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Inf〕일본 인플레 현황 및 업계 대응
◇아끼고 아껴 가격 동결, 라벨 떼고, 원재료 줄이고…
일본을 대표하는 유통업체 이온과 세이유가 PB상품을 앞세워 ‘가격 동결’을 선언했다. 이들 업체들에게는 가격상승 압박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인다.
전례 없던 물가상승이 전세계를 덮쳤다. 일본뿐 아니라 유럽, 미국 등 전세계 주요 30개국의 지난 4월 생활비는 1년 전과 비교해 9.5% 상승했다. 상승 속도는 코로나 바이러스 출현 전과 비교해 7배에 달한다. 경제뿐 아니라 정치도 흔들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위기에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이 맞물려 원재료 가격 상승과 공급 제약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며 비용을 끌어 올리고 있다.
◇악재, 악재, 악재… 물가상승 초래
니혼게이자이신문이 OECD 데이터를 기반으로 일본, 유럽, 미국 등 30개국의 식품(주류 제외)과 광열비, 집값, 주거비를 합산한 생활비 물가지수를 산출했다. 1년 전부터 상승률은 2021년 7월 이후 2%를 넘어섰는데, 2022년 4월에는 9.5%로 두 자릿수에 육박했다. 상승 속도는 코로나19 전인 2019년까지 5년간 평균(1.3%)의 7배로, 전체 물가상승(7.6%)보다 증가 폭이 컸다. 생활에 꼭 필요한 상품이나 서비스일수록 가격이 오른 것을 알 수 있다.
소비자가 체감하는 인플레이션은 더욱 심각하다. 일본총무성이 지난 6월 24일 발표한 5월의 물가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2.5%였다(도표 1 참고). 원재료 가격 급등으로 인해 2개월 연속 2%가 넘었다. 내역을 분석해보면, 자주 구입하는 것일수록 상승세가 확연했다(도표 2 참고). 휘발유나 식품 등 월 1회 이상 구입하는 품목은 상승률이 5%로, 전체의 2배에 달했다.
물가상승이 실제 가계에 가하는 압박은 상상을 넘는다. 예를 들어 물가 산정의 기준이 되는 582개 품목 가운데 구입 횟수가 평균 연 15회 이상으로 빈번한 식빵이나 휘발유 등 44개 품목의 물가상승률은 2021년 가을 4%를 돌파했다. 2022년 3~4월은 5%를 넘었고, 5월에도 4.9%로 고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이온 / PB 내세워 ‘가격 동결’ 선언
이렇게 생활필수품 가격이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가격 동결 경쟁이 치열한 부문이 대형 슈퍼마켓의 PB상품이다. 2022년 3월 일본의 대표 유통업체인 이온은 지금이야 말로 기업의 노력이 필요한 시기라며, PB 톱밸류의 식품 및 일용품 가운데 약 5천 개 품목을 선정해 6월 30일까지 인상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선언했다.
타사의 가격 인상 러시 중에 자사의 PB 가격을 동결함으로써, 저렴함으로 소비자에게 소구하려는 전략이다. 대상 점포는 이온, 이온스타일, 맥스밸류, 다이에, 마이바스켓 등 이온 산하에 있는 슈퍼마켓 약 1만 개점에 달했다.
이온 그룹이 총력을 다해 진행하고 있는 가격 동결 선언은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연장에 연장을 거듭하며 벌써 반 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이온이 처음으로 가격 동결을 선언한 것은 지난 2021년 9월 13일이었다.
당시 이온 매장 곳곳에는 ‘가격 인상을 하지 않습니다! 연내 가격 동결!’이라고 쓰여진 포스터가 부착됐다. 연내 즉, 2021년 12월 31일까지 PB 톱밸류의 식품 약 3천 개 품목에 한해 가격을 동결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연말이 가까워지자 이온은 연장 계획을 발표했다. 톱밸류의 가격 동결을 2022년 3월 31일까지 연장하고 새롭게 화장지와 키친 타월, 알루미늄 호일 같은 소모품을 대상 상품에 추가했다. 가격 동결을 선언한 식품 약 3천 개 품목에 일용품까지 추가해 모두 5천 개 품목으로 확대한 것이다. 그리고 3월 31일이 가까워지자 다시 한번 앞에서 설명한 ‘6월 30일까지 가격을 인상하지 않는다’고 선언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실제 전국적으로 1만 개점이 넘는 이온 매장에 미친 영향은 대단했다. 2021년 9월까지 반 년간 톱밸류 식품의 주요 카테고리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 상승했다. 그만큼 톱밸류를 집어 든 소비자가 증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6월에 방문한 이온 매장에서도 톱밸류 특설 코너를 크게 전개하고 있었다. 토마토 케첩은 500g에 105엔, 마요네즈는 500g에 170엔. 모두 ‘만족 품질 놀라운 가격’이라는 POP를 부착하고, 저렴함을 맹렬히 소구하고 있었다. 현재 이온이 밀고 있는 톱밸류 상품은 지난 3월에 발매한 ‘프리미엄 생맥주’다. 350㎖에 184엔으로 삿포로 맥주가 제조를 담당하면서 ‘싼데 맛있다’며 발매 직후부터 화제를 모았다. 이온 측도 ‘프리미엄 품질로 이 가격을 실현!’이라는 POP를 부착하고 판촉에 열을 올려 발매 1개월도 안 된 시점에 110만 개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온의 요시다 아키오 사장은 “PB는 장래 수익 확대로 이어질 잠재력을 가진 영역”이라며 “앞으로도 지금까지 손 대지 않았던 신규 카테고리나 타사에 없는 콘셉트의 상품을 지속적으로 소구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럼 어떻게 가격 유지가 가능할까. 가장 큰 이유는 PB 특성상 거대한 판매망이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이온 측은 “PB는 모든 원가를 분해할 수 있다.”며 “제조 위탁처로부터 고객에게 전달되는 서플라이 체인 전체를 컨트롤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 부분에 손을 댈 수 있다.”고 전했다.
