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 Service/@Chicken

★교촌(校村 kyochon)치킨 / 1991, 경부고속도로에 간판 세운다는 꿈은 이뤘군요.

Paul Ahn 2021. 6. 10. 10:49

★교촌(校村 kyochon)치킨 / 1991년

(kyochon.com)

 

• 창립 : 1991년 3월 13일 구미

• 교촌에프앤비(주)

• 본사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로80번길 15-3(금토동) 교촌1991빌딩

 

회사현황       

 

- 4개 복합물류센터(수도권, 동부, 서부, 남부)

- 29개 지사

- 1363개 가맹점(22 10월 기준)

 

 

〈회사소개〉

향교는 선조들이 배움의 즐거움을 탐구하던 곳으로 우리네 모든 마을에 자리한 배움터였습니다.

그 말의 의미를 담아 대한민국 곳곳에서 맛의 즐거움을 탐구하고자 1991년 구미에서 교촌이 탄생하였습니다.

 

교촌의 모든 것은 ‘정도경영’ 으로부터 출발합니다.

‘Real Flavor, True Story’ 역시 정도경영의 정신을 이어받았습니다.

우리의 정직한 이야기가 담긴, 정직한 맛을 소비자에게 전달하겠다는 이 슬로건은 우리가 지키고 이끌어나가야 할 약속입니다.

 

 

 

판교시대 여는 교촌, '진심경영'으로 100년 기업 첫발

(moneys.co.kr)

 

교촌치킨이 판교로 신사옥을 옮기며 새 비전으로 '진심경영'을 꼽았다.

교촌치킨 운영사 교촌에프앤비는 23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 신사옥에서 '진심경영 선포식'을 열고 100년 기업을 향한 새로운 비전을 선포했다고 이날 밝혔다.

 

교촌그룹은 1991년 3월13일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교촌통닭'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올해 창립 33주년을 맞아 경기도 성남시 판교 제2테크노밸리도시 첨단산업단지 내에 신사옥을 지어 본사를 이전했다. 이를 기념해 '진심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교촌의 철학을 담은 새 비전 '진심경영'을 선포했다.

 

교촌그룹이 본사 사옥을 옮긴 건 2004년 경기도 오산에 본사를 마련해 사업을 이어간 지 20년 만이다.

이날 새롭게 선포된 진심경영은 교촌이 강조하는 기업 철학인 '진심이 세상을 움직인다'에 기초해 ▲정직과 정성 ▲도전과 혁신 ▲상생과 나눔을 공유가치로 삼는다. 100년 기업으로 가는 큰 그릇을 마련해 '가장 신뢰받고, 언제나 선택받는 글로벌 푸드컬처 브랜드 그룹'으로 발돋움하겠다는 포부를 담았다.

 

'참 진(眞)'자와 '다할 진(盡)'자를 사용한 중의적 표현으로 ▲정직과 정성으로 세상을 감동시키겠다는 교촌의 철학을 담은 '진심(眞心)'과 ▲창의와 상생으로 지속가능한 내일을 열겠다는 다짐을 담은 '진심(盡心)'의 의미를 모두 내포했다.

 

교촌 관계자는 "더 좋은 제품과 고객가치 실현, 함께 누리는 행복한 세상을 위한 참된(眞) 생각과 끊임없는(盡) 정진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교촌은 '푸드와 행복이 잇닿다'라는 새로운 브랜드 슬로건도 함께 발표했다. 서로 이어져 맞닿다는 의미의 우리말 '잇닿다'와 음식을 먹는다는 의미의 영어 'Eat'을 혼용한 'Eat닿다'의 중의적 표현이다. 진심을 담은 교촌의 '음식(Food)'이 우리의 일상과 닿아, 모두가 누리고 공감하는 행복한 세상을 의미한다.

 

권원강 교촌그룹 회장은 이날 진심경영 선포식에서 "'진심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우리의 기업 철학은 100년 기업을 향한 교촌철학의 진수"라며 "교촌의 본질에 혁신이 더해진다면 교촌그룹은 한국을 넘어 글로벌 식문화의 중심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머니S

연희진 기자

2024.04.23 | 10:00:23

 

 

3년 연속 매출 1위 지키는 교촌치킨의 경영 철학

http://www.1234way.com/sub02/sub02_view.html?number=598&Ncode=webzine 

 

 ‘교촌통닭’이라는 간판을 달고 10평 남짓한 공간에서 보증금 1500, 월세 40만 원을 주고 시작했던 가게는 올해 창업 25주년을 맞았다.

