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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노력의 복리법칙…땀 한 방울의 차이가 연봉 2배로”

Paul Ahn 2020. 3. 16. 09:58

〔자존감〕“노력의 복리법칙…땀 한 방울의 차이가 연봉 2배로”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24/2017012400979.html?pmletter

 

기가 막히게 점수를 맞추는 해설위원이 있다.

2002년엔 국가대표로 활약하고 지금은 해설위원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모범생이 별명인 이영표의 축구인생이 궁금하다.

 

은퇴 후에도 인기 여전… ‘갓영표’ 이영표

이영표(40)만큼 은퇴한 뒤 축구팬들 사랑을 받는 이는 흔치 않다. 현역 시절 ‘다시 나오기 힘든 대한민국 풀백의 레전드’라는 찬사를 받더니, 축구 해설위원으로 변신한 뒤에는 경기 예측을 귀신같이 한다는 뜻의 ‘갓영표’로 불리며 안방 축구팬들을 사로잡았다. 얼마 전엔 경기도 안양시가 ‘이영표 거리’ ‘이영표 축구장’ 조성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영표를 지난 연말 건대입구 근처 북카페에서 만났다.

 

성공과 실패는 한 단어… 우리는 노력만 하면 돼

좋은 리더는 칭찬도 질책도 전략적으로… 모욕감 안 줘

 

 

이른 아침 인터뷰를 위해 북카페로 들어서는 이영표는 빈틈없고 단정했다.

 

TV로 볼 때보다 건장하고 다부졌다. “패션모델 해도 손색없겠다”고 하자 “은퇴 후 1㎏이나 불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혀를 내두를 만큼 철저한 자기관리, 그러나 스포츠 선수 특유의 솔직함과 소탈한 유머로 한 번씩 웃음이 터졌다.

 

경기 스코어를 정확히 맞힌다고 해서 붙은 ‘갓영표’ ‘문어영표’라는 별명은 다 근거 없는 얘기랬다. “운이 좋았을 뿐이죠. 실은 틀릴 때가 훨씬 많아요.” 박지성에게 전도하려 했을 만큼 열성 크리스천이란 소문에 대해서는 “내 믿음이 그렇게 좋은 건 아니다”며 웃었다. 이영표의 민낯이 궁금했다. “아내가 절더러 가식이래요. 그렇게 반듯하지도, 착하지도 않은데 남들에겐 그런 척한다고. 사실 신호 위반도 종종 하거든요(웃음).”

 

올해 마흔이지만 이영표는 축구에 막 재미를 붙여 운동장을 누비고 다녔던 소년의 맑고 초롱한 눈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고통이 사람을 생각하게 만든다

 

―은퇴 후 3년이 지났다.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다. 경기 일정 따라 바삐 살다가 아침에 운동하러 안 가도 되니 처음엔 당황스럽더라.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고민 중이다.”

 

―새로운 직업에 대한 고민인가?

“축구 선수로서 이루고 싶은 것을 이뤘는데 그것이 영원한 행복을 주는 건 아니더라. 좀 더 지속적인 만족을 느끼는 삶이 뭘까, 진리란 뭘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

 

―혹시 목회를 하려는 건가?

“아니, 전혀 아니다(웃음). 중학교 때 교장 선생님이 자기관리 기록장을 쓰게 했다. 그 첫 장에 적힌 질문이 ‘나는 누구인가?’였다. 그 질문이 내가 은퇴한 뒤 다시 다가왔다. 20년간 열심히 뛰었고 인정받았지만 거기서 얻은 행복이 내가 우리 딸 기저귀 갈고 빨래하는 기쁨과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오히려 오늘 누군가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손 한 번 잡아주는 게 내게 주어진 진짜 사명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이영표 어록이 있더라. 어릴 때부터 말을 잘하셨나?

“고통이 사람을 생각하게 하는 것 같다. 운동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을 주니까. 한 대회에 50개 팀이 나오면 우승은 1팀뿐이고 49개 팀은 패자가 된다. 나 또한 대부분이 실패한 경기였다. 패배를 겪으면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왜 졌을까,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같은.”

 

―‘성공이 성공이 아니고 실패가 실패가 아니다’는 책을 냈더라.

“실패와 성공은 반대말이 아니라 한 단어다. 실패가 성공의 발판이 되기도 하고, 성공이 실패를 부르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노력만 하면 된다. 열 방울 땀을 흘리면 정확히 열 방울의 발전이 이뤄진다. 10시간 노력했는데 9시간밖에 성과가 나지 않았다고 하는 건 착각이다. 노력에는 또 ‘복리의 법칙’이라는 게 숨어 있다. 서른 방울 땀 흘린 사람과 서른한 방울 흘린 사람, 49가지 기술을 가진 사람과 50가지를 가진 사람의 연봉이 얼마나 차이 날 것 같나. 두 배 이상이다. 단 한 번의 차이가 더블의 차이로 벌어진다.”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축구와 전혀 상관없는 일에 앞으로 10년간 최선을 다한다면 그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노력한다고 메시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그건 좀 다른 문제다. 최고 중에 최고가 되는 건 신()의 영역이다(웃음).”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게 ‘자유’

 

―스코어를 잘 맞힌다고 ‘문어영표’란다.

