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처럼 사고하는 트럼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본격적으로 침공한 지난 3년 동안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러시아를 국제법을 위반하며 따돌림당하는 국가로 취급해왔다.
그리고 현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를 침략자라고 부르거나 우크라이나를 전쟁의 피해국으로 선언하는 것도 거부할 뿐만 아니라 러시아와의 관계 재건에도 나서며 상황을 완전히 뒤집어 놓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지난 2월 28일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전쟁 종식 방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쟁을 벌이며 더욱 공개적으로 두드러졌다.
일각에서는 1990년대에 기반한 이른바 '자유주의적 세계 질서'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런 것일까?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알리스 바이델(독일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당’ 대표), 일론 머스크(테슬라 및 스페이스 X의 CEO),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대통령), JD 밴스(미 부통령)의 얼굴을 본 딴 가면을 쓰고 있는 시위대의 모습
사진 출처,Getty Images
◇자유주의 패권의 시대
'자유주의 세계 질서'라는 용어는 약속, 원칙, 규범을 기반으로 구축된 국제 관계 시스템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그 핵심에는 국제법과 더불어 국제연합(UN), UN 총회, 안전보장이사회와 같은 기관이 자리한다.
또한 '자유주의 세계 질서'에는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과 같은 기관이 지탱하는 자유무역과 같은 특정 가치도 포함되어 있다.
이 같은 세계 질서의 가장 중요한 전제는 서구의 자유민주주의가 최고의 정부 모델이라는 이데올로기적 믿음이다.
국제법 위반 사항은 UN 총회 결의나 국제사법재판소(ICJ)의 판결을 통해 공식적으로 판단될 수 있고, 그 후 UN 안보리가 경제 제재를 가하거나 극단적인 경우 군사 행동을 승인하기도 한다.
현실에서는 UN의 승인 없이 제재와 군사 개입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러시아가 오랫동안 비난해 온 부분이다.
2007년 뮌헨 안보 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무력 사용은 UN의 제재가 있을 때만 합법적인 조치로 간주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UN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 EU(유럽연합)로 대체할 필요가 없다"고 연설한 바 있다.
한편 2023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대통령은 연설 중 우크라이나 전쟁을 규칙에 기반한 질서와 오직 힘에 기반한 세계 질서 간 벌어진 "자유를 위한 위대한 전투"라고 묘사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전면적으로 침공함으로써 여러 국가들의 시선에는 국제법을 위반한 행동을 한 것일 뿐만 아니라 세계 정세를 다루는 방식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졌다.
2014년부터 푸틴 대통령은 UN의 승인 없이 군사력을 사용했다. 서방의 관점에서 볼 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냉전 이후 규칙 기반 질서에 대한 가장 노골적인 위반이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의 G. 존 아이켄베리 정치 및 국제학 교수는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가장 기본이라 생각했던 원칙 3가지가 깨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첫째는 무력을 사용하여 영토 경계를 변경하지 않는다는 것. 두 번째, 민간인에 대한 폭력을 전쟁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세 번째는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위협하지 않는 것"이라는 아이켄베리 교수는 "푸틴 대통령은 처음 2가지를 어겼고, 3번째 원칙도 위협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는 규칙 기반 세계 질서가 마주한 실제 위기"라고 했다.
이에 대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서방의 접근방식이 국제법과 UN 기구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러시아 측은 1999년 NATO의 유고슬라비아 폭격, 2003년 미국 주도의 이라크 침공, 2008년 코소보 독립 인정 등을 UN 안보리 승인 없이 이루어진 서방의 행동 사례로 자주 언급하며, 이는 UN 헌장에 명시된 핵심 원칙 위반이라고 지적한다.
최근 자유주의 세계 질서가 마주한 가장 중요한 시험대 중 하나는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다. 여러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군사적으로 지원한 바이든 행정부를 강도 높게 비난하며 미국이 팔레스타인인 수만 명의 죽음에 무관심하다고 지적했다.
누만 쿠르툴무스 튀르키예 국회의장은 '워싱턴 포스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는 매우 명백한 위선이며 이중 잣대"라고 지적했다.
"팔레스타인 희생자를 우크라이나 희생자와 동등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는 인종차별입니다. 인류 간 일종의 서열을 조장하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이켄베리 교수는 '자유주의 세계 질서'가 "미국, 미국 달러, 미국 경제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UN 안보리보다는 NATO와 동맹국들이 더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을 인정하며, 이는 미국의 '자유주의적 패권'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2기가 전 세계에 의미하는 바는?
