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주의 茶飯事
차는 좋은 인연스트레스 쌓일수록 '다반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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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차는 음료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녔다.
중국 당나라 때 차의 성인으로 추앙 받던 육우의 '다경'에 따르면 기원전 2700년, 그러니까 신농시대부터 차를 마셨다. 어림잡아 5천 년을 헤아린다.
그 오랜 역사만큼 차와 관련된 성어도 많다. 그중 가장 흔히 사용되는 말이 '다반사'가 아닌가 싶다. 다반사(茶飯事)는 사전에서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일'로 직역되며, '예삿일' 혹은 '흔한 일'로 풀이된다. 하지만 속뜻은 좀 더 심오하다. 다반사란 용어가 불교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불교는 차와 선을 한 맥락에서 바라보며 '다선일여'(茶禪一如)라고 썼다. 차 마시는 정신에 선이 있고, 선하는 과정에 다도가 통한다는 것이다. 차 한 잔을 마시고 밥 한 그릇을 먹는 지극히 평상적인 일, 그 속에 삼매의 도리가 들어 있다는 얘기가 아닐까. 차 마시는 것은 밥 먹는 것처럼 과거에는 자연스럽고 일상적이었다.
요즘도 그럴까. 다반사란 말이 여전히 통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차를 마시는 것은 특별한 일이 된 지 오래다. 한때 웰빙 붐 속에서 차가 건강과 다이어트에 좋다며 큰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은 커피나 탄산음료에 밀린 상황이다.
이처럼 차를 멀리하게 된 까닭이 뭘까? 아마 그 첫 이유로 차를 마시고 다루는 절차인 '행다법' 혹은 '다도'가 너무 격식 위주로 흘렀기 때문은 아닐까. 차 마시는 것이 고급 취향이 되면서 대중으로부터 멀어진 것도 이유가 될 듯하다. 좋은 차를 선별하고 구입하기도 어렵고, 나쁜 차가 시중에 많이 떠돌면서 차 전반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고 본다.
그럼에도 차는 현대인이 즐길 수 있는 기호품 중 가장 유용성이 크다. 무엇보다 편하다. 커피처럼 물과 그릇만 있으면 언제, 어디에서도 마실 수 있다. 특별한 다기가 필요하다는 것은 선입견에 불과하다. 커피와 달리 여러 차례 우려 마실 수 있는 것도 장점 중 하나다. 좋은 차라면 10차례 이상 우려내도 상관없다.
차는 건강에 좋다.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약효와 생리 효과가 검증됐다. 스트레스가 많고 일상의 변화가 심한 현대인에게 규칙적인 식사와 차를 마시는 '다반사'는 역시 좋은 습관인 것이다.
② 끽다거 끽다래 - 잡생각 버리고, 차나 한잔 하러 오시오
차에 얽힌 선승의 이야기는 흔하다. 그중 조주선사의 '끽다거'는 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가장 쉽게 듣는 말일 테다.
중국 당나라 때의 선승인 조주선사(778∼897)에게 어느 날 제자가 찾아와 물었다. "우주의 근본은 무엇입니까? 부처가 세상에 나툰(등장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조주선사는 이에 대해 답 대신 한 마디만 건넸다. 또 다른 제자가 찾아와 가르침을 달라고 요청했을 때에도 그는 같은 말을 내뱉었다. "끽다거". '끽다거'(喫茶去)란 '차나 한잔 마시고 가라'란 뜻이다.
여기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많다. 그중 하나는 조주선사가 차를 극진히 사랑했고, 그 차를 누구에게나 대접했다는 사실이다. 평생 동안 차와 함께 산 조주선사는 늘 맑고 건강한 모습으로 수도했다고 전해진다. 물론 '끽다거'는 단순히 차나 한잔 하고 가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차를 마시며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가라는 선사의 가르침이 있었을 것이다. 차는 하찮은 음료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스스로의 내면을 정확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깨달음의 관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스승은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 해인사 지족암 경내에 설치된 일타 스님의 '끽다거래' 돌비. 도림원 제공
그랬다. 답은 가르쳐서 아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차와 선의 관계를 '다선일여'라고 하지 않던가. 우리가 흔히 하는 인사 중 "차 한 잔 하시겠습니까?"란 말이 있다.
한자로 쓰면 '끽다래'(喫茶來)인데, 조주선사의 '끽다거'와 대구가 되겠다. 차를 한 잔 하고 가라가 아니라 차를 한 잔 하러 오라는 뜻이니 더 반갑다.
이 '끽다래'가 필자의 개인 차실인 도림헌에 걸려 있다. '끽다래'란 말을 처음 쓴 금당 최규옹 선생이 직접 주신 것인데, 커피와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의 묵언이다. 금당은 법정스님의 저서 '새들이 떠난 숲은 적막하다'에 나오는 차 할아버지다.
육우와 함께 다성(茶聖)으로 불리는 노동(?∼835)의 시 '칠완다가'로 하루를 마감했으면 좋겠다. '첫째 잔은 입술과 목을 적셔 주고/ 둘째 잔은 외로움과 답답함을 씻어 주네/ 셋째 잔은 마른 창자를 가려주니/ 생각나는 글이 오천 권이 되고/ 넷째 잔은 가벼운 땀이 솟아/ 평생 불평스러운 일들이 모공을 통하여 다 사라진다네/ 다섯째 잔은 살과 뼈를 맑게 하고/ 여섯째 잔은 신선의 영과 통한다오/ 일곱째 잔은 마시지도 않았는데 두 겨드랑이에 맑은 바람이 솔솔 일어나네.'
③ 차에 대한 불신 - 불투명한 생산·유통, 모호한 등급 등 문제 커피가 대세다.
집 주변 골목에도 한 집 걸러 커피점이 들어섰다. 반면에 차는 특정한 사람들의 기호로 축소됐다. "차 한 잔 하자"고 해 놓고는 커피를 내어놓고, "티 타임을 하자"면서 으레 커피 타임을 갖는다.
우리나라에서 차보다 커피가 주류 음료가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커피의 맛, 향, 색깔이 차보다 더 진한 까닭일 수도 있고, 설탕이나 커피크림, 우유 등과 섞으면 훨씬 더 다양한 취향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물론 서구 생활양식을 좇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구사회의 주류 음료에 동화된 까닭도 있다.
하지만 차 자체 문제도 크다. 차 생산과 유통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특히 차 농가는 비료와 농약 살포로 차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차도 마찬가지다. 아니, 더 심각하다.
필자는 중국의 유명한 차밭을 수시로 둘러보고 있는데, 한쪽에서는 농약을 뿌리고 다른 쪽에서는 차를 따는 장면을 많이 목격하고 있다. 농가는 허용 기준치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이 말을 그대로 믿기가 어렵다. 아무리 소량의 농약이라도 이를 뜨거운 물에 우려 마시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 고무나무 숲에 조성된 중국 차밭. 제초제와 농약 피해가 심하다. 이건주 씨 제공
명차는 품격이 중요하다. 최적의 생산 환경과 철저한 제다 과정은 필수 요소다. 그러나 최근 대량 생산 체제로 가면서 그렇지 못한 농가가 중국에서 일부 생겼다. 이런 농가 때문에 전체 차 재배 농가에 대한 불신이 더 커진 것이다. 품질과 등급의 기준이 모호한 것도 녹차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다.
봄에 딴 차인지, 혹은 여름이나 가을에 딴 차인지를 소비자가 알 수 없는 것이다. 일부 중국차 농가는 수익을 더 올리기 위해 여름 차와 가을 차를 아예 뒤섞어 판 경우도 있다. 등급별로 부르는 이름도 혼선을 가중시키고 있다. '우전'이라고 하면 곡우(4월 20일) 전에 딴 어린 차를 일컫는데, 일부 상인은 여름에 딴 어린 싹도 우전이라고 주장하며 팔고 있다.
