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召命〕굽은 나무가 산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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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속담에 ‘등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선산 옆에 심어진 소나무들 가운데 가장 곧고 잘생긴 나무가 제일 먼저 잘려서 서까래 감으로 쓰입니다. 하지만 등 굽은 소나무는 아무 쓸모가 없어 그대로 두기에 큰 나무로 자라서 후손들이 선산을 찾을 때 그늘이 되고 주변의 풍치도 살리게 됩니다. 굽고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키는 큰 고목이 되며, 혹 목수 눈에 띄어 잘리더라도 대들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장자> 소요유(逍遙遊) 편에는 장자와 혜자가 못생긴 나무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내게 큰 나무가 있는데 사람들은 그걸 가죽나무라고 하더군요. 줄기는 울퉁불퉁하여 먹줄을 칠 수가 없고 가지는 비비 꼬여서 자를 댈 수가 없소. 길에 서 있지만 목수가 거들떠보지도 않소. 그런데 선생의 말은 이 나무와 같아 크기만 했지 쓸모가 없어 모두들 외면해 버립디다.”
그러자 장자가 말했다. “선생은 너구리나 살쾡이는 아실 테죠. 몸을 낮게 웅크리고서 놀러 나오는 닭이나 쥐를 노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높고 낮은 데를 가리지 않다가 결국은 덫에 걸리거나 그물에 걸려서 죽지요. 그런데 검은 소는 크기가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아 큰일은 하지만 쥐는 잡을 수가 없소. 지금 선생에게 큰 나무가 있는데 쓸모가 없어 걱정인 듯 하오만 어째서 아무것도 없는 들판에 심고 그 곁에서 마음 내키는 대로 한가로이 쉬면서 그 그늘에 유유히 누워 자 보지는 못하오.」장자는 못생기고 쓸모 없는 큰 나무를 예로 들어 세상 모든 사물은 나름대로 다 가치가 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장유(張維)라는 사람은 그의 문집인 <계곡집(谿谷集)> ‘곡목설(曲木設)’에서 비슷한 말을 합니다. 「어떤 사람이 집을 짓기 위하여 나무를 베려고 산에 갔는데 우거진 숲속의 나무들을 다 둘러보아도 대부분 꼬부라지고 뒤틀려서 쓸 만한 것이 없었다. 그러다 한 그루의 나무를 발견했는데 정면에서 바라보나 좌우에서 보나 분명히 곧았다. 쓸 만한 재목이다 싶어 도끼를 들고 다가가 뒤쪽에서 보니 형편없이 굽은 나무였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아, 재목으로 쓸 나무는 보면 쉽게 드러나고 가늠하기 쉬운 법이다. 그런데 이 나무를 세 번이나 보고서도 재목감이 아니었다는 것을 몰랐다. 그러니 겉으로 후덕해 보이고 인정 깊은 사람일 경우 어떻게 그 본심을 알 수 있겠는가. 말을 들어보면 그럴듯하고 얼굴을 보면 선량해 보이고 세세한 행동까지도 신중히 하므로 우선은 군자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막상 큰일을 당하거나 중대한 일에 임하게 되면 본색이 드러나고 만다. 항차 요즘 같은 세상살이야 오죽하리오. 물욕이 진실을 어지럽히고 이해가 판단력을 흐리게 하기 때문에 천성을 굽히고 당초에 먹은 마음에서 떠나고 마는 자가 헤아릴 수 없으니 속이는 자가 많고 정직한 자가 적은 것을 괴이하게 여길 일이 아니다’라며 도끼를 버리고 탄식하였다.」
산을 지키는 것은 굽고 못생긴 나무이듯이 힘들고 어려운 삶이라 하더라도 분명 살아가는 이유가 있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가치를 알고 묵묵히 제 역할을 해낼 때 결국 그것이 자신을 지키고 세상을 지키는 길이 됩니다. 올해는 이렇게 말없이 제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존경 받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고 생각해 봅니다.
경산신문
2010년 01월 25일
정환수 영남외국어대학 교수 gsinews@gs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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