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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Nike) / 오리건 1964, 전 세계 스포츠 용품 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 기업

Paul Ahn 2023. 5. 30. 14:22

★나이키(Nike) / 오리건 1964

Nike. Just Do It. Nike.com 

 

•설립자 : 필 나이트, 빌 바우만(Phil Knight Bill Bowerman)

•설립 : 1964 1 25

•본사 : 미국 오리건 주 비버튼

 

Nike는 오리건 주 워싱턴 카운티에 본사를 둔 미국 기업입니다. 1964 년에 이 회사는 Phil Knight Bill Bowerman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이 회사는 처음에 Blue Ribbon Sports로 알려졌지만 1971년에 현재의 Nike 이름으로 전환했습니다.

 

나이키(Nike)는 미국의 스포츠 용품 브랜드이다.

대표 상품인 운동화를 비롯해 의류, 모자 등 다양한 제품을 판매한다. 현재 전 세계 스포츠 용품 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 기업이며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이기도 하다.

 

흔히 나이키하면 떠올리는 스우시(Swoosh) 로고는 1971년 포틀랜드 주립대의 그래픽 디자인 전공 대학원생 캐롤린 데이비슨(Carolyn Davidson)이 필 나이트의 제의를 받고 단돈 35달러에 제작했다. 35달러도 처음부터 단가가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당 2달러여서 17시간 30분을 만들고 만든 시간에 따라 35달러를 받았다고 한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약 211달러 정도라고.

 

 

나이트는 데이비슨에게 로고를 의뢰할 때 로고가 단순하고 부드러우며 동적인 느낌을 전달해야 한다고 주문했고 또한 아디다스의 로고와는 전혀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데이비슨이 로고를 완성하고 나이트와 경영진들에게 보여주자 나이트는 "별로지만 보면 볼수록 좋아질 것 같다. (I don't love it, but I think it will grow on me.)"라고 밝혔다고 한다. 로고가 발탁되고 나서 데이비슨은 뭔가 아쉬운지 로고를 개선하고 싶다고 했지만 나이트는 마감 기한을 맞춰야해서 거절했다고 한다.

 

스우시 로고를 만든 캐롤린 데이비슨

 

데이비슨의 말에 따르면 1983 9, 나중에 나이키가 로고의 디자이너인 데이비슨에게 감사를 표하며 깜짝파티로 나이키 로고 모양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금반지와 나이키 주식 500주를 선물했다고 한다. 보통 회사가 대성공을 이루고 나서 페이를 적게 받은 디자이너들이 땅을 치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생각하면 도의적으로 후하게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 덕에 캐롤린 데이비슨은 백만장자는 아니어도 편하게 살고 있다고 스스로 말하기도 했다. 한동안 나이키에서 일했으며 2000년 은퇴했다.

 

 

〈슬로건〉

 

Just Do It.

YOU CAN'T STOP USSPORT.

우리스포츠의 힘을 믿어.

Play New.

모두의 운동장, 끝없이 서로의 가능성을 믿다

 

 

〈역사〉

 

1957년 미국 오리건 대학교에서 만난 육상선수 필 나이트(Phil Knight)와 코치 빌 바우어만(Bill Bowerman)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에게는 운동화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고 대학을 졸업한 필 나이트는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에 진학하고 빌 바우어만은 여전히 코치로 남아 있었지만 미국의 운동화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독일의 견제와 기록 향상을 위해 고성능 신발의 영향력을 각각 생각하고 있던 그들은 의기투합하여 1964년 블루 리본 스포츠 (Blue Ribbon Sports, BRS)를 설립하였다.

 

아식스로부터 자신들을 무역회사로 소개하여 아식스의 신발 메이커 중 하나인 오니츠카 타이거 신발 200켤레를 들이면서 사업은 시작되었다. 변변한 상점 하나 없이 창고에 제품을 쌓아두고 트럭으로 대학 운동장을 돌아다니며 제품을 판매하면서 첫 해 8천 달러의 판매로 250달러의 수익밖에 올리지 못했지만 필드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 우수한 운동화의 지속적인 연구는 선수들의 성적에 영향을 주었고 1969년도에 30만달러로 매출이 증가하였다.