이러니 믿을 수 없는 것이다. 녹차로 만든 대홍포나 철관음, 보이차라는 말도 허무맹랑하다. 대홍포는 대홍포라는 차나무가 따로 있고, 보이차는 보이차나무에서 나온 것을 일컫는데 녹차나무에서 나온 녹차를 대홍포나 보이차로 둔갑시키는 것은 사기에 다름 아니다.
④ 한중일 차 문화 - 일상적으로 차를 마시는 중국과 일본 차는 중국에서 시작됐다.
5천 년의 차 생산 역사를 가진 중국은 차의 종류만도 3천 종이 넘는다. 연간 생산량도 150만t에 이른다. 그중 73%가 녹차이며, 10%는 청차(우롱차)다. 차 문화는 중국 황궁에서 처음 꽃을 피웠다.
다구와 의상, 장식 등에 관해 상세히 설명한 '황궁다법'은 화려하고 섬세한 중국 차 문화의 극치라고도 할 수 있다. 역대 제왕들도 차를 즐겨 마셨다. 송나라 휘종은 '다관대론'이라는 책까지 집필했다. 황실에는 늘 전용 다원이 있었고 귀하게 진상된 차는 각종 하사품을 내려 보상했다.
황실 밖에서도 차는 최고의 선물 중 하나였고, 손님 접대는 으레 차로 했다. 중국에서는 가정집, 사무실, 작업장, 식당 등을 가리지 않고 차를 접대한다. 튀기고 볶는 음식이 많은 중국에서 차는 가장 효용성이 큰 음료이다. 덕분에 중국인들은 고혈압, 당뇨, 치매, 비만, 혈관계 질환이 적다고 한다.
일본은 나라 때 차가 들어왔지만 정작 차 문화가 형성된 것은 15세기 무로마치 시대로 추정되고 있다. 지금의 일본다도는 15∼16세기 무라다 주코- 다케노 조오- 센노리큐 3명에 의해 완성됐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일본도 중국처럼 생활 차 문화가 정착돼 있다. 중국이 차 소비의 대국이지만 정작 1인당 차 소비량은 일본이 앞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도 어딜 가나 차부터 내어놓는다. 자체 생산량도 많지만 품질이 우수한 외국차를 많이 수입해 마시는 편이다.
지난 1986년 검도대회 참가를 위해 일본에 갔다가 지인의 집에서 그들만의 차 문화를 접했는데, 우리와 달리 차를 일상적으로 마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 차를 마시는 주부들. 도림원 제공
우리나라는 가락국 혹은 신라 때 사찰을 중심으로 차 문화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려시대에도 차를 마신 기록이 남아 있으나 정작 조선 초·중엽에는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에 추사, 다산, 초의의 음다 풍습이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녹차만 십여 종이 있으며 연간 생산량은 2천500t에 이른다. 지금의 각종 차 모임은 1980년대 전통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대부분 생겨났다.
⑤ 중국 6대 명차 - 대륙, 사람도 많고 茶 종류도 많고 중국은 광활한 영토만큼이나 차 재배 면적이 넓다.
여행 도중 끝없이 펼쳐진 차밭을 목격하는 것도 흔하다. 특히 저장 성, 장쑤 성, 안후이 성, 쓰촨 성 등지의 차밭은 넓고 차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이러니 중국의 연간 차 생산량이 160만t에 이른다.
▲ 중국 현지에서 차를 살펴보고 있는 필자. 도림원 제공
중국은 차의 발원지이자 주 생산국이다. 따라서 종류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 중국 정부에 의하면 3천 종을 웃돌고 있다. 중국차는 크게 6가지로 대별된다. 그중 전체 생산량의 73%를 녹차류가 차지하고 있다. 녹차류는 이른바 발효하지 않은 차로 잎을 딴 당일 곧바로 덖고 비벼서 건조시킨다.
대표 상품이 황산모봉, 여산운무, 용정, 동정벽라춘, 육안과편 등이며 중국 녹차만 1천800여 종에 이른다. 두번 째로 많은 것은 청차류다. 전체의 10%에 달하는데, 우리에게는 반발효차인 우롱(烏龍)차로 더 잘 알려졌다.
주산지는 푸젠 성과 광둥 성이다. 크게 무이암차류, 철관음류, 광둥우롱차류로 구분하는데, 무이암차류는 우리에게도 이름이 익은 대홍포, 철라한, 백계관, 수금귀 등이 있다.
약 250년 전 중국 본토에서 흘러들어가 지역화한 대만우롱차도 유명하다. 후텁지근한 기후와 잦은 운무가 차 생육에 좋은 조건을 부여했다고 전해진다. 대만의 고산지대 우롱차는 독특한 맛과 향을 지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로고산우롱. 아리산우롱, 사계춘. 삼림계, 대우령, 복수우롱, 금선, 휘옥, 옥산우롱포종차, 동방미인 등이 모두 이에 속한다.
그 다음은 홍차류, 백차류, 황차류, 흑차류 순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중 홍차류는 70∼100% 발효차로 기문홍차, 정산소종, 탄양소종 등이 있고, 백차류는 경발효차로 백호은침, 대백, 소백, 수선백 등이 있다. 황차류는 40%가량 발효한 것인데 군산은침, 군산모첨, 몽정황아, 곽산황아 등으로 구분된다.
흑차류는 100% 발효된 차로 전체 생산량의 5%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인기가 많은 흑자류는 운남보이가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호북성긴압차, 호남성긴압차, 사천성변소차, 광서성육보차 등이 있다. 6대 차에는 속하지 않지만 화차류도 인기가 있다. 1차 가공된 차를 재가공할 때 꽃을 섞거나 훈증해 각종 향을 흡착시킨 차다. 말리화차(재스민), 계화차, 매괴차, 장미차, 국화차, 인삼차 등이 있다.
⑥ 황실차밭 - 용정다원을 아시나요?
중국은 일찍부터 황실 차원에서 차밭을 운영했다. 이들 차밭은 왕조에 따라 '어다원'(御茶園), 혹은 '공다원'(貢茶園)으로 불렸다. 그중 당나라 때의 자순차공다원, 명말원초의 어다원, 청나라 때의 용정다원 등이 아직도 운영되고 있다.
▲ 용정다원
가장 오래된 자순차공다원은 현재 저장 성 후주에 있다.
차밭 근처에 '대당자순차공다원' 비석(사진)이 있다. '자순차'란 자줏빛 찻잎이 죽순처럼 생겼다는 뜻이다.
육우의 저서인 '다경'(茶經)에 따르면 '가장 좋은 차는 자갈밭에서 자란 것이고, 중품 차는 모래밭에서 자란 것, 하품 차는 황토흙에서 자란 것이다. 또 양지바른 벼랑 끝이나 그늘진 숲 속에서 자란 자줏빛 나는 것이 최상품이고 푸른빛 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이와 함께 죽순 같은 모양의 차는 상품이고, 새싹 같은 차는 차등품이다.
잎이 접힌 것은 상등품이고, 펴진 것은 차등품이다'라는 대목이 있다. 자순공다원에는 봄이면 찻잎을 따는 백성이 1만 5천 명이나 동원됐다. 차를 만드는 기술자도 1천 명에 달했다고 한다. 공다원 안에는 금사천이라는 샘물이 있는데 물맛이 좋기로 천하제일이었다. 공다원에서 생산한 차와 금사천 물을 서안까지 마차로 실어 날랐다고 하니 참으로 대단하다.
원나라 때의 황실 차밭은 푸젠 성 우이 산에 자리잡았다. 우이 산을 한자로 쓰면 '무이산'(武夷山)이다. 즉, 무이암차의 지명이다. 무이암차는 중국 차 문화 발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당과 송나라 때에는 공물로 사용됐고, 원나라 때에는 아예 조정에서 우이 산 계곡에 차 제조공장인 '어다원'(御茶院)을 설치했다.
