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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산전투 (白石山戰鬪)

Paul Ahn 2023. 2. 14. 08:28

⊙백석산전투 (白石山戰鬪)

(aks.ac.kr)

 

국군 제7사단과 제8사단이 1951 8월부터 2개월간 양구북방 백석산에서 북한군을 격퇴한 전투.

 

 

백석산 전투는 1951 8월 중순부터 10월 하순까지 중동부 전선의 양구북방 20km 지점에 있는 백석산(1142고지)을 중심으로 한 남북으로 각각 6km 지역에서 국군 제7사단과 제8사단(9 28일 부대교대)이 공방간 전술적 요충인 백석산을 탈취하기 위해 북괴군 제12사단 및 제32사단을 격퇴한 공격전투이다.

 

이 작전의 일환으로 국군 제7사단에 최초로 부여된 공격목표는 554고지였다. 이 고지는 피의 능선 좌측방의 중요고지로서, 이를 확보해야만 양구문등리를 잇는 29번 도로(현재31)를 장악할 수 있었다.

 

국군 제7사단 제8연대는 제1대대와 배속된 전차공격대대로 공격을 개시하여 8 26일에 이 고지를 탈취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 후 국군 제7사단은 지난 8 16일 이래 보류하고 있던 883고지에 대한 공격준비를 하고 있을 즈음 미 제10군단장은 국군 제5사단에 가칠봉 일대를, 미 제2사단에 단장의 능선을, 그리고 국군 제7사단에 883고지를 각각 공격하도록 명령하였다. 9 16일 제8연대가 743고지를 탈취하고, 다음날에는 사단 좌일선 제5연대가 892고지를 탈취한 데 이어 제3연대는 3일간의 격전 끝에 마침내 목표 883고지를 탈취하였다.

 

미 제10군단장은 북괴군이 백석산을 확보하고 있는 한 미 제2사단 지역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국군 제7사단으로 하여금 백석산을 동시에 공격하도록 명령하였다.

 

이렇게 하여 국군 제8사단과의 진지교대를 앞두고 있던 국군 제7사단은 다시 공격준비태세를 갖추어 9 24일부터 백석산 공격에 나서게 되었다. 또한 좌일선 제8연대는 중간 목표인 894고지를 공격하였으나 북괴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말미암아 이를 탈취하지는 못하고, 그 좌측 696고지와 무명고지를 탈취하였다.

 

국군 제7사단은 25∼26일 양일간에 걸쳐 계속적인 공격을 감행하여, 8연대가 백석산 정상의 2개 봉우리 중 좌측 봉우리를 탈취하였다가 빼앗기고, 27일에 다시 우측 봉우리를 공격하였으나 끝내 목표를 탈취하지 못하고 말았다.

 

이리하여 국군 제7사단은 국군 제8사단에게 백석산 공격임무를 인계(9 28 12:00)하고 미 제10군단의 예비가 되어 캔자스선 남쪽으로 이동했다가, 9 30일부로 육군본부 직할부대로 전환되었다. 국군 제7사단과 임무 교대한 국군 제8사단은 백석산 공격작전을 수행하게 되었다.

 

국군 제8사단의 주공인 제10연대는 9 30일 좌우측 능선을 따라 공격을 개시하여 목표의 지근거리까지 진출하였으나 북괴군의 집중 화력으로 저지당하게 되자 더 이상의 진출을 자제하면서 최종적인 돌격준비를 하였다.

 

 

 

10 1, 유엔 공군의 근접 항공지원 하에 공격을 재개한 제10연대는 목표정상의 좌측 봉우리를 탈취한 데 이어 우측 봉우리마저 탈취함으로써 백석산을 완전히 확보하였다. 이로써 국군 제8사단은 이날로 제3단계 작전을 모두 끝내고 어은산을 목전에 둔 방어진지를 강화하면서 차기작전에 대비하였다.

 

참고문헌

『중공군의 총공세와 유엔군의 재반격』(군사편찬연구소, 2011)

『한국전쟁』하(국방군사연구소, 1997)

『백석산전투』(전사편찬위원회, 1990)

『양구전투』(전사편찬위원회,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