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가 다녀간 맛집들
소문난 맛집들이 있다. 진짜 맛집들은 플래카드를 펄럭이고 TV에 방영된 장면이나 신문기사 스크랩을 걸어놓는 흔한 집들이 아니다. 요란을 떨지 않아도 맛 밝힘 이들이 귀신같이 찾아내는 집들이 있다. 오로지 맛으로 인생 승부를 건 ‘맛의 달인(達人)’이 있고 그를 추종하는 맛 손님들이 있어 세상천지 불황에도 끄떡없는 음식 명가(名家)들이다.
어떤 어떤 유명인사들이 오고, 지방 유지들과 정부의 고관들, 그리고 아무개 대통령이 다녀갔다는 것을 다 알고 있는, 어찌 보면 맛손님들은 끼리끼리 한 통속이다. 그러나 VIP들이 온다고 해서 고래등 같은 집에 화려한 치장으로 사람 주눅들게 만들고 흠잡을 데 없이 뺀질 뺀질한 매너 뒤에 바가지를 씌워 뱃속 메슥거리게 하는 집들이 아니다.
맛밝힘 이들은 깍두기에 설렁탕 한 그릇이라도 제대로 된 맛을 찾는다. 대개 해장국, 설렁탕, 곰탕, 매운탕, 추어탕을 하는 탕집과 국밥집, 된장찌개가 필수인 한정식집과 냉면, 복국을 하는 집들 중에 수더분한 멋이 그윽하게 깃들이고, 맛밝힘이들이 엄지를 치켜세우는 오래된 맛집들이 있다.
그런 집들에 한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박정희가 다녀간 집’이라는 것이다. 그가 다녀가고 그가 인정하는 맛집이라면 그만이라는 평가가 오랜 세월 도도히 이어지고 있음은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원조 욕쟁이 할머니 “어떤 시러배아들놈이…”
@먼저 곰탕집을 가보자.
경북 달성군의 박소선할매곰탕이 있다. 그 자리에서 50년이나 탕국물을 고아냈는데, 구마고속도로를 개통할 때 박정희 일행이 다녀가 유명해졌다.
서울시 종로구 수하동 골목의 하동관을 모르면 곰탕을 언급할 자격이 없다. 1939년 김용택이 개업한 곰탕 전문의 전통이 한옥 기와에 골골이 배어 있다. 박정희가 누구보다 좋아해서 연초 초도순시 때 제주도까지 경호실에서 공수해 갔다는 소문이 있다. 아침 7시에 문을 열어 그 날 준비한 음식을 다 내놓으면 보통 오후 서너시에 장사가 끝난다. 저녁 장사를 하지 않는데. 어느 때는 12시반에도 문을 닫아 맛손님들을 헛걸음시키는 집이다.
@다음, 해장국집.
6.25전쟁 때 육군본부가 내려와 있던 대구로 가보자. 당시 육군본부 정보국 정보과장 박정희 소령에게는 전란에 휩싸인 조국의 가슴 아픈 추억이 쌓여 있는 곳이다. 영남일보 주필로 있던 시인 구상(具常)과 막걸리로 우국(憂國)의 정을 나누며 의기투합했던 박정희가 자주 찾은 곳은 따로국밥집. 국일집에서 선지 따로국밥으로 속풀이를 했다.
해장국이라면 서울 종로 청진동 골목의 청진옥이 원조라고 술꾼들은 말한다. 지금 그 자리에서 최동선이 1937년에 개업해서 대를 이어오고 있다. 박정희가 나들이하려니 경호원 등 따라붙는 식구들이 많아서 자주 배달을 시켜 먹었다는 집이다.
@전주 콩나물 해장국도 빼놓을 수 없다. 콩나물 해장국이라면 욕쟁이 할머니로 유명한 삼백집이다.
믿거나 말거나 일화가 있다.
지방 시찰을 왔던 박정희가 전주에서 하룻밤 묵으며 술을 한잔 했다. 새벽에 속을 풀고 싶은데 마침 콩나물 국밥을 개발해서 팔고 있는 유명한 집이 있다고 하므로 그걸 먹어 보자고 했다. 그런데 소문에 그 집 할머니가 천하에 무서운 게 없는 욕쟁이라 하니, 대통령에게 욕사발을 퍼부을 것이 분명한지라 경호원들이 찾아가 배달을 부탁했다.