무이암차가 오랜 세월 동안 쇠퇴하지 않았던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요즘 잘 알려진 대홍포, 철라한, 수금구, 백계관 등이 모두 우이 산에서 나온다. 반발효 청차류다. 항저우의 용정다원은 어다원 혹은 공다원의 호칭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청나라 건륭제가 18그루의 차나무를 직접 심은 뒤 사실상 황실 차밭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는 '빗속에서 다시 용정을 유람하며'라는 시를 통해 '서호는 풍경이 아름답고, 용정은 차가 좋구나'라며 용정차를 극찬하기도 했다.
용정다원은 그늘과 햇빛이 적당해 차를 키우기에 좋은 지형을 가졌다. ⑦ 황궁다법 - 여닫는 잔 뚜껑 사이로 향긋한 차향 차가 문화로 꽃을 피운 곳은 중국 황궁이었다. 황제에게 바친 진상품에서도 차가 으뜸이었다. 다회는 화려한 다구와 장식, 의상, 음악, 문학, 회화 등이 망라된 종합예술이었다. 지난 1987년 중국 법문사 지하궁에서 출토된 당나라 유물에서도 금, 은, 유리로 만든 다구가 많았다.
▲황궁다법
황궁 다구는 모양과 소재, 이름부터 달랐다. 그중 은제품 다구는 독극물에 의한 암살을 막기 위해 일찍부터 황궁에서 사용됐다. 법문사 박물관에 남아있는 세 다리의 물받이 은소금대와 연꽃 은사발, 금박 은수저 등도 용도가 다구였다. 금실, 은실로 된 차 바구니와 도금한 은롱자도 덩이 차를 덖을 때 사용한 차바구니였다.
다해(茶海)와 봉조대(鳳爪臺)도 황궁에서만 사용했다. 다해는 둥근 원탁 모양의 도자기로 뚜껑과 물받이가 있다. 그 위에서 차를 우렸다. 다법(茶法·차를 달이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황제만을 위한 다법이 따로 있었다. 그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다법은 당태종 이세민을 위해 소림사 스님들이 만든 '황궁다법'이다.
이세민이 사지에 몰렸을 때 소림사 승려들이 도움을 주었고, 이에 대해 복권된 황제는 이들을 왕족으로 봉하고 황제와 같은 황금색 옷의 착용을 허용했다. 이후 황궁 경호도 소림사 무승들이 맡았다. 이때 개발된 것이 황궁다법인데, 손 대신 배사(집게·사진)로 잔을 씻고 차를 우려내는 기술이 대표적이다. 개완배도 황궁다법의 일부다. 개완은 왕족들이 차를 마실 때 쓰는 1인용 다기로 큰 잔에 뚜껑이 있어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차향을 맡는다.
황궁다법은 그러나 청나라 멸망과 함께 중국대륙에서 사라졌다. 대륙을 차지한 공산당이 전통을 부정하면서 황궁다법도 끝난 것이다. 그 황궁다법이 우리나라로 흘러들어왔다.
화교인 허주보원 큰스님이 소림사 고승 화엄자와 금강자로부터 황궁다법을 배운 뒤 필자에게 전수한 것이다.
필자는 지난 2002년 저장성과 2003년 후베이성에서 열린 '육우 탄생 1270주년 기념행사'에서 한국 차 문화(행다법)와 황궁다법을 펼쳐보였다. 그때 중국차인들의 놀라운 눈빛이란. 요즘은 황궁다법을 재전수받기 위해 중국 차인들이 우리를 찾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⑧ 티 타임의 여유차를 마시는 것? 여유를 마시는 것!
늘 바쁜 사람들에게 "여유를 가져라"고 하면 어떻게 들릴까? "차 마시고 합시다"라는 말도 일이 중요하지만 한숨 돌리면서 여유를 갖자는 뜻을 담고 있다. 차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은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의미이니 그런 환경을 미리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가정이라면 식탁을 이용해 차 마시는 환경을 만드는 방법이 있다. 특별한 다구가 없어도 좋은 차만 있다면 주방 그릇을 이용해 차 한 잔의 여유를 되찾을 수 있다. 식탁이라면 물 끓이고 설거지하는 것도 수월하다.
▲ 거실 공간을 활용한 다실. 도림원 제공
거실 공간을 다실로 활용하는 사람도 많다. 거실 한쪽에 차판을 놓고 차를 한 잔 마시면서 가족 간의 대화를 이어간다. 어린이가 있다면 다소 불편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일찍부터 이런 환경을 보여준다면 좀 더 여유와 품위를 갖춘 자녀가 될 것이다.
자녀가 공부하러 서울로 갔다면 그 빈방을 다실로 활용하는 재미도 크다. 방에 알맞은 크기의 차판을 놓고 물항아리와 다구, 진열장을 설치하면 정갈하고 멋진 다실이 된다. 혹, 다실에 어울리는 글씨나 그림 한 점을 걸어 두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이런 다실이 하나 있다면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도 귀가 즉시 한 방에 날릴 수 있다.
조용히 다실에 앉아 차를 한 잔 마시면서 하루의 지친 피로를 풀고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이 바로 힐링이다. 그 다음에 책을 읽고, 명상에 잠기고, 마음공부도 하고…. 속을 텅 비우면 내면이 고요하고 바깥은 아름다워 보이는 법이다. 마음이 편하면 그것이 곧 안락이고, 신선 세계다. 간혹 친구를 초청해 차를 한 잔 건네면 이 또한 얼마나 멋진 일일까.
사무실이나 작업장, 야외에서도 손쉽게 티 타임을 가질 수 있다. 차는 체내에 수분을 공급해 건조한 실내생활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차를 마시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 자체도 여유가 된다. 여유가 있어야 실수가 없고, 결과도 좋다. 다행히 요즘은 차를 쉽게 우려 마실 수 있는 용기가 많이 나왔다.
사무실용 유리 주전자와 각종 잔, 거름망이 달린 휴대용 텀블러도 좋은 다기다. 굳이 비싼 다기를 살 필요는 없다. 물론 차는 품질이 좋은 것을 골라야 한다. 품질이 좋다면 20∼30차례 우려 마셔도 상관없다. 차는 마시는 것 자체가 여유를 갖는 행위다. 차 한 잔 마시고 하시죠?
⑨ 녹차 이야기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31227000028
중국차 전체 생산량 3분의 2가 녹차중국 차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녹차류다.
중국차 전체 생산량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 주산지는 양쯔 강 하류로 장쑤 성, 안후이 성, 저장 성 등이 손꼽힌다. 녹차는 또한 가장 오랫동안 차인들로부터 사랑을 받아 왔다.
▲ 중국 최고의 녹차로 유명한 '태평후괴'. 도림원 제공
녹차는 '불발효차' 혹은 '비발효차'다. 발효시키지 않았다는 얘기다. 녹차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제다 과정을 거치는데, 살청, 유념, 건조다. 살청은 생엽의 풋내를 없애 좋은 차향을 만드는 과정이며, 유념은 살청된 찻잎을 반복적으로 비비는 공정이다. 건조는 찻잎 속의 수분을 제거해 원하는 모양의 차를 완성시킨다.
즉, 산화 작용을 막고 녹색을 그대로 유지시키며 수분은 적당히 제거한 것이 녹차다. 참고로 살청은 덖음 방식의 가열살청과 열증기 방식의 증기살청으로 구분한다. 우리나라와 중국은 가열살청을, 일본은 증기살청을 선호한다. 녹차는 잎을 따는 시기에 따라서도 이름이 달라진다.
