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쇠퇴〕인구 줄고 실업률 늘고… 코로나가 부른 도시의 쇠퇴
천덕꾸러기가 된 도시
미국 고용시장은 신종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이후 한 가지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백신 접종과 함께 경기가 회복되면서 일자리가 생겨났지만, 실업자가 여전히 넘쳐나는 구인·구직 ‘미스매치’ 문제다.
미국 노동부 최신 집계에 따르면, 미국 전역에는 1090만개의 일자리가 비어 있지만, 실업자가 840만명에 달한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모든 업종에서 실업자 수가 신규 일자리를 초과했던 대공황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며 “미국 경제 회복 한가운데 도사린 미스터리”라고 표현했다.
일자리와 실업자가 동시에 넘쳐나는 기현상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그중 유력하게 떠오르는 설 중 하나가 원격근무와 재택근무의 확산이다. 팬데믹으로 원격근무가 보편화되자 일자리가 몰려 있는 대도시에서 인구가 대규모로 유출되면서 고용 불균형이 심화됐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도시의 쇠퇴’라는 뜻밖의 결과로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대도시는 인구 감소와 함께 실업률 상승, 성장 속도 하락이라는 3중고에 직면했다. 인구 기준 미국 최대 도시 뉴욕의 실업률은 7.6%(5월 기준)로 전국 평균(5.2%)보다 높다. 2~3위를 차지하는 LA(10.2%)와 시카고(7.4%)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세 도시의 공통점은 10년 만에 최대 인구감소율을 지난해 기록했다는 점이다. 인구가 감소하면 실업률의 분모(分母)인 경제활동인구가 줄기 때문에 분자(分子)인 실업자 수가 그대로여도 실업률은 상승하게 된다.
반면 인구밀도가 낮고 한적한 지역으로 꼽히는 유타와 아이다호주(州)는 최근 10년간 가장 높은 인구증가율과 함께 사실상 완전 고용을 구가하고 있다. 두 주의 실업률은 각각 2.6%와 3%로 사상 최저치에 가깝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불균형의 또 다른 큰 원인이 서서히 명확해지고 있다”며 “국가 경제가 다시 살아나면서 도시는 심각하게 뒤처지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가 드러낸 도시의 취약성
세계 경제는 그간 도시 위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의 도시 지역 평균 면적은 2019년 기준 국토의 6% 수준이지만, 전체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48%가 거주하고 있다.
영국과 네덜란드, 호주 같은 국가에선 인구 70%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고, 한국은 총인구의 91.8%가 도시에 거주한다. 하지만 팬데믹을 거치면서 도시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가 전염병에 얼마나 취약한지 극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가 처음 시작된 중국 우한과 더불어 뉴욕·런던·파리 같은 대도시에서 확산이 시작됐고, 한국과 일본에서도 초기 확산 지역은 대구와 도쿄 같은 대도시였다. 도시경제학 분야 세계적 권위자인 에드워드 글레이저 하버드대 교수(경제학)가 최근 출간한 저서 제목이 ‘도시의 생존(Survival of the City)’인 것도 달라진 도시의 위상을 보여준다.
그는 10년 전만 해도 ‘도시의 승리(Triumph of the City)’라는 제목의 저서를 출간하며 “어느 나라든 도시화와 번영 사이에는 완벽할 정도의 상관관계가 존재한다”고 했었다.
도시 침체는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지난 8월 말 발표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서울만 해도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된 작년 3월부터 17개월째 인구 순유출이 지속되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6만명이 줄어들었다.
인구가 줄면 도시 특유의 역동성이 사라지기 마련이다. 이코노미스트가 소매와 여가활동, 대중교통 이용량에 대한 구글 데이터를 활용해 개발한 ‘이탈 지수(exodus index)’를 분석한 결과, 맨해튼과 도쿄, 파리, 런던 등 세계 주요 도시의 지수가 각국의 평균보다 10~20%포인트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도시의 사회·경제 활동의 역동성이 교외 지역보다 떨어진다는 뜻이다. 미국의 온라인 레스토랑 예약 플랫폼 오픈테이블에 따르면, 캐나다 전역에서 레스토랑 예약은 전염병 이전 대비 8% 높았지만, 인구 650만명의 대도시 토론토에선 반대로 9%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인구조사국 자료에 따르면, 인구 100만명 이상 대도시 55개 중 작년 1년간(2019년 7월 1일~2020년 7월 1일) 인구가 감소하거나 성장 속도가 떨어진 도시는 72.7%(40개)에 달한다.
◇디지털 전환으로 인구 유출 가속화
팬데믹이 촉발한 디지털 전환도 도시 인구 유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전자상거래 발달과 함께 원격근무가 가능해지면서 굳이 직장 근처에서 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지난 4월 발표된 스탠퍼드대학과 시카고대학, 멕시코자치기술연구소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작년 4월부터 12월까지 미국 경제에 제공된 노동 시간 절반이 재택근무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진은 “전염병이 끝난 후에도 전체 노동시간의 약 20%는 집(재택근무)에서 제공될 것”이라며 “팬데믹 이전, 이 비율은 5%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팬데믹이 끝나도 원격근무 기조는 이어질 거란 전망이다. 심지어 원격근무는 IT(정보통신)와 금융, 보험같이 기술과 정보가 모이는 고부가가치 산업군에서 주로 이뤄지면서 도시의 쇠퇴를 앞당기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대도시들은 가장 숙련된 노동자들과 그들이 유지하는 소비자 경제를 모두 잃게 되는 이중 위협에 직면해 있다”며 “도시 밀도의 비용을 정당화하는 이점을 제공하지 않는 한 (도시) 규모가 축소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일각에선 팬데믹이 끝나면 도시 역시 다시 부활할 수 있다는 전망도 여전히 남아있다. 국토연구원은 지난 7월 낸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 19 발생에 대한 신속한 대응을 가능하게 하는 의료 시설 및 기타 지원은 비(非)도시지역보다 도시에서 더 쉽게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은 도시의 응집 혜택이 있음을 시사했다”며 “대도시의 분산에 대해선 아직 결론을 내기 어렵다”고 밝혔다.
미국 대표 싱크탱크 브루킹스 연구소 역시 “주요 대도시 지역이 (팬데믹 기간) 가장 큰 성장 침체를 보였다”면서도 “최근 제한적인 이민 정책이 뒤집힐 경우 다시 인구가 증가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WeeklyBIZ MINT
2021.10.01 03:00
안상현 기자
'Benefit > ⊙Common sens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디토리움(Auditorium) (0) | 2021.10.12 |
---|---|
⊙비스트로(Bistro) (0) | 2021.10.12 |
⊙헨리 여권지수(Henley Passport Index) (0) | 2021.10.07 |
⊙콘서트 앳 홈(Concert at Home) / 언택트 공연 (0) | 2021.10.01 |
⊙홈 루덴스(Home Ludens) / 집에서 안전하게 놀고 즐기는 문화 (0) | 2021.1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