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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우드 힐 / 정기배송 북센터

Paul Ahn 2019. 12. 3. 08:50

★헤이우드 힐 / 정기배송 북센터

 

콘텐츠 큐레이션 시대를 여는 '커넥터들의 힘'

http://v.media.daum.net/v/20170609203002577

 

영국 런던의 한 골목엔 1936년 문을 연 서점 ‘헤이우드 힐’이 있다. 오래되고 작은 이 서점의 연매출은 100만파운드(약 14억원)에 달한다. 비결은 헤이우드 힐만의 ‘큐레이션’. 1년에 10여 권의 책을 골라 고객들에게 배송해준다.

 

 

영국 헤이우드 힐 서점.  

 

주문은 세계 60여 개국에서 밀려든다. 유명 부호들은 아예 서재를 통째로 맡긴다. 스위스의 한 부호는 6개월을 기다려 책 추천을 받았다. ‘20세기 근대 미술·디자인’을 주제로 3000여 권을 추천받아 서재를 채웠다. 그는 그 대가로 50만파운드를 지급했다.

 

일반 고객부터 부호까지 이 동네책방의 큐레이션에 빠진 것은 ‘사회적 증거’ 때문이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헤이우드 힐의 단골이었다. 이 서점에서 추천받은 책들을 읽었다. 이 얘기를 들은 다른 나라의 유명 인사들까지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81년의 전통과 수많은 명사의 이름. 헤이우드 힐을 큐레이션의 상징으로 밀어 올린 두 기둥이다. 이 서점은 ‘콘텐츠 큐레이션’의 힘과 작동 원리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최근 콘텐츠 큐레이션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런 흐름을 만들어내는 근저의 힘은 사회적 증거다. 《설득의 심리학》의 저자 로버트 치알디니는 “사람들은 수많은 선택지가 있을 때 신뢰할 수 있는 인물과 다수의 결정을 따라한다”는 ‘사회적 증거의 법칙’을 주장한다.

 

이 법칙은 폭발적으로 확장하는 콘텐츠 시장에서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헤이우드 힐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들처럼, 대중은 선택된 콘텐츠에 마음과 지갑을 망설임 없이 연다. 믿을 만한 누군가가 자신보다 더 나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말이다.

 

큐레이션은 원래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전문가들이 작품을 수집·관리하는 것을 일컬었다. 이 단어는 인터넷과 모바일 확산과 함께 영향력을 넓혀 가고 있다.

 

사람들은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음악을 한 곡 듣더라도 취향에 딱 맞는 곡을 원하고, 뉴스 하나를 보더라도 더 깊은 인사이트를 얻길 바란다. 현재의 큐레이션 개념은 이런 변화에 맞춰 최적화된 콘텐츠를 추천하는 행위 전반을 아우른다.

 

‘큐레이션 시대’의 주인공은 사회적 증거라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다. ‘커넥터(connector·전파자)’라고 부를 만한 이들이다. 맬컴 글래드웰은 《티핑 포인트》에서 “세상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소수”라며 “특히 중요한 정보를 빠르고 넓게 확산되도록 돕는 커넥터들이 핵심적 역할을 한다”고 했다. 각 분야에서 두터운 신망을 얻고 있는 사람들이 주로 해당한다.

 

커넥터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려놓은 콘텐츠의 조회수는 유독 높다. 정보기술(IT)업계에서 잘 알려진 임정욱 스타트업일라이언스 센터장이 트위터에 올린 국내외 뉴스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리트윗한다.

 

이 트위터의 팔로어 수는 38만5600여 명에 달한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블로그 등에서 호평한 작품은 빠른 속도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음원 사이트 멜론에선 전문가, 파워 유저로 구성된 ‘멜론 DJ’의 추천곡이 되면 음원 순위가 크게 올라간다.

 

커넥터의 선택 그 자체가 콘텐츠에 가치를 부여한다. “당신의 시간을 이 작품에 써도 좋습니다”라는 보증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소하게 보였고 흘려보낼 뻔한 콘텐츠에 사람들은 눈길을 준다.

 

앞으로 우리는 더욱 압축적이고 집중적인 큐레이션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변화는 시작되고 있다. 일본 도쿄의 긴자에는 ‘하나의 서점, 한 권의 책’이란 콘셉트로 1주일에 책 한 권만 판매하는 모리오카 서점이 있다. 국내에는 지난 3월 한 달에 한 가지 책만 파는 서점 ‘림’이 생겼다.

 

쏟아지는 콘텐츠 속에서 선택받는 단 하나의 콘텐츠가 되기 위한 경쟁은 이제부터 진짜가 아닐까. ‘콘텐츠 위에 큐레이션’이란 말이 현실화할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2017.06.09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