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세계음식사'
1. 빵
‘빵’ 이라는 말은 포르투갈어 빠오(pão), 프랑스 말로는 뺑(pain)에서 유래한 말이다.
15세기 이후 일본에는 포르투갈 상선이 출몰했는데, 1549년 예수회 신부 프란시스코 사비에르가 일본 쿠슈 가고시마에서 성찬할 때 ‘빠로’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한다. 1912년 비로소 ‘빵’ 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곧 우리나라에서도 빵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빵 대신 사용한 말로 ‘면보’가 있다. 이광수의 ‘흙’을 보면 ‘남은 면보에다가 버터를 득득 발랐다.‘ 라는 표현이 나온다. 중국어로 빵이 面包(Miànbāo)이다.
가. 밀
밀은 여름 온도가 너무 높으면 자라지 않는다. 3~14도인 곳에서 잘 자란다. 유럽이나 아시아 초원지대 스텝1에서 잘 자란다. 인류 최초의 문명이 일어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재배하기 알맞은 작물이었다.
그래서 여름에 무덥고 비가 많은 동아시아 쪽에서는 쌀-밥과 국수-을 먹게 되고, 서아시아나 유럽에서는 밀-빵-을 주로 먹게 되었나보다.
나. 효모
효모를 넣은 빵은 기원전 2천년경 이집트에서 먹기 시작해서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기독교 전파에 따라 그리스로 퍼져나갔다고 한다. 효모는 꽃 끌샘이나 과일껍질 처럼 당분이 많은 곳에서 자라는 곰팡이다.
270년, 로마사람들은 강제로 그리스 기술자를 데려와 빵 만드는 기술을 확보했다. 324년에는 밀과 비슷한 엠머밀(emmer) 빵 대신 밀빵이 주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다. 생일 케이크
13세기, 독일 농민들에게는 아이들 생일날 새벽에 케이크에 촛불을 붙이고 저녁때 끄는 풍습이 이었다. 19세기 중반 무렵 서유럽 귀족들이 이 풍습을 따라 하게 되었고, 19세기 말에 이르러 세계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2. 치즈
가. 커드
젖에 있는 단백질이 산을 만나 응고한 응어리를 일컫는다. 우유를 마시면 우유속 카제인(casein)이 위산을 만나 커드가 된다. 치즈를 만드는데 쓰인다.
나. 레닛 rennet
우유를 굳히는 효소로 치즈를 만드는데 쓰인다. 3~6개월된 송아지의 4번째 위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다. 치즈
고대 로마시대에는 카제우스(caseus)라고 불렸고, 이것이 cese로 되었다가 다시 chese, cheese라는 말로 정착되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잘 짜인 로마의 도로망을 따라 보병군단 레기온의 수분 적고 딱딱한 로마치즈 카제우스 (caseus)가 퍼져나갔다.
중세시대에는 페스트 환자의 건강회복에 기여하기도 했는데, 수도원을 통해 다양한 제조기술이 전수되었다.
공장에서 만든 치즈는 1815년 스위스에서 시작했다. 슬라이스 치즈는 1950년에 만들어졌고 우리나라는 1975년에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젖을 낙(酪)으로, 요구르트는 소(酸), 액체치즈는 제호(醍醐)라고 불렀다.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치즈와 낙농제품을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이나 산림경제에 기록2되어있다.
3. 국수
국수는 누들(noodle), 파스타(pasta), 우동(うどん), 소바(そば), 포(pho), 몐티아오(麵條) 등 여러가지 이름을 갖고 있다. 전한 시대 실크로드를 따라 서아시아에서 들어온 밀가루로 면(麵)을 만들었다. 이때 면은 밀가루로 만든 모든 음식을 듯했다. 그 면(麵) 가운데 국수 몐티아오(麵條)가 다시 실크로드를 타고 동에서 서로 이동한 것이다.