청명 이전에 딴 차는 '명전'(明前)으로 호칭되며, 녹차류 중에서도 최고로 꼽는다. 청명에서 곡우 이전까지 딴 차는 '우전'(雨前)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종류는 많다. 황산모봉, 여산운무, 용정, 동정벽라춘, 기창, 남경우화차, 서성난화 등 1천500종이 넘는다. 10대 명차에 속하는 '벽라춘'(碧螺春)은 봄에 가장 먼저 땄다는 데서 유래했는데, 찻잎이 소라처럼 주름지고 오그라들었다. 찻잎의 표면에 흰 솜털이 있는 것도 특징이다.
주로 장쑤 성의 타이후 호 부근에서 생산되고 있다. 100g의 차를 만드는데 2만~3만 개의 찻잎이 필요한 '황산모봉'은 황산풍경구 내 해발 700~800m 높이에서 딴 찻잎으로 만든다. 황백색의 솜털이 있고 싹이 참새 혀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작설'(雀舌)로도 불린다. 청향이 진하며 깊은 단맛이 난다.
이런 차는 워낙 귀해 높은 가격으로 경매에 부쳐진다. 중국차는 종류, 지역, 찻잎 가공도 등에 따라 등급이 달라진다. 그러나 크게 극품(상, 중, 하), 특급(1급, 2급), 1급, 2급, 3급, 보통 등 9등급으로 나눈다. 등급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극상품 차와 보통 차의 값 차이는 수백에서 수천 배에 이른다.
⑩ 무이암차 - 中 무이산 명차…
혀끝 맴도는 꽃향기 일품 무이암차는 중국 푸젠 성 무이산의 암장에서 생산되는 반발효차(청차)를 일컫는다. 1천500여 년 전인 남북조 시대부터 그 이름을 떨쳐 왔다고 알려졌다. 그만큼 중국 차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당·송 시대에는 공납품으로 주목받았고, 원나라 때에는 조정이 무이산 구곡계에 직접 어다원을 설치해 황족을 위한 어차를 제조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요즘은 진품 오룡차로 차인들로부터 극진한 사랑을 받고 있다.
▲ 중국 무이산 절벽에서 자라는 대홍포 차나무. 왼쪽에 '대홍포' 글씨가 보인다. 도림원 제공
무이암차는 독특한 암운과 품격, 그리고 몸 안에서 일어나는 '암골화향(岩骨花香)'이 으뜸이다. 암골화향이란 '바위에 핀 꽃의 향기'라는 뜻인데, 무이암차의 품격을 설명할 때 즐겨 인용된다. 즉, 은은하면서도 무게 있는 꽃향기가 오랫동안 혀끝에서 지속되고, 마신 뒤에도 온몸의 모공에서 발산되는 기운이 크고 사골처럼 탕의 밀도가 높다는 얘기다.
특히 녹색 잎의 붉은 가장자리는 7~8차례 우려내도 향이 없어지지 않을 정도다. 예부터 '명산에 명차가 난다'고 했다. 무이산은 36개의 봉우리와 9개의 계곡을 지녔다. 깎아지른 절벽과 기암괴석이 아름답다. 그 속에서 발산되는 기운에 중국 옛 사람들은 관심을 두었던 것이다. 필자도 뗏목을 타고 무이구곡을 흘러다녔다.
좋은 차 한 잔을 마시는 것처럼 세상사의 온갖 시름도 그 속에서 다 잊을 수 있었다. 무이구곡은 주희가 주자학을 완성한 곳이기도 하다. 이런 까닭에 우리나라에서 기 공부를 하는 사람은 으레 이곳을 찾는다. 성지와 다름없는 것이다. 무이암차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은 '대홍포(大紅袍)'로 알려졌다.
워낙 향이 그윽하고 기이하며, 맛이 순수하고 맑아 '암차지왕(岩茶之王)'으로도 불린다. 그러나 현재 무이산에 남은 대홍포의 어미 차나무는 고작 6그루에 불과해 연간 생산량이 200∼400g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대홍포를 흉내낸 하품이 많이 유통되고 있다.
특히 육계는 대홍포와 맛과 향이 아주 비슷해 일부 차 상인들이 이를 대홍포에 섞어 파는 사례도 있다고 하니 주의가 요구된다. 무이산은 대홍포 이외에도 명차를 많이 생산하고 있다. 철라한, 백계관, 수금구, 무이수선, 무이육계 등이 모두 무이산에서 출하되고 있다.
⑪ 홍차 이야기-1
찻잎 속의 효소 발효시켜 만들어 근래 홍차가 뇌졸중과 심혈관계 질병, 노화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홍차를 즐기지 않던 우리나라 사람들도 조금씩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필자가 지인들에게 홍차를 내어 놓았는데, 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홍차를 마시고도 홍차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 색깔이 검은 홍찻잎. 도림원 제공
왜 그럴까? 그동안 시중에서 쉽게 접한, 노란 라벨의 립톤과 실론티 캔 음료 외에는 홍차를 마셔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일 테다. 사실 찻잎 홍차는 국내에서 귀하다.
홍차는 녹차와 같은 식물의 찻잎으로 만든다. 그러나 찻잎을 따서 효소를 죽이는 녹차 제조공정과 달리, 찻잎을 따서 방치한 뒤 잎 속의 자체 효소가 산화작용을 일으켜 검게 만들어지도록 했다. 홍차는 85% 이상 완전 발효된 차를 일컫는다. 외형은 검은빛을 띤다. 하지만 우려낸 탕색과 찻잎은 붉다. 홍차로 불리는 이유다. 홍차는 상쾌한 떫은 맛과 등홍색(橙紅色)의 물색으로 세계 각국에서 가장 널리 음용되고 있는 차 중 하나다.
생산량도 전체 차의 70%를 차지하며 중국, 인도,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그리고 동부 아프리카에서도 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세계 홍차시장을 인도의 '다즐링'과 '아삼'이 장악하고 있어 정작 홍차의 종주국이 중국이라는 사실은 잊힌 상태다. 하지만 중국은 모든 차의 종주국답게 다양한 홍차를 생산하고 있다.
그중 기문(祁門) 홍차는 세계 3대 홍차에 꼽힌다. 중국인은 홍차를 마실 때 우유나 설탕, 향신료를 섞지 않고 홍차 자체의 향과 맛을 즐기는 편이다. 최초의 홍차는 17세기 초 푸젠 성에서 만들어진 '정산소종'이라고 한다. 유럽식 홍차도 중국에서 인도로 건너간 아삼지방의 발효차에 기원을 두고 있다. 유럽인은 초기 차에 설탕과 우유를 타서 마셨다.
동양에서는 차의 수색이 붉기 때문에 홍차(紅茶)라고 하지만 서양에서는 찻잎의 검은색 때문에 '흑차'(Black Tea)라고 불렀다. 참고로, 서양에서 일컫는 홍차(Red Tea)는 남아프리카의 루이보스라는 허브의 일종으로 만든 차를 뜻한다. 반면에 중국을 비롯한 동양에서 흑차라고 하면 보이차 종류의 발효차를 지칭한다.
⑫ 홍차 이야기-2
맛 살리려면 차 끓일 때 '골든룰' 지켜라 영국인은 동양과는 다른 차 문화를 갖고 있다. 보통 4차례 시간을 나눠 각각 다르게 블렌딩한 홍차를 마신다.
아침 차를 브렉퍼스트 티(Breakfast Tea), 정오에는 티 브레이크(Tea Break), 오후 2∼3시에는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 늦은 오후에는 하이눈 티(Highnoon Tea)로 구분한다.
여기서 애프터눈 티는 19세기 초 베드포드 공작의 부인, 안나가 만든 관습에서 유래했다. 간단한 점심 식사로 저녁 때까지 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무료한 공작부인이 오후 4시에 차와 버터를 바른 빵을 차려 놓고 친구들을 초대해 차를 마셨다고 한다.
