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음식
전라도 절밥의 진수호
‘사찰음식 연구가’ 전남 장성군 백양사 천진암 주지 정관 스님이 소개하는 사찰음식
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40411.010410825280001
차조밥·된장들깨국·봄동 대궁무침·뽕잎김치·함초 장아찌…자연을 오롯이 담다
전남 백양사 주지 정관 스님이 힐링 음식에 대해 궁금해 하는 독자를 위해 본인이 직접 인근 산에서 캐온 자연재료로 알칼리 버전의 상을 차렸다. 인스턴트 재료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게 인상적이다.
일반 식당과 전혀 다른 질감을 보이는 두 종류의 된장이 사찰음식의 본질이 뭔가를 잘 보여준다. 오른쪽 된장이 천진암표 빡빡장이다.
항상 가고 싶었던 고즈넉하면서도 운치있는 전라도 사찰이 하나 있었다.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에 있는 고불총림 백양사다. 다들 가을이면 벌겋게 대취를 하는 아기단풍의 자태에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지난 1일 ‘호남5매(湖南五梅)’ 중 하나로 불리는 백양사 고불매(古佛梅·천연기념물 제486호)가 만개했다.
1947년 부처의 원래 가르침을 기리기 위해 백양사에 고불총림이 결성되면서 고불매라 칭해졌다. 참고로 호남 5매는 전남 승주군 선암사 무우전(無憂殿) 돌담길의 ‘선암매’, 광주 전남대 본관 앞의 ‘대명매’, 담양 지실마을의 ‘계당매(溪堂梅)’, 소록도 중앙공원에 있는 ‘수양매’ 등이다.
백양사 쌍계루 아래 연지는 전국적 포토존으로 각광을 받는다. 대구의 벚꽃은 이미 지고 있었지만 이날 백양사 초입의 해묵은 벚꽃은 이제 만개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제주도에 가야 그 위용을 볼 수 있는 비자나무 군락지도 백양사에서 친견할 수 있었다. 천진암으로 가는 길 양편의 풍광은 전북 선암사, 전남 해남 대흥사 주변과 흡사했다. 팔공산과 비슬산권에 익순한 경상도 사람에겐 색다른 분위기와 풍경을 보여준다. 백양사 주변에는 8~10m급 비자나무 5천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기자는 지난 7일 꽃놀이 인파를 피해 월요일 오전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백양사에서 불과 400m 떨어진 천진암에서 한나절을 보냈다.
그곳 주지인 정관 스님이 달성군 사찰육성위원을 위해 수선화 향기가 번지는 봄나물 한상차림을 마련했다. 정관 스님은 팔공산 동화사 시절 양진암 주지로 색다른 사찰음식을 선보여 많은 팬을 확보했고 조계종 사찰음식 전문가인 선재, 대안, 우관, 정문 스님 등과 한국 사찰음식 족보를 만들고 있다. 현재 전주대 국제조리학과에서 사찰음식을 가르치고 있다.
비구니 사찰인 천진암은 6·25전쟁 때 아군에 의해 소실된다. 하지만 정안 스님 주도로 89년부터 불사를 개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절 뒤로는 정상 백학봉에서 내려오는 암벽이 우뚝하고 맞은편 계곡은 상록수인 비자나무와 활엽수가 뒤엉켜 깊으면서도 단아하고 그러면서도 옹골찬 풍경을 그려내고 있었다.
천진암 올라가는 돌계단은 봄햇살을 붙들고 신비로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여태껏 본 절집 돌계단 중에 가장 친환경적이었다. 현호색, 벌꿀꽃, 제비꽃, 개불알꽃, 흰민들레 등 족히 50종이 넘는 야생화와 풀이 막돌 틈에서 형형색색의 꽃잎과 여린 순을 내밀고 있다. 대웅전 앞엔 수선화가 한 달째 꽃을 달고 있다. 바로 옆 언덕에 머위가 수북하게 돋아나 있다.
오후 1시 무렵 도착했다. 정관 스님은 생강나무의 노란꽃 같은 웃음을 내뱉으면서 돌계단 한 편에 앉아 꽃이름을 일일이 가르쳐주고 어떻게 요리를 해먹는지를 설명해주었다. 허기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배가 고프다면서 공양간으로 일행을 데려갔다.
“절집 사람이 사하촌 사정에 너무 밝아도 추해보여. 가능한 한 절 주변에서 캐온 각종 식재료를 가장 간단한 양념만 갖고 즉석에서 요리해 먹는 게 미덕이지.”