“할머니, 해장국 좀 배달해 주시면…….”
어쩌구 저쩌구하는데 그냥 날벼락이 떨어졌다.
“술 처먹었으면 와서 뜨끈뜨근한 걸 먹어야지, 어떤 시러배아들놈이 배달해 달란다냐! 와서 처먹든지 말든지 해!”
찍소리 못하고 돌아왔다.
“안된다는데요. 와서 잡수시든지 말든지…….”
박정희가 껄껄 웃으며 일어났다.
“내가 가지 뭐.”
허름한 콩나물 국밥집에 들어선 박정희가 인사를 건넸다.
“할머님, 재미가 어떠십니까?”
검은 안경을 쓴 박정희를 요리조리 살피는 할머니.
“이놈 봐라. 어쩌믄 박정희를 그리 닮았다냐. 누가 보면 영락없이 박정흰 줄 알겄다.”
욕 한사발을 퍼붓고는 해장국을 내왔다.
군말없이 맛있게 먹는 박정희. 입이 근질근질한 할머니가 다시 박정희 앞으로 왔다.
“잘도 처먹네. 옛다, 계란 하나 더 처먹어라. 박정희같이 생겨서 주는 거다.”
이런 일이 있었다고, 삼백집 할머니의 걸쭉한 입담에 관한 이야기가 전주에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다.
국밥이라면 이 땅의 서민들 체취가 물씬 나는 장터 국밥이 으뜸이다. 맛밝힘이들이 제일로 꼽는 집이 경남 의령의 종로식당이다. 60여년 전 장사를 시작한 이봉순 할머니의 내림 손맛을 며느리가 이어오고 있다. 박정희가 남해고속도로 공사 현장을 시찰하면서 두번이나 다녀가 ‘대통령 국밥집’이라고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다 좋아하는 집이다.
@다음, 매운탕집.
1962년 2월3일, 온국민의 관심 속에 박정희에게 가장 잊지못할 기념비적인 행사가 울산에서 있었다. 한국 근대화의 대역사인 제1차경제개발계획의 첫삽을 뜨는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이었다. 뜻깊은 날, 공식 일정을 마치고 그가 찾은 곳이 대구 금호강변의 민물 매운탕집 대구관이다.
대구관 주인 백씨 할머니는 최고 권력자가 왔는데도 술상을 닦아줄 생각도 않고 덤덤히 음식 준비에만 골몰했다. 안절부절못하는 사람들을 부담스러워하는 박정희에게는 그 할머니의 당당함이 무척 좋았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일행의 말단인 대구시장이 걸레를 갖다가 상을 닦았다. 박정희는 혁명 전후의 숨가빴던 일들을 회상하며 막걸리에 취하고 강바람에 취했다.
박정희가 다녀갔다고 입소문이 나서 경북도지사가 가보았더니 꾀죄죄하고 방석도 없이 군용 담요가 뒹구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라 상이나 닦아 달라고 할머니에게 말했다.
“대구시장도 여기서 상을 닦았소.”
할머니의 말이 걸작이다.
그런데 지금 대구관은 그 좋은 시절, 일화들도 강물 따라 다 흘려 보내고 주변 환경의 변화로 쇠락해 버려 애잔한 그림으로 남아 있다.
@박정희가 자주 찾은 추어탕집으로는 대구의 상주집이 있다.
2군 부사령관 시절부터 다녔는데, 최고회의 의장과 대통령이 되어서도 근처에 오면 꼭 들렀던 집이다.
@부산 해운대의 금수복국과 강릉의 부산처녀횟집도 그가 다녀가 유명해진 맛집들이다.
@다음은 냉면집.
서울에 몰려 있고, 다 알 만한 집들이다.
중구 주교동의 우래옥은 박정희 이후 대통령들과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즐겨 찾는 집이다. 1946년 장원일이 개업한 평양냉면집으로 술꾼들이 애호하는 김치말이 냉면도 유명하다.
구파발의 만포면옥에는 박정희가 녹두빈대떡을 먹으러 자주 들렀다.
