역 중 하나가 서울의 성수동 지구가 아닐까 싶다. 폐공장, 폐창고로 치부되어 흉물스럽던 큰 건물들이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아 카페가 되고 전시 공간이 되어 가고 있지 않은가. 중국의 베이징이나 상하이도 이 재생 공간의 눈부신 발전을 보여 준 지역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기타 지방에서도 이 공간 재생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이미 핫플레이스로 유명한 강원도 속초의 칠성 조선소’. 배를 만들던 과거의 광활한 조선소 부지로, 옛 흔적은 전시품으로 남겨 두고, 현대인이 좋아하는 카페로 변신했다. 그러니 이곳에 들르면 수십 년 전의 흥미로운 기억을 공유하면서, 뉴트로 분위기를 만끽하게 된다.

 

경기도 강화도에 가면 방직 공장이 이렇게 변신했고, 부산에는 철강 공장이 재생되어 수많은 인파를 맞이한다. 재생 공간이 카멜레존으로서 기능하는 건 다름 아닌 카페 및 레스토랑으로의 전환을 넘어 복합적인 기능을 수행한다는 데 있다. 커피를 음미하며 과거의 흔적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장이고, 또 종종 활발한 문화 행사까지 곁들여진다. 그래서 이런 공간들은 특정 기능보다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확장되기까지 한다. 예술 공장이라는 이름도 그래서 들을 수 있고, 지역 주민들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역할까지 수행한다.

 

△속초 칠성조선소의 모습

 

◇기능적 협업

카멜레존의 두 번째 특성으로는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이라 일컫는 융합이다. 앞서 말했듯 이제 공간들은 하나의 기능만으로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없다. 기존 공간들이 맞춤형 유일 공간으로 존재했다면 이제는 한 번에 두 가지 이상의 기능을 하는 공간으로 발전하고 있다.

 

사실 삼성동의 코엑스몰은 과거 복합 쇼핑몰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해 냈다. 하지만 시대를 거스를 수는 없었던 법. 쇠락해 가던 이곳이 새로운 명소로 재탄생했다는 것 또한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건 바로별마당 도서관이라는 공간 때문이다. 거대한 공간의 정중앙에 위치한 이 도서관 하나로 코엑스몰은 활기를 되찾았다.

 

별마당 도서관은 단순한 도서관이기보다는 조형물에 가깝다. 여기에 카페 공간이 자리하고, 그곳에 책이 함께한다. 수시로 강연과 토크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도서관이라는 명목으로 구조되었지만, 이곳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다양한 경험을 하게 만든다.

 

컬래버레이션의 또 다른 사례는 ‘PC이라 일컫는 공간에서도 발생한다. 예능 프로그램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등에서도 보여지듯, 이제 한국의 PC방은 외국인들에게도 한번쯤 들러 봐야 할 공간이 되었다. 현재의 PC방은 단순히 게임만 하는 곳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곳에는 게임이라는 고유의 목적과 함께푸드라는 또 다른 행위가 가미된다. 게임방에다 라면, 핫도그, 볶음밥 등으로 식사까지 해결할 수 있는 카멜레존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PC방 음식에 별점을 매기는피슐랭 가이드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을까. 이에 더해 바쁜 현대인의 의류 세탁을 위해 존재하던즉석 빨래방의 변화도 카멜레존의 협업 특성을 가미해 변화했다.

 

예전에는 빨래방에 가면 딱히 할 일이 없어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곳에 근사한 카페도 있고, 노트북을 가져가 이런저런 업무를 볼 수 있는 환경도 조성되어 있다. 가까운 일본의 사례도 흥미롭다. 이제는 너무 유명해진 일본 서점 기업인 츠타야는 이제 책을 보는 공간을 넘어서 먹기도 하고 씻으며 쉴 수 있는 츠타야 북 아파트먼트를 선보였다. 이 얼마나 흥미로운 공간의 진화인가!

 

△한옥의 변신, 카페 어니언

 

◇개방과 체험, 공간의 다양화

‘팝업 스토어라는 일시적 상업 공간은 이제 주변에서 너무 흔히 들리는 단어다. 그런데 팝업 스토어가 오픈하는 공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의 공간을 특정 브랜드의 상황에 맞게 변화시키는 팝업 스토어 역시 카멜레존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팝업 스토어는 번화한 상업지구에, 그러니까 공간의 돋보임보다는 소비자의 발길이 쉽게 닿는 단순한 건물에 열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현재는 상황이 다르다. 성수동의 골목 한편에, 합정동의 생각지도 못한 건물 속에 팝업 스토어들이 열린다.

