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은 더러운 화폐”… 그래도 채굴장은 돌아간다
미국 몬태나에서 운영 중인 비트코인 채굴장.
북미 지역에선 비트코인 채굴 관련 업체 21곳이 증시에 상장하는 등 가상 화폐 채굴이 주목받는 신(新)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 마라톤디지털홀딩스
환경 파괴 논란, 가상 화폐 시장을 흔들다
“비트코인 채굴과 거래를 위한 화석연료 사용의 급격한 증가를 우려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최고경영자)가 지난달 12일 트위터에 남긴 말이다. 대표적 비트코인 지지자였던 그가 비트코인을 ‘환경 파괴범’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머스크 CEO가 “비트코인을 통한 차량 구매 결제를 중단하겠다”고까지 밝히자 5만9000달러대였던 비트코인 가격은 순식간에 4만달러대로 급락했다.
며칠 후 중국마저 ‘비트코인 때리기’에 동참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달 21일 전력 과잉 사용을 이유로 중국 내 비트코인 채굴을 모두 금지키로 한 직후 비트코인 가격은 또 한 번 추락했다. 중국은 세계 최대 비트코인 채굴국이다. 지난달 10일 5만9524달러까지 올랐던 비트코인 가격은 23일 47% 하락한 3만1192달러까지 떨어졌다.
가상 화폐의 ‘환경 파괴’ 논란이 가상 화폐 투자자들에게 예상치 못한 악재로 등장했다. 환경단체는 물론, 정부와 기업인들마저 “비트코인이 막대한 온실 가스를 발생시켜 재앙을 앞당기고 있다”고 비난한다.
블록체인 기반의 가상 화폐는 태생적으로 에너지 소비가 많은 거래 수단이다. 금융 회사나 정부의 서버(대형 컴퓨터) 몇 대가 아닌, 전 세계에 흩어진 수백만대의 컴퓨터들이 운영에 참여하므로 전기 에너지 소비가 상대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여기에 더해 코인을 만들어내는 ‘채굴(mining)’ 과정에서 컴퓨터가 뜨거워질 만큼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비트코인 1개 채굴에 일반 가정 50가구의 한 달 전기료와 맞먹는 3000달러(338만원)어치의 전기가 쓰일 정도다. 이 때문에 “비트코인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는 더러운 화폐”라는 비난까지 쏟아지고 있다.
◇비트코인 채굴, 국가급 전력 쓴다
전 세계적으로 비트코인 채굴에 소비되는 전력량은 상상 이상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대안금융센터(CCAF)의 1일 집계에 따르면 비트코인 채굴에는 순간 13.08GW, 연간 114.3TWh(테라와트시)의 전력이 쓰인다. 이는 한국이 약 78일간 소비하는 전력량으로, GDP(국내총생산) 기준 세계 17위 경제인 네덜란드의 연간 전력소비량(111TWh)보다 많다. 미국 호스팅업체 TRG데이터센터는 “비트코인 거래 1건당 소비되는 전력이 707kWh(킬로와트시)에 달한다”는 분석도 내놨다. 한국의 4인 가구 월 평균 전기 소비량(350kWh)의 두 배 수준이다.
비트코인 채굴자들은 적게는 수백대, 많게는 수만대의 채굴용 컴퓨터(채굴기)를 24시간 내내 가동한다. 그리고 이 컴퓨터들이 내뿜는 열기를 식히기 위해 냉방기기까지 돌린다. 비트코인 가격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채굴자들이 참여하고, 이들 간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전력 소모량은 점점 더 늘어난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비트코인은 인류에게 알려진 그 어떤 거래 방식보다도 (거래당) 더 많은 전기를 소비한다”며 “가상 화폐가 인기를 끌수록 더 많은 탄소 발자국을 남기게 된다”고 비판할 정도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가상 화폐 채굴에 공급되는 전기 상당 부분이 값싼 화석연료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전 세계 가상 화폐 채굴장의 65%가 중국, 그중에도 발전량의 대부분을 여전히 석탄 발전에 의존하는 내몽골과 신장에 몰려 있다. 자연스레 막대한 온실가스를 발생시킨다. 같은 화력발전이라도 석탄이 내놓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천연가스의 2배에 달한다.
중국과학원(CAS)은 최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현재의 비트코인 채굴 상황을 방치하면 비트코인 채굴이 사용하는 에너지 소비는 2024년에 297TWh에 달하고, 연간 1억3000만t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297TWh는 이탈리아의 연간 전력 소비량과, 1억3000만t의 이산화탄소는 필리핀의 연간 배출량과 맞먹는다.
◇대규모 정전 사태까지 초래
‘전기 먹는 하마’가 된 비트코인 채굴은 국가적 정전 사태까지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22~24일 수도 테헤란과 이스파한, 쉬라즈 등 주요 도시에서 잇따라 정전 사고를 겪은 이란이 대표적이다. 이란 정부는 당시 정전 원인으로 비트코인 채굴을 지목하면서 “비트코인 채굴 때문에 일일 전력 수요가 지난해보다 16%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란은 가상 화폐 채굴을 산업으로 인정하고, 값싼 전력을 제공 중이다. 이를 노리고 중국인들이 ‘원정 채굴’을 올 정도다. 채굴된 비트코인은 중앙은행에 팔게 한다. 이런 식으로 연간 10억달러(약 1조1217억원)어치의 비트코인이 이란 내에서 생산되고 있다. 블록체인 분석회사 엘립틱은 “비트코인 채굴을 위해 매년 약 1000만 배럴의 원유가 이란 내 화력발전소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이란의 5일치 원유 사용량에 해당한다. 이란 정부는 비트 코인 가격이 급등하면서 채굴 업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기자 올해 초 1620여개의 불법 채굴장을 적발해 강제 폐업시키기도 했다.