천진암 정관 주지 스님이 절 아래 식재료에 의존하지 않고 갓 돋아난 채소와 나물류만으로 제철 절 음식을 선보였다.
◆천진암 사찰음식 대해부
시장을 보지 않아도 이 시절엔 도처에 먹을거리라서 도깨비방망이처럼 뚝딱하면 금세 멋진 밥상이 차려진다.
절 주변이 대형 ‘식재료 공급소’인 탓이다.
이날 밥은 차조밥이다. 일반 쌀밥은 절집 밥상엔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 스님은 순창군 복흥면의 5일장을 잘 기웃거린다. 솔직히 요즘 절집에서 벼농사를 짓기는 어렵다. 쌀은 신도들이 갖고 오는 것으로 굴린다. 차조밥 옆엔 애쑥과 산취나물로 끓인 된장들깨국이 나온다. 지금 쑥과 취나물이 본격적으로 움을 내밀기 시작한다. 통상 부처님오신날 이전에 넉넉하게 채취해 말려두고 틈틈이 요리해 먹는다.
“애쑥은 절 뒤편 계곡과 비자나무 주변에 산재해 있어. 정월 보름이 지나면 채취할 수 있는데 평지의 것보다 훨씬 자그마하면서도 향이 진한게 특징이지.”
5년 묵힌 된장이 나온다. 물이 끓을 때 애쑥을 넣는데 이때 산취나물은 한 번 데친 뒤 넣어야 부드러워진다. 취나물을 무칠 때도 요령이 있다. 연할 때는 집간장과 깨소금, 그리고 참기름을 섞어 무치면 되고 조금 질기면 된장에 무쳐 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나물도 여러 종류를 큰 접시에 함께 담아내면 훨씬 모양도 좋고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접시 하나에 한 나물씩 담아내면 함께 낼 때보다 덜 맛있어 보인다는 걸 절감한다.
이날 큰 접시에는 취나물, 불미나리숙주무침, 봄동배추 대궁무침, 묵나물, 뽕잎나물, 아주까리(피마자) 잎 나물이 합창했다.
우엉잎 된장조림도 특이했다. 쪄낸 우엉잎도 쌈싸 먹도록 하지 않고 경상도 특유의 깻잎김치처럼 잎마다 견과류 가루가 묻은 양념장을 묻혀놓았다.
부침개와 튀김류도 길쭉한 도자기에 함께 냈다. 훨씬 모양이 좋았다. 두릅전, 흑임자 소스가 올라간 마, 우엉튀김, 다시마찹쌀부각이 파삭하게 웃는다.
절집에선 부각을 즐긴다. 찻잎은 물론 산야초, 각종 나뭇잎까지 다 해먹을 수 있다. 부각 만들기 중에 찹쌀풀 쑤기 과정이 있다.
◆하루장의 묘미를 만나다
김치도 이색적이었다.
돌나물과 불미나리가 들어간 물김치를 비롯해 갓김치, 뽕잎이 들어간 꼭 예전 백김치 같은 뽕잎김치, 고들빼기김치 등이다.
장아찌는 자소 매실장아찌, 제부도 함초 장아찌, 무말랭이, 방풍나물 장아찌 등이다. 마지막엔 오이·키위 드레싱이 가미된 과일샐러드가 나왔다. 이날 동원된 소스의 주재료는 흥미롭게도 된장이었다. 청양초 들기름 빡빡장과 된장 견과류 양념장이다.
미나리 대궁의 씹히는 맛과 숙주의 아삭한 맛이 어우러져 식감을 돋우는 불미나리숙주무침은 된장과 고추장이 들어가면 맛을 버리게 된다. 소금과 깨소금으로 살살 무쳐야 된다. 봄동 대궁무침도 스님한테는 만만한 요리다. 겨우내 눈밭에서 자란 대궁의 새순이 올라오면 손으로 뚝뚝 끊어 대궁이 무르도록 데쳐내는데 집간장, 고춧가루, 다진 청양고추, 깨소금, 청양초 효소, 블루베리 등을 넣어 매콤하게 무친다.