홍차(사진)는 끓이는 사람의 손길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홍차를 끓일 때 꼭 지켜야 할 원칙이 있는데, 이를 '골든룰'이라고 한다. 먼저 좋은 찻잎(한 잔당 약 3g)을 선택한다. 깨끗한 물을 100도까지 펄펄 끓인다. 90도 이상의 물에서 폴리페놀의 중요한 성분이 가장 잘 우러나기 때문이다. 물은 산소가 많이 들어 있고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 좋다. 미네랄이 들어 있는 광천수보다 수돗물이 낫다.
찻주전자와 찻잔은 미리 데워 둔다. 1인당 3g 정도의 차를 넣는다. 이때 차를 우려내는 시간이 중요하다. 작은 잎이라면 3분, 큰 잎은 4~5분, 밀크티는 5분 정도가 알맞다. 홍차는 차를 제조하고 유통하는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게 발효된 것이 유래라고 한다. 찻잎에는 산화효소가 있어서 그대로 두면 자연 발효가 일어난다. 중국에서는 이 같은 자연 발효를 막기 위해 찻잎을 딴 즉시 가열하고 효소를 불활성화시켜 녹차를 만들었다.
그런데 중국 차를 배에 싣고 가는 도중에 적도의 뜨거운 태양열을 받은 찻잎이 저절로 발효됐고, 배가 유럽에 도착한 뒤 상자를 열었을 때 찻잎은 이미 새까맣게 변한 것이다. 하지만 버리기가 아까워 이를 물에 타 마셔 보니 오히려 맛이 더 좋았다고 한다. 홍차는 밀봉 포장과 낮은 상온에서의 보관이 원칙이다. 유통기한은 통상 3년으로 본다. 홍차 중에 일회용 티백과 아이스 티도 있는데, 이들은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뉴욕의 한 차 가게에서 상품 홍보를 위해 헝겊 주머니에 찻잎을 조금 넣어 발송했는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아이스 티는 미국 세인트루이스 박람회장에서 무더운 날씨 때문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자 차 상인이 즉석에서 얼음을 넣었는데, 그것이 불티나게 팔린 데서 유래한다.
⑬ 홍차 이야기-3
'기문·다즐링·우바' 세계 3대 홍차 홍차라고 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나요? 이렇게 여러 사람에게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홍차가 여러 가지냐?"는 되물음이었다. 차를 좀 안다는 사람도 기껏 '얼그레이'를 외칠 뿐이었다.
▲ 중국 홍차들. 왼쪽부터 의흥홍차, 전홍금아, 고수홍, 경전전홍, 정산소종. 도림원 제공
얼그레이는 그레이 백작에서 유래했다. '얼(Earl)'이 백작을 뜻한다. 우아한 베르가모트 향으로 맛을 낸 홍차로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먹은 뒤 유용하다. 얼그레이는 중국 기문홍차나 스리랑카 실론산 홍차에 베르가모트 기름 향료를 첨가했다. 진한 오렌지색으로 스트레이트나 아이스 티 형태로 마신다. 이 얼그레이는 중국에서 홍차 제다기술을 배운 영국의 얼그레이 2세 백작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홍차도 종류가 많다. 우리나라의 보성녹차나 쌍계차처럼 지역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 대부분인데, 중국에서도 안후이 성의 기문 현에서 생산한 '기문홍차', 윈난 성의 '전홍', 장쑤 성의 '의홍' 등이 유명하다. 중국 홍차는 또 제조방법과 품질에 따라 '공부홍차(工夫紅茶)' '소종홍차(小種紅茶)' '홍쇄차(紅碎茶)' 등 3가지로도 나눈다. 이 밖에 스리랑카산의 '우바', 인도산의 '다즐링'과 '아삼'이 있고, 캔 음료로 익히 알려진 '실론티'는 스리랑카의 옛 나라 이름에서 나왔다.
인도, 스리랑카, 케냐 등 홍차 주요 생산국들은 홍쇄차 한 가지만 내놓고 있지만, 중국은 거의 모든 홍차를 다 생산하고 있다. 중국 홍차의 대명사인 '기문(祁門)'은 선홍의 수색과 난초의 기품 같은 향이 느껴진다. 중국인들은 기문에 대해 더도 덜도 아닌 홍차의 표준이라고 생각한다. 기문은 다즐링, 우바와 함께 세계 3대 홍차로도 유명하다.
인도 벵골 주, 히말라야 고지대에서 생산되는 다즐링은 '홍차의 여왕' '홍차의 샴페인'으로 불린다. 스리랑카 중부 고산지대에서 재배되는 우바는 밝은 오렌지빛과 은은한 장미 향이 특징이다. 실론티는 감칠맛과 황금빛 찻물을 자랑하며, 영국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얼그레이는 중국산 홍차와 실론차를 섞어 만든 배합 차이다.
홍차는 배합 정도에 따라 크게 스트레이트와 베리에이션으로 나누거나, 스트레이트, 블렌딩, 플레이버리 3가지로 분류한다. 이 중 베리에이션은 설탕, 과일, 향신료, 우유 등을 첨가한 것을 일컫는다. 또 플레이버리는 향을 입힌 차라고 보면 된다. 배합차인 얼그레이는 향차에 속하기도 한다. 이 밖에 애플티, 망고티, 레몬티 등이 있다.
⑭ 원시림 야생차 -
은은한 감칠맛·수정 같은 광택 일품 해외여행을 다녀오면서 그곳의 명차를 사오거나 선물로 받았다는 사람들이 차 품평을 의뢰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때 명차로 판명나면 다행인데, 만약 가짜로 진단되면 필자도, 의뢰인도 낭패다. 그런데 감정 결과 진짜보다 가짜로 판명난 경우가 의외로 많았다.
▲ 중국 윈난 성의 원시림 야생차밭에 있는 거대한 야생 차나무. 도림원 제공
명차는 과연 무엇일까? 중국에서는 역사성과 전통성, 지명도, 인지도, 빼어난 향과 맛 등에서 모두 탁월한 차를 명차로 꼽는다. 물론 여기에는 제다 기술도 한몫한다.
특히 중국차는 일찍부터 제조법에 따라 녹차, 황차, 청차(우롱차 계열), 백차, 홍차, 흑차 등 6대 차류(茶類)로 구분했다.
이를 기준으로 천태만상의 또 다른 이름이 결합하면서 수백, 수천 종류의 차가 나왔다. 이러니 차 명칭과 종류를 구분할 때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 특히 차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그 혼란의 정도가 더 극심하다.
그럼에도 중국에서는 부동의 10대 명차로 동정벽라춘, 황산모봉, 용정, 여산운무, 무이암차, 안계철관음, 군산은, 백호은침, 기문홍차, 운남보이차 등을 꼽는다.
명차는 몇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중에서도 산지의 자연환경이 중요하다. 명차가 나는 곳의 계곡은 깊고 산세는 아름답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명차 산지는 윈난 성의 원시림 야생차밭이라고 필자는 감히 말하고 싶다.
야생차는 재배차나 보급차와 다르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밀림 속에서 오랜 세월 동안 자란 차나무에서 딴 찻잎을 원료로 삼고 있다. 그 야생의 공간에 서면 태고의 신비까지 느껴진다. 각종 야생동물과 약초, 야생화, 야생 버섯도 흔히 만날 수 있다. 자고로 차는 신령스럽다고 했다.
이 기이하고 신묘한 원시림 야생차가 내민 찻잎을 맛보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다. 녹차나 우롱차처럼 독특한 향을 뽐내지 않고, 백차나 홍차처럼 난향이나 꽃향도 내뿜지 않는다. 자신의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맛이 순하고 연하며, 자극적이지도 않다. 그럼에도 어떤 차로부터도 얻을 수 없는 감칠맛이 풍부하다. 짙게 우려도 그 맛이고, 엷게 우려도 그 맛이다. 잎을 가루로 낸 뒤 씹어도 그 맛이 여전히 남아 있다. 수정처럼 맑은 연초록의 광택이 나는 탕색과 맛은 30, 40차례를 우려도 똑같다.
