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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지하성(北京地下城) / 약 30km에 달하는 북경의 지하 방공호

Paul Ahn 2022. 3. 18. 23:00

⊙북경지하성(北京地下城) / 약 30km에 달하는 북경의 지하 방공호

 

위치 : 北京市东城区西打磨厂街62号 邮政编码: 100051, 시따머창 후통(胡同) 내

 

 

1969년에 시작하여 79년에 완공된 총 길이가 약 30km에 달하는 지하 방공호이다.

베이징지하성(北京地下城)은 1969년에 공사를 시작해 10년만인 1979년에 완공된 이후 1980년부터 외국인들에게만 제한적으로 개방되어 왔으며 20위엔의 입장료를 내고 관람할 수 있다.

 

8m깊이의 지하요새로 내려가면 이 지하성의 총 설계자격인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곳곳에 걸려 있다. 갱도의 폭은 약 2m정도로 베이징의 도심부인 둥청(東城), 시청(西城), 충원(崇文), 쉬엔우(宣武)구에 거미줄처럼 지하갱도가 연결되어 있으며 총길이가 약 30km에 달한다고 한다. 그리고 베이징역, 고궁, 왕푸징(王府井)은 물론 톈진(天津)까지 갱도가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 지하 8m 깊이에, 폭 2m의 갱도가 사방으로 뻗어 있다.

 

실제로 베이징 뿐만 아니라 중국의 주요도시 지하에도 이 같은 지하요새들이 남아 있는데 현대화 과정에서 무너진 것까지 모두 포함한다면 만리장성보다 더 길 것이라고 보고 있다.

 

통로에는 5m마다 안전등이 걸려있고 그 중간에는 당시의 화생방전용 장비들이 걸려 있으며 가스유입을 막기 위해 특수제작 된 방호문도 설치되어 있다.

 

또한 지휘소, 무기고, 식량저장창고, 회의실, 도서관, 간부휴식소, 영화관, 이발소, 화장실은 물론 70여 곳의 지하수와 2300여 곳에 특수제작 된 환풍기가 설치돼 유사시 30만 명이 생활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다.

 

 

 

 

 

 

 

 

北京地下城(北京地下長城)

http://bbs.visitbeijing.or.kr/m/bbs/board.php?bo_table=C02&wr_id=60&page=49

 

허름한 대문에, 간판도 어느새 색이 바래 낡았다. 그 옆 건물은 北京辰宇實業總公司건물이다. 이 이름외에도 여러 가지 이름이 붙어 있는 다목적 건물인가보다. 2층 흰타일 건물인데, 그 벽에 북경지하성이라고 붙인 표지가 오래되어 일어나 있었다.

 

사찰의 일주문처럼 처마를 만든 기와지붕 아래 북경지하성이라고 흰색으로 간판을 달았다. 그 아래는 작은 돌사자 두 마리가 좌우로 버티고 있다. 아마도 개방하면서 만든 것으로 짐작이 된다. 정말 각고 끝에 찾은 것이다.

 

출입문은 작은 유리가 끼어진 문으로 좌우로 반씩 나누어져 있어 밀고 들어간다. 들어가니 표 파는 곳도 따로 없다. 우리 예비군 복 같은 얼룩무늬 입은 아주머니 그리고 아가씨 또 청년이 서넛이 있다. 이들이 좌우로 앉아 있다. 한쪽에 작은 캐비넷이 있고 그 옆에 바구니에는 패찰이 가득 있다. 아마 단체관람객이 오면 달아주는 것인 모양이다.

 

난 표값이 얼마냐고 묻는다. 20원이라고 한다. 20원인줄 알고 갔지만, 그래도 한 번 물어본 것이리라. 달랑 20원 받고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그래서 “표가 없냐”고 하니. 한 아가씨가 탁상달력 뒤에서 한 번 사용한 표를 준다. 그냥 기념삼아 받아 든다. 그러곤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는다. “한국사람”이라고 대답한다. 이어서 다시 “중국말 하냐”고 묻는다. 늘상 대답하듯이 “그저 조금 한다.”고 대답한다.

 

이곳은 단체관람객이든 개인 관람객이든 반드시 이곳 직원 가이드가 한사람씩 따라 붙는다. 설명을 해주기 위해서라고. 그러나 내가보기에는 설명이라

 

보다는 개인적으로 들어가서는 길을 잃어버릴까 하는 걱정도 있고 또 내부에서는 사진을 못찍게 되어 있어 사진을 찍는 것도 방지하는 차원인 듯싶다. 내 생각엔 후자보다는 아무래도 미아가 될까 그러는 것 같았다. 물론 방공호 설명도 덤으로 해주니 고맙지.