 

25년 사이 교촌통닭은 하루 평균 9t의 치킨을 팔고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 업계 매출 3년 연속 1위를 기록하는 ‘교촌치킨’으로 성장했다. 하루에 6000원 짜리 치킨 한두 마리 팔아 생계를 유지하던 젊은 가장은 현재 경부고속도로 상행선과 하행선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본사를 가진 성공한 사업가가 됐다.

 

 

◇인생 끝자락에서 잡은 기회, 교촌통닭

 

권 회장이 교촌통닭을 차린 건 먹고 살 길이 막막해서였다. 트럭에 감자, 양파 같은 채소를 싣고 장사하며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그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인도네시아 건설 현장에 파견을 신청했지만 얻은 것은 돈이 아니라 병이었다.

 

갑상샘 병을 얻어 온 몸이 비쩍 말라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택시 면허를 발급 받아 5년 동안 택시기사로 일했다. 그 면허를 팔아 차린 것이 바로 교촌통닭이었다. 페리카나, 멕시카나 등 토속적인 풍미의 치킨이 유행하던 터라 그도 ‘향교가 있는 시골 마을’이라는 뜻의 교촌을 가게 이름으로 정했다.

 

하지만 치킨의 치자도 몰랐던 문외한에게 장사는 쉽지 않았다. 하루 1~2마리를 팔아 손에 쥐는 돈은 1000~2000원이 전부였다. 같은 동네에는 치킨 집만 20곳이 넘었고 맛이 없다는 손님들의 항의 전화도 끊이지 않았다.

 

 

◇팔뚝이 화상 투성이 될 때까지 치킨 연구에만 몰두

 

권 회장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절박함에 치킨 연구에 몰두했다. 어떤 온도에서 닭을 튀겨야 맛있는지, 반죽의 점성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닭을 언제 꺼내야 하는지 등 공부해야 할 것이 투성이였다.

 

팔뚝에 화상 자국이 옅어질 새도 없이 치킨을 튀기다 그가 발견해 낸 방법이 현재 교촌치킨의 전매특허인 2번 튀기기 기술이다. 기름은 적고 바삭한 치킨이 되도록 생닭을 180도에서 10분 튀기고 꺼냈다가 다시 180도에서 2분 튀기는 방식이다.

 

이 기술을 계기로 교촌치킨은 점점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일부러 찾아와서 포장해가는 단골손님까지 생겼다. 이후에는 한두 명씩 찾아와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사정했고 그렇게 하나 둘 가맹점을 늘려 현재 전국 1010개의 가맹점을 운영하게 된 것이다.

 

 

◇직원은 곧 가족, 책임감으로 가맹점 관리하는 CEO

 

교촌치킨 가맹점의 가장 큰 장점은 폐점률(0.9%)이 낮다는 점이다. 2000년부터 10년간 사업이 망해 문을 닫은 점포 대신 너무 바빠 쉴 시간이 없다며 문을 닫은 점포만 있다. 이렇게 낮은 폐점률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권 회장이 짊어진 무거운 책임감이었다.

 

권 회장은 자신의 가게가 90년대 후반 IMF로 인한 비자발적 창업, 즉 소위 좋지 않은 일로 확장될 수 있었기에 항상 업주들의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고 말한다. 이 부담을 조금이라도 해결하기 위해 그는 가맹점 수를 무리하게 늘리지 않되 상권 분석과 품질 관리를 철저히 해 매출을 보장하는 방식을 택했다.