 

1971년 블루 리본 스포츠는 더 이상 오니츠카 타이거를 유통하지 않고 자사의 신발 생산 라인을 구축하면서 나이키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이 때 나이키의 스우시 (Swoosh) 로고가 탄생하게 된다.

 

이후 나이키는 업계의 선두주자 아디다스를 추월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 필 나이트의 의지를 보여주는 일화로서, 아무 생각 없이 회의에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고 등장한 직원은 양말을 신고 회의에 참석할 수 밖에 없었다든가, 백설공주(아디다스)의 옷을 벗기는 난쟁이가 되겠다는 필 나이트의 발언이 있었다.

 

미국에 조깅 붐이 불었을 때, 조깅은 스포츠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신속하게 나서지 않던 아디다스와 달리 조깅화를 출시하여 미국 내 고객들의 호응을 얻었으며, 마이클 조던을 내세운 캠페인은 마침 노쇠한 아디다스의 경영자 호르스트 다슬러의 병크와 겹쳐 아디다스의 리즈시절에 마침표를 찍고 만다.

 

이후 1976년 브랜드 광고를 하게 되고 순식간에 성장하여 1980년에는 기업공개를 단행하고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함과 동시에 미국 운동화 시장 1위를 기록하게 된다.

 

나이키의 매출은 마이클 조던과 협업으로 제작한 에어 조던 시리즈의 성공으로 급상승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이키 최초의 1987년 에어맥스 광고 '레볼루션 인 모션(Revolution in Motion)'에 비틀즈의 노래 Revolution을 쓰면서 이 광고로 나이키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2년 만에 나이키의 매출은 2배로 뛰었고, 자유와 초월이라는 광고 주제가 나이키의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가 되었다.

 

 

그리고 에어 조던의 성공으로 큰 매출을 올린 나이키는 이후에도 타이거 우즈, 로저 페더러, 호나우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등 각 분야의 스타들과 계약을 맺어 하나의 라인을 런칭하고 스토리텔링을 불어넣는 마케팅 방법을 고수하게 된다.

 

 

〈한국 시장〉

한국에서 나이키는 1981 ()화승그룹 계열사인 ()풍영과의 기술제휴로 국내에 첫선을 보였다.  

1986년 화승과 결별하고 () 삼양통상과 50 50의 자본제휴로 한국나이키를 설립한다.

1989년 삼나스포츠로 사명을 변경한다.

1994년 전체 지분을 나이키가 인수하고 나이키스포츠 코리아로 재출범한다.

2021년 나이키 최고 매장 등급인 라이즈 메가숍이 전세계 두 번째로 한국 명동에 개장했다.

현재 한국에서도 스포츠 용품 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 기업이다.

 

@스우시(Swoosh)

스우시는 미국의 스포츠 용품 디자인 회사이자 소매업체(retailer)인 나이키의 로고이다.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로고 중 하나이다. 이 로고 자체만으로 260억 달러의 브랜드 가치를 갖고 있다.

 

swoosh의 사전적 뜻은 '휙 하는 소리를 내며 움직이다'이다.

로고 모양은 승리의 여신 '니케(Nike)'의 날개를 옆에서 본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또한 나이키 설명에 따르면 이 로고는 니케의 영혼을 상징하기도 한다. 1971년부터 자잘한 변화가 있어왔지만 현재는 NIKE 글자가 달린 버전과 안 달린 버전, 글자 형태를 사각형으로 만든 버전만 있다.