가. 밀
쌀로 떡이나 국수를 만들어 먹기도 하지만, 밥도 지어먹는다. 하지만 밀을 재배하는 곳에서 밀밥을 지어먹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밀은 빵 아니면 국수다. 국수가 들어가기 전까지는 빵이었다. 문화에 기인한 것이라기 보다는 밀 자체의 특성 때문이라고 한다.
밀은 겉껍질이 딱딱한데 비해 속이 너무 부드러워 쌀처럼 껍질만 깎아내기 어렵기 때문에 부셔버린 다음 껍질을 제거해 밀가루를 얻었던 것이다.
나. 젓가락
젓가락은 쿠이아쯔 쾌자(筷子)라고 한다. 쾌(筷)라는 글자를 보면 대 죽(竹)에 빠를 쾌(快)가 더해져있다. 국수를 빨리 먹을 수 있도록 대나무로 젓가락을 만든데서 나온 글자다.
다. 짬뽕
1899년, 복건성 복주 출신 진평순이라는 사람이 나가사키에서 식당+여관을 창업했다. 이때 중국에서 유학온 학생들에게 텅러우쓰(湯肉絲麵)를 팔기 시작했는데, 일본사람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밥먹는다(즈판)’는 말을 복건성 사투리로 쟈뽕이라고 했다는데, 이것이 일본사람들 귀에 ‘쟌뽕(ちゃんぽん)’이라고 들려 탕러우쓰를 짬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라. 라면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이주한 중국인들의 중화요리점의 대표메뉴였다. 2차세계대전 이후 일본군이 귀국하면서 다시 인기를 끌었는데, 1940년대 식량위기가 닥치자 미국산 수입밀가루로 만든 라면가게가 늘어났다. 이때는 지금 우리가 흔히 먹는 인스턴트 라면은 아니었다.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은 1958년 8월, 닛신 치킨라면이었고, 우리나라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은 1963년에 나온 삼양라면이다.
4. 소시지 / 중세 유럽의 농민 음식
가. 소금에 절였다 salsus
소시지 sausage의 어원은 라틴어로 ‘소금에 절이다’는 뜻의 salsus다. 이것이 프랑스 북부로 가서 sussiche가 되고 영국으로 가서 sausage가 되었다고 한다.
유목민들은 특별한 날이 아니면 풀만 먹고 젖과 털을 제공하는 동물을 잡지 않았다. 어쩌다 잡게 되면 염장, 훈연, 건조…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저장해 두고두고 먹었다.
특히 하층민들은 살코기 먹기가 어려웠다. 부산물을 구해 소시지를 만들어 먹음으로써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했다. 버려진 골, 혀, 귀, 염통, 콩팥, 코, 창자, 피 등을 잘게 썰고 소금에 버무려 창자에 넣고 말리거나 훈제해 소시지를 만들었다.
“여기 기름과 피를 가득 넣은 염소의 창자 몇 개가 화덕 위에 있습니다…”
오딧세이아에 보면 안티노스가 거지로 분장한 오딧세우스에게 소시지를 권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 프랑크 소시지와 비엔나 소시지
그리스의 소시지가 이탈리아로, 또 라인강유역의 독일인과 에스파냐, 러시아로 전해져 농노들의 귀중한 겨울식량이 되었다. 16, 17세기에 독일 프랑크와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전해져 유명한 프랑크 소시지, 비엔나 소시지가 나올 수 있었다.
프랑크 소시지는 돼지고기로 만든 10센티미터 정도의 소시지다. 18세기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에 의해 전해진 이 소시지는 1853년 핫도그로 다시 태어난다.
이에 비해 비엔나 소시지는 소, 돼지, 닭, 토끼, 생선등 여러가지 재료로 만든다. 대체로 송아지 30+돼지 40+ 토끼고기, 돼지 기름 약간의 비율이다. 줄줄이 이어진 모습이 특징이다.