 

교촌치킨 가맹점 수가 타 브랜드에 비해 적지만 매출 1위를 기록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권 회장은 “뉴욕 타임스퀘어에 교촌 간판을 하나 거는 것이 목표”라며 교촌통닭에서 치킨을 연구했던 초심을 잃지 않고 1위 치킨 프랜차이즈로서의 책임감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2016-11-15

 

 

"택시 면허 팔아 통닭집… 100만원만 더 있었어도 교촌치킨 없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0/28/2016102801797.html 

 

3년째 매출 1위… 창업 25주년 맞는 교촌치킨 권원강 회장

처음 2년간 하루 한두 마리 팔아

팔뚝에 화상 입어 가면서 1년간 종일 닭 튀기는 연구

 

두 번 튀기는 비법 개발

소문 나게 된 계기는 테이블 3개에 손님 2명…

들이닥친 10명 단체손님에 자리 없다고 돌려 보내

 

먼저 온 손님이 공단 경비팀장 그 후 공단서 주문 폭증

폐점률 0%대 프랜차이즈

교촌 이름 쓰겠다고 하면 무조건 돈 벌게 해줘야

기준에 맞지 않으면 가맹점 안 내주는 게 원칙

 

 

권원강 교촌 F&B 회장이 치킨 업계에서 최초로 시도한 건 두 번 튀기는 것뿐만 아니다. 치킨을 종이 봉투에 포장해 배달하는 것도 교촌이 처음이다. 권 회장은 “검은 비닐 봉지로 포장하던 시절 종이 봉투를 쓰니까 주부들 반응이 무척 좋았다”고 말했다.

 

치킨집 본사에선 치킨 튀기는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 대신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소음이 귀를 울렸다. 경기 오산 경부고속도로변 3층짜리 건물 입구에 다다르자 교촌치킨 창업자 권원강(65) 회장이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내민 손은 그의 체형처럼 통통하고 단단했다.

 

―상당히 외진 곳에 사옥이 있네요.

 

"제 고향이 대구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서울 올라올 때 경부고속도로 타지 않습니까. 그 경부고속도로 제일 잘 보이는 곳에 '교촌' 간판 세우는 게 내 꿈이었습니다. 상행선과 하행선 두 군데서 다 잘 보이는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다들 왜 이렇게 시내에서 떨어진 곳에 지었느냐고들 하는데 그 이유 말곤 없습니다."

 

―치킨 매출 1위 기업인 만큼 건물도 화려하게 지을 법도 합니다만.

 

 "성격이 화려하지 못합니다. 남 앞에 나서는 것도 불편하고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것도 사실 성격과 잘 맞지 않습니다."

 

 ―남 앞에 서는 걸 꺼리나 봅니다.

 

"고등학교도 중간에 그만뒀지요. 대학교도 못 나왔죠. 집도 가난했어요. 배운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는데 남 앞에 나설 일이 뭐 있겠습니까."

 

 

◇경북 구미서 10평짜리 가게로 시작

 

올해로 창업 25주년을 맞은 교촌치킨은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 가운데 3년 연속 매출 1위를 달성했다. 매일 하루 치킨 90t을 판매하고 있다. 가맹점 수는 다른 치킨 프랜차이즈보다 적지만 매출은 1위다.

 

잘되는 지점은 잘되고 안되는 지점은 망하는 다른 프랜차이즈에 비해 전국 각 매장의 매출이 고르다. 매장당 하루 평균 치킨 90마리씩 팔리고 하루 100마리 이상 파는 곳이 전 지점의 45%가량이다. 장사 안되는 곳이 드물단 뜻이다. 지난 한 해 2500억원 넘는 매출을 올린 기업 '교촌 F&B' 회장이 나서기를 꺼린다는 것을 언뜻 납득하기 어려웠다.

 

 ―처음부터 치킨 튀긴 건 아니지요?

 

"트럭에 감자, 양파 같은 채소 싣고 다녔어요. 그쯤 결혼을 했는데 아이를 낳고 나니까 트럭 장사로는 하루에 3300원짜리 분유 한 통 사기 힘들더라고요. 몸이라도 써서 돈을 벌어야겠다 싶어서 인도네시아 건물 짓는 데 나갔습니다. 그런데 돈은커녕 병을 얻어왔습니다. 갑상샘 병이었는데 이 병에 걸리면 해골처럼 몸이 비쩍 마릅니다. 그런 사람이 하루에 현금 1만원이라도 집에 가져갈 수 있는 직업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5년 정도 택시 기사 하다가 개인 택시 면허를 받게 됐습니다. 그 면허를 팔아 통닭집을 차린 거죠."

