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멧神이 구해줬어요”...33층 주민 업고 뛰어내려간 소방대원들
8일 오후 11시 7분께 울산시 남구 신정동 아르누보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해 불길이 번지고 있다. /뉴시스
지난 8일 오후 11시7분쯤 울산 남구 한 주상복합건물에서 발생한 화재에서 맨꼭대기 33층 입주민 3명을 업고 구조한 네명의 구조대원들. 왼쪽부터 윤한희 소방위, 이정재 소방경, 김호식 소방교, 조재민 소방사. /울산소방본부
“버틸 힘도 없고 뛰어내려야 하는 절망적 순간이었어요. 그 때 헬멧 쓴 神이 나타나 구해줬습니다.”
9일 오전 울산 남구 삼산동 한 호텔 로비. 환자복을 입고 손에 붕대를 감은 이모(20)씨가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해주고 싶은 분이 있다”며 취재진에게 성큼 다가왔다.
이씨는 전날 오후 11시14분쯤 화재가 난 남구 주상복합건물 아르누보의 맨꼭대기 층에 거주하는 입주민이다. 화재 직후 다른 주민 52가구 155명 이웃들과 함께 이날 새벽쯤 호텔로 대피했다. 이씨와 그의 모친, 그리고 이모는 “말 그대로 죽다 살았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씨에 따르면 화재 직후 이들 모녀와 이모는 집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엔 매캐한 냄새와 함께 이미 연기로 자욱했다. 이들은 다시 현관문을 닫고 안방으로 피했다.
이씨는 “워낙 신고 전화가 많은지 119는 연결이 되지 않아 112에 구조요청을 했다”며 “경찰에서는 ‘젖은 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고 대피하라’고 했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세 명의 여성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방문 창문을 열어 고개를 빼꼼 내민 채 구조대가 오길 기다리는 것 외엔 없었다.
오랜 시간 창문을 잡고 고개를 내밀고 있던 세 사람은 점점 힘이 빠졌다. 이씨는 “처음엔 ‘조금만 있으면 누군가 구조하러 오겠지’ 했는데, 점점 시간은 흐르고 절망적으로 변했다”며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해 뛰어내릴 생각까지 했다”고 말했다. 세 사람은 “약 1시간 정도 흘렀던 것 같다”고 길었던 공포의 시간을 떠올렸다.
정신이 혼미해질 무렵 현관문을 부수고 누군가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이씨는 “'헬멧을 쓴 신(神)인가'하며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며 “정신을 차려보니 소방대원분께서 저를 업고 33층에서 1층까지 내려왔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씨가 고마움을 전한 헬멧을 쓴 신이라 불리는 이들은 울산남부소방서 이정재(소방경) 구조대장을 비롯해 윤한희(소방위) 팀장, 김호식(소방교), 조재민(소방사) 구조대원이었다. 피난층인 28층에서 대피한 주민들을 살피고 있었다. 그때 주민 중 일부가 “33층에도 아직 주민들이 있을 것이다”고 했다.
네사람은 곧장 33층까지 뛰어 올라갔다고 한다. 김호식 대원은 “이미 거실은 불에 타 내려앉아 있는 상태였고 연기도 자욱했다”며 “방안에 사람이 있나 살펴보려고 문을 여니 세 명의 여성이 간신히 숨만 쉬면서 창문쪽에 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소방대원들은 즉시 이들에게 호흡보조기를 씌우고 구조에 나섰다. 이씨 등 세 명은 이미 연기도 많이 마셨고, 스스로 걸을 수 없는 상태였다. 구조대원들은 1명씩 들쳐 업고 33층에서 1층을 내려갔다.
김준호 기자
입력 2020.10.09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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