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시마(直島) 이야기
http://news.donga.com/3/all/20160629/78925053/1
나오시마(直島)는 일본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에 위치한 자그마한 섬이다.
철(鐵)과 구리제련소 등이 들어서 있었던 이유로 오래전부터 공해의 대명사와도 같았다. 면적이 불과 16㎢밖에 안 되는 이 섬을 '자연과 인간과 예술이 함께 숨쉬는 문화의 섬으로 가꾸자'는 발상을 했던 사람은 베네세 출판그룹의 후쿠다케 소이치로(福武總一郞) 사장이었다. 그는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 씨에게 종합계획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고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나오시마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였다.
나오시마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10여 년이 지나자 우리나라에서도 그곳을 다녀온 사람들에 의해 소문이 번지고 미디어를 통해서도 서서히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일본인 친지들에게 물어보면 별로 관심도 없고 아예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일본인들도 제대로 모르는 그곳을 유독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이유가 궁금하여 나오시마를 찾아가게 되었다.
나오시마 프로젝트는 베네세 미술관과 야외 조각공원, 그리고 지중(地中) 미술관을 중심으로 민가(民家) 개조 작업(아트하우스)과 미술관, 호텔 등이 부수적으로 추진되고 있었다. 백남준 씨의 작품도 전시된 베네세 미술관과 칼더 같은 거장들의 작품을 모아놓은 조각공원도 일품이었지만 압권은 역시 지중미술관이었다.
건축가 안도 씨는 섬의 자연풍광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채광으로 클로드 모네(1840~1926)의 수련(水蓮)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게 3층 규모의 미술관을 지하로 처리했다. 태양 광선의 미묘한 변화를 화폭에 담기 위해 일생을 바쳤던 모네의 작품들을 미술관의 인공 조명이 아니라 자연 채광을 통해서 감상한 최초의 경험이었다. 대형 화폭의 수련 작품이 시간대와 날씨에 따라서 색다르게 투영되는 지중미술관이야말로 모네의 작가 정신을 존중하고 있는 미술관이란 느낌이 들었다.
나오시마에 가보면 섬 안에서는 물론 바다에서 바라보아도 이토록 거대한 3층짜리 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다. 지중미술관은 자연경관을 사랑하고 존중했던 1세기 전의 화가 모네와 건축가 안도 씨와의 시대를 초월하는 예술가적 교감의 성지(聖地)로 느껴졌다.
나오시마 얘기를 먼저 하긴 하는데, 인구 3100여명의 작은 섬에 1992년부터 문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지금은 일본과 세계에서 매년 50만 명가량의 관광객이 찾을 정도로 ‘현대 예술의 성지’가 됐다는, 그렇고 그런 얘기는 넘어가고 싶다. ‘나오시마 전설’을 상찬하는 기사는 넘쳐나니까.
다만 이번 여행에서 느낀 점, 두 가지를 공유하고 싶다.
일본의 시코쿠 지방은 세토나이카이를 사이에 두고, 혼슈의 품 안에 들어 있는 듯한 모습이다. ‘현대 예술의 성지’라는 가가와 현 나오시마를 방문했다가 400여년 전 나오시마의 앞바다를 지나간 조선통신사 일행의 숨결과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하나는, 나오시마 프로젝트의 총지휘자인 후쿠다케 소이치로(福武總一郞) 베네세홀딩스회장 겸 후쿠다케재단이사장을 다시 보게 됐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나오시마’하면 곧바로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와 땡땡이 호박의 설치미술가 쿠사마 야요이(草間彌生), 한국화가 이우환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나오시마, 세토우치 아트의 낙원’이라는 책을 사서 후쿠다케 회장이 쓴 서문을 읽으며 여러 번 ‘역시!’라고 생각했다.
‘역시!’라고 하는 것은 궁금했던 나오시마의 성공비결을 어렴풋이 깨닫게 됐고, 후쿠다케 회장의 역할이 생각보다 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뜻이다. 프로젝트에 참가한 작가들의 공을 깎아 그에게 얹어주자는 것이 아니다. 후쿠다케 회장이 나오시마와 오래 전부터 인연이 있었고, 문화에 대한 철학이 있었고, 인적 네트워크가 있었고, 더욱이 재력이 있었기에 나오시마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그럼, 이런 조건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을씨년스럽게 변해가던 나오시마를 ‘문화 예술의 성지’로 바꿀 수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다. 꿈과 의지다.