 

택시 기사를 그만둔 그는 1991년 고향인 대구를 떠나 경북 구미로 갔다. 면허 판 돈 3300만원으로는 대구에서 작은 상가 하나 구할 수 없었다. 구미 한 아파트 상가에 보증금 1500만원, 월세 40만원짜리 매장을 얻었다. 남은 돈으로는 배달용 중고차를 한 대 샀다. 10평짜리 매장에 주방과 탁자를 들여놓고 바깥엔 '교촌통닭' 간판을 써 붙였다. 교촌은 '향교가 있는 시골 마을'이라는 뜻이다. 페리카나, 멕시카나가 유행하던 때라 가장 한국적인 이름을 짓고 싶었다고 했다.

 

―왜 하필 통닭집이었나요?

 

"할 줄 아는 게 없었습니다.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이 통닭집을 차리려고 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수중에 100만원만 더 있었으면 아마 통닭집 안 차렸을 겁니다."

 

―장사는 처음부터 잘됐나요?

 

"개업하고 2년 동안은 거의 하루에 한두 마리 팔았습니다. 우리 매장이 있던 동네에 통닭집이 이미 20곳 정도 있었어요. 그 틈을 비집고 나갈 수가 없었던 거죠."

 

―지금은 매출 1위인데 그땐 장사가 그렇게 안됐었군요.

 

 "아직도 기억나는 날이 있습니다. 그때 통닭 한 마리에 6000원이었습니다. 한 마리 팔면 이것저것 다 떼고 1000원 남는 시절입니다. 배달 가는 길에 잔돈을 만들어 가려고 매장 근처 구멍가게에 들렀어요. 그냥 돈만 바꿔달라고 하기가 뭐해서 박카스나 하나 사려고 했던 거죠.

 

계산대 옆에 박카스가 주르륵 놓여 있고 그 옆에 그때 막 출시된 숙취 해소 음료가 있었어요. 새로 나온 거니까 그 음료를 하나 집어서 마셨지요. 1만원짜리를 냈는데 가게 주인이 7500원만 거슬러주는 겁니다. 화가 나서 따졌더니 그 음료가 2500원이었어요. 박카스가 150원이었으니까 그 음료도 비슷할 줄 알았는데…. 하루 1000~2000원 벌 때였으니까 이틀치 벌이를 한입에 털어 넣은 거죠. 지금도 그 숙취 해소 음료는 안 마십니다(웃음)."

"치킨 두 번 튀기는 레시피는 우리가 처음"

 

 ―처음에 왜 장사가 안됐을까요?

 

"닭 튀기는 방법을 몰랐으니까요. 어떤 날엔 닭이 딱딱하다고 전화가 옵니다. 다음 날에는 좀 짧은 시간에 튀겨보고 튀김 반죽을 좀 더 묽게 해보고…. 한 1년간 온종일 튀기는 연구만 했습니다. 이쪽 팔에 흉터들이 전부 그때 닭 튀기면서 생긴 겁니다"(그는 왼쪽 셔츠 소매를 걷고 화상 자국이 오돌토돌 빼곡한 팔뚝을 내보였다).

 

지금 우리 매장에서 생닭을 180도에서 10분 튀기고 꺼냈다가 다시 180도에서 2분 튀기는데 그걸 내가 그때 만들었습니다. 그게 기름이 쫙 빠지고 바삭하니 제일 맛있습니다. 내가 알기로 치킨을 두 번 튀겨서 내놓는 프랜차이즈 치킨은 교촌이 처음입니다."

 

―그 뒤로 장사가 잘됐습니까.

 

 "소문 나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어느 날 한 남녀가 닭 한 마리를 시켰습니다. 그 손님들이 치킨을 먹고 있는데 열 몇 명 단체 손님이 왔어요. 그때 우리 매장에 4명 앉는 테이블 3개밖에 없었거든요. 하루에 한두 마리 팔 때였으니까 욕심이 났지만 단체 손님들에게 '자리가 없어서 죄송하다'며 돌려보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좀 끼어 앉힐 법도 한데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웃음). 알고 보니 앉아 있던 남자 손님이 근처 금성사 공단 경비팀장이었더라고요. 그날 이후로 금성사 주문이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각 부서며 기숙사며 방마다 배달을 갔어요. 그 남자분 이름도 기억합니다. 조인철이라고. 그분 참 찾고 싶은데 안 찾아지더라고요."

