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테쉬〕보이지 않던 장벽을 뛰어넘는 중국 쇼핑 앱
테무, 알리익스프레스, 쉬인 등 중국 쇼핑 앱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상거래의 변방에 머물러 있던 ‘직구’ 문화가 물류의 한계를 극복하며 확대됐다. 중소 무역업체의 피해가 예상된다.
쿠팡의 독주가 이어지던 온라인 쇼핑(이커머스) 시장에 뜻밖의 복병이 등장했다. 테무(TEMU), 알리익스프레스, 쉬인(SHEIN)으로 대표되는 중국 온라인 쇼핑 앱이 인기를 얻으면서 국내 이커머스 시장이 잠식될 수 있다는 우려가 퍼지고 있다. 정부도 경계 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월14일 국내 이커머스 업체 실무진을 모아 비공개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논란이 되는 앱은 총 세 종류다. 알리바바 그룹이 운영하는 비(非)중국 서비스 ‘알리익스프레스’, 중국 공동구매 서비스 ‘핀둬둬(拼多多)’가 운영하는 ‘테무(TEMU)’, 중국 패스트패션 앱 ‘쉬인(SHEIN)’이다. 세 서비스 모두 영어나 중국어를 할 줄 몰라도 한국어로 서비스 접근이 가능해 점차 사용자층이 늘고 있다.
최근에는 SNS를 통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테무의 사용자가 큰 폭으로 확대됐다. 모바일 시장 분석 사이트인 ‘모바일 인덱스’에 따르면, 테무는 지난해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쇼핑 앱 분야에서 신규 설치 건수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1월 앱스토어에서 테무를 내려받은 사람이 222만명에 달한다. 지난해 8월 33만여 명에 불과했던 월간 사용자 수도 올해 1월 기준 45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들 중국발 쇼핑 앱은 쿠팡·네이버·지마켓·11번가 같은 국내 이커머스와 단순 비교하기가 어렵다. 어디까지나 이들 쇼핑 앱은 ‘직구(해외에서 직접 구매)’ 성격을 띠고 있다. 이용자들은 관세청에 등록한 개인통관번호를 입력해야 하고, 결제 후 상품이 배송되는 데 짧게는 수일에서 길게는 한 달 넘게 걸리기도 한다. 제품의 크기나 무게 제한이 없이 주문 가능한 국내 앱과 달리 이들 앱에서는 주문 가능한 무게나 수량, 크기에도 제약이 있다. ‘직구’는 상거래의 주된 분야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쇼핑 앱이 국내에서 급성장하고, 그 성장을 경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외견상 보이는 ‘급성장’은 이들 앱의 마케팅 방식에서 비롯된다. 특히 테무는 SNS를 통한 대규모 광고 집행이 앱의 정체성으로 평가받는다. 테무가 처음 주목받은 것은 미국에서다. 2022년 9월 등장한 테무는 ‘억만장자처럼 쇼핑하기(Shop like a billionaire)’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밀며 광고를 쏟아부었다. 테무의 모기업인 핀둬둬는 중국에서 직매입과 공동구매(많이 모일수록 할인 혜택이 커지는 시스템)를 통해 중소 도시를 기반으로 급성장한 회사다. 핀둬둬의 해외 진출 플랫폼인 테무는 슈퍼볼 광고, 페이스북·인스타그램 광고 등으로 단숨에 미국의 ‘초저가’ 시장을 잠식해갔다.
이때 중요한 게 바로 ‘비자발적 소비’를 얼마나 유도하느냐다. 테무는 앱 시스템이 모바일 게임처럼 구성되어 있다. 더 많이 고를수록, 앱 내에서 더 활발하게 활동할수록 더 저렴한 제품을 찾아 소비하는 구조다. 소비자의 앱 의존성을 높이는 방식을 취하기 위해, 중국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미국에서 적자를 감내하며 초기 이용자를 단기간에 확보하는 전략이 필요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광고 물량 공세로 이어졌다.
그 덕분에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기업이 바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META)’다. 메타의 2023년 매출액은 전년 대비 15.6% 증가한 1349억 달러(약 179조원),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9.3% 증가한 467억 달러(약 62조원)다. 수전 리 메타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해 10월 분기 실적 발표 현장에서 “중국 광고주가 쓴 비용 덕분에 메타의 매출이 늘었다”라며 중국 이커머스 기업들의 광고 집행 영향을 짐작하게 했다. 한국에서도 테무는 유튜브·페이스북·인스타그램에서 지속적 광고 노출에 힘입어 급성장했다. 미국 패스트패션 시장을 빠르게 파고든 ‘쉬인’도 비슷한 마케팅을 펼쳤다. 지금은 세계 최대 플랫폼이 된 ‘틱톡’ 역시 초창기에 ‘짧고 굵게’ 마케팅 비용을 집행하는 전략을 택했다.
