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립커피(Drip Coffee)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28/2017032801271.html?pmletter
우선은 숨을 참아야 한다. 이두근과 삼두근을 잔뜩 조여야 힘이 고루 분산된다. 물줄기가 닿으면 가루로 부서진 커피는 무장해제 돼 제 안의 모든 걸 뿜어낸다. 녹초가 된 그것 아래로 까맣게 빛나는 액체가 툭툭 떨어진다. 이제 혀에 닿을 순간만 남았다.
브루브로스 박상일(왼쪽) 대표에게 본지 박상현 기자가 드립커피 내리는 법을 배우고 있다.
원두 분쇄 시간 길어지면 마찰열 높아져 원두의 향미 헤쳐
물 부을 땐 동심원 그리며 한방향으로...전과정을 4분 내에
“‘블루보틀’은 200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오클랜드에서 문을 열었는데 ‘제3의 커피 물결을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는 곳이에요. 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뉴욕 등 미국에서 인기 끌다가 일본에 상륙해 ‘도쿄 커피’라 불릴 만큼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어요. 48시간 내 로스팅한 커피만 판매한다니까요.”
바리스타처럼 백과사전식 지식을 늘어놨다. 묵묵히 듣고만 계시던 어머니가 묻는다. “그래서 이걸 잔뜩 사온 거니?” 식탁에 펼쳐놓은 블루보틀 원두와 칼리타 돔 핸드밀, 칼리타 드립서버, 칼리타 드립포트, 알토에어 드리퍼, 앙증맞은 블루보틀 머그를 본 어머니 동공이 잠시 흔들린다.
“블루보틀이 ‘원두를 갈아서 판매하지 않는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 결국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값을 이미 지불한 원두가 버리기 아까워 연장을 구입하였습니다.” 말 끝나기가 무섭게 어머니 손바닥이 등짝으로 날아왔다. 1000엔(1만원) 조금 넘는 원두를 사고, 그 원두 먹겠다고 2만엔(20만원) 넘는 ‘연장’을 사들였으니 응당 내려질 수 있는 처분이었다.
도쿄 나카메구로에서 보낸 겨울휴가 일주일 동안 매일 ‘블루보틀’ 커피를 마셨다. 질리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가까워져 오니 허장성세 넘치는 상상 하나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매일 아침 블루보틀의 드립커피를 한잔 마시고 출근하는 도시 남자의 모습. 바리스타에게 원두를 추천받아 호기롭게 계산대 앞에 섰는데 “분쇄는 불가하고, 원두로만 판매한다”고 하니 방법이 없었다. 원두를 곱게 갈 도구부터 도시 남자의
각(角)을 완성할 나머지 도구까지 구입할 수밖에.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와 커피를 만들어보니 문제는 연장이 아니라 커피를 한약으로 만드는 이 ‘손’이었다. 집에서 블루보틀에 가까운 드립커피를 맛볼 순 없을까. 수십만원 주고 마련한 연장을 몇 번 사용하다가 주방 한쪽에 방치했을 때 땅이 꺼져라 한숨 쉴 어머니 모습도 아른거린다. 서울 서교동 ‘브루브로스 커피’ 바리스타 박상일 대표에게 ‘고장난 손’으로도 카페 못잖은 드립커피맛 내는 법을 배워봤다.
*구멍 많은 열매, 커피
드립커피는 원두와 물, 손기술의 결합체다. 우선 원두를 집어들 때 ‘갓 볶은 커피’는 피해야 한다. 커피 원두 한 알엔 무수히 많은 구멍이 뚫려 있고, 그 속은 이산화탄소와 여러 향(香) 성분으로 채워져 있다.
막 볶아낸 커피는 다량의 이산화탄소를 품고 있어 탄수화물·펩티드 등 커피 추출 시 좋은 향미를 내는 요소가 녹아드는 것을 방해한다. 카페인 용해를 촉진해 쓴맛을 배가시키기도 한다. 카페에서 판매하는 원두 대부분은 온기에 달아올랐던 몸이 식어 비로소 구릿빛 광택을 뿜어내기 시작한 ‘숙성 원두’다. 수명은 일주일 남짓.
커피는 또한 ‘검정 물’이다. 드립커피 성분의 98%는 물. 물이라면 모름지기 알프스 산맥에서 추출한 영양 만점 미네랄 워터가 최고급이지만, 커피를 추출할 때 적합한 물은 아니다. 커피 입자들이 물속으로 녹아들려면 ‘열길 물속’처럼 투명해야 하기 때문. 정수기가 없으면 수돗물을 받아 이취(異臭)가 제거된 후 끓여서 쓰면 된다.
원두는 분쇄하지 않고 ‘홀빈’(whole bean) 상태로 구입해야 좋다. 한번 분쇄된 커피는 급격히 산패가 이루어져 좋은 향미가 짧게는 수분, 길게는 하루를 넘기지 못한다. 커피를 내릴 때마다 그때그때 핸드 그라인더로 분쇄하는 게 낫다. 그라인더 손잡이는 삼두근이 조이도록 힘껏 돌려야 한다. 분쇄 시간이 길어질수록 분쇄날과 원두 사이에서 발생하는 ‘마찰열’이 높아져 원두의 향미를 해친다. 입자 크기는 고를수록 좋다.
*4분 안에 성패(成敗) 가려지는 커피 추출
한 잔 기준 적정한 원두 양은 30g 정도. 물이 끓기 시작하면 원두를 분쇄한다. 산산이 부서져 흙을 연상시키는 커피가루를 여과지 안으로 부어 평평한 대지처럼 만든다. 이제 드립포트로 옮겨담은 뜨거운 물을 살짝 부어 드립서버를 달아오르게 한다.
제 몸을 훑고 지나간 액체가 금세 식어버리지 않도록 ‘예열’을 해두는 셈. 이 물을 다시 드립포트에 옮겨 담으면 잠시 열기를 빼앗긴 이 물은 드립포트 전체 온도를 85~90도 안팎으로 낮춘다. 시중에서 구입하는 원두의 배전도(볶음 정도)는 보통 ‘중배전’이다. 너무 볶아지지도, 너무 안 볶아지지도 않은 이 커피는 85~90도 물로 추출해야만 제맛을 낸다.
본격적인 접촉 전 한 번 더 달아오르게 해야 한다. 분쇄된 커피 위에 물을 분사하듯 천천히 부으면서 약 30초 동안 부풀어오르길 기다린다. ‘적신다’는 느낌이다. 촉촉이 젖어야만 비로소 그것은 제 안의 모든 것을 쏟아낼 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촉촉해진 그것의 한가운데를 위주로 주둥이를 돌려가며 물줄기를 꽂는다. 다급함에 한 번에 끝내서는 곤란하다. 한번 넣을 때마다 조금씩(약 50㏄) 동심원을 그리며 살살 넣어주어야 한다. 돌릴 땐 한 방향으로만 돌려야 한다. 다 배출하고 나면 (약 200㏄) 맞닿았던 몸체를 분리시킨다. 마찬가지로 커피잔 역시 뜨거운 물로 살짝 덥힌 후 추출한 커피를 따른다.
드립커피 한 잔이 완성되고서 박상일 대표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손목시계 분침을 가리켰다. “커피 추출 전(全) 작업은 4분 내에 끝납니다. 성패가 눈 깜짝할 새 결정되는 ‘4분의 예술’이에요.” 블루보틀 커피맛이 잊힐 만큼 ‘고장난 손’이 만들어낸 커피가 혀끝에서 풍미를 뿜어냈다.
2017.03.28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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