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팽이집 / 한국형 셰어하우스
달팽이집, ‘한국형 셰어하우스’의 전형
http://www.sisaweek.com/news/articleView.html?idxno=116354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이 공급하고 있는 임대주택 ‘달팽이집’은 한국형 셰어하우스의 원조로 통한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사회주택 관계자들 다수는 ‘달팽이집’에서 사회주택의 영감을 얻었다고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진남영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은 “연구용역을 맡으면서도 가능할까 의문이었는데 젊은 친구들이 몸으로 부딪쳐 현실로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달팽이집 1호점의 외부 모습과 각 호점 입주자들의 반상회 및 워크숍 모습. /민달팽이주택조합 제공
그래서 지난 달 29일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임소라 이사장을 찾았다. 임소라 이사장은 달팽이집을 기획하고 공급하는 운영주체이면서, 동시에 입주자 중 한 명이다. 임 이사장에 따르면, 민달팽이협동조합은 2014년 처음 시작해 지금까지 12채의 달팽이집을 공급했다.
달팽이집마다 작게는 6명에서 많게는 44명이 입주, 전체 200여명의 조합원들이 모여살고 있다. 서울시로부터 아이디어와 공로를 인정받아 ‘서울시 빈집살리기 프로젝트’ 사업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 수요자 중심의 ‘셰어하우스’ 실험
첫 시작은 실험적 측면이 강했다. 주거권 보장을 위해 모인 시민단체 ‘민달팽이유니온’의 구성원 6명은 정부의 지원만 촉구하고 기다릴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각자 원룸 혹은 고시원에서 살고 있었는데, 단위면적당 주거비용은 서울 최고급 아파트인 타워팰리스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하나로 모을 수 있다면, 주거비용을 낮추면서도 좋은 입지조건을 갖춘 괜찮은 주거환경을 구성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섰다.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달팽이집 1호가 출범하게 된 계기다.
“우리는 주거를 개인의 문제라고만 생각했지 사회가 잘못하고 있는 문제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주거문제를 말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도시에 사는 청년문제로 이어졌고, 비영리 민간사회단체로 서울시에서 활동을 하게 됐다. 그런데 정책과 제도를 바꾸는 게 너무도 어려웠다. 추진하던 사업이 갑작스레 중단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스스로 비영리주거모델을 만들자고 의견을 모아 2013년 기획을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이런 형태의 집이 하나도 없었다.”
- 임소라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이사장 인터뷰 중
달팽이집 자체적으로 실시한 사진전에 한 입주민이 사진과 함께 적어낸 글. /민달팽이주택조합 제공
달팽이집의 특징은 공동의 목적 혹은 공감대를 가진 사람들이 먼저 모여 조합을 만들고 함께 살 집을 구했다는 점이다. 공급자 중심의 임대주택 시장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선택지를 가져가려 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 취미 등 공감대를 가진 사람들끼리 집을 임대해 ‘셰어하우스’로 운영하는 일부 사례들이 있는데, 달팽이집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현승헌 선랩건축사무소대표의 ‘공유주택’이 다양한 1인 가구가 모여살 수 있는 ‘물리적 공간’에 주안점을 둔 것이라면, 달팽이집은 입주자들 사이 ‘공감’을 우선시했다는 차이가 있다.
가족도 아닌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모여 살면서 발생하는 문제는 대화와 ‘자치운영’ 강화로 풀었다. 초창기에는 가끔 모여 서로 안부를 묻는 정도였지만, 입주자들이 필요성을 절감해 ‘반상회’를 자치운영 의사결정 기구로 격상시켰다. 지금은 시설담당, 회계담당, 집사를 두고 조합 사무국과 소통해 체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민주적 문제해결 절차는 그 자체로 입주민들에게 일상의 안정감을 제공하고 사회적 안전망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임 이사장의 설명이다.
◇ '저비용 장기간' 주거안정에 초점
달팽이집 입주민들의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제공
실험적으로 시작한 달팽이집은 이제 초기단계를 벗어나 그 영역을 점차 늘려나가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방문 등을 계기로 지자체들이 관심을 보였고, 8호점부터는 공공의 지원이 일부 들어가고 있다. 7호점까지는 순수하게 조합원 출자금과 민간자본으로 운영돼왔다. 월세는 1인실 기준 보증금 75만원에 월세 30만원 수준이다. 입주자 구성은 취업준비생이 가장 많으며, 여성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고 한다. 1인 가구 중 가장 주거취약계층으로 분류되는 청년 취업준비생과 여성들의 선호도가 높은 셈이다.
사회주택의 한 모델로서 달팽이집이 추구하는 가치는 분명하다. 취약계층의 ‘주거안정’이 최우선이며, 수요자 중심의 ‘자치운영’이 둘째다. 공동체 복원이나 사회적 신뢰자산 형성, 나아가 주거 패러다임 전환까지 고민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한 곳에서 장시간 안정적인 거주가 가능해져야 공동체 복원이나 지역사회와의 협력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주택수요에 따라 다양한 가치를 담고 있는 사회주택의 등장은 환영이다.
“(사회주택을 말할 때) 돌봄 서비스 혹은 공동체 회복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자기 거점이 있고 유지할 수 있는 역량과 조건이 있어야 가능하다. 무조건 공동체 회복만 말해서는 안 되고 주거비용과 기간이 안정적으로 유지돼야 가능하다. 그런데 사회주택이 재미있는 것은 다양하다는 것이다. 우리도 당사자 운동을 시작해 선택지가 많아야 한다는 문제인식을 하고 있었다. 사회주택의 다양성을 살려 여러 사람들의 수요를 풀어내면 저변확대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본다.”
임 이사장과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의 고민은 지속가능성이다. 조합원 출자금과 차입금으로 임대한 1호점은 그 사이 임대료가 3배 가까이 상승했다. 입주자들의 월세를 크게 올리지 않고서는 유지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주거안정을 위해 공공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한 대목이다. 달팽이집을 포함해 1인가구 주택에 대한 국민적 이해도를 높이고 공공과 민간이 함께 갈등을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
“영등포에 2030 행복주택이 들어간다고 하니 지역주민들이 난리가 났다. 공공이 갈등해소의 주체가 돼야 하는데 사실 손을 놓고 있다. (갈등으로 인해) 예전과 같은 공급자 중심의 대규모 공급이 어렵다면 다른 게 필요하다. 달팽이집은 소규모로 지역에 스며들어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지역주민들도 어느 새 청년들과 함께 지내니 밝아졌다고 좋아한다. 편의점, 미용실, 세탁소에 가면 수다가 그렇게 많을 수가 없다. 갈등을 푸는 것은 서로 알아가는 것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수요자 중심으로, 사람들이 만나서 풍성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보려고 한다.”
2018. 12. 07
정계성 기자 under74@sisa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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