⑮ 보이차 1- 생차와 숙차 - 잘 발효된 생차의 탕색은 홍갈색
차를 굳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보이차라는 말은 들어봤을 것 같다. 특히 중국차 중 아는 것 하나를 예시하라고 하면 으레 보이차를 든다. 둥근 모양의 형체를 많이 떠올린다. 그만큼 보이차는 국내에 잘 알려졌다. 하지만 많이 알려졌다고 해서 사람들이 진정으로 잘 아는 것은 아니다.
▲ 생찻잎으로 끓여낸 보이차. 도림원 제공
보이차란 과연 무엇일까? 보이차는 크게 생차와 숙차로 나뉜다. 생차(生茶)는 말 그대로 발효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고, 숙차(熟茶)는 발효가 진행된 것을 일컫는다. 생차는 우려내면 탕색이 담황색, 숙차는 흑갈색의 대춧빛이 감돈다. 그렇지만 생차가 오래 자연 발효되어 익으면 탕색이 홍갈색을 띠는데, 이때 와인과 비교해도 될 정도로 붉다.
따라서 보이차인데 탕색에 조금이라도 탁하고 먹물 빛이 감돌면 좋지 않은 제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질이 떨어지고 보관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이 탕색도 맑지 않고 냄새도 퀴퀴하다. 보이차는 6대 차 분류법에서 6번째인 '흑차'류에 속하며, 흑차류 중 보이차가 단연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흑차는 보이차뿐 아니라 후난흑차, 후베이노청차, 쓰촨변차, 광시성육보차 등이 있다. 윈난, 쓰촨, 후난 등에서 나는 여러 종류의 흑차 중에서는 윈난의 보이차를 대표 주자로 꼽는다. 보이차나무는 키가 큰 교목차나무와 키가 작은 관목차나무가 있다. 당연히 오랜 세월 동안 야생 상태에서 자란 교목차나무의 차가 농약과 비료도 주지 않고 자란 것으로, 재배종인 관목차나무에 비해 맛과 향이 우수하다. 찻잎도 교목차나무가 관목차나무에 비해 크고 두꺼우며, 잎의 가장자리가 톱니바퀴 모양이고 잎맥도 뚜렷하다.
보이차라고 해서 죄다 둥근 모양인 것은 아니다. 작은 사발 모양도 있고, 버섯이나 벽돌 모양도 있다. 또 산차도 있다. 산차는 우리나라 녹차처럼 찻잎이 그대로 살아 있는, 즉 압축하지 않은 상태의 제품이다. 산차의 반대가 긴압차다. 긴압차는 차를 증기에 쪄 압력을 가한 뒤 특정한 모양으로 만든다. 긴압차는 보관과 운반을 쉽게 하기 위해 압축했다고 보면 된다.
16. 보이차 2- 이름의 유래 - 세 가지 학설…
중국선 '푸얼차'로 불려 보이차는 '넓은 보(普)'에 '강이름 이() '가 붙었다. 중국에서는 '푸얼차'로 불린다. 그러나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래서 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도대체 보이차의 '보이'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보이차의 유래가 밝혀진 것이 없다. 다만, 세 가지 학설이 지배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첫 학설은 '원산지 지명설'이다. 보이차는 중국 쓰마오(思茅)지구의 푸얼(普) 현에서 처음 시작됐다고 하는데, 보이차라는 이름도 원산지를 표시하는 방법의 하나로 사용됐다는 설이다. 그러나 이 설은 보이차의 재배 지역이 푸얼 현에 국한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큰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 다양한 모양의 보이차. 도림원 제공
두 번째 학설은 '집산지 유래설'이다. 보이차는 주로 산에서 생산된 대엽종 차의 잎을 따 청모차로 만든 뒤 이를 다시 압착해 이런저런 모양으로 제작해 팔고 있다. 이처럼 생산지와 집산지가 다르다 보니 으레 집산지 중심으로 이름이 지어졌다. 그 집산지가 윈난성 남부의 대표적인 무역도시인 푸얼 현이었다는 설이다.
당시 윈난의 모든 보이차는 이곳에 집결된 뒤 재가공됐고, 이후 중국 전역과 외국으로 수출됐다고 한다. 이 때문에 "어디에서 온 차냐?"고 물으면 으레 '푸얼(에서 온)차'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학설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다. 세 번째 학설은 전설로부터 기인했다.
7세기 무렵, 중국 윈난 성 쓰마오와 시솽반나(西雙版納) 일대에 전염병이 들어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때 보현보살이 농부의 모습로 나타나 찻잎을 따서 물을 낸 뒤 먹여 백성들을 살렸다고 전한다. 그 찻잎이 보현보살의 귀를 닮아, 사람들은 이후 이 찻잎을 보현보살의 귀를 닮은 차(普耳), 즉 보이차로 불렀다고 한다.
이후 보이는 '귀 이'(耳)에 '물 수'(水)를 합쳐 보이(普)가 됐다. 불교에서 물은 자비를 뜻해 사람들이 이렇게 쓰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튼 보이차는 가장 오래된 차 종류 중 하나로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나 그 명성만큼이나 가짜 논란에 많이 휩싸인 것도, 또한 보이차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17. 보이차 3 - 선택과 음용 - 카페인 적어 수분 보충용으로도 좋아 보이차는 중국차 중에서 가장 인기가 높다.
특히 국내에서 보이차의 인기는 특별하다. 심혈관질환을 예방하고 항암에도 효과가 있다는 주장 때문이 아닐까 싶다.
보이차는 예로부터 황제를 비롯한 특권층의 정신수양 도구로 활용됐다. 건강한 생활을 위한 필수품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물론 지금은 계층에 상관없이 누구나 마실 수 있는 음료가 됐다. 그럼에도 아주 비싼 보이차는 여전히 이를 구매할 수 있는 사람만이 독점하고 있다.
▲ 탑처럼 높이 쌓아 놓은 보이차 덩어리. 도림원 제공
차는 사실 어려운 것이 아니다.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고 빈속에 부담 없이 마셔도 된다. 지인 한 분이 그랬다. 보이차를 계속 마시니 속이 안 좋더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것 같다. 그가 마신 것은 보이차가 아니라 녹차였을 수 있다는 얘기다. 녹차는 찬 성분이 강해 속이 좋지 않거나 음기 체질인 사람에게는 잘 어울리지 않는 속성이 있다. 특히 냉녹차라면 더욱 그렇다. 필자도 같은 경험을 했다.
가끔 보이차에 카페인이 있는지를 물어오는 사람들도 있다. 자료에 따르면 차에 들어 있는 카페인은 커피의 카페인처럼 단독이 아니라 카데킨, 데아닌 등과 결합된 형태로 존재한다. 특히 보이차는 대엽종 찻잎 중에서 대개 적당히 자란 잎으로 만들기 때문에 카페인의 농도가 녹차에 비해 훨씬 적고, 후발효 과정을 통해서 그나마의 카페인도 더 약화된다. 카페인에 예민한 사람이라도 보이차는 별 영향 없이 마실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보이차는 운동 전후의 수분 보충 용도로도 애용된다.
보이차는 후발효 식품이다. 이렇다 보니 와인처럼 오래 묵을수록 가격이 비싸진다. 오래된 차가 비싼 것은 그만큼 향과 맛이 좋아서다. 따라서 아무리 오래된 차라도 탕색이 탁하고 향이 신선하지 않다면 옳은 가격을 받기 어렵다. 이런 제품이 바로 가짜 보이차다. 따라서 보이차를 고를 때 향이 신선한지, 혹은 향긋한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곰팡이 냄새가 조금이라도 난다면 원래 좋지 않았거나, 보관이 잘못된 제품일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지인 중에 한 분은 소타차, 보이생차를 표일배 차통에 넣어 다니며 상복한다. 그야말로 차를 제대로 즐기는 사람이라고 하겠다. 사실 차는 개인 취향에 따라 가장 마시기 좋은 방법으로 마시면 된다.
