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선호프’
•방씨는 2014년 골목에 만선호프 1호점을 개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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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지로 골목은 ‘만선 특혜 골목’인가
을지OB베어 자리에 결국 ‘만선호프’… 만선 관련 호프집만 11곳
지난 7월 12일 서울 중구 을지로의 ‘노가리 골목’. 오후 6시쯤 골목이 분주해졌다.
각 호프집 사장과 종업원들이 가게 앞 도로에 간이 탁자와 의자를 깔기 시작했다. 골목에 어둠이 내릴수록 인파는 점점 늘어났다.
시민들은 빼곡히 놓인 탁자 사이를 거닐며 적당한 호프집을 찾았다.
‘힙지로(힙+을지로)’라는 말이 실감날 만큼 젊은층이 유독 많았다. 호프집 밖 도로에서 영업을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법이다. 다만 노가리 골목은 예외가 허용돼 특정 시간에 옥외영업(야장)이 가능하다.
“여긴 뭐, 다 만선호프네.” 한 시민이 골목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이렇게 내뱉었다.
실제 ‘만선’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간판이 곳곳에 걸려 있다. ‘만선호프 본점’, ‘만선호프 II’, ‘만선호프 IX(9)’, ‘을지로 만선호프’, ‘만선 스카이라운지’, ‘여기가 만선식품’ 등이다. 만선 계열의 호프집 7~8곳도 옥외영업을 하고 있었다. 노가리 골목에서 옥외영업이 가능한 업장은 20곳이다. 전체 가운데 만선 계열이 약 40%를 차지한다.
이 때문에 ‘을지OB베어’ 측은 현행 옥외영업의 특혜가 특정 계열 호프집에 집중된다고 지적한다.
을지OB베어는 노가리 골목의 시초 가게다. 지난 4월 건물주와의 갈등으로 6차례 강제집행 끝에 결국 철거됐다. 현재 이 자리에는 새로운 호프집이 건물주와 계약을 하고 개업을 준비 중이다. 건물주는 만선호프의 ‘대표’인 방종식씨(67)의 아들과 딸이다. 사실상 방씨 소유인 셈이다. 방씨를 직접 만나 입장을 들어봤다.
“만선호프만 좋게 됐다”
서울 중구청은 2017년 5월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옥외영업을 정식 허용했다. 중구청은 당시 보도자료에서 “이 일대를 골목 관광명소로 발전시키고 미래세대에 물려줄 문화유산으로 보존하기 위해서는 상권 활성화가 뒷받침돼야 한다”라고 배경을 밝혔다.
허용 구간은 을지로11·13길, 충무로9·11길 일대 465m이다.
허용 시간은 오후 6시 30분부터 8시간 동안이다. 이전에는 호프집들이 불법으로 도로에 탁자를 놓고 손님을 받았다. 골목이 무질서해지고 시민들이 통행에 불편을 겪었다. 자리를 두고 업소 간 마찰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상인들이 나서 지방자치단체에 옥외영업 허가를 요청했다.
뮌헨호프 정규호 사장(79)이 이를 주도했다. 뮌헨호프는 1989년 현재 자리에 개업했다. 을지OB베어에 이은 노가리 골목의 두 번째 주자다. 정 사장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중구 공무원과 구의원 등을 계속 쫓아다녔다”라며 “저녁이 되면 차량이 다니지 않아 옥외영업이 가능한 상태이고 상권 발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당시 노가리 골목 호프 번영회의 회장을 맡았다.
정 사장은 “모든 상인이 잘 되자고 한 일인데, 지금 보면 결과적으로 만선호프만 좋게 됐다”고 말했다.
옥외영업이 허용될 당시엔 만선호프는 1호점밖에 없었다. 그는 “만선호프가 건물주에게 임대료를 두 배씩 주겠다고 제안해 기존 상인을 내보내게 한 뒤, 그 자리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가게를 확장했다”라며 현재 만선호프는 모두 11개라고 전했다.
