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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서서갈비 / 타치구이(立ち食い)

Paul Ahn 2019. 9. 23. 09:18

★연남서서갈비 / 타치구이(立ち食い)

 

1953년 '도라무깡' 세 개짜리 대포집으로 출발해 1일 매출 1,000만원의 전설이 되다


니들이 서서 먹는 갈비 맛을 알아?

http://www.nocutnews.co.kr/news/4039604 

 

 

 

새벽 4시에 일어나 연탄을 갈고,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사장

먹고 사는 것 이외에 큰 욕심이 없어 재료가 떨어지면 가게 문을 닫는다

 

70년대 신촌의 풍경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대학이 많아 학생들이 버글대는 학사 촌이면서도 거렁뱅이와 넝마가 공존하던 신촌은 소설 속에나 나옴직한 동네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우마차가 아스팔트 위를 달리며 연탄을 나르고 막걸리에 취한 대학생들의 노래 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낭만의 동네 신촌.

 

악다구니를 쓰는 시장 아낙네들의 생명력이 활기를 부르던 신촌 상가, 비만 오면 바지를 걷고 건너야 했던 굴다리 밑,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언니들이 유리창 안에서 손짓을 해대던 연탄 공장 옆 홍등가,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거들먹거리던, 반짝이 옷을 입은 스탠드바의 웨이터 형…

 

기억의 끝자락을 장식하고 있는 신촌은 내겐 너무나도 정겨운 곳이다.

맛있는 집들도 참 많았다. 당시로서는 초대형 건물처럼 느껴지던 신촌 상가의 구식 돈까스 집 '숲속의 빈터', 밀려드는 손님들로 불을 피우느라 도로를 점령했던 형제갈비, 기름을 줄줄 흘리며 하루 종일 닭들을 돌려대던 전기구이 통닭집 풍년센터 그리고 불난 호떡집마냥 소란스러웠던 서서갈비…

 

이 중에서도 서서갈비에 대한 기억은 유별나다. 각별히 서서갈비를 사랑하시던 아버님 덕에 한 달에도 서너 번은 화생방 훈련을 방불케 하는 전쟁을 치러야했던 골치 아픈 집이었다. 친구 분들과 소주 드시는 것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 쥐어 주시던 50원짜리 동전 때문에 눈물 콧물 다 빼가며 꾹 참아야 했던 식당, 아니 술집이 바로 서서갈비다.

 

 

 

연탄 냄새와 고기 굽는 냄새가 어찌나 심하던지 고기 한 점 입에 넣어주면 내빼듯 도망쳐 나와 가게 앞에 진을 치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곤 했다. 지금이야 그 맛에 반해 한 대 더 안 주나 곁눈질을 하지만 당시에는 갱지로 감싸서 쥐어주시던 갈비 조각은 대단한 고역이었다.

 

손이 작아 잡기도 불편 했거니와 먹는데도 힘이 들었다. 아무리 이를 악물고 물어 뜯어도 벗겨지지 않는 갈비가 귀찮게만 느껴져 양념만 쪽쪽 빨고 나서는 딴청을 피우며 슬그머니 바닥에 버리곤 했다.

 

 

◇자의반 타의반 서서갈비를 드나든 지 벌써 40년이 넘었다.

 

그 때와 지금을 비교 해보면 바뀐 것이라곤 딱 두 가지 뿐이다. 도로를 넓히느라 가게를 골목 안으로 이전했고 갈비를 싸서 먹던 갱지가 냅킨으로 바뀌었다. 드럼통이며 쇠 불판, 양념장 모두가 그대로인 채 30년 전의 어느 날에서 시계가 멈춘 듯 하다. 지금도 정식 상호인 '연남식당' 대신 그냥 서서갈비로 불리는 이유도 다 그 시절 단골들이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서서갈비에서는 '몇 인분'이 아니라 '몇 대'를 기준으로 주문을 하게 되어있다. 이것도 옛날 방식 그대로다. 사람 수보다 두 배로 주문을 하면 갈비만으로 든든히 배를 채울 수 있다.