그는 나오시마 바로 건너편의 오카야마(岡山)현에서 창업한 후쿠다케서점의 도련님으로서 갑자기 별세한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았고, 사업영역을 확대해 상당한 부를 축적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그러나 스포트라이트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아닌 듯하다. 그를 알고 있는 어느 한국인에 따르면 그는 노인요양시설을 많이 건설해 큰 돈을 벌었고, 미술품 경매에 참가하기 위해 가끔 한국을 찾는다고 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최고의 건축가에게 의뢰해 외딴 섬에, 그것도 땅속에 미술관을 짓고 거장의 작품들을 전시하겠다는 발상(地中미술관), 별로 손님이 올 것 같지도 않은 곳에 미술관과 숙박시설이 함께 들어있는 건물을 짓겠다는 발상(베네세하우스), 평범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을 현대미술의 최첨단 작업실로 바꿔보겠다는 발상(이에(家)프로젝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꿈과 의지와 자본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는 꿈을 꿨고, 꿈에 의지를 실었고, 의지에 돈을 투자했다. 후쿠다케 회장은 ‘후쿠다케서점 그룹’이라는 회사이름까지 ‘베네세 그룹’으로 바꿨다. 라틴어로 ‘베네’는 ‘좋다’, ‘에세’는 ‘산다’는 뜻. 결국 ‘잘 산다’는 뜻인데, 이는 세속적 의미에서 ‘잘 산다’는 뜻이 아니라 ‘경제는 문화의 머슴’이라는 그의 철학을 실천하겠다는 소신의 표현일 듯 하다.
설치미술가 구사마 야요이의 호박. 나오시마에는 ‘붉은 호박’과 ‘노란 호박’ 두 개가 있다. 사진 속의 ‘노란 호박’은 섬의 남쪽에서 늘 태평양을 바라보며 좌선 중이고, ‘붉은 호박’은 섬의 관문인 미야노우라 항 페리선착장 옆에서 손님을 맞고 보낸다. 두 놈 모두 인기가 높다.
덧붙이자면, 이우환미술관에 관한 얘기다. 이우환미술관은 지중미술관과 베네세하우스의 중간에 있다. 후쿠다케 회장은 이 씨에게 제공한 미술관 자리에 대해 “소위 ‘최후의 장소’로서 지금껏 소중히 간직해 왔던 에어리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이우환 미술관 자리가 명당이라는 것보다 그가 이우환이라는 작가를 평가한 대목에 눈길이 간다.
이 씨는 일본 미술계에서 시작된 ‘모노하(物派)’라는 새로운 웨이브의 이론적 토대를 닦은 작가로 평가받는다. 일본에서 ‘모노(物)’는 물건을 뜻한다. 나에게 모노하를 이해할 만한 지식은 없다. 다만 그의 언론 인터뷰 중 그래도 내 수준에 맞는 대목은 이것이다. “너무 많은 것이 만들어져서 포화 상태에 있는 지구를 바라보며, ‘만드는 것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날 것을 촉구한다.
그래서 물건을 덜 가공하거나 덜 만들고, 이를 시간이나 공간과 관련시키며, 이런 방식으로 예술을 다시 생각해보자며 출발한 것이 ‘모노하’다.” 인간 중심의 오만함을 버리고, 물건 그 자체의 존재가치에도 눈을 돌리라는 뜻이 아닐까.
그런데 후쿠다케 회장은 이 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모노하’의 작가로 불리고 있으나 나는 그의 작품에서 물질문명에 대치하는, 선(禪)에 가까운 무엇인가를 느끼고 있었다. 나오시마 프로젝트가 지향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티스트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지중미술관이 서양적인 ‘성지’라고 한다면, (이우환미술관은) 그것에 대응하는 동양적인 존재로 만들려는 구상이다.” 이 씨의 작품을 ‘모노’가 아니라 동양의 선(禪)과 연결한 것은 심플하면서도 내공이 있는 코멘트가 아닌가.