한편 독일계 유대인들(아쉬케나지 Ashkenazi Jews)의 소시지는 돼지고기를 넣지 않고 순 쇠고기로 만든다.
5. 사탕
사탕은 설탕으로 만들고, 설탕은 사탕수수 즙으로 만든다. 사탕수수는 강수량이 1,200밀리리터 미만이고 연중기온이 20도 이상인 지역에서만 재배할 수 있다. 열대, 아열대 기후에서만 자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탕 만드는 기술 역시 더운 인도의 고대문서 ‘마하바샤(기원전 400~350년)’에 남아있다. 산스크리트어로 샤르크라(sharkara)라고 했다. 이 말이 페르시아로 가서 샤카르가 되었고 영어로 슈가(sugar)가 되었다.
알렉산더 대왕을 비롯한 그리스 사람들은 사탕수수를 보고 ‘꿀을 만드는 갈대’ 라고 했고, 사탕을 보고는 스톤 허니(stone honey)라고 했다3. 인도의 사탕이 알렉산더대왕에 의해 그리스로 전해졌고, 1세기에는 로마제국으로 전파되었다.
본격적으로 유럽에 퍼진 것은 십자군 전쟁 때였다. 유럽의 설탕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카리브섬 일대에 유럽으로 실어나르기 위한 사탕수수재배 농장이 세워졌고, 설탕을 만들고난 찌꺼기로 만든 럼주 또한 인기를 끌게 되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솜사탕은 1897년 미국의 윌리엄 모리슨이 전동기를 개발해 1904년 세인트루이스 박람회에 출품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6. 피자
최초의 피자는 1738년, 인구 40만으로 이탈리아 최대 도시였던 나폴리에서 만들어졌다. 식물성 기름, 돼지 비계, 소기름, 치즈, 토마토, 앤초비 등으로 만든 피자는 가게에서 만들어 거리에서 파는 대중 음식이었다. 1843년, 뒤마는 그의 작품 ‘코리콜로’ 에서 “나풀리 빈민들은 겨울에 피자로 겨우 끼니를 해결한다” 라고 썼다고 한다.
가. 마르게리타 피자
마르게리타는 이탈리아 왕국의 2대 국왕 움베르토1세의 왕비 이름이다. 1889년 나폴리 피자 전문점 주인 돈 라파엘 에스폰츠가 초록-하양-빨강의 이탈리아 국기를 본뜬 피자를 국왕 부부에게 선물한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바질과 치즈, 토마토로 각각 이탈리아 국기의 삼색을 표현했다.
나. 미국 / 피자의 대중화
1940년대까지 미국에서 피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태리계 미국인들만 먹는 음식이었다. 미국인들은 피자를 ‘토마토 파이’ 라고 불렀다. 그러다 2차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에 주둔했던 미국이 귀국하면서 이태리 음식 붐이 일었다. 시카고 피자는 3센티미터에 이르는 두께를 자랑한다. 피자 헛은 피자의 대중화를, 도미노 피자는 피자 배달시대를 열었다. 미국 사람들은 “이탈리아인이 미국에 피자를 가져왔다면, 미국은 세계에 피자를 소개했다” 고 말한다.
급기야 1984년, ‘원조 나폴리 피자 협회’가 결성되고, 나폴리 피자는 이래야 한다는 기준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나폴리 피자는 땔감을 사용하여 485도로 가열된 밀폐된 오븐에서 60~90초 구운 것으로, 반죽은 손으로만 해야하며, 다른 도구를 사용해선 안된다. 피자 빵의 직경은 35센티미터를 넘으면 안되며, 중앙의 두께도 1/3센티미터를 넘으면 안된다.