18. 자사호 1 - 숨쉬는 찻그릇
- 발효차 우려 낼 때 쓰는 소형 찻주전자 차를 마실 때 자사호와 잔은 필수도구다.
그중에서 '자사호(紫沙壺)'는 차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다소 어색한 용어일 것 같다. 한자어 그대로 해석하면 '자줏빛 모래로 만든 병'이다. 이른바 보이차와 같은 발효차를 우려낼 때 사용하는 소형 찻주전자라고 보면 된다.
▲ 중국에서 생산된 자사호. 모양과 색깔이 다양하다. 도림원 제공
여기서 '자사'는 중국 장쑤성 이싱(宜興)지역의 딩산(丁山)에서 생산되는 자줏빛 점토다. 이싱지역은 지금도 자사 흙 가공공장과 도자단지로 유명하며, 해마다 수많은 차인과 관광객이 찾고 있다.
자사는 다른 흙에 비해 철분 함량이 높다. 특히 양화철, 석영, 운모, 고령토 등과 섞여 구워지는 과정에서 다양한 색을 연출한다. 자사호는 철분 함량이 높을 수록 색깔도 짙게 나타난다. 자사를 흔히 '오색토' '오복토'라는 말로도 바꿔 부르는데 크게 청록색, 적홍색, 황색, 흑색, 백갈색 등이 나타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자사의 색상이 최소한 200가지는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사호는 유약을 바르지 않고 1천100∼1천270도의 고온에서 굽는다.
유약을 바르지 않았으니 숨을 쉴 수 있는 기공이 많다. 전문가들은 자사호의 공기 호흡률이 도기와 자기의 중간쯤이라고 추정한다. 수분 흡수율은 대략 2% 이하다. 말 그대로 숨쉬는 그릇인 것이다. 국내에 보이차가 유행하면서 자사호를 가진 차인이 많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들이 보유한 자사호 중에는 자사호라고 말할 수 없는 것도 많다. 한 지인이 애지중지하던 자사호 감정을 의뢰해 살펴보니 자사호가 아니었다. 장식품으로는 쓸 만했지만 흙이 좋지 않아 차를 마시기에는 부적절하다고 설명해 주었다. 색깔과 모양이 비슷하다고 다 자사호인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자사로 만든 것만이 자사호다.
좋은 자사로 만든 자사호라야 찻물의 맛과 신선도가 최적으로 유지된다. 특히 자사호는 오래 사용할수록 좋은 다기가 되는데, 심지어 하나의 차를 하나의 자사호에만 사용했다면 자사호에 밴 그 차 특유의 향과 맛 덕분에 그냥 맹물을 부어도 여전히 그 차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19. 자사호 2 - 선택과 길들이기 -
소리 맑고 균형감 있는 것 고르도록 자사호(紫沙壺)는 주전자라고 하기에 너무 작다. 차를 잘 모르는 사람은 이렇게 작은 자사호와 잔을 보면서 아이들의 소꿉을 떠올린다. 하지만 차의 고향인 중국에서는 자사호뿐 아니라 거의 모든 다기를 작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차는 따뜻한 상태로 자주 마셔야 그 고유의 향과 맛을 쉽게 느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인데, 다기가 너무 크면 이런 재미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작은 그릇에 물을 자주 바꿔 주면서 차맛을 보면 느낌이 다르다. 명차라면 특히 더 그렇다.
▲ 자사호 재료인 중국 광물의 다양한 색상. 도림원 제공
그러면 어떤 자사호를 골라야 할까? 균형감부터 살펴야 한다. 무게 중심이 분명하고 안정감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몸체에 비해 뚜껑이 크고, 손잡이가 작다면 선택하지 않는 것이 좋다. 또 출수 부분이 몸체에 비해 너무 높거나 낮지 않아야 한다. 연결 부분이 자연스럽고 결함이 없는지도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뚜껑을 열고 닫을 때 나는 소리도 선택 기준이 된다. 깨지거나 균열이 간 제품이라면 파열음이나 둔탁한 소리가 난다. 흙으로 만든 것은 무엇이든지 소리가 맑아야 한다. 특히 철분 함량이나 소성 온도가 높은 상태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쇳소리가 높고 크다.
뚜껑은 정밀해야 한다. 특히 각진 자사호는 어느 방향에서 닫아도 정확히 물려야 좋은 제품이다. 용량은 120~160㏄짜리가 알맞다. 자사호를 구입했다면 길들이는 과정도 필요하다. 이를 중국사람들은 '양호(養壺)'라고 부른다. 그릇을 길들인다는 얘기다.
옛사람들은 좋은 자사호를 구입하면 일부러 대가들에게 맡겨 길들이는 경우도 있었다. 먼저 깨끗한 솥에 자사호를 넣고 끓인다. 물이 끓으면 한 줌의 찻잎을 넣고 30분가량 함께 삶은 뒤 꺼내 말린다. 이렇게 하면 새 자사호에 쌓인 자사 가루가 밖으로 배출돼 기공이 잘 열린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자사 광산이 많이 문을 닫아 좋은 흙을 구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만큼 좋은 자사호도 없다는 얘기다.
20. 명차의 조건 - 맛·색·향·모양 '표준화' 필수 -
명차는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좋은 차'를 뜻한다. 하지만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고 다 명차가 되는 것은 아니다. 명차로 인정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에 걸맞는 품질의 표준이 요구된다. 중국 명차가 특히 더 그렇다. 차 종류와 품질 등급에 따라 맛, 색, 향, 엽저(잎의 아랫부분) 모양 등이 일정하다.
실제로 중국 차 생산자들은 표준을 매우 중시하며, 이에 가까운 차를 만들기 위해 많이 노력을 기울인다. 표준은 해당 차가 도달할 수 있는 일종의 경지 같은 것으로, 차 생산자들의 목표가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차는 아직 이렇다 할 표준이 없다. 그렇다 보니 해외에서 명품으로 인정받을 기회가 거의 없다. 우리나라 찻잎이 일본 것보다 낫다고 하더라도 정작 해외 시장에서 인정받으려면 일정한 표준이 요구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표준의 실패'는 국내 차가 해외시장을 개척하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흔히 '○○녹차'라고 부르지만, 이는 차 맛이 아니라 생산지를 알리는 브랜드에 불과하다. 그러니 스스로 명차라고 주장할 수는 있어도, 해외에서도 유통되는 명차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우리나라 녹차는 다른 발효차에 비해 관세가 훨씬 높다. 관세 장벽에 의해 보호 받는 차인 셈이다.
정부가 이처럼 관세 정책을 통해 국내 녹차 산업을 육성하는 데도, 지방정부는 또 별도의 방식을 통해 녹차 농가를 지원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녹차의 경쟁력은 쉽게 강화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우리 녹차의 최대 경쟁자는 같은 종류의 중국 차가 아니라 커피라는 얘기도 나온다. 세계 차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홍차나 보이차 같은 발효차다.
그러나 우리나라 발효차는 팔지 못한 녹차를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일부 다원이 중국 발효차에 버금갈 정도의 우수한 제품을 만들기도 하지만, 아직은 그 수가 제한적이다. 특히 색, 향, 맛, 모양 등에서 두루 표준화된 발효차는 찾기가 어렵다.
국제 차 문화 행사를 진행하다 보면, 우리나라의 차 문화는 차 자체보다 차를 마시는 형식을 더 중시한다는 지적을 받을 때가 많다. 즉, 한국은 차를 마실 때도 예절을 중시하는 것이다. 반면에 중국은 차 맛을 다양화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중국을 거울 삼아 우리도 명품 차를 많이 생산했으면 좋겠다.