 

―그 뒤로 가맹점이 생긴 건가요?

 

"맞습니다. 관두지 못하고 3년 정도 그 자리에서 장사를 했더니 대구나 김천에서도 우리 매장에 와서 치킨을 사가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때는 가맹점이고 그런 것도 모르고 김천에서 온 한 50대 사장님이 기술 좀 제발 알려달라고 사정을 하길래 알겠다고 했었어요. 그렇게 해서 지금은 (가맹점) 사장님들이 한 1000명쯤 될 겁니다."

 

 

◇폐점률 0.9%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전국 1010개인 교촌치킨은 폐점률이 낮기로 유명하다. 2000년부터 10년간 망해서 문을 닫은 가맹점주는 한 명도 없었다. 폐점률 0%를 깬 첫 사례는 "매장이 너무나 붐벼서 쉴 시간이 없다"던 서울의 한 가맹점이었다. 치킨집 경쟁이 심해진 최근에도 교촌치킨 폐점률은 0.9%다. 수도권은 물론이고 새로 생긴 상권이 아니면 더는 가맹점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배달 가능한 지역을 인구 2만5000명에 맞추고 이에 모자라면 가맹점을 내주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킨다고 했다.

 

―매장을 더 늘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금보다 더 늘리면 통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퇴직자들이 창업 상담하러 오면 갑갑합니다. 대부분 퇴직금을 어디다 써야 할지 몰라서 오는데 치킨집 차리려면 뭐부터 해야 하는지, 계약할 때 뭘 따져야 하는지조차 모릅니다. 한 회사에서 20년씩 일한 사람들이니까 장사엔 깜깜한 거죠."

 

―그런 사람들한테 어떻게 하나요?

 

"현실적으로 말해줍니다. 치킨집 아무 데나 내면 망한다고요. 치킨은 분식하고 달라서 매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에요. 일 년에 한 마리 먹는 집도 있습니다. 한 번은 1000세대 정도 아파트 상가에 매장을 내고 싶다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주변에 회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직 개발되지 않은 지역에 아파트만 달랑 몇 동 들어선 거라 상권이 그 아파트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제 경험상 1000세대가 상권의 전부이면 하루 치킨 5~6마리밖에 못 팝니다. 그 아파트뿐 아니라 그 근처까지 (상권을) 넓혀서 봐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그렇게 해서 본사가 돈을 벌 수 있습니까.

 

"교촌이란 이름을 쓰겠다고 하면 무조건 돈을 벌게 해줘야 합니다. 그게 제 책임입니다. 돈 못 벌고 그만두는 가맹점은 없어야 합니다. 어떻게든 가게 사장에 딸린 가족들을 먹이고 입히고 학교도 보내고 저축도 하게 해줘야 합니다."

 

―그런 책임감을 갖게 된 동기가 있나요?

 

 "IMF 때 퇴직자들이 늘면서 우리 가맹점이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안 좋은 시절 덕을 본 것이지요. 그걸 결과적으로 이용했다는 미안함이 오죽하겠습니까. 살고 있는 아파트를 전세나 월세로 돌리고 쥔 돈으로 치킨집 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내가 이 사람들 돈 벌게 해주지 못하면 그 가족들은 전부 길에 나앉아야 하는 겁니다. 치킨집 차리려고 상담을 해오는 분 대부분이 제가 처음 치킨 튀길 때랑 비슷합니다. 가진 것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손에 돈을 웬만큼 쥐었으면 좀 더 큰 사업을 하려고 하지 치킨집 안 합니다. 왜 굳이 치킨집 하겠어요?"

 

―경부고속도로에 간판 세운다는 꿈은 이뤘군요.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교촌 간판을 하나 걸고 싶습니다. 경부고속도로에 간판 세운 것처럼 말입니다.

 

조선닷컴

2016-11-1

김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