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과 여유 품은 우리 음식, 한정식
최근 웰빙문화의 확산과 슬로우 푸드(slow food) 운동으로 우리 전통음식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다.
건강한 음식, 여유와 느림의 음식문화로서 우리 전통음식의 가치가 서서히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전통음식의 대표메뉴라면 아무래도 한정식이 손꼽힌다. 한정식은 맛과 정성, 품격을 모두 갖췄다는 점에서 귀한 손님과의 소중한 식사로 으레 찾게 되는 음식. 이로 인해 한정식집은 남도식, 개성식, 궁중요리 등 다소 차이는 있으나 고급음식점으로서 국내 외식업계의 한 축을 형성해 왔다.
한정식이 음식점 메뉴로 등장하게 된 배경과 남도 한정식을 중심으로 대중화되어 오늘날 다양화되고 또 건강식으로 부각되기까지의 자취를 되짚어 본다.
◇한정식의 유래 요정, 궁중음식으로 거슬러 오르다
한정식이라 함은 밥과 탕, 김치를 기본으로 여러 가지 요리를 푸짐하게 올린 상차림을 말한다. 주로 양반가에서 먹던 음식을 재현한다는 취지에서 계승되어 지역마다 특성을 간직하며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렇다면 ‘한정식(韓定食)’이라는 말은 언제 생겨난 것일까? 원래 서양의 코스 요리에 대응해 정부에서 행정적 편의를 위해 만들어 낸 말로 1970년대 등장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정식의 발달은 1958년 서울 청진동에서 요정으로 시작해 1964년 한정식집으로 바뀐 ‘장원’의 영향이 크다. 장원은 광주에서 요정을 운영하며 미모와 화술, 음식솜씨로 이름을 날리던 주정순이 서울에 진출하여 문을 연 곳으로 갖은 양념을 넣어 맵고 짠 전라도식의 음식으로 유명했다. 이후 장원을 거쳐 나온 마담들이 요정이나 한정식집을 차리면서 전라도식의 한정식이 널리 퍼지게 된다.
한정식은 결국 일제시대부터 시작돼 제3공화국 정치인들의 밀실정치의 산실로 발달해 온 고급요릿집인 요정의 음식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우리나라의 요정은 조선시대 궁중의 요리사인 숙수들에 의해 1908년 문을 연 ‘명월관’으로부터 그 시작을 찾을 수 있다. 이것으로 볼 때 상품화 된 한정식의 유래는 요정에서 궁중음식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70년대 전라도식 한정식이 음식점의 주류로 자리를 잡으면서 접대방식에도 변화가 일게 된다. 한 상 푸짐하게 음식이 올려지던 한정식에 중국음식점이나 서양음식점처럼 순서에 따라 음식이 내어지는 방법이 도입된 것.
이는 1970년대 문교부장관을 지낸 민관식의 부인이 현대식 분위기의 한정식집을 열고 코스에 따라 한 가지씩 음식을 접대하면서 시작되었다. 이곳에서는 서양식 복장을 한 젊은 웨이터나 웨이트리스가 전채요리와 본 요리들을 순서에 따라 상에 올리고, 본 요리를 다 먹으면 밥과 된장찌개를 내오고 마지막에 후식까지 마련했다. 이는 오늘날 많은 한정식 식당에서 볼 수 있는 접대 방식이다.<서울 20세기 생활·문화변천사(서울시정개발연구원 저,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발간, 2001. 발췌)>
이후 요정이나 고급 한정식집은 1980년대 들어 사양길에 접어든다. 유명 마담을 중심으로 운영되던 요정의 마담이 늙어 소위 ‘퇴물’이 되고 사회적인 분위기도 바뀌었으며, 강남권의 개발로 유흥문화의 중심이 이동을 하게 된 때문이다.
한정식 식당은 메뉴의 다양화, 고급화를 도모하며 남도 한정식, 개성 한정식, 궁중음식, 퓨전 한정식으로 발전되어 왔다.
●남도 한정식
전라도식으로 서해의 풍부한 해산물과 기름진 평야의 오곡, 각종 산나물을 재료로 한 30여 가지의 반찬이 한 상 가득 올려진다. 탕과 찌개, 전, 적, 갖은 나물무침, 젓갈들이 색깔별, 계절별로 푸짐하게 올려지는데 반찬은 맵고 짜지만 씹을수록 단맛이 난다.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고 갖은 양념으로 맛을 내는 특징이 있으며, 손맛과 장맛이 기본이 된다. 석화젓, 토하젓, 홍어찜, 대합구이, 들깨즙탕 등이 짙은 향토내음을 풍기는 대표적 찬.
