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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벌려고 돈을 쓰지말라.

Paul Ahn 2020. 5. 11. 10:04

⊙시간을 벌려고 돈을 쓰지말라.

 

170910 박신언 몬시뇰 강론

돈을 벌려고 시간을 쓰지 말라. 시간을 벌려고 돈을 쓰지 말라

 

명동성당 주임신부 박신언 몬시뇰은 2009 218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이었던 김수환 추기경의 마지막 모습을 뵙고자 1㎞이상 질서 있게 줄지어 선 조문행렬이 너무 아름답다"고 말했다.

 

"김 추기경 긴 조문행렬 너무 아름답습니다"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이었던 김수환 추기경의 마지막 모습을 뵙고자 1㎞이상 질서 있게 줄지어 선 조문행렬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김 추기경 선종 사흘째인 18일 명동성당 주임신부 박신언(67) 몬시뇰(명예 고위 성직자) "저처럼 긴 조문행렬은 김 추기경이 남긴 '서로 사랑하라'는 메시지가 우리 사회에 골고루 전해져 국민 통합을 이뤄낸 모습이 아니겠느냐"며 감격해 했다.

 

김 추기경 장례위원회에서 '명동성당 및 전례'를 맡은 박 몬시뇰은 "매일 한 차례 회의를 열어 신부와 수녀들에게 '백화점 직원들도 고객들에게 친절하게 대하지 않느냐', 조문객들에게 진정한 사랑과 친절함으로 대하고 질서유지에 온 힘을 쏟아달라고 당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6일 신부와 신학생 몇 명과 함께 강원도에 가던 중 김 추기경이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고 곧바로 발길을 돌려 오후 4시께 병실에서 김 추기경께 마지막 인사를 했다고 밝혔다. 이어 명동성당으로 돌아와 장례절차에 대한 회의를 마치고 다시 병원으로 가던 중 김 추기경의 선종 소식을 들었다고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의료진이 밝힌 것처럼 임종 당시 제대로 말을 못 했지만 표정을 통해 '고맙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전했고 평화롭게 죽음을 맞았습니다. 선종을 앞두고는 기력이 없어 문병하러 가면 말없이 손을 내밀어서 한참 동안 붙잡고 기도를 올리곤 했습니다."

 

박 몬시뇰은 지난해 10 4일 호흡곤란 등으로 위급했던 상황을 전하기도 했다.

"위급한 상황을 넘기고 일주일 후 다시 병원에 찾아갔더니 김 추기경께서 ', 너 때문에 내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고 말씀하시더군요. 10 4일이 마침 토요일이었는데 정진석 추기경 등과 함께 병실을 찾아갔다가 제가 '지금은 안돼요'라고 소리친 것을 들으셨던 모양입니다. 제가 다급한 나머지 '토요일에 명동성당에서 혼배성사가 여섯 차례나 있고 일요일 미사가 열여섯 차례나 있는데 지금 돌아가시면 어떡하느냐'고 소리쳤거든요."

 

이후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객이 드문 새벽 5시께 김 추기경이 입원해 있던 강남성모병원을 찾아갔던 박 몬시뇰은 "한 번은 갑갑했던지 휠체어를 타고 바깥으로 나가자고 하기에 안 된다고 했더니 '그전에 말을 잘 듣더니 지금은 안 듣네'라며 농담을 했다"면서 "제가 언제는 말씀 잘 들었나요라며 응석 부리듯 대꾸하면서도 홍삼이나 우황청심환 등을 사다 드리면 고개를 끄덕이며 좋다는 표시를 하곤 했다"고 말했다.

 

박 몬시뇰은 조문 인파를 가리키며 "저렇게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분인데 저는 오랜 세월 가까이 모셨던 탓인지 어려운 줄 모르고 김 추기경께 버릇없이 군 적이 많았다" "제게 일을 많이 시킨다며 김 추기경께 퉁명스럽게 대한 적이 많았지만 김 추기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나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고 말했다.

 

박 몬시뇰과 김 추기경의 인연은 3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 몬시뇰은 당시 가톨릭대 철학과를 나와 사병으로 군 복무를 한 뒤 신학부 과정을 거쳐 사제품을 받았다. 이미 군 복무를 마쳤지만 군종신부가 필요하다는 교구의 지시에 따라 다시 입대해 5년간 군 생활을 더했는데 김 추기경이 이를 두고 항상 고맙게 생각했다고 박 몬시뇰은 말했다.

 

명동성당 박신언 몬시뇰

 

이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두 차례 방한했던 1984년 한국천주교 200주년 행사와 1989년 세계성체대회 실무를 맡아 김 추기경과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두터운 신임을 받은 박 몬시뇰은 1993년부터 2001년까지 평화방송 사장으로 재임하는 등 선종 때까지 가까운 곳에서 김 추기경을 지켰다.

 

   이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조문이 있었으나 김 추기경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전 전 대통령이 청와대 행사 등에 초청하면 잘 응하지 않았다고 박 몬시뇰은 밝혔다.

 

   그는 "김 추기경께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할 때는 일부러라도 '세상에 가난한 사람만 있느냐. 신자 가운데 부자도 있고 권력을 가진 사람도 있다'며 따지곤 했다" "하지만 김 추기경 은퇴 후 옛일을 돌아보니 당시 김 추기경께서 권력자들의 식사 모임에나 자주 다니셨다면 참 역겨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김 추기경은 누가 뭐라고 하든 가난한 사람들과 가까이하고자 했고, 남의 대접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남의 허물을 수양과 덕으로 덮어주었다"고 덧붙였다.

 

   박 몬시뇰은 "김 추기경이 은퇴 후 기념사업을 준비하다가 평소 그분이 갖고 있던 북방 선교에 대한 뜻을 살리고자 장학회를 만들어 그쪽에 뜻을 둔 신학생들을 돕기로 했다"면서 "2002년 당시 김 추기경의 세례명을 따서 '스테파노 장학회'를 설립하려고 김 추기경을 찾아갔더니 '옹기장학회'로 하자고 했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김 추기경께서 '옹기는 곡식 낱알도 보관할 수 있지만 오물도 담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우리 선조가 옹기를 짊어지고 팔러 다니면서 천주교 전교활동을 했다고도 하면서 옹기장학회로 하자고 했습니다. 사실 김 추기경의 선친도 옹기장수를 하며 전교활동을 했죠. 김 추기경이 '옹기'라는 호를 가진 것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2004년부터 명동성당 주임신부를 맡은 박 몬시뇰은 "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선종했을 때 명동성당을 찾는 조문객을 위해 1주일 전부터 국기게양대, 영정사진, 기도문 등을 준비했던 경험이 이번에 김 추기경 장례를 준비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면서 "평소 '사랑이 모든 것을 덮어준다'고 강조했던 김 추기경의 정신이 장례 이후에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09.2.18

ckch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