이 같은 기존 국제 질서에 도전하려는 국가들은 전통적으로 '수정주의 세력'으로 분류된다. 미국의 정책 입안자 및 분석가들은 오랫동안 중국과 러시아를 수정주의 세력으로 부르며, 두 나라가 세계 무대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줄이려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이켄베리 교수는 최근 몇 달간 전 세계 최고의 수정주의 국가로 변모한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이며,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에서 동맹에 이르기까지, 민주적 연대와 인권 보호에 이르기까지 "자유주의 세계 질서의 사실상 모든 측면"을 해체하고자 움직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우리 행정부는 과거 행정부의 외교 정책 실패,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과거와 확실히 작별하고자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트럼프 집권 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다른 급진적 변화와는 달리 외교 정책은 대통령 고유의 권한이기에 미 의회와 사법부가 막기는 특히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와의 화해로 향하는 길을 정당화하고자 자국 이익 중심의 틀을 내세우고 있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SNS에 "우리는 계속 이어지고 있는 갈등(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에도, 우크라이나에도, 유럽에도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에도 좋지 않다는 것"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혁명은 여전히 그의 정책 중 가장 인기가 없는 부분이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그의 정책은 이민 정책이었다. 반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한 현 행정부의 입장은 가장 낮은 지지도를 기록했다.
미국인의 3분의 2 이상이 우크라이나를 동맹국으로 여기고 있으며,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대해 호의적인 이들도 절반 가까이 된다.
◇트럼프의 외교적 격변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러시아 및 유라시아에 대해 연구하는 줄리 뉴턴 박사는 "2025년 2월 현재, 이러한 규칙 기반 질서가 뒤집힐 수 있다고 위협하는 주체는 미국"이라고 설명했다.
뉴턴 박사는 그 증거로 트럼프의 우크라이나의 천연자원에 대한 요구, 명백히 러시아와의 관계 정상화로 보이는 행보, 젤렌스키에 대한 공개적인 공격, 트럼프 주변 인물들의 유럽 내 극우 정당에 대한 지원을 꼽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3주년인 지난달 24일, 미국은 러시아의 침략과 우크라이나 영토 점령을 규탄하는 UN 총회 결의안에도 반대표를 던졌다.
대신 미국 외교관들은 "러시아 연방-우크라이나 분쟁으로 인한 비극적인 인명 손실"을 애도한다는 더 완화된 표현의 성명을 발표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양국 간 경제 관계 복원에 대해 푸틴 대통령과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뉴턴 박사는 "트럼프의 외교 혁명은 헬싱키 협정의 원칙을 무너뜨리고 있으며, (기존) 동맹국들의 눈에 미국을 적으로 인식시키고 있다"고 했다.
1975년 채택된 '헬싱키 협정'은 영토 보전성, 국경 불가침, 상호 간 내정 불간섭 원칙을 강화하고자 미국과 소련, 유럽 국가들 간 맺은 합의다.
한편 미 존스 홉킨스 대학의 러시아 전문가인 세르게이 라드첸코 교수는 "트럼프는 푸틴처럼 사고한다. 마치 19세기 제국주의자와 같다"고 표현했다.
라드첸코 교수는 "유럽은 경제력도 상당하고, 재정적으로 러시아를 압박할 수단도 갖고 있다"면서 "트럼프와 푸틴의 대화가 얼마나 진전되든 간에 동시에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정상화하리라 상상하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한편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 셸비 매기드 '유라시아 센터' 부국장은 '자유주의 세계 질서'의 종식을 선언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대러 제재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며,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끝내야만 제재를 해제하겠다고 시사했다는 설명이다.
매기드 부국장은 "조급하고 위험하게 정상화가 될 위험이 있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아직 그 단계에 도달한 것은 아니"라면서 "궁극적으로 세계 질서에 지속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종전까지의 여정이 아닌 어떻게 전쟁이 어떻게 끝나고 평화가 어떻게 실현되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마무리했다.
2025년 3월 4일
기자,그리고르 아타네시안
'Trend & Issue > @Mega Trend' 카테고리의 다른 글
〔Trumpism〕 캐나다人, 美 여행도 안 간다… (0) | 2025.03.09 |
---|---|
〔Trumpism〕 트럼프, 상하원 연설서 ‘김정은’ 한번도 언급안해 (0) | 2025.03.09 |
〔Trumpism〕 돌아온 트럼프, 무너지는 국제질서 (0) | 2025.03.09 |
〔Trumpism〕 ‘트럼프주의’에 함축된 미국인들의 속내 (0) | 2025.03.09 |
〔지방소멸〕 되살아난 한국과 일본의 15개 지역 조명 (0) | 2025.0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