특히 이온은 환경뿐 아니라 비용 삭감을 위해 PB 포장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소시지는 포장을 변경해 중량을 28% 줄였고, 납품시 상자에 들어가는 제품 수를 10팩에서 12팩으로 늘려 물류 효율을 높였다. 참치캔은 환율을 면밀히 분석해 생산계획을 세워 공장 가동률을 향상시켰다.
냉동 파스타 시리즈는 이탈리아에 있는 건면 파스타 생산공장(원료 공장)과 직거래하고, 원료 공장에서 위탁처까지 물류 공정도 이온이 직접 대응해 중간 물류 비용을 줄였다. 물류와 관련해서는 다른 냉장상품과 함께 냉장 트럭으로 배송하던 상온 보존 가능한 어묵 상품을 생산 계획과 공장 가동률 향상을 통해 어묵만 상온 운송이 가능하게 해 물류 비용을 상품 하나당 10엔 정도 줄일 수 있었다.
생수는 페트병에 부착하는 라벨을 없애는 라벨리스를 통해 비용을 절약했다. 또한 생산 거점을 지난해 9개에서 11개로 확대했다. 이온 관계자는 “생수는 무겁고, 제조 비용보다 물류비용이 높은 상품”이라며 “전국 제조 거점을 늘리면 이온 물류센터까지 배송 거리가 단축돼 운송비용을 줄여 가격을 유지하는 비결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세이유 ‘힘내는 프라이스’
일본 전체에 가격 인상 도미노가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가격 인상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슈퍼마켓 업체가 또 한 곳 있다. EDLP를 기조로 내걸고 있는 세이유다. PB ‘미나사마노 오스미즈키(여러분의 보증)’의 전 상품 가격을 이온과 마찬가지로 2022년 6월 30일까지 동결하기로 했다.
‘힘내는 프라이스 1,254 품목 전 상품에 대해 가격도, 양도 바꾸지 않겠습니다’. 세이유는 이와 같은 포스터를 붙이고, 가격 인상은 물론 내용량을 줄여서 가격을 유지하는 ‘눈속임 편법’도 쓰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 결과, 세이유 PB 매출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으며, 식품 전체에서 차지하는 PB 매출 구성비도 높아지고 있다. 세이유 측은 이후에도 가격 동결을 유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세이유 PB는 소비자 테스트를 통해 맛(사용 편의성), 가격, 용량 면에서 80% 이상의 소비자 지지율을 얻은 아이템만 상품화하고 있다. 특히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 레토르트 카레와 밥에 얹기만 하면 되는 ‘온더(on the)밥’ 시리즈다. 소비자 지지율 97.3%의 ‘맛사만 카레’와 지지율 95.5%의 ‘치리콘칸’은 모두 162엔으로 저렴한 가격에 판매된다.
가격은 세이유 PB에게 있어 생명선과 다름 없기 때문에 간단하게 바꿀 수 없다. 가격을 인상하려면 다시 한번 소비자 테스트를 실시해 80% 이상 지지율을 얻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세이유는 PB 가격 인상에 매우 신중한 입장이다.
◆이시이식품 / 비용 삭감 프로젝트팀을 구성
미트볼 제조로 유명한 이시이식품은 2008년부터 10개 들이 미트볼의 희망 소매가격을 120엔으로 유지하고 있다. 단, 매장에서는 3봉지 세트 판매가 많은데, 1봉지당 100엔 전후의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이시이식품은 가격 인상을 하지 않기 위해 지금까지 다양한 수단을 강구했다. 예를 들어, 패키지를 1㎜ 미만 단위로 조금씩 얇게 만들어 개선해왔다. 또 하나는 원재료를 단순화시키는 방법이다. 쇼트닝, 발지분유, 이스트푸드, 계란흰자, 후추, 물엿 등 해를 거듭하면서 원재료 수를 줄여 나갔다. 지금은 닭, 양파, 빵가루, 조미료만 넣어 만든다.
이시이식품 측은 원재료 종류를 줄인 대신, 주 원료는 가능하면 좋은 것을 사용한다고 강조한다. 그렇게 하면 주원료의 원가가 올라도 전체 비용은 상승하지 않기 때문에 가격 인상을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2021년부터 이어진 원재료비 상승은 과거에도 경험하지 못한 수준이라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에 2021년 비용 삭감 프로젝트팀을 구성했다. 일본 내 공장에서 사용하는 직원 유니폼 세탁비를 줄이고, 제품상자 종류도 줄였다. 그 밖에 배송 횟수를 줄이고, 배송차량 1대에 싣는 미트볼 수를 늘렸다. 이렇게 해서 2021년에 8천만 엔의 비용 삭감을 달성했다. 그러나 당장 불똥이 떨어진 변동비 급상승은 비용 삭감 대책으로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싸고 맛있기 때문에 일본인 도시락의 소울 푸드나 다름 없던 미트볼. 이시이식품은 10년 넘게 유지해온 가격을 올해는 인상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한다. 다양한 방법으로 비용을 줄이고, 뼈를 깎는 노력을 해도 치솟는 원재료가와 거듭 불거진 악재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업체도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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