 

 

나이키(NIKE)  / 미국 1964 '승리의 여신인 니케(NIKE)를 영어식으로 발음'

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20908.010140747500001

 

 ‘JUST DO IT!’이라는 슬로건으로 대표되는 ‘나이키(NIKE)’는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스포츠 종합 브랜드이며 하나의 문화코드다. 가정마다 나이키 운동화 한 켤레쯤은 소지하고 있을 만큼 ‘국민 브랜드’로 자리 잡으며 스포츠시장을 장악하고 초대형 다국적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나이키 브랜드는 1960년대 대학 육상선수였던 필 나이트와 육상 코치출신인 빌 바우어만에 의해 시작됐다.

당시 그들은 일본의 운동화 제작업체인 오니츠카 타이거사의 러닝화를 미국에 들여와 트렁크에 싣고 다니며 판매하는 일을 했다.

 

판매는 매우 성공적이었고 8천달러 물량의 타이거사 운동화를 모두 팔게 됐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떠돌아다니며 남들이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일만 할 수는 없었다. 이들은 궁리 끝에 자신들의 경험을 살려 육상선수에게 꼭 필요한 러닝화를 직접 만들어 보기로 한다.

 

1970년 어느 날 빌 바우어만은 아내가 와플 굽는 것을 보고 운동화 밑창에 와플처럼 격자무늬를 넣으면 좋을 것 같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조금 엉뚱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는 와플 굽는 틀에 고무화합물을 넣고 밑창을 구워내는 실험에 착수한다. 그리고 그것을 잘라 신발 밑바닥에 붙였다.

 

이렇게 탄생한 제품이 나이키의 ‘와플 트레이너 러닝화’였다. 이 운동화는 곧 육상선수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고 미국에서 단기간에 가장 많이 팔린 운동화로 기록되고 있다. 선수들은 이 운동화로 인해 기록이 향상됐을 뿐만 아니라 마찰력과 쿠션 효과도 생겨 발의 피로감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됐다.

 

최초의 제작 운동화가 큰 사랑을 받게 되면서 1974년 현재의 나이키라는 브랜드 명과 스우시 로고가 만들어지게 된다. 나이키라는 이름은 승리의 여신인 ‘니케(NIKE)’를 영어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페르시아에서 승리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왔던 그리스 병사가 기도를 올린 바로 그 여신의 이름이다. 승리의 여신인 니케의 상징적 의미를 브랜드화한 것이기에 스포츠 선수에게 나이키라는 이름은 더 큰 의미로 느껴졌을 것이다.

 

또한 니케의 날개와 옷자락의 흐르는 선을 따온 스우시(Swoosh) 로고는 평범한 미대생의 작품이었다. 필 나이트와 빌 바우어만은 시안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마감이 임박하여 할 수 없이 스우시 로고를 선택하고 그 대가로 고작 35달러를 지불한다. 2011년 나이키 브랜드 가치가 139억달러까지 치솟은 것을 생각해보면 터무니없는 대가를 치른 것이다. 그 이후로 나이키의 로고는 운동화 등 다양한 제품을 장식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갖고 싶은 브랜드의 로고가 되었으며 오늘날 최고의 스포츠 브랜드로 성장하게 된다.

 

나이키는 당대 최고의 스포츠 스타를 통한 광고 마케팅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나이키의 폭발적인 성장과 직결되는 인물이 바로 농구스타 ’마이클 조던’이다.

 

1984년 혜성같이 등장한 그는 당시 스포츠 브랜드계의 부동의 1위를 지키던 아디다스의 운동화를 즐겨 신었다. 그는 NBA 진출 이후 아디다스와 계약하길 원했지만 당시 아디다스는 미국 농구시장에 큰 매력을 느끼지 않았다. 반면 나이키는 조던을 위해 ‘이노베이션 키친’을 꾸리고 30여명의 디자이너를 투입해 ‘에어 조던’이라는 걸작을 내놨다. 당시 NBA 사무국은 색이 들어간 농구화를 신을 수 없도록 했지만 나이키는 매 경기 1천달러의 벌금을 대신 내주면서 검은색과 빨간색이 들어간 에어 조던을 그에게 신도록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나이키는 현재까지 에어 조던 시리즈로만 매년 10억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프리밸런스·메지스 수석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