뮌헨호프도 조만간 가게를 빼야 한다.
이곳이 수표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 지역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미 초원호프 등 몇개 호프집이 시행사와 영업보상비에 합의해 떠났다. 정 사장은 “다른 곳으로 옮기면 골목을 활성화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 고생하게 생겼다. 옥외영업이 가능할지도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이어 “젊을 때 와서 이제 노인이 됐다. 여길 떠나야 해서 허무하다”고 했다.
뮌헨호프까지 사라지면 골목은 만선호프의 색채가 더 짙어진다.
을지OB베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도 “골목의 다양성이 크게 훼손된 현재는 ‘서울미래유산’(2015년 서울시 지정)이나 중구청이 허가한 옥외영업의 정당성이 미비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을지OB베어 철거 사태는 단지 한 가게 생존의 문제를 넘어 노가리 골목의 생태계를 부수며 독점적으로 골목을 장악한 한 가게의 욕심에 의해 벌어진 비극”이라며 “이 골목은 중구청이 나서서 보장하는 ‘만선 특혜 골목’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을지OB베어 공대위는 중구청에 을지OB베어 사태의 문제 해결에 나서라고 촉구하고 있다.
공대위는 7월 19일 중구청 담당 국장과 면담을 할 예정이다. 이어 김길성 중구청장과의 만남도 기대하고 있다. 중구청 관계자는 “구청장은 을지OB베어와 얼마든지 만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법원 “시위 표현, 정당성 있다” 을지OB베어 공대위는 지난 4월 강제집행 이후 주변에서 각종 문화제와 강연, 예배, 손팻말 시위 등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들은 만선호프를 향해 상생 등을 촉구하고 있다.
만선호프 측은 지난 5월 4일 법원에 방해금지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집회의 소음과 내용 등으로 인해 영업에 방해를 받고 있으니 금지해달라는 취지다. 구체적으로 자신을 비판하는 내용의 현수막, 전단지, 손팻말, 연설·구호 등 금지, 소음 발생 행위 금지 등을 청구했다. 이런 행위를 위반하면 을지OB베어 측이 하루에 100만원씩 지급하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법원은 대부분 기각했다.
판결문을 보면, 을지OB베어 측이 시위를 하는 장소는 만선호프가 소유한 부지가 아니라 인근 도로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집회에서 나온 표현도 “그 자체로 사회적 정당성을 결여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만선호프는 을지OB베어와 대화하라. 상생하라”, “만선호프 불매”, “이웃 내쫓는 만선 불매” 등이다.
법원은 다만 주간에 75데시벨(㏈), 야간에 65㏈을 넘는 소음을 내지는 말라고 주문했다. 이에 만선호프는 소음을 측정해 기준을 초과하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간 무슨 일이…
을지OB베어 측과 몇몇 상인들은 만선호프의 실소유주를 방종식씨로 추정한다.
다만 실제 방씨가 만선호프의 최고 경영자인지, 구체적인 운영 및 수익 구조는 어떻게 되는지 등이 명확히 확인되지는 않았다.
방씨를 지난 7월 12일 노가리 골목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났다.
방씨는 2014년 골목에 만선호프 1호점을 개업했다. 방씨는 현재 11개 만선호프의 실소유주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방씨는 “아내와 자식들이 4개 정도 운영하고 나머지는 나와 함께 오랫동안 일했던 직원들에게 내줬다. 각자 사장이 따로 있다. 만선호프 간판을 달고 영업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수익은 없는 것인가”라고 묻자 “나는 소스를 만드는 일 정도만 하고 있다. 용돈도 받고 그런다. 또 그간 모아둔 돈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방씨는 가장 최근에 생긴 11번째 만선호프도 자신과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해당 만선호프 자리에는 ‘우리호프’가 있었다. 방씨는 “우리호프 사장이 장사가 너무 힘드니까 만선호프 간판을 달게 해달라고 요청을 했고 돈 한푼 안 받고 내가 허락을 한 것”이라며 “몇개월 동안 조리법도 배워갔다”고 했다. 우리호프 사장도 방씨의 말이 맞다고 밝혔다.