충무로의 강서면옥에서는 청와대에 배달을 했다. 1948년 김진형이 개업을 해 3대째 내려오고 있는데, 주인 김씨가 감기 걸렸을 때 박정희가 약을 보내주었다고 해서 자랑이다. 뒤에 서소문으로 이전했다.
@음식 명가에 수원갈비집이 빠질 수 없다.
갈비라면 수원갈비이고, 또 수원갈비라면 화춘옥이다. 1940년대 수원 영동시장 싸전거리에 개업한 화춘옥이 수원갈비의 원조라고 맛밝힘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박정희가 경기도청을 순시하거나 농촌 모내기 행사를 하러 왔다가 이 집을 다녀간 후로 갈비가 수원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국물을 좋아하는 박정희가 이 집의 탕맛을 즐겼다는 입소문이 나서 서울의 맛손님들이 줄줄이 내려오면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한국인의 정식, 한정식집을 가본다.
서울에 부민옥과 장원이 있다.
중구 다동의 부민옥에서 박정희가 즐겨 먹은 것은 된장찌개, 설렁탕, 추어탕, 선지국 등. 나들이가 어려우면 배달을 시켰는데, 남대문경찰서 형사가 보는 데서 주인이 직접 요리를 하고 먼저 먹어본 다음 차에 실어 청와대로 날랐다나 뭐라나, 아무튼 그렇다.
1958년 주정순이 종로구 필운동에서 개업한 장원은 내로라하는 VIP들의 단골집으로 유명했다. 전통 한식을 자랑하는 집인데, 입이 짧은 박정희는 상다리 휘어지게 차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서너 가지 찬에다가 된장찌개 하나면 맛있게 먹었다고. 그가 쑥을 좋아하는 것을 아는지라 반드시 쑥을 넣어 끓인 쑥된장찌개를 내놓았다고 한다.
또, 그가 들러서 유명해진 집으로는 경기도에 토속집과 군포식당, 백제장이 있다.
경기 화성의 토속집은 그 자리에서 3대가 30여년을 이어오고 있다. 청국장 정식을 하는 집인데, 박정희가 이 집의 청국장 맛에 아주 감탄을 했다고 자랑이다.
그리고 안양이나 안산 등지를 시찰할 때는 꼭 군포역 앞에 있는 군포식당을 찾아서 된장찌개나 국물이 진하고 깔끔한 설렁탕을 먹었다고 한다.
경기 광주 남한산성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백제장은 조선 사대부들이 즐겨 먹던 산채 정식을 내놓고 있다. 30여년간 2대째 이어오고 있으며, 귀빈실에 박정희의 방문 사진을 걸어놓고 있다.
땅끝 마을 전남 해남으로 가면 천일식당이 있다. 창업자 박성순 할머니에서 맏며느리에게, 또 그의 둘째 며느리로 3대째 내림 손맛을 자랑하는 호남의 토속 맛집이다.
이 집의 방명록을 들추면 한국 현대사가 그대로 펼쳐질 정도로 대통령 이하 고관, 각계각층의 유명인들이 빼곡하다. 박정희가 좋아했던 것은 값비싼 홍어나 갈비, 낙지가 아니라 대갱이라는 개펄속에 사는 못 생긴 고기로 만든 대갱이포였다고 한다. 대통령이 땅끝 마을의 이 집을 네번이나 다녀갔다고 해서 긍지가 대단하고, 지금은 숯불에 굽는 떡갈비로 더 유명해진 집이다.
◇‘박정희 마케팅’은 현재진행형
이상으로, 박정희가 다녀간 소문난 맛집들을 순례해 보았다.
그가 다녀간 맛집들을 두루 살피면 남다른 특징을 알게 된다.
첫째, 오래 된 음식 명가라는 점이다.
박정희의 18년을 장기 집권이라 하는데 맛집들은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맛세계의 ‘장기 집권’을 하고 있는 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기업의 평균 수명도 30년을 넘어서기 어려운 게 보통인데, 그보다 더 오랜 세월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한 우물을 파서 ‘장기 집권’에 성공한 음식점이면 뭐가 달라도 크게 다른 게 사실.
