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FA World Cup〕월드컵의 창시자, 쥘 리메(Jules Rimet)
프랑스의 변호사 겸 축구 행정가. FIFA의 3대 회장(1921년 3월 1일 ~ 1954년 6월 21일)을 역임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유명한 이유는 바로 FIFA 월드컵의 창시자이기 때문이다.
출생 : 1873년 10월 14일 프랑스 프랑슈콩테 튤레이
사망 : 1956년 10월 16일 (향년 83세) 프랑스 일드프랑스 쉬레스네
프랑스의 변호사 겸 축구 행정가. FIFA의 3대 회장(1921년 3월 1일 ~ 1954년 6월 21일)을 역임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유명한 이유는 바로 FIFA 월드컵의 창시자이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군 중대장으로 참전하여 무공훈장을 여러 차례 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21년에 FIFA의 제3대 회장이 된 그는 월드컵이라는 세계적인 축구 대회를 창안하고 이 대회를 개최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첫 월드컵 개최국을 물색했는데, 그해가 1930년이었다. 이에 당시 세계 최강의 축구팀을 보유한 우루과이는 월드컵을 자국의 독립 100주년 기념대회로 삼기 위해 참가국의 교통비, 숙박비 및 기타 모든 비용 전부를 우루과이 정부에서 지급한다고 제안했고, 그리하여 우루과이가 개최국으로 정해졌다.
그런데 우루과이가 유럽에서 멀다는 이유로 유럽의 상당수 국가들이 월드컵에 불참하려고 하자, 쥘 리메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유럽 국가들을 달랜 끝에 조국인 프랑스, 이웃나라인 벨기에, 그리고 루마니아와 유고슬라비아까지 참가시켰다.
1934년과 1938년에는 월드컵이 무솔리니나 히틀러의 선전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비난에 몰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쥘 리메는 오직 축구에 대한 순수한 열망 하나로 우직하게 밀고 나갔고 점점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그는 1954년까지 FIFA 회장을 역임했다. 그러면서 그는 유럽과 남미 이외의 대륙 출신 축구팀들의 월드컵 참가도 차차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1956년, 월드컵을 발전시킴으로써 세계평화에 이바지한 공을 높이 사 노벨평화상 후보에도 올라갔으나, 나치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인해 끝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은 무솔리니가 월드컵을 자신과 나치의 선전을 위해 이용한 바 있으며, 1938년 월드컵에서 쥘 리메가 나치식 경례를 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가 있다.
쥘 리메 컵
월드컵 초기에는 현재의 FIFA컵 대신 이 사람의 이름을 딴 쥘 리메컵을 사용했다. 이 컵은 1970년 브라질이 월드컵 3회 우승을 함으로써 영구 소유하게 되었지만, 1983년에 도난당했고 다시 찾지 못했다. 이후 일당들이 경찰에 체포되었지만 무죄로 방면된 모양이나, 도난당한 건 사실이기에 브라질 축구협회는 자체적으로 레플리카를 만들어 보관하게 되었다.
'Trend & Issue > @Mega Trend' 카테고리의 다른 글
〔FIFA World Cup〕월드컵의 이변들 (0) | 2022.11.24 |
---|---|
〔FIFA World Cup〕월드컵 트로피 (0) | 2022.11.24 |
〔FIFA World Cup〕월드컵 축구 (0) | 2022.11.24 |
〔Fandom〕 이태원은 왜 ‘핼러윈 성지’가 됐나. (0) | 2022.11.04 |
〔Fandom〕 팬덤 정치의 역사 (0) | 2022.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