나오시마라는 이름의 유래도 재미있다. 1156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조정의 권력다툼에서 패한 스도쿠상황(崇德上皇)이 사누키(讚岐·지금의 가가와현. 사누키 우동 이름은 여기서 유래한다)로 유배를 오다가 이 섬에 들렸는데, 백성들이 너무 순진하고 착해서 ‘곧을 직(直)’자를 붙여 ‘곧은 섬’(直島·나오시마)으로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자는 지금은 直자를 달리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곧을 직자가 들어간 타동사에는 ‘直す(나오스)’가 있고, 자동사에는 ‘直る(나오루)’가 있다. ‘나오스’는 고치다, 치료하다는 뜻이고, ‘나오루’는 낫다, 복구되다의 뜻이다. 요즘의 나오시마의 상황과 딱 들어맞지 않는가. 문화예술은 제련소와 공해로 병들어가던 섬을 열심히 치유하고 있고, 주민들도 이에 호응해 섬은 점점 건강을 회복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직도(直島)는 이제 순박한 섬이 아니라 치료해서 낫고 있는 섬이라고 해도 될 듯하다.
니오시마는 ‘욕심이 많은’ 섬이기도 하다. 섬을 떠나는 배 안에서 본 포스터 때문이다. ‘나오시마의 조용한 밤’이라는 시가 있었다.
“밤이 내려온다/사위가 온통 조용해진다/눈을 감고 귀를 연다//저 멀리서 나지막이 들려오는 뱃소리/산에 부딪혀 돌아오는 큰북소리/즐거운 듯 노래하는 벌레소리/고개 들면 아름다운 별하늘/수면에 흔들리는 섬, 섬/밀물 썰물의 향기와 풀꽃의 냄새//그 때, 처음으로 가슴이 뛴다//조용한 밤에만/나오시마가 ‘맨얼굴’을/보여준다.”
그럼, 우리가 낮에 본 것은 화장한 얼굴이었나, 낮에도 감동한 것은 또 뭐였지. 그게 무슨 대수랴. 이 포스터는 나오시마의 강한 자신감의 표현일 뿐이다. 낮에도 밤에도 나오시마는 매력적이라는….
그 자신감의 언저리에서 꼭 언급해 두고 싶은 것이 있다.
나오시마는 분명 후쿠다케 같은 감독의 카리스마와 안도 다다오, 쿠사마 야요이, 이우환 같은 명배우들의 재능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어느 누구도 스스로 유명해진 사람은 없다’는 점을 환기시키고 싶다. ‘유명해진다’는 말은 누군가가 누군가를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오시마의 경우, 이 섬을 유명하게 만들어준 누군가는 바로 관광객들이다. 후쿠다케 회장은 말했다. “나는 그림이 주역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주역은 인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오시마는 이제 너무 유명해진 나머지, 혹시 나오시마 자체가 그림이 되고 주역이 되고, 관광객은 관객이 되고 조연이 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은 지하1층, 지상 2층 규모의 미술관과 리조트 호텔을 일체화 한 복합형 건물이다. 실내외에 팝아트, 미니멀아트, 정크아트, 개념미술 등 1980년대 이후의 현대미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현대 미술관이다. 이곳의 작품들은 다른 미술관의 작품들과는 달리 작가들이 현장에 직접 방문해 나오시마의 자연 환경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것이 특징이다.
■지중미술관(地中美術館)
지중 미술관은 나오시마 남쪽의 아름다운 섬에 안도 다다오에 의해 설계되었다. 지중미술관은 자연과 인간이 함께하는 미술관이라는 콘셉트로 가장 큰 모토는 자연과 함께한다는 것이다. 그에 걸맞게 땅속에 건물을 지어 자연과 하나가 되는 일체감을 부여했다. 인상파의 거장 모네의 작품 세계에서도 몇 점 밖에 존재하지 않는 작품 '수련' 이 전시되고 있다. 건축물만으로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평가받는 곳으로 나오시마의 필수 코스이다.
■이우환 미술관
이우환 미술관은 나오시마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미술관으로 건물은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다. 미술관 내부에는 한국인 최초로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할 정도의 세계적인 작가 이우환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의 작품에서 미니멀리즘에 독특한 철학을 가진 그의 예술 세계를 엿볼 수 있다.
2016-06-29
심규선 대기자
'Life Service > @Galle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정박물관(postmuseum) / 천안 (0) | 2018.05.23 |
---|---|
★삼성어린이박물관 / 2013년 폐관 (0) | 2018.05.23 |
⊙일본의 예술 섬 (0) | 2018.05.21 |
⊙제주의 이색박물관 (0) | 2008.05.30 |
⊙강원.충청.호남.영남 박물관 (0) | 2008.0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