물류 기능 강화하는 중국 이커머스
알리익스프레스 역시 지난해부터 현지화한 광고 전략을 펼치고 있다. 배우 마동석이 등장하는 알리익스프레스의 광고는 최근 국내 기업의 상품도 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사용자층을 넓히고 있다. 특히 알리익스프레스의 장점으로 꼽히는 분야가 바로 물류다. 알리익스프레스의 모기업인 알리바바는 물류 자회사인 차이냐오(Cainiao)를 통해 중국은 물론 전 세계 배송망을 구축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알리익스프레스는 ‘7일 배송’ 서비스를 강조하며 중국에서 한국까지 배송하는 기간을 상당히 단축한 상태다. 주문 직후 한국으로 물류를 보내고, 한국에서는 이 물류를 CJ대한통운이 전담해 처리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물류 서비스가 앞으로 더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 현재 한국 이커머스 시장이 중국 쇼핑 앱의 성장을 경계하는 것도 이 ‘물류 속도’ 때문이다. 중국발 직구 앱과 한국 이커머스 앱의 가장 큰 격차는 ‘배송 시간’에 있다. 중국 이커머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배송 시간을 어느 정도 포기하되, 저렴한 가격을 원한다. 그런데 알리익스프레스와 같은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이 한국에 물류 거점을 확보할 경우, 이들 쇼핑 앱의 가격경쟁력이 더 커진다.
선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삼성증권이 지난해 12월 공개한 리포트에 따르면, 이미 알리익스프레스는 2018년부터 벨기에·폴란드·말레이시아 등 전 세계에 물류창고를 확장하고 있으며, 전 세계 주요 도시에 ‘72시간 이내 배송’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지난해 12월6일 레이 장 알리익스프레스 한국 대표는 2024년 한국에 풀필먼트(상품을 미리 쇼핑 플랫폼 창고에 쌓아두는 방식) 물류 인프라를 갖추겠다고 밝혔다. 인천이나 평택 등지에 신규 물류창고를 짓거나 2022년부터 공급과잉(공실) 상태인 임대형 물류창고를 활용하는 방안 등이 언급되고 있다.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이 물류 기반을 확보하고, 배송 속도를 높일 경우 국내 유통업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상당수 중소 무역업체들이 중국에서 저렴하게 생산된 상품을 대량으로 들여와 국내 품질 테스트를 거친 뒤 정식 유통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같은 상품도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직구’를 통할 경우와 국내 쇼핑몰에서 정식 수입망을 거쳐 구입할 경우, 가격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물론 국내 품질·안전 테스트를 거치지 않은 상품의 안전성 문제, 환불 및 교환이 번거롭다는 문제는 ‘저렴한 가격’과 함께 소비자가 받아들여야 하는 리스크로 평가받았다. 그런데 중국 이커머스가 한국에서 확대된다는 것은, 배송 시간의 단축과 함께 교환·환불도 조금 더 용이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품질·안전 문제가 덜한 상품의 경우 ‘국내 쇼핑몰의 비교우위’가 점차 사라진다. 패션 업계가 대표적이다. 국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쉬인’을 평가하는 한 회원은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쉬인에서 마음에 드는 옷이 있다면, 똑같은 옷을 지그재그나 에이블리 같은 한국 쇼핑 앱에서 찾아본다. 어차피 같은 물건에 다른 브랜드를 입혀 판매하기 때문이다. 비교해보고 가격 차이가 많이 난다면 쉬인에서 주문한다.” 이 같은 소비 패턴이 일부 부지런한 소비자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다. 한국 이커머스 시장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이미 전 세계 소비시장에 ‘싸게 구입하고, 필요 없으면 버리는’ 패턴이 정착됐다는 점이다. 이 같은 소비 성향이 확대될수록, ‘싸게 구입하기’에 최적화된 중국 쇼핑 앱의 성장 가능성은 커진다. 중국 쇼핑 앱의 한국 진출은 ‘틈새 시장’이던 직구의 편의성을 높여 점차 기존 무역업의 문법을 희석시키고 있다.
시사IN
2024.03.05 06:02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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