 

창고를 문화공간으로 재생시킨 대림창고, 그 옆의 바이산 성수, 스튜디오 건물이라 생각될 레이어57 등 수많은 재생 공간이 협업을 통해 특정인이 아닌 다수의 대중에게 개방되고, 그곳에서 제품을 체험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제 팝업 스토어는 단순한 상점이기보다는 기업 또는 브랜드가 준비한 콘텐츠를 소비자가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의 장으로서 기능한다. 이를 통해 브랜드를 소비자의 뇌리 속에 강렬하게 각인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전개된다.

 

공간 다양화의 특성은 제일 먼저 과거를 떠올리며 언급한 제비다방과 같은 기능적 다양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홍대를 기반으로 한 서울 마포구의 많은 지역에서는 이용하는 사람과 시간에 따라 컬러를 달리하는 공간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어떤 곳은 일상적 업무 공간으로 존재하다가 저녁 6시 이후부터는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다이닝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그래서 제비다방이 술 취한 제비가 되었듯, 하나의 간판은 다양한 이름으로 시시각각 바뀐다. 사실 이러한 업종 전환 방식은젠트리피케이션같은 경제적 문제와도 직결된다.

 

사무실 공간으로만 사용해서는, 혹은 커피만 팔아서는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되려 오피스가 많은 지역에서는 낮에 커피를 파는 카페가 밤에는 크리에이터들을 위한 사무 공간이 되는 곳도 여럿이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일종의 공유 경제와도 맥을 함께 한다. 여럿이 한 공간을 함께 사용하고, 부족한 임대료는 함께 장사를 해서 메워 나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속초의 뉴트로 밀크티 카페,

복합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된 성수연방,

인도네시아 발리의 카페.

 

◇온오프라인의 공존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손에 든 모바일 기기를 통해 모든 비용을 지출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는 바쁜 일상 속에서 여유를 찾지 못하는 이들에게 무척이나 편리한 소비 행태다. 이런 소비 방식이 급속도로 퍼져 나감에 따라 오프라인 매장들은 가격 경쟁에서 온라인을 따라잡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은 직접 보고 체험하길 원한다는 심리를 파악한 이들은 오프라인의 장점과 온라인의 이점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쇼핑 방식을 차용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자신이 먹고 마시는 것들의 신선도를 직접 체험하고 경험하길 원한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대단히 성공적으로 론칭한 신선 식품 마켓 허마셴셩을 떠올려보자. 이는 중국 최대 유통 기업 중 하나인 알리바바가 인수한 후, 신유통 실험 모델 전략으로 전개한 회원제 신선 식품 매장이다. 우리가 장을 볼 때 가장 귀찮아하는 것, 바로 물건을 직접 카트에 담고 그걸 집으로 가져오는 일이었다.

 

이 마켓은 직접 둘러보고 구매는 하되, 소비자가 물건을 들고 이동할 필요가 없게 만든다. 그러니까 소비자는 매장을 둘러보면서 제품에 붙어 있는 전자 태그를 통해 제품의 상세 정보를 모바일로 확인할 수 있고 구매도 할 수 있다. 이렇게 구매한 제품은 30분 내로 집으로 배달된다. 국내에서도 유통 기업들이 이런 시도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안다. 이는 분명 장보기의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또 다른 전략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공간은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진화하고 있다. 재생 공간은 과거를 이해하고 현재를 느끼게 한다. A B의 기능을 동시에 결합한 공간은 멀티 태스킹을 가능하게 만들어 소비자를 즐겁게 한다. 개방과 체험을 중시하는 공간은 공급자와 소비자의 유대감을 형성하며, 가상과 현실이 공존하는 방식은 직접 경험과 확인을 통한 소비를 가능하게 만든다.

 

이런 카멜레존 트렌드가 급속도로 전개되면서, 이제 하나의 특정 공간에 만족하는 소비자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든핫플레이스로 알려진 공간들은 결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소비자를 충족시키는 방식이기도 하지만, 도시가 가진 특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현재에 화답하는 현명한 전략이기도 하다.

 

특히 모바일의 스마트함에 익숙해진 밀레니얼 이후 세대지만, 이들이 구세대보다 더 직접적 경험을 중시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한 공간의 발전이기도 하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이 같은 카멜레존의 스펙트럼이 넓어진다는 건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일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잠시나마 숨통을 틀 수 있는, 그래서 라이프스타일의 가치가 더 높아지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우리는 새로운 공간을 찾아 떠난다. 떠나 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2019.10.23

글 이주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이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