뽕잎나물은 어린 뽕잎을 가을에 채취해 삶아 말렸다가 묵나물로 무쳐낸 것이다. 말린 뽕잎을 무르게 푹 삶아서 집간장, 된장, 들기름 등으로 조물조물 무친 다음 팬에 덖듯이 볶는다. 한 김 식으면 깨소금으로 맛을낸다. 고추부각처럼 보였던 우엉튀김도 요리법은 아주 간단하다. 우엉은 찌지 않고 생것을 필러로 밀어 튀긴 다음 소금으로 간한다.
돌나물과 불미나리가 들어간 물김치의 경우도 풀을 쑤어 넣어야 한다. 돌나물과 불미나리는 깨끗이 다듬어 씻은 다음 우리밀을 되직하게 쑤어 식힌다. 오미자청·청양초청·소금간을 하여 국물을 만든 다음 돌나물, 불미나리에 붓는다.
스님이 하루장이 뭔지 질문을 한다.
다들 대답을 못하자 슬그머니 레시피를 알려준다.
“일단 메주를 표고담인물에 소금을 넣고 2일간 불린다. 불어난 메주에 묵은지 국물을 자박하게 부어 보름 정도 숙성시키면 아주 시큼한 하루장이 되지. 이건 된장국 등에는 사용하지 않고 그 자체로 양념장을 겸한 반찬이지. 하루장 맛을 보다가 일반 식당의 공장된장을 맛보면 천국에서 지옥으로 내려온 느낌이랄까?”
이곳은 맑은 바람과 계곡물이 최고의 반찬이다. 간식으로 내오는 풍경소리도 물론 압권.
천진암을 떠날 때 나는 얼마나 정체불명의 가공식품에 갇혀 있는 가를 절감할 수 있었다. 갑자기 사찰음식이 잘 갈아놓은‘조선낫’처럼 섬뜩하면서도 엄정해 보였다. 그런데 자꾸 한식의 연장에서 사찰요리를 논의한다. 덜어내고 빼는 게 사찰요리인데 그렇게 푸짐하고 맛있고 단백질 가득한 한식과 약선요리의 산해진미는 반사찰 음식적이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비슬 발우비빔밥’ ‘비슬 백년밥상’ / 달성군 사찰음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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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음식의 1번지’ 달성에서 고추장·참기름은 잠시 잊어도 좋습니다
정관 스님 도움 받아 레시피 개발
올해 개청 100주년을 맞은 달성군. 다들 달성공단만 운운한다. 아니다. ‘절의(節義)’의 고장이다. 일연 선사의 얼이 묻은 유가사와 비슬산 정상부에 조성된 대견사 등을 보듯 유교와 불교 문화가 잘 양립하고 있다.
특히 출중한 유학자가 다수 포진해 있다. 동방오현(東方五賢·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중 한 명인 한훤당(寒喧堂) 김굉필(金宏弼). 그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도동서원은 고종 2년(1865)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철폐되지 않은 전국 47개 주요 서원 중 하나. 2011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됐다.
신라 흥덕왕 2년(827)에 도성국사가 창건한 사찰인 현풍 유가사.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집필하기 위해 유가사 일원에서 35년간 머물렀다. 현풍면 지리 현풍곽씨 12정려각도 자랑거리.
한 문중에 12정려가 내려진 일은 매우 드물고도 자랑할 만하다. 하빈면 묘리 육신사(六臣祠)도 ‘지절(志節)’의 공간. 조선 세조 때 단종 복위운동을 하다 숨진 박팽년을 비롯해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유응부 등 ‘사육신(死六臣)’의 위패를 모셨다.
화원읍 남평문씨 세거지는 한말 전국 최고의 장서를 자랑하는 민간서고였다.
1900년 3월, 대한민국 최초의 서양 피아노가 들어온 곳은 화원유원지(화원동산) 옆 사문진 나루터이다. 영화 ‘빨간마후라’의 주인공 유치곤 장군도 유가 출신이다.
@비슬 발우비빔밥
집간장·집된장으로만 간 하고
마늘·파 등 오신채 사용 안해
주재료에 해초 첨가한 게 특징
화학조미료는 절대 사양. 사찰음식이니 고기도 사용하지 않고 마늘, 파, 부추, 달래, 흥거 등 자극적인 ‘오신채(五辛菜)’도 사용하지 않는다. 또한 실제 스님이 발우공양 때 사용하는 목기와 비슷한 발우그릇 혹은 유기를 사용하고 있다. 가급적 불가의 식기 스타일을 적용한다. 전국에선 드물게 해초와 채소를 한 그릇에 모셨다.
