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주의’에 함축된 미국인들의 속내
미국 캘리포니아에 계시는 어머니와 마지막으로 통화했을 때 어머니는 내가 한국에 사는 것이 다행이라고 하셨다. 지난달에 도널드 트럼프가 두 번째로 대통령에 취임한 것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다. 현재 문제는 트럼프 그 자체뿐만 아니라 트럼프 때문에 미국에서 심화되는 내부 투쟁과 정치적 분열이다. 현재 한국도 그러한 상황에 시달리는 듯 보이지만 미국만큼은 아닌 것 같다. 내 어머니는 트럼프를 싫어하시는 반면 아버지는 트럼프를 응원하시는데, 이처럼 미국인들이 완전히 다른 정치적인 색깔로 나눠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나는 트럼프 팬이 아니지만 그의 매력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트럼프는 대부분의 정치인과 달리 유머 감각이 있다. 미국인들은 코미디언들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말해 준다’며 칭찬하곤 하는데, 트럼프에 대해서도 그렇다고 한다. 2018년 이민법 개정안을 논의하기 위해 의원들과 트럼프가 만났을 때 트럼프는 아이티를 언급하며 “왜 거지 소굴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계속 받아주는 것이냐”라고 말한 적이 있다. 언론은 거친 발언을 한 트럼프를 꾸짖었지만 많은 미국인들은 바로 그 질문에 응답한 것 같다.
‘트럼프주의’라고 부를 만한 일관성 있는 이데올로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트럼프나 지지자들의 말을 들으면 여러 가지 테마를 인식할 수 있다. 그중 제일 중요한 것을 재미교포 기자 웨슬리 양이 2021년에 트위터(현 X)에서 설명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트럼프주의’의 핵심은 무역이나 전쟁, 이민자 유입처럼 미국의 경계 밖에서 벌어지는 세상과 점점 더 복잡화되는 구속으로부터 철수하려는 충동이라고 했다. 이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은 인프라가 부족하고 폭력 범죄가 많고 문화가 파괴된 21세기의 미국을 비춰보며 과연 이 상황에서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라는 생각을 도출할 수도 있다.
이른바 ‘미국의 세기’라고 하는, 미국이 독보적인 존재로서 세계에 영향을 주는 시기는 트럼프가 태어나기도 전인 1945년에 시작했다.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국이 지배하지 않는 세계를 상상조차 하기 어려워한다. 간과하기 쉬운 것은, 미국이 세계에 군사기지를 두기는 커녕 대규모 군대도 없었던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1830년대에 민주주의를 조사하러 미국에 갔던 프랑스 정치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은 ‘이웃이 없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미국은 다른 나라와의 이해관계가 없어서 충돌할 이유도 거의 없다’고 썼다. 트럼프는 미국인들이 그 당시든 지금이든 그들이 지니는 고립주의 성향을 이용해서 정권을 쟁취했다고 할 수 있다.
작년 4월 타임지에 실린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한국에 4만 명의 병력을 두고 있다”면서 “왜 우리가 부유한 국가를 방어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사실 주한미군은 3만 명도 안 되고, 트럼프는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증액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미국인들이 이 말에 동의한다. 왜 다른 나라들을 지키는 데 자원을 그렇게 많이 투입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미국이 연합군의 일원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이겼을 때부터 해 온 ‘세계 경찰’ 역할의 가치보다 비용만 부각시키며 그 역할을 불편해 한다.
트럼프 현상이 ‘미국이 세계로부터 등을 돌리려고 하는 신호’라면, 이는 각국이 미국과의 관계를 재고할 시점이란 뜻일지도 모른다. 지난달 파이낸셜타임스(FT)에 실린 조사에 따르면 미국 동맹국들 중 시민들이 트럼프의 당선을 제일 부정적으로 여기는 나라는 한국이라고 했다. 미국 대통령이 누군지가 그렇게 걱정스러운 일이라면 미국과 한국 사이에 거리를 조금 더 두는 것은 어떨까? 하지만 그것이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한국인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대한민국이 미국과의 각별한 관계를 바꾸면 미래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인들에게 그 관계도 그다지 각별하지 않을 수 있다. 속말을 주저하지 않는 트럼프와 그에게 투표한 많은 사람들이 한미 관계를 ‘혈맹’이라고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해진 친구도 없고 정해진 적(敵)도 없는 미국은 국익만을 염두에 둔다’는 발언이 자주 인용된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남긴 말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키신저가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난관에 처한 ‘제국’을 운영하는 미국 실체의 한 측면을 반영한다. 한국에 사는 미국인인 나는 트럼프에 대해 생각하면 이 질문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미국의 세기가 2045년에 끝난다면 한국은 준비가 돼 있을까?
동아일보
2025년 2월 12일 03시 06분
콜린 마샬 미국 출신·칼럼니스트·‘한국 요약 금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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