 

스테인리스 대접에 담겨 나오는 이 집의 갈비는 간장 양념인데도 유난히 색이 붉다. 손님 테이블에 올리기 정확히 4시간 전에 작업을 시작하는 덕분이다.

 

새까만 무쇠 철판에 두툼한 갈비를 올리고 막아 놓은 드럼통의 불구멍을 열면 연탄이 벌겋게 불꽃을 내뿜으며 철판을 달군다. 이와 동시에 날카롭게 치고 올라오는 연탄가스가 코 속 깊숙이 찌르고 들어와 머리를 띵하게 만든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드럼통 가까이에 서 있기가 곤란할 정도다.

 

찬이라고는 종지에 담긴 양념장과 풋고추, 마늘 그리고 고추장이 전부다. 소박하다 못해 야박하게 느껴진다. 습관처럼 양념장 종지를 들어 한 모금 마신다. 차갑고 달달한 맛이 다시 한 번 유년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최근 유행하는 고급스러운 소스들에 비해 유치한 느낌마저 들지만 이 맛에 한번 빠지면 절대 헤어 나올 수가 없다.

 

고기가 익기 시작하면 커다란 가위를 가지고 와 듬성듬성 잘라준다. 자제를 못하고 핏기만 가시면 얼른 집어먹는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가도 신경 쓸 겨를이 없을 정도로 난 불판 위의 고기에 집중한다. 단맛은 또 단맛을 부르는 법이다. 처음 혀에 닿았을 때는 달게 느껴지지만 한 판이 비워질 즈음에는 자극이 무뎌진다.

 

익은 고기를 양념장에 빠뜨려 끓여 먹기도 하고 아예 불판 위의 고기에 그 강렬한 양념을 들이붓기도 한다. 그것도 모자라면 뜨거운 드럼통 열기로 인해 데워진 소스를 국처럼 들고 마시게 되는데 이 쯤 되면 필요해지는 것이 바로 고추장이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고추장과 갈비가 안 어울릴 것 같지만 무뎌진 혀를 자극하는데 고추장만큼 신통한 것이 없다. 달달하게 구워진 불향 그윽한 갈비를 고추장에 찍어먹는 맛이라니!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잘라 놓은 살들이 거의 다 없어지면 자연스레 불판 한 구석에 몰아놓았던 갈비대로 시선이 옮겨간다. 연남식당의 갈비를 뜯는 데는 상당한 노하우가 필요하다.

 

일단 냅킨을 두어 장 겹치고 살에 직접 닿지 않도록 갈비의 이쪽 끝과 저쪽 끝을 조심스레 쥔다. 살점이 도톰하게 붙어있는 가장자리를 제대로 물어야 한 번에 접착살(뼈와 갈비를 연결하는 질깃한 막)까지 뜯어낼 수 있다.

 

서서갈비에는 식사메뉴가 없기 때문에 마무리를 밥이나 면으로 싶은 분들에게는 적당하지 않다. 굳이 갈비와 함께 밥이 드시고 싶다면 바로 옆 구멍가게에서 미리 즉석밥을 준비해 들어가야 양(=위)을 채울 수 있다.

 

자칭 식도락가라 명함을 내미는 상당수의 식객들은 서서갈비에서 1차를 하고, 1km쯤 떨어진 을밀대에서 냉면으로 2차를 마무리한다.

 

아무래도 서서 먹다보니 고기를 먹는 속도뿐만 아니라 소주잔을 비우는 속도도 빨라진다. 게다가 기다리는 손님들의 눈치가 보여서 오래 버티기 어렵다. 고기가 떨어지면 문을 닫아버리는 원칙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처음 먹어 본 서서갈비의 맛을 세 아들 녀석에게 선보였듯이 이 녀석들이 또 그렇게 아이들을 데리고 와 이 집의 갈비 맛을 가르쳤으면 좋겠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신촌에 대한 기억을 쏟아놓으면서…

 

2014-06-11

김유진 김유진제작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