 

작은 계단을 내려가니 바로 입구가 나온다. 모택동이 사진 액자가 있고 왼쪽엔 흰 돌의 모택동 전신상이 있다. 그 위엔 ‘北京地下長城’ 이라고 빛바랜 액자가 있다. 이곳부터 ‘북경지하성’ 즉 옛날 방공호(防空洞)이다. 1969년부터 파기 시작하여 1979년에 완공했다고 한다. 자그마치 10년 동안 판 방공호란다.

 

나를 따른 아가씨가 자세히도 설명을 한다. 그러나 난 반정도만 그저 알아듣는다. 그리곤 알아듣는 것처럼 “응” 하고 대꾸를 하고 머리를 끄덕인다. 이곳 입구는 지면 폭이 5m는 되어 보인다. 바닥도 매끄럽다. 사람이 다닐 수 있는 바닥은 즉 관람통로는 대부분 바닥에 빨간 카펫을 깔아놓았다.

 

물이 나오는 곳도 마찬가지고. 이 지하터널은 폭이 5m가 되는 곳과 또 약 2m가 되는 곳으로 구분이 되었다. 큰 폭은 성인 5명이 옆으로 서서 걸을 수 있는 너비이고 작은 곳은 3명이 옆으로 서서 걸을 수 있는 폭이다. 터널의 양 옆과 지붕은 현재 개방된 곳은 말끔하게 벽을 바른 탓인지 처음 터널 같지 않다.

 

천정에는 등을 달아 터널 안은 매우 밝은 편이다. 그리고 양 옆 벽에는 각종 사진과 포스터 들이 부착되어 있다. 각 나라의 전투기, 탱크 등 무기 사진이 액자로 장식되어 매달려 있기도 하고, 모택동, 유소기, 주덕 등 중국 혁명 1세대들의 사진도 걸려 있으며, 터널 작업을 형상화한 포스터도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터널 내부가 습한 탓인지 그림이며 사진 등은 구석구석 습기가 먹어 바래거나 망가진 모습을 그대로 보이고 있었다. 터널 내부는 서늘한 기운이 있었다. 아마 여름에는 제법 시원한 피서지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주 통로는 5m의 폭을 유지했고 주 통로에서 갈라지는 간선 굴들은 대부분 2m 정도의 폭을 유지하고 있었다. 터널의 일부만 관람객에게 개방이 되어 있는지라, 군데군데 막힌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인공적으로 폐쇄시킨 모습이었다.

 

입구를 조금 들어가자 바로 터널 내부 표지판이 나온다. 너털 내부지도인 셈이다. 터널 안에는 민병지휘부, 병원, 영화관, 노년활동구역, 탄약고, 전시도서관, 피난구, 방화학무기고, 저장고, 戰備醫院 등이 구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각 명칭이 있는 곳은 그 터널입구만 보여주고 있었고 모두 폐쇄되어 있어 볼 수가 없었다. 각 팻말만 그 앞에 붙어 있었다.

 

가이드 아가씨의 말을 빌리면, 이 지하방공호는 천진까지 갈 수 있다고 한다. 글쎄, 북경서 천진까지의 거리가 얼마인데,,, 그런데 생각해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60년말 맘만 먹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 실현시킬 수 있는 일이었을 것이니까. 들리는 말에는 이 지하 방공호를 만들 때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고 하는데 ...

 

중간의 영화관에서는 바로 천안문 광장과 연결이 된다고 한다. 또 전비의원에서는 장성과 자금성 즉 고궁과 연결이 된다고 한다. 탄약고는 각종 탄약류를 보관하는 곳인데 이곳은 바로 지상에서 탄약을 보급 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탄약고 오른쪽에는 戰時圖書館이 있었고 이 전시도서관 맞은편으로는 피난구가 설치되어 있었다. 터널 내에서도 밖으로 피난할 수 있는 대피구를 만들어 놓은 셈이었다.

 

일반인에게 개방된 곳을 도는데 중간 중간 통로의 바닥에는 물기가 제법 있었다. 이곳 터널에는 지하수가 풍부하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천정에서는 물이 계속 떨어지는 곳도 있었다. 老年活動站이 있는데, 이곳은 방공호 내에서 노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특별한 구역이었다.

 

이곳 벽 입구에는 ‘01-8001⇒’ 라고 씌여진 글씨가 보였다. 가이드 아가씨에게 내게 묻는다. “ 이 터널 안에서 동, 서, 남, 북을 구분할 수 있겠느냐?”고, 난,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이 글씨가 방위를 알 수 있는 표시라고 이야기 한다.

 

예를 들어 여기서 표시하는 ‘01’은 남쪽을 나타내고, ‘8001’은 지상의 天壇을 나타낸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터널 내에서 동, 서, 남, 북을 숫자표시로 알 수 있었고, 또 천단위 번호로 각 터널의 방향을 지상의 특정지역을 알 수 있게끔 해 놓은 것이다.