방씨는 을지OB베어 철거 사태의 책임은 을지OB베어에 있다고 주장했다.
방씨는 우선 을지OB베어가 실제 보증금 2500만원보다 높은 7500만원을 기존 건물주에게 요구했다고 비난했다. “있지도 않은 5000만원을 더 받아내려 했다”는 것이다. 또 을지OB베어가 기존 건물주에게 권리금 약 4억원을 요구했다며 “월세가 200만원인데, 17년치 월세를 달라는 것이냐. 건물주에게 무슨 권리금을 주장하나”라고 했다. 건물주가 2018년 제기한 명도소송의 판결문도 보여줬다.
판결문을 보면, 을지OB베어가 그간 건물주에게 지불한 보증금이 7500만원인 건 맞다.
을지OB베어는 2007~2009년 임대차 계약 당시 보증금을 7500만원으로 정하고 기존 보증금 2500만원을 제외한 5000만원을 송금했다. 송금받은 사람은 건물의 관리인이었다. 2013년 재계약 때 5000만원이 중간에 떠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바뀐 건물주는 5000만원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관리인이 중간에 ‘배달사고’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을지OB베어와 건물주는 을지OB베어가 5000만원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대신, 주차장 공간을 계속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이런 상황에서 을지OB베어는 돌려받을 보증금을 7500만원으로 산정할 수 있는지 법원에 판단을 구한 것이다.
‘권리금 4억원’도 명도소송 과정에서 등장했다.
을지OB베어 측은 명도소송에 대한 반소로 건물주에게 당초 1억원을 청구했다. 을지OB베어가 새로운 임차인 주선을 통한 권리금 회수의 기회를 건물주가 방해했다고 주장하며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이다. 이는 법에 명시된 세입자의 권리이다. 1심에서 정확한 가게의 가치를 산정하지 못한 을지OB베어 측은 임의로 1억원을 제시했다.
2심에서 을지OB베어 측은 가게의 감정평가를 받겠다고 법원에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법원이 선정한 감정인을 통해 가치는 4억710만원으로 평가됐다.
방씨는 결정적으로 강제집행 전에 대안을 제시했지만 을지OB베어가 이를 거절한 게 일을 키웠다고 주장했다.
그는 “을지OB베어가 사용하던 건물 1층 주차장에 테이블 3개 정도 공간을 내서 화장실을 짓게 하면, 재계약을 할 수 있다고 주선했지만 을지OB베어가 거부했다”고 했다. 건물 1층에는 만선호프도 영업을 하고 있는데 화장실이 없다.
방씨는 “다른 중재자들까지도 을지OB베어를 찾아가 대화를 했지만 무산됐다”고 주장했다.
방씨가 말한 중재자들은 국회의원과 시의원 등을 지낸 정치인들, 시민사회 활동가 등이다.
을지OB베어의 얘기는 다르다.
이들 중재자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또 방씨 측에서 조건을 계속 바꾸는 바람에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을지OB베어 강호신 사장(62)의 말이다.
“지난해 8~9월 중재자를 통해 받은 제안이 있기는 하다.
인상된 보증금과 월세에 더해 그간 실패한 강제집행 비용 9000만원을 부담하면 계약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강제집행 비용을 내야 한다는 게 사실 터무니없었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나 이후에 만선호프가 주차장의 3평 정도 공간에 자신들이 쓸 창고를 짓게 한다는 조건을 추가했다.
이후 중재자들과는 연락이 지지부진해졌다.
만선호프 측은 또 창고가 아니라 화장실을 짓겠다고 말을 바꿨다. 냄새나는 화장실 바로 옆에서 누가 술을 마시려 할까. 결국 어떻게든 우리를 내쫓겠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었다. 말을 계속 바꾸는 행태를 보며 방씨를 더 이상 신뢰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2.07.25 00:00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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