7. 케밥 Kebab / 오스만 제국이 퍼뜨린 음식
아람어로 카밥인 케밥은 고기구이를 말하며, 다양한 고기를 사용한다. 주로 양고기를 사용한다. 오스만 제국이 퍼뜨린 이 음식은 흑해, 마르마라해, 에게해, 지중해에 둘러싸인 터키, 그리스(발칸반도), 아프리카 세 대륙에 걸쳐있는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
케밥은 한 가지가 아니다. 여러가지 종류가 있는데, 되뇌르, 이쉬켄데르, 쿠유, 쉬쉬 네 가지가 유명하다.
-되뇌르Doener :
대표적인 케밥. 철봉에 고기를 둘둘 감아 빙빙 돌리며 구운 다음 얇게 썰어낸다. 고기를 감은 쇠막대 맨 위에는 염소 엉덩이 기름을 꽂아 놓는데, 이렇게 하면 기름이 흘러내리면서 고기로 스며들어 맛을 낸다.
-이쉬켄데르Ishkender :
되뇌르에 요그르트와 토마토 소스를 더한 것.
-쿠유Kuyu :
양을 잡아 가죽은 벗기고 내장은 씻어 진흙을 발라 통구이한 것.
-쉬쉬ShiSh :
양고기 각 부위를 얇게 썰어 꼬챙이에 꿰어 숯불로 구운 것. 중국에서는 추안串, 한국은 꼬치, 일본은 구시串라고 부른다. 고기조각을 꼬챙이에 꿴 것 처럼 생긴 글자 串는 읽을 줄 몰라도 누가봐도 꼬치구이 처럼 생긴 것이 재미있다.
8. 초콜릿
기원전 2천년경, 중아아메리카, 멕시코 남부에서 재배하기 시작했다. 13세기 북부 멕시코 수렵민족인 아즈테카족이 멕시카를 건설했는데, 이들은 주식으로 옥수수를, 음료로는 카카우아툴을 먹었다.
원래 유럽 사람들은 카카오의 쓴 맛 때문에 잘 먹지 않았지만, 한 카톨릭 선교사가 설탕을 넣어 초코라떼chocolate를 마시고부터 초콜릿을먹기 시작했다. 17세기에 스페인 공주 Anne과 Maria Theresea d’Autriche가 루이 13세와 14세의 왕비로 오면서 초콜릿을 전파했는데, 이때 초콜릿은 chocolate soup로 불렸다.
1828년에는 반 호텐이라는 네델란드 화학자가 오늘날과 같은 고형 초콜렛을 발명했다. 그때까지는 초콜렛이라고 해도 핫쵸코 같은 액체 음료였다. 그뒤 미국에서 대량생산이 시작되었고 허쉬가 석권하게 되었다. 우리가 이렇게 들고 다니며 쵸콜릿을 즐길 수 있게 된 것도 산업화와 과학발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프리카에 카카오농장이 만들어진 것은 19세기였다. 지금도 아프리카에서는 25만명에 가까운 어린이들이 카카오농장에서 착취당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쌉싸래하고 달콤한 초콜릿을 즐기는 동안 아이들은 헐값에 노동력을 팔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9. 커리
‘커리’는 타밀어로 ‘식사’라는 뜻이다. 타밀어는 우리말과 큰 유사성을 갖고 있다. 내 생각이지만, 이 커리라는 말이 ‘식사’를 의미한다면, 우리나라의 먹을 ‘거리’의 거리, 또는 ‘끼니’와 혹시 관련이 있지는 않을까?
커리에는 무라야 코엔지니 잎, 코리앤더 열매, 후추, 계피, 육두구, 커민, 딜 등 다양한 재료가 쓰인다. 이것은 인도, 남부아시아가 이슬람과 몽고의 침입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랜 세월 인도음식에 익숙해진 영국인 리델이 이 커리소스에 주목하게 되었고, ‘인도의 국내경제와 요리책(1798)’을 내면서 영국에 이 커리를 소개했다. 대중화된 것은 C&B(Cross & Blackwell)에서 C&B 커리 파우더를 출시하면서 부터 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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