21. 후난성 흑차 - 찻잎 거칠고 맛 탁한 '후 발효차'
흑차는 찻잎이 두껍고 맛이 강해 제다 과정을 거쳐 오랫동안 묵히거나 속성으로 발효시켜 만든다. 이른바 후 발효차다. 그중 국내에서 윈난 성 보이차 다음으로 흔하게 유통되는 것이 후난 성 긴압차 종류다.
▲후난성 흑차
이는 품질이나 가격 면에서 보이차에 못 미친다. 찻잎이 거칠고 쉽게 가루가 생겨 차맛이 까칠하고 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최근 주목 받는 이유는 뭘까? 바로 보이차에 덧씌워진 짝퉁 때문이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보이차 전반에 대한 불신이 강한 것이다.
이렇다 보니 차라리 품질이 조금 못하더라도 안전한 차를 마시려는 틈새시장이 생겼다. 그 틈새에서 시선을 끌고 있는 것이 후난 성 긴압차 종류다. 긴압차란 찻잎에 수증기를 가한 뒤 틀에 넣고 압착하여 일정한 형태로 만든 차다. 그중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천량차(千兩茶)다.
이 차는 후난 성 창사 시 안화 현에서 주로 생산된다. 높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큰 강이 흐르는, 그리고 늘 안개로 뒤덮여 차를 생산하기에 좋은 지역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문제는 비가 자주 내려 차를 말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악조건에서 생겨난 것이 천량차 특유의 제조 공법이다. 찻잎을 따 적당히 발효시킨 뒤 솔나무 장작으로 잘 건조시켜 변질을 막았다.
필자도 이곳을 찾아 지역사람들이 천량차를 만드는 과정을 목격했다. 황토 바닥에 대나무 살을 엮어 깔아 놓고 나무 지렛대로 누른 뒤 나무망치로 두드려 다지고, 다시 발로 눌러 마치 죽부인처럼 생긴 차 덩어리를 만드는 과정은 매우 독특했다. 이때 무게가 대략 1천 냥(37.5㎏)가량 나오는데, 천량차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
그러나 덩어리가 커 이를 잘라 사용할 때 가루로 버리는 분량이 너무 많았다. 이런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1958년부터 1∼2㎏짜리의 벽돌 모양으로 만들었고, 그것이 흑갈색의 '흑전차'다. 미전차, 청전차라는 것도 있다. '미전차'는 완전 발효시켜 압축한 홍차 긴압차다. 청전차는 건조와 발효를 거쳐 압축했다
22. 대만 우롱차 - 국내에서 '동방미인'으로 더 알려져
한 농부가 차나무를 보고 찻잎을 따려고 다가갔다. 그런데 검은 뱀이 차나무를 휘감고 있는 것이 아닌가. 농부는 뱀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심스럽게 찻잎을 땄다. 나중에 찻잎을 달여 마셔 보니 맛이 기가 막혔다. 이후 누가 물어보면 '뱀차'라고 얘기했다.
▲동방미인
그 차가 바로 중국 청차(靑茶)의 대명사인 우롱차(烏龍茶)다. 여기서 우롱을 뜻하는 오룡은 '검은 용'으로 직역되지만, 중국에서는 흔히 뱀을 일컫는다. 우롱차는 세계적인 명차다. 그중에서도 대만 우롱차를 최고로 친다. 연중 고온다습하고 운무에 늘 젖은 대만은 청차의 생장 조건에 가장 좋은 환경이기 때문이란다.
물론 대만 우롱차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등급이 있다. 그중 최고 브랜드는 '백호오룡(白毫烏龍)'이다. 찻잎이 부드럽고, 뒷면에 흰 솜털이 송송 나 있어 붙은 이름이다. 대만에서는 '팽풍차(膨風茶)'로도 불린다. 즉, '허풍을 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차는 봄에 만들어 파는데, 한 농부가 우연한 기회에 벌레 먹은 찻잎으로 여름차를 만들어 북부지방에서 팔았다. 독특한 향과 맛 때문에 인기가 아주 좋았다. 그는 고향에 돌아와 이를 자랑했으나 아무도 믿지 않았다고 한다. 백호오룡은 우리나라에서 '동방미인(東方美人)'으로 더 잘 알려졌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이를 즐겼는데, 차를 우릴 때 하늘거리는 찻잎이 동방의 미인을 닮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동방미인의 찻잎은 아주 작다. 소록엽선이라는 벌레가 잎에서 줄기로 공급되는 수분을 쪽쪽 빨아먹어 찻잎이 잘 자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신 벌레의 진액이 찻잎에 영향을 주어 상큼한 과일향이 난다.
따라서 소록엽선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매년 6월 10∼20일 채취된 찻잎으로 만든 차가 가장 비싸게 팔린다. 제다는 채엽 후 햇볕에 30∼40분 말린 뒤 덖고 숙성시킨다. 이때 발효도가 60∼70%로 보통의 청차보다 높다. 청차는 통상 중간 정도 발효시켜, 흔히 '반발효차'로 분류된다.
23. 다중락 - 녹·청·백차류 밀봉해 보관
차는 우려 마시는 음료다. 하지만 종류에 따라 우리고 마시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녹차라면 섭씨 100도에서 펄펄 끓은 물을 곧바로 붓지 말고 조금 식혀 우리는 것이 좋다. 청차나 백차 종류라면 끓는 물을 곧바로 사용하되 12초가량 짧은 시간에 우려야 제맛을 얻을 수 있다.
또 홍차는 뜨거운 물에 2∼3분 오래 우려 진하게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고급 홍차라면 오히려 짧게 우리되 횟수를 10차례 이상으로 확대하는 것이 좋다. 흑차류는 끓는 물을 부어 차가 충분히 우러났다고 생각될 때 마시면 된다. 끓인 차는 냉장고에 넣어 조금씩 꺼내 마셔도 상관없다.
차를 보관할 때에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녹차, 청차, 백차류는 완전히 밀봉해 항아리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보이차 종류는 오래 묵힐수록 좋지만 일정한 보관 장소를 정해 직사광선을 피하고 통풍이 잘되도록 해 잡냄새가 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온도와 습도 조절도 중요하다. 매사에 지나치게 높거나 낮아서 좋은 것은 없듯이 차도 적당한 온도와 습도가 절실히 필요하다.
별도의 다실이 없다면 발코니 정도가 알맞겠다. 그러나 음식 냄새나 향, 화공약품, 특히 세제나 살충제 주변에 두면 곤란하다. 차는 원래의 포장 상태가 가장 좋다. 하지만 포장을 뜯은 상태라면 죽순 껍질로 감싸야 오래 보관할 수 있다. 같은 종류의 차는 서로 포개어 보관한다. 용기에 넣어 보관하려면 공기가 잘 통하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대바구니, 옹기, 자사호가 있다면 물론 안성맞춤이다.
차를 구매했을 때에는 그 차에 대한 이력카드(구입 혹은 생산 일시, 가격, 차 산지, 봄 차인지 여름 차인지 등의 특징)를 작성해 함께 보관하는 것도 요령이다. 거듭 말하지만 차는 커피와 더불어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음료다. 늘 바쁜 일상이지만 따듯한 차 한 잔과 따듯한 말 한 마디로 서로에게 덕담을 하며 행복을 나누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세월 따라 익어 가는 차 향기 속에 다중락(茶中樂), 즉 '차 속의 풍류'를 즐겨 보자.
<끝> 부산일보
2014-04-11
이근주 한중차문화연구회장
이근주(55)는 한중차문화연구회장 겸 부산차문화진흥회 부회장이다.
박종환·김기원 선생을 통해 다도에 입문했고 금당 최규용 선생과 허주 스님에게서 황궁다법을 전수받았다.
검도 8단의 유단자이기도 하다.
dorimw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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