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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teratur〕 가와바타 야스나리 / 1968년 노벨문학상 수상, <雪国>

Paul Ahn 2024. 10. 11. 12:05

litteratur 가와바타 야스나리 / 1968년 노벨문학상 수상, <>

 

본명 : 가와바타 야스나리 (川端 康成かわばた やすなり)

출생 : 1899 6 14일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시 텐진바시

사망 : 1972 4 16일 가나가와현 즈시시

 

境の長いトンネルをけると雪であった。夜の底が白くなった。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설국 中

 

 

1899년 오사카의 부유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2살과 4살 때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었고, 그 후 조부모에게 맡겨졌으나 7세 때 조모가 죽게 된다. 10세 때는 다른 친척에게 맡겨진 누이까지 죽고, 15세 때는 결국 조부까지 세상을 뜨게 되면서 외롭게 자랐다. 15세까지 친족 다섯 명이 죽어서 이로 인해 장례식의 명인(葬式の名人)이라는 별명까지 있었을 정도...

 

그는 중학교 때부터 소설가를 꿈꾸었고, 도쿄제국대학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문예 잡지 등에 글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의 외로움과 쓸쓸함은 이후 가와바타 작품의 주요한 정조를 이룬다.

 

도쿄제대 문학부 영문학과 재학 시절, 카페에서 여급으로 일하던 15살 소녀 이토 하쓰요와 결혼 약속을 하였으나, 돌연 이토가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파혼하겠다는 편지를 남기고 잠적하면서 그의 첫사랑은 실연으로 끝나게 된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토는 자신을 맡아 기르던 절의 주지에게 강간을 당했고 그 충격으로 파혼을 선언한 것이었다. 이토 하쓰요는 '이즈의 무희' 등을 비롯해 가와바타 작품 속 여성관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여인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에 이 두 사람의 파혼 당시 주고받은 편지가 공개되기도 했다. 국내 기사

 

가와바타는 소설가 이외에도 신문기자, 아쿠타가와상 선정위원 등으로도 활동했다. 조국 일본은 전쟁을 벌였다가 졌고, 사회는 격변을 겪었으나, 가와바타의 작품은 폭설에 뒤덮인 산골 마을처럼 세상사와는 무관한 듯 보였다.

 

노벨상을 받고 일본 펜클럽 회장을 지냈으며 세계 각국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로 명망을 얻은 74세의 가와바타는 1972 4 16일 가스를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를 남기지 않았기에 자살 원인에 대해서는 추측이 분분하다. 가와바타가 자살하기 2년 전, 가와바타를 스승처럼 따르던 미시마 유키오가 할복자살한 데 따른 충격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추정이 가장 설득력 있어 보인다.

 

 

작품

 

이즈의 무희(伊豆の踊子)[14]

설국()

고도(古都)

천우학(千羽鶴)

산소리(山の音)

여자라는 것(女であること)

명인(名人)

이즈의 여로(伊豆の旅)

무희()

화장(化粧)

잠자는 미녀의 집

소년(少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