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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랄라(Malala) / 최연소 노벨평화상

Paul Ahn 2021. 11. 10. 15:24

⊙말랄라 유사프자이(Malala Yousafzai) / 최연소 노벨평화상

Malala's Story | Malala Fund

 

 

•출생 : 1997 7 12, 파키스탄

•학력 : 옥스퍼드 대학교

•수상 : 2017. 아이슬란드 국제명예훈장

 

1997 7 12일에 출생한 파키스탄 북부 스와트밸리 출신의 여성 교육 운동가이자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 당시 만 17, 현재 만 24.

 

 

말랄라의 아버지 지아우딘은 엄청나게 진보적인 교육자로서 말랄라가 태어났을 때 기뻐했다. 심지어 족보에 파란 잉크로 이름을 기재했는데, 아들이 아니면 족보에 잘 기재하지 않는 이 지역에서 그랬다는 건 성차별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걸 뭐라고 하던 친척들에게 당당하게 대꾸하였으며, 남동생들에게도 말랄라를 차별하지 말도록 가르쳐왔다. 교육자이기도 한 아버지는 남녀공학 학교까지 운영하며 여자도 교육할 기회를 줘야 하며, 타 종교를 억압하지 말고 공존을 인정해야 한다는 개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말랄라가 가진 사상과 생각 역시 개방적인 아버지 영향이 큰 건 당연하다. 하지만 문제는 옆 동네에서 탈레반이 세력을 넓히면서 파키스탄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드러났다. 말랄라의 가족은 파키스탄 북부 지방에 거주 중이었기 때문에 아버지 또한 탈레반에게 비난을 받고, 학교도 심심치 않게 테러를 당해야 했다.

 

말랄라도 아버지에게 교육을 받았지만, 탈레반이 자신이 사는 곳을 망쳐놓고 여성의 인권을 무시하는 걸 보고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는데, 당시 11살이었던 말랄라는 자기 목소리를 냈다.

 

2009 1, 영국 공영방송 BBC의 우르두어 블로그에 '굴 마카이'라는 필명으로 탈레반 치하의 삶과 그가 억압한 여성들에 대해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이는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오게 된다.

 

이에 분노를 느끼기 시작한 탈레반이 2011 12월에 제1회 파키스탄 청소년평화상을 수상한 뒤의 말랄라에게 살해 협박을 했는데, 말랄라는 개의치 않고 용감하게 자신의 신념을 밀고 나갔다.

 

그러나 탈레반의 살해 협박은 그대로 실현되었는데 2012 10 9, 말랄라는 하교길 스쿨버스 안에서 갑자기 들이닥친 탈레반 병사에게 총을 맞았다.

 

말랄라의 기억에 따르면, 한 남자가 운행 중이던 스쿨버스를 멈춰 세우고 버스에 올라타서 "여기서 누가 말랄라냐?"라고 묻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지만 "말하지 않으면 다 쏘겠다"고 하자, 그녀는 신원을 밝혔고, 그 남자는 곧바로 말랄라에게 다가와서 총을 쐈다고 한다.

 

이때 그녀가 맞은 총알은 이마와 얼굴, 그리고 목을 관통해 척추 근처 어깨에 박혔는데(3)출처 현지 병원으로 옮겨진 말랄라는 부어오른 뇌 때문에 두개골 일부를 들어내는 수술을 받았고(두개골 조각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뱃속에 집어넣었다고 함), 집중 치료를 위해 10 15일 영국 버밍엄의 퀸 엘리자베스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아버지는 당시 인터뷰에서 "우리 딸이 장한 겁니다. 정말 장한 겁니다. 망할 광신도, 아니 이슬람을 더럽히는 쓰레기들은 이런 어린 소녀에게도 총을 들이대면서 세계에서 자기 이름을 다시 더럽게 알렸군요" 라며 통곡했다.

 

이후 탈레반은 말랄라가 살아난다면 그녀와 아버지 모두 죽일거라고 공언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2013 1월에 무사히 퇴원한 것이다. , 신변 위협 때문에 그녀의 가족과 그녀와 아버지를 옹호하던 친척 몇몇은 모두 고국인 파키스탄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영국에 체류 중이다.