 

그러니 이 터널 안에서는 감히 방향을 잃을 수 없었던 것이다. 치밀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전시상황에서 약 30만명이 이 터널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준비를 했다는데, 이 정도는 기본적으로 계산을 하고 설계를 했겠지.

 

또 요즘말로 하면 화생방무기고이다. 이 곳은 방화문으로 두 겹의 돌문이 있었다. 두께가 약 15-18cm 정도는 되어 보였다. 돌이라기보다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정말 손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 문이 이중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손잡이도 세월의 흐름을 아는지 무쇠로 된 것이 녹이 슬어 있었다. 그리고 그 문의 안쪽에는 벽면과 압착이 될 수 있도록 고무로 둘레를 쳐서 틈이 생기지 않도록 하였다. 독가스며, 기타 화생방전에서 생겨나는 것으로부터 안전하게 격리를 시킬 수 있게끔 한 것이었다.

 

이 방화학무기고에서는 바로 왕푸징으로 향할 수 있다는 표지가 붙어 있었다. 말 그대로 이 방공호에서는 사통팔달로 어느 곳으로든 통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이 방공호의 깊이는 지상에서 가장 낮은 곳이 8m이고 가장 깊은 곳은 12m 정도 된다고 한다.

전비의원 입구에는 천정에서 지름이 약 8cm정도 되는 고무호스가 내려와 있었다. 가이드 아가씨가 내게 다시 묻는다. “이것이 무슨 용도로 쓰이는지 알겠는가?”하고 내 딴에는 생각해서 ‘공기흡입구’ 라고 대답을 했다. 그러니 “뿌 뚜이“한다.

 

이것은 지상과의 대화할 수 있는 기구란다. 내부가 뚫린 호스이다보니 말을 하면 밖에서 안으로, 안에서 밖으로 전달이 되는 것이었다. 비록 아주 단순한 수단이긴 하지만, 지상과 지하를 통하게 할 수 있는 가장 편리한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런 장애없이 말이다.

 

지하공기를 순환시켜주는 排風口도 제법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펑 뚫린 천정으로 내부 공기와 외부공기가 순환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러한 통풍구가 이 터널내에 2300개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참으로 대단하다.

 

儲備庫(저장고)에는 전시시 이 터널에서 사용한 각종 물품을 비축하는 곳이라고 하였다. 또한 병원 앞에는 흰마대자루가 제법 쌓여 있길래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담요 및 이불 등이라고 한다. 병원에서 사용할 물품인 모양이다.

 

가이드의 안내로 가장 마지막에 이른 곳이 이 터널 내에 제법 넓은 광장이다. 이곳은 실크전시장 및 판매장이었다. 각종 실크 제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이불 및 의류 그리고 실크 액세서리 등을 판매하고 있었고 그 뒤로 화장실이 있었다.

 

나 말고도 일부 관광객들이 이 매장에서 상품을 보고 고르고 있었다. 대부분 외국인이었다. 내국인은 없었다. 가이드 그리고 판매원 말고는. 이 매장에서도 역시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가이드가 한 번 살펴보라고 하면서 잠깐 개인시간을 준다. 한 매장 쪽에서 보니 화장실 표시가 나타난다.

 

화장실을 가고 싶었었는데, 마침 잘 되었다. 화장실을 가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아 카메라를 꺼내 지하 방공호의 화장실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런? 매장도 어찌 몰래 한 장 찍어볼까 했는데 상황이 내게 좋지 않아 그만 카메라를 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가이드를 따라 나간다. 나가는 출구가 바로 아까 들어왔던 입구이다. 아마 혼자 들어오면 정말 찾지 못할 것 같다. 이리저리 헤매다 제자리에 돌아올 것 같다. 길을 잃은 미아처럼 말이다. 마지막 나가는 통로 한 켠에는 옛날 군사장비 등이 그냥 널 부러져 있다. 나름대로 꾸미지 않고 전시해 놓은 것이리라. 무전기도 있고 철모도 있고, 반합도 있고. 암튼 여러 가지 군사물품들이 그냥 편하게 자리잡고 있다. 오래된 것이라고 말하듯이 빛이 바랜채.

 

막 나가는 출구에 다다라서, 가이드에게 카메라를 들고 건네주며, 사진 한 장 박아 달라고 한다. 그러니 씩 웃으면서 응한다. 모택동주석 사진을 내 옆 아래로 한 채 사진 한 장을 박는다. 그리곤 다시 내가 부탁을 한다. 터널 모습을 한 장 찍겠다고. 이 역시 응해준다. 마지막 사진 한 장을 찍고 나온다.

 

문 앞까지 가이드 아가씨가 배웅을 한다. 다시 문 잎구에서 북경지하성 간판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어달라 부탁을 하고 작별 인사를 한다. 후에 가족들 데리고 다시 오마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