둘째, ‘맛의 혁명’에 성공한 창업주로부터의 내림 손맛이 있다.
대를 이은 ‘맛의 달인’들은 남과의 비교를 거부하는 독불장군들로서 “나 아니면 안된다”는 오만과 독선이 대단하다.
셋째, ‘맛의 달인’은 곧 맛의 독재자라고 할 수 있다.
손님들의 의사를 묻지 않는다. 음식을 손님의 천차만별 구미에 맞추지 않고, ‘맛의 달인’이 제공하는 한가지 맛으로 획일화시켜 버린다. 그 맛에 대한 맛손님들의 신뢰는 절대적이고 거의 신앙에 가깝다. 그래서 선교 활동을 벌이듯 입소문을 낸다. 맛집의 세일즈맨을 마다하지 않는다.
넷째,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마치 성지 순례자들과 같다.
멀리서 찾아오고,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고통도 달게 받으며, 성전에 헌금을 하듯 음식값을 묻지 않고 지불한 준비가 되어 있다. 차례가 오면 시키는 대로 앉아서 주는 대로 먹는다. “주인 오라고 그래!” 따위 큰소리를 치고 음식 타박을 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모두 고분고분하다.
다섯째, ‘맛의 달인’들이 창업주로부터 며느리가, 또 그 며느리가 대를 이어 ‘독재’를 하듯, 맛손님들도 아버지로부터 그 아들, 손자로 대를 이어 ‘충성’을 한다. 맛손님들이 “우리는 아버지 때부터 이 집의 단골이었다”라고 보통 말들을 하는데, 오래 된 집에 오래 된 단골들이다.
이와 같은 공통점을 보면 오래 된 음식 명가들의 키워드를 ‘박정희’라고 할 만하다. 박정희 패러다임의 장사로 성공한 집들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오랜 세월을 한가지 목표를 향해 좌고우면하지 않고 전력을 다하는 모습, 포기하지 않고 한길을 달려 ‘맛의 혁명’에 성공하고 ‘장기 집권’하는 모습이 그러하다.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유명인사들의 단골집들에서 발견되는 한가지 특징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자주 다니던 음식점 중에서는 문을 닫는 집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음식의 종류를 보면 한정식집 몇 개를 제외하면 주로 탕집과 민속, 토속 음식집들인데 이들 음식점들이 모두 오랜 세월 명성을 유지하며 사업을 잘하고 있으니 박대통령의 고유한 한국 음식을 찾는 안목을 높이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한 맛칼럼니스트의 말이다.
이런 맛집들은 불황에 더욱 돋보이게 마련이다.
밥때가 되어도 먹자골목이 썰렁할 정도로 불황의 골이 깊고, 주인들이 멍하니 텔레비전이나 올려다보며 한숨을 짓거나, 견디다 못해 폐업하는 집들이 속촐하는데, “경기는 죽어도 입은 살아 있다”고 사시사철 맛손님들로 붐비는 맛집들은 정말 희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맛집들의 명성은 TV나 신문 광고 따위로 얻어진 게 아니다. 순전히 입소문에 의한 것이다. 음식 입소문에 헛소문은 없다. 오랜 세월 뭇사람이 인정하는 맛에는 거짓이 끼어들 틈새가 없는 것이다.
‘박정희가 다녀간 집’이라는 ‘박정희 마케팅’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러고 보면 박정희 대통령을 줄인 말 ‘박통’은 돈을 벌어주는, 재물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흥부의 박통일 법도 하다.
“시르렁 실근 톱질이야. 에이 여루 당겨 주소. 이 박통에 나오는 보화는 김제 만경(萬頃) 오야미들을 억십만 금을 주고 사고, 충청도 소사(素砂)들은 수만 금을 주고 사니, 부익부(富益富)가 되리로구나. 시르렁 실근 당기어라.”
박통 앞에서 흥부 내외가 풀어내는 복에 겨운 사설이 음식 명가의 흥겨움에 어울릴 듯도 싶다.
<김인만 작가>
출전 : 필자의 졸저 <임자, 막걸리 한잔 하세>
이 글은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좋아하는 모임(http://www.516.or.kr/)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F&B Service > @Korean & d'hote'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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