“다 운이다. 경기 내용을 어떻게 예측하나? 해설위원 초기에 일고여덟 번 연속으로 맞힌 적이 있다. 그다음엔 다 틀렸다(웃음). 하지만 한 팀의 현재와 과거 기록을 비교해서 방향을 알 수 있기는 하다. 흐름이라는 게 전혀 엉뚱한 데로 가진 않으니까. 예를 들어 어떤 선수가 최근 다섯 경기 연속으로 후반 20분에 투입됐다고 하면 그게 감독의 전략이란 걸 알 수 있다.

 

그럴 땐 확신을 가지고 ‘이제 곧 그 선수가 들어올 거다’라고 말한다. 피지 국가대표팀과 경기할 땐 7골 이상 대승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근데 전반이 한참 지나도록 골이 안 터졌다. 그래서 최근 피지팀 경기 10개를 모아 첫 실점한 평균 시간을 내니 37분이더라는 자료를 언급했다. 우연하게도 첫 골이 37분에 터졌다. 이어서 9골이 났고. 그땐 내가 이젠 골 나는 시간도 맞힌다고 소문이 나더라(웃음).”

 

―학창 시절 공부 잘했을 것 같다.

“공부와는 담쌓고 살았다. 중1 때 IQ 테스트를 했는데 87이 나왔다. 내 인생에 중요한 사건이었다. ‘아~ 나는 노력 아니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청년들에게 노력하라는 말을 자주 하시나.

“노력에서 오는 고통이 실패의 고통보다 견디기 훨씬 쉽다. 노력은 실패의 고통을 조금씩 미리 가져오는 것이다. 그래야 실패할 확률이 줄어든다.”

 

―히딩크 감독은 이영표 축구 인생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내가 200명의 지도자와 축구를 했는데 리더의 첫째 자질은 얼마나 뛰어난 전술을 구사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만큼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느냐더라. 특히 히딩크는 위기의 상황에서 선수들을 일으키는 그 한마디를 정말로 잘했다. 칭찬도 전략적으로 했고 화도 전략적으로 냈다. 칭찬과 질책의 방법도 선수마다 달랐다. 히딩크는 어느 선수에게도 모욕이나 굴욕감을 주지 않았다.”

 

―국가대표 감독 제안이 들어온다면?

“나는 지도자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아무리 이상적인 리더십을 경험했고 알고 있다 하더라도 실천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엄격한 지도자가 될 것 같다.

“나는 자유는 반드시 질서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믿는다. 진짜 자유란 내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이다.”

 

박지성 그늘에 가려서? 행복했다

 

―이영표가 박지성 그늘에 가려 있었다고도 한다.

“난 그늘이 좋다(웃음). 태양 아래선 신문지를 덮어도 낮잠을 잘 수 없다. 지성이가 내게 그늘을 줬다면 고마울 뿐이다. 지성이가 더 좋은 평가를 받고 더 좋은 팀에서 뛴 것은 나보다 더 잘했기 때문이다. 지성이는 공격수였고 나는 수비수였다. 어릴 때 경쟁 선수를 시기한 적은 있다. 그 선수가 못 뛰어야 내가 뛸 기회가 생기니까. 그런 내가 싫어서 마음을 바꿔먹었다. 마라도나나 펠레를 시기해야지, 함께 고생하는 친구를 시기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라고.”

 

―첫사랑과 결혼했다.

“같은 대학 신방과 친군데, 4학년 때 날 인터뷰하러 왔더라. 밥을 사주겠다고 했더니 교회 가야 한단다. 나름 국가대표 되어 인기도 많을 땐데 거절당한 거지(웃음). 근데 만날수록 좋더라. 예의 바르고 사려 깊고.”

 

―미스코리아와 결혼하는 스타도 많은데.

“내가 보수적이라, 운동선수는 여자 친구를 사귀면 안 된다는 신념이 있었다. 집, 숙소, 운동장밖에 몰랐다. 술·담배도 안 했다. 훈련하는 것도 고통스러운데 거기다 술까지 마신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갓영표’도 눈물 흘릴 때가 있나.

“오늘 아침에도 울었다. 예전엔 져서, 힘들어서 울었는데 요즘엔 기뻐서, 감사해서 우는 날이 더 많다.”

 

―세상이 시끄럽다.

“똑바로 살자고 외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똑바로 사는 것이다. 분노하되 그 속에 연민과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7.01.24

김윤덕 기자  편집=김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