비트코인 채굴로 인한 탄소 배출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자 아예 채굴에 쓰이는 반도체의 성능을 떨어뜨리려는 시도도 나오고 있다.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는 지난 2월 이 회사의 GPU(그래픽처리장치) 반도체를 장착한 그래픽카드 소프트웨어(드라이버)에 가상 화폐 채굴 제한 기능을 넣은 데 이어, 5월 말부터는 아예 GPU 안에 채굴 제한 기능을 넣기로 했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채굴에는 이 회사의 최신 GPU인 RTX칩을 장착한 그래픽카드가 주로 쓰인다. 채굴은 기본적으로 같은 패턴의 계산을 숫자 몇 개만 바꿔가며 수십~수백만번 반복하는 것으로, 이런 작업에선 컴퓨터의 CPU(중앙처리장치)보다 그래픽카드의 GPU가 훨씬 효율적이다. 환경보호와 사회공헌, 윤리경영을 내세우는 ESG 경영이 세계적 대세인 상황에서 “환경을 파괴하는 비트코인 채굴로 돈을 번다”는 비판이 부담스러웠다는 해석이 나온다.
◇끊임없이 생기는 채굴 업체들
엔비디아는 그러나 시장 수요에 맞춰 채굴 전용으로 만든 ‘엔비디아 CMP’라는 제품을 내놓기로 하면서 여전히 환경 단체의 비난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가상 화폐 채굴이 한 국가보다도 더 많은 전력을 소비하는 세계적 산업이 된 상황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이 시장을 외면하는 것은 큰 손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비트코인 채굴을 수익성이 높은 ‘신(新)산업’으로 보고, 대규모 자본을 끌어들여 투자하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21개에 달하는 비트코인 채굴 관련 업체가 기업 공개를 통해 미국과 캐나다 증시에 상장까지 했다. 이 과정에서 재생에너지에 밀려 문을 닫았던 화석연료 발전소들이 ‘비트코인 채굴장’으로 간판을 바꿔다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나스닥 상장사인 마라톤 디지털 홀딩스는 미국 몬태나주의 하딘 석탄 화력 발전소 근처에 채굴장을 세웠다. 이 발전소에서 공급받는 전력은 1kWh(킬로와트시)당 2.8센트(31원)로, 미국의 산업용 전기요금 평균 가격인 7센트(78원)보다 60%나 저렴하다. 덕분에 비트코인 하나를 생산하는 데 4541달러(502만원)밖에 들지 않는다.
1일 기준 3만6000달러대인 비트코인 가격을 고려하면 여전히 7~8배의 수익을 낼 수 있는 셈이다. 또 미국 사모펀드 아틀라스 홀딩스는 2014년 문을 닫은 뉴욕 그리니지 석탄 화력발전소를 사들여 2017년 천연가스 발전소로 개조한 뒤, 비트코인 채굴기 7000대를 설치해 채굴장으로 탈바꿈시켰다.
환경 파괴를 조장한다는 비난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마라톤의 주가는 1년여 만에 수십 배 올랐다. 지난해 초까지 1달러 밑에서 거래되던 동전주가 1일 현재 25.2달러, 시가총액이 25억1000만달러(약 2조7913억원)에 달한다. 그리니지는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합병회사) 회사인 서포트닷컴(SPRT)과 합병하는 형식으로 올 3분기 나스닥에 상장될 예정이다.
◇‘‘환경 파괴 우려 과장” 주장도
채굴 업체들은 “비트코인 채굴로 인한 환경 파괴 우려가 과장됐다”고 반박한다. 전력 소비량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재생에너지를 활용하는 기업이 늘고 있어 점점 ‘친환경산업’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이들은 “비트코인 채굴에 쓰이는 전력 중 재생에너지 비율이 2018년 28%에서 2019년 39%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채굴자의 76%가 일부라도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채굴 업계 내의 자정 노력도 나온다. 비트코인 채굴 기업인 영국의 아르고 블록체인과 캐나다의 DMG 블록체인은 지난달 크립토기후협약(CCA)에 가입했다. CCA는 리플 등 주요 가상 화폐 재단이 주축이 돼 “2040년까지 가상 화폐 채굴 산업의 탄소 배출을 제로(0)로 만들겠다”며 출범한 단체다.
북미에서도 최근 지속 가능한 채굴 산업을 위한 ‘비트코인 채굴 위원회’가 출범했다. 또 그리니지는 “탄소배출권을 구매해 비트코인 채굴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발자국을 상쇄하고, 채굴 수익 일부를 뉴욕의 재생 에너지 프로젝트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비트코인 지지자인 잭 도시 트위터 창업자는 “청정 비트코인 채굴 기술 개발을 위해 자산 1000만달러(약 111억7500만원)를 기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채굴 규제 강화가 환경 측면에서는 비트코인 시장에 긍정적인 요소라는 분석도 나온다. 비트코인을 대량 보유하고 있는 미국 소프트웨어업체 마이크로스트래티지의 마이클 세일러 CEO(최고경영자)는 “중국 정부가 비트코인 채굴 및 거래를 단속하기로 한 것은 비트코인 채굴 과정에서 생기는 탄소 배출 문제를 획기적으로 절감하겠다는 뜻”이라며 “중국발(發) 불확실성을 줄이고 가상 화폐 산업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 가치는 다시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WeeklyBIZ MINT
2021.06.04 03:00
신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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