@‘송죽헌’, ‘큰기와집’, ‘대장금’, ‘강강술래’ 등이 전라도식 한정식으로 유명하다.
●개성 한정식
옛 고려왕조의 수도로 궁중문화와 개성 상인의 상문화가 어우러져 고급 음식문화가 발달한 개성에서 전해 내려온 상차림. 재료의 순수한 맛을 살려 담백하고 손이 많이 가 호화스럽기까지 하다. 개개인의 독상을 차리는 것도 특이하다. 보쌈김치, 조랑떡국, 편수 등이 잘 알려진 개성음식으로
@‘용수산’, ‘개성하우스’, ‘우촌’, ‘풍년명절’ 등이 그 맛을 지켜가고 있다.
●퓨전 한정식
90년대말 서울 청담동을 중심으로 퓨전 바람이 불면서 한정식 식당에도 변화를 몰고 왔다. 동서양의 이질적인 음식요소를 뒤섞어 새로운 음식 맛을 창조하는 퓨전 한정식에 접목돼 많은 한식집이 ‘퓨전’을 간판에 내세우며 양식과 중식, 일식을 혼합한 독특한 요리를 한정식 요리로 상 위에 올리기 시작했다. 서양식 드레싱을 이용한 샐러드풍의 야채요리, 치즈를 이용한 요리, 서양 및 중화풍 소스를 접목시킨 고기 및 생선요리 등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코스에 모듬회나 초밥, 이태리 또는 프랑식 고기요리 등 이국요리가 끼어들기도 한다. 이러한 퓨전의 유행은 메뉴 개발의 다양성과 창조성을 이끌고 실현시켜 현재 일반 한정식 식당에 폭넓게 적용되고 있다. 또한 퓨전문화는 음식점의 형식파괴에도 일조해 서양식 테이블에서 편안히 한식을 즐기는 한식당의 레스토랑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최근 ‘드 꼬레’, ‘천천’ 등이 퓨전 한정식을 내는 대표적 업소다.
●궁중 한정식
이와 함께 지난 2004년초 방영된 ‘대장금’이라는 TV드라마는 궁중음식에 대한 관심과 인기를 한꺼번에 몰고 왔다. 한정식 식당은 앞다퉈 궁중음식을 상에 올렸으며, 궁중음식 전문점 또한 현저히 그 수가 증가했다. 궁중음식은 적은 양의 천연양념으로 간을 해 다소 싱겁고 밋밋한 건강식으로 구절판, 신선로 등이 대표적인 궁중음식이다.
@유명업소로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황혜성 교수와 그 전수자들이 맛을 내는 ‘지화자’가 궁중음식점의 발원지라 할 수 있으며, 그 외 ‘필경재’, ‘석파랑’ 등이 궁중음식의 맛을 이어가고 있다.
●사찰음식과 약선요리
이 밖에 건강 중시 경향을 타고 ‘산촌’ 등의 사찰음식, ‘채근담’ 등의 채식요리, ‘고메홈’ 등의 약선요리 등도 많은 화제를 모아 동종의 업소들이 늘어가는 추세다.
◇오늘날의 한정식 건강식, 실속형 상차림으로 간다
한편 새로운 맛과 건강을 추구하며 사회, 문화 변화와 함께 조금씩 변모해 온 한정식은 접대방식과 상차림 구성에 있어서도 트렌드를 만들어 내고 있다.
한 상 가득 차려내는 상차림이 점차 코스요리로 바뀌어 가는 가운데 최근에는 원하는 음식을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는 편의성도 가미되어 가고 있다. ‘한쿡’과 같이 손님들이 음식을 골라먹을 수 있는 셀프서비스 형태의 한정식 바가 등장하는가 하면, ‘우리들의 이야기’, ‘가온’ 등은 고급 식재를 사용해 반찬 한 가지 한 가지를 요리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와 함께 서울 외곽지역에는 실속있는 소비 패턴에 발맞춰 1만원 전후의 세미한정식을 제공하는 ‘좋구먼’ 등의 중저가 한정식 식당이 생겨나 중상류층 여성고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제 우리 전통음식문화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커지면서 우리 음식의 세계화, 표준화에 대한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다양화 되고 고급화 된 건강요리로서의 한정식, 그리고 한정식집이 아닌 한식레스토랑의 확산이 바로 우리 대표음식 한정식의 내일의 모습일 것이다.
글|한혜정 자유기고가 helja@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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