 

아버지 지아우딘은 버밍엄 주재 파키스탄 영사관에서 교육 담당관으로 일하고 있다. 이후 말랄라는 유엔 본부 단상에 선 것을 비롯해 다양한 매체와의 인터뷰와 연설 및 '말랄라 펀드' 조성을 통해 파키스탄은 물론 시리아, # 나이지리아, 케냐 등 저개발 국가 어린이들의 교육권 보장을 위한 운동을 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와 만나서 파키스탄에 민간인이 무인기 공격에 휩쓸려 죽기 때문에 멈춰달라고 하였다.

 

2017 7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옥스퍼드 대학교로부터 조건부 합격 통지를 받아 PPE(철학·정치학·경제학)을 공부할 계획이라고 한다.

 

노벨평화상 수상 당시에 오전 10시께 화학 수업에서 구리 전기분해를 배우는 중에 선생님을 통해 수상 소식을 처음 전해 들었다. 말랄라는 수상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곧바로 물리 수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탈레반 총격 6년만에 파키스탄을 방문했다. 그리고 2018 3 31일에는 스와트밸리에 도착했다.

 

 

"일만 하겠다"던 최연소 노벨평화상 말랄라 "저 결혼했어요"

(joongang.co.kr)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파키스탄 출신 여성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24)가 영국 버밍엄의 자택에서 결혼했다. 유사프자이는 10대 때부터 파키스탄 탈레반(TTP)에 맞서 여성 교육권을 주장하다가 총격을 당했던 인물이다.

 

9(현지시간) 유사프자이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오늘은 내 인생에서 소중한 날이라며 결혼 소식을 전했다. 그는나와 아세르는 평생의 동반자가 되기 위해 결혼했다우리는 앞으로의 여정을 함께 걷게 돼 기쁘다. 우리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적었다.

 

 

예식은 영국 버밍엄의 자택에서 이슬람 결혼 예식인니카(nikkah)’로 조촐하게 치렀다고 했다. 니카 예식은 신랑·신부가 결혼에 동의하는 것으로 법적 구속력은 없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니카 후 추가 예식을 치른다.

 

유사프자이는 신랑에 대해아세르라고만 밝혔다. 아세르의 신상이나, 두 사람이 언제부터 인연을 맺었는지는 등에 대해선 알려진 게 없다. 다만 CNN 등 외신은 그가 지난해 파키스탄 크리켓 위원회 운영 관리자로 임명된 아세르 말리크라고 전했다. 아세르는 지난 7월 자신의 트위터에유사프자이의 생일을 축하합니다라는 글을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1997년 파키스탄에서 태어난 유사프자이는 10대 때부터 탈레반의 여성 교육 금지에 저항했다. 탈레반이 이슬람 성전을 악의적으로 해석했다고 비판하며 여성 인권 운동을 펼쳤다.

 

탈레반의 위협이 있었지만 꿋꿋하게 학교에 다녔다. 그러나 2012 15세 때 하교 중 머리와 목 등에 총을 맞았다. 영국 버밍엄으로 이송돼 수술을 받고 목숨을 건진 그는 이후 영국에서 여성과 어린이 인권 운동을 이어갔다.

 

유사프자이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14 17세 나이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며 역대 최연소 수상자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철학·경제학을 공부하고 2020 6월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여성과 아동 인권 및 교육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여성의 교육권 보장을 위해 설립한 비영리기금말랄라 펀드를 통해 아프가니스탄 여아 교육에 200만 달러( 24억 원)를 투자했다. 또 콘텐트 제작 회사엑스트라커리큘라를 설립해 애플TV+와 다큐멘터리 및 애니메이션 제작 등을 계약했다.

 

지난 6월에는 세계적인 패션잡지보그(Vogue)’의 표지를 장식했다.

당시 인터뷰에서는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고, 그냥 일만 할 생각이라며 결혼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왜 결혼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냥 동거만 할 수는 없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유사프자이의 아버지도 지난 2월 데일리메일과의 인터뷰에서 결혼적령기 넘은 딸에 대해유사프자이는 매우 독립적이라며나는 딸을 믿는다. 더는 결혼 압박을 하지 않을 것이며, 신랑 선택권도 딸에게 넘겼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2021.11.10 12:22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