다시 말해 제주도의 대표적 잔치음식인 ‘몸국’의 주재료인 모자반(마재기)을 기존 비빔밥 주식재료에 섞었다. 고추장이 들어가면 기존 식재료 본연의 맛을 가리기 때문에 대신 집간장과 된장만으로 간을 했다. 각종 식재료(시래기, 콩잎, 모자반, 숙주나물, 미역과 다시마가루)를 프라이팬에서 집간장과 된장, 콩가루 등을 넣어 일차 볶은 뒤 그릇에 담아 향기도 그대로 보존한다.
달성군의 특산물이기도 한 시래기는 1시간 이상 불려 채 썰어 프라이팬에서 간장과 된장만으로 간해서 볶아낸다. 고명으로는 튀긴 미역과 김가루를 혼합해 밥 위에 뿌리는데, 미역과 김가루를 3대 7 비율로 섞는다. 나물을 볶을 때는 생콩가루와 들기름을 조금 사용한다.
@비슬 백년밥상
모둠쌈밥·두부구이·버섯 팔보채
현대인 입맛 고려한 퓨전스타일
참기름 대신 들기름으로 맛 살려
설탕·물엿 대신 각종 자연 淸 활용
어릴 적 먹었던 시골밥상 떠올라
덧칠을 거의 안 한 밥상이다.
최저의 양념으로 최고의 풍미를 만들고 있다. 조금은 퓨전스타일인 코스한정식 버전의 사찰음식이다.
최소의 제철 식재료, 짧은 요리시간, 그러면서도 식재료의 영양소·질감·향기를 극대화시켰다. 사찰음식의 주메뉴를 액면 그대로 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입맛을 가질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입맛도 고려했다. 한과 조리법도 응용해서 버섯강정과 우엉강정을 만들어내거나 탕수육 버전을 활용해 모둠버섯 팔보채를 만들었다.
초밥(스시)과 비슷한 모둠쌈밥, 산초를 이용한 두부구이도 이색적인 맛이다. 특히 물미역 옆에 연근과 마를 곁들여 ‘기존 사찰음식은 너무 평범하고 너무 싱겁고 너무 채식류 일변도’란 지적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도록 수차례 레시피 수정 작업을 거쳤다.
사실 기존 지자체의 각종 밥상은 너무 화려하고 푸짐하고 컬러풀하다.
그게 옥에 티였다. 그래서 어머니의 맘, 삼베보자기 같은 맛을 유지하려고 했다. 수행 중인 스님이 먹는 밥상을 간접 체험하도록 배려했다. 가능한한 식재료를 적게 넣으면서도 식재료 본연의 맛의 스펙트럼은 최대한 팽창시켰다.
집간장과 집된장, 그리고 참기름 대신에 음식 본연의 색깔을 더욱 돋워주는 들기름에 중점을 두었다. 단맛을 낼 때도 기존 설탕과 물엿을 멀리했다. 산과 들에서 채취한 자연 재료를 갖고 각종 청을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백년밥상 5대 청(오미자청, 복분자청, 청양초청, 매실청, 함초청)’이 태어난다.
연잎밥도 매우 단순해 오히려 깊이가 느껴진다. 기존 연잎밥은 메이크업이 과하다. 백년밥상의 식사용으로 나오는 연잎밥은 전국에서 순도가 가장 높은 현풍 유가찹쌀만 갖고 조리했다. 팥은 물론 견과류도 일절 넣지 않았다. 대신 된장에 들기름이 첨가된 ‘청양초 빡빡장’을 곁들여 먹도록 했다. 뭐랄까, 하절기 우엉잎에 강된장으로 쌈을 싸먹는 풍미다.
부족한 식물성 단백질을 보충하고 담백한 토장국의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모자반과 시래기, 그리고 콩가루와 무, 콩나물이 들어간 국을 낸다. 추억의 시골밥상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사찰음식 상에서 거의 보기 힘든 메뉴도 있다. 바로 팔공산 동화사 양진암에서 태어난 ‘도토리묵구이’. 보통 도토리묵은 묵사발, 묵채 용으로 즐겨 사용되는데 이때 주로 양념간장을 많이 사용하지만 여기선 양념간장 대신에 장아찌로 맛을 낸 게 인상적이다. 이 밖에 백년밥상에서만 볼 수 있는 인기 메뉴로는 버섯초회, 가지떡꼬치, 물미역 연근 마 삼합 등이 있다. 1인분 1만5천원과 2만원 두 종류가 있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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