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 Issue/@Mega Trend

〔FIFA World Cup〕도하의 기적과 ドーハの悲劇

Paul Ahn 2022. 11. 28. 08:50

FIFA World Cup〕도하의 기적과 ドハの悲劇

(wikipedia.org)

 

대한민국 축구의 역사에서 도하의 기적(-奇蹟), 또는 일본 축구의 역사에서 도하의 비극(ハの悲劇, 도하노히게키) 1994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에서 마지막 순간에 본선 진출팀이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바뀐 사건을 가리킨다.

 

본선 진출국이 뒤바뀌게 된 이유는, 일본이 이라크와의 최종 경기에서 종료 직전 동점골을 허용하여 무승부를 기록, 일본이 승점에서 대한민국과 동률을 이루고도 골득실차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그 때 대한민국은 북한에게 2점차 이상으로 이기고, 사우디아라비아 혹은 일본이 무승부를 기록해야 미국행이 가능했던 상황이었다.

 

도하의 기적 

 

ハの悲劇 

 

◇최종 예선 상황

 

아시아 지역 1차 예선에서 바레인, 레바논, 인도, 홍콩 등과 D조에 속해 있던 대한민국은 1차 예선을 무패로 마무리하며 조 1위로 통과했으며, 이후 6개 조를 1위로 통과한 6개 팀이었던 이라크, 이란, 북한, 대한민국, 사우디아라비아, 일본 중 본선에 진출할 2개국을 뽑기 위한(당시 예선에서는 아시아의 본선 진출팀이 2팀이었음) 풀 리그 경기가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서 개최되었다.

 

대한민국은 난적 이란과의 첫 경기에서 3:0으로 완승을 거두며 본선 진출에 큰 어려움이 없을 듯했다. 그러나 이후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에서 종료 직전 동점골을 허용해 각각 2:2, 1:1로 비기게 되며 본선 진출이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되었다. 남은 경기는 일본, 북한과의 두 경기였다.

 

이전까지의 축구 전적에 따르면, 1954년에 처음 경기를 가진 이래 일본과의 월드컵 예선 전적은 7 3무로 대한민국은 일본에 대해서 승률이 매우 높았었다.

그러나 1993 10 25일에 열린 일본과의 경기에서 후반 15분 미우라 가즈요시에게 선제 결승골을 허용한 대한민국은 0:1로 패했고, 1 2 1, 3위로 처지면서 자력 진출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당시 순위는 승점, 골득실, 다득점, 승자승 순으로 정해지도록 되어 있었으며, 1993 10 28일 당시 모든 팀이 마지막 경기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마지막 경기는 다음과 같았다.

 

대한민국 대 북한

사우디아라비아 대 이란

이라크 대 일본

 

당시의 승점 체계는 승리가 2, 무승부가 1, 패전이 0점이었기에 6개 팀 중 북한만 탈락이 확정되었을 뿐, 나머지 5팀 모두에게 본선 진출은 계산상으로 가능했다.

 

 

◇마지막 경기

 

승부조작을 방지하기 위해, 마지막 3경기는 모두 1993 10 28일 같은 시간에 치러지게 되었다. 마지막 경기를 남겨놓고 사우디아라비아는 1 3무로 승점 5점이었으며, 일본은 2 1 1패로 승점 5, 대한민국은 승점 4점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이 모두 승리를 거둔다면 대한민국은 북한과의 최종 경기에서 아무리 많은 골을 넣어 이긴다고 해도 승점에서 밀려 본선 진출이 좌절되는 상황이었다. 대한민국이 진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 중에서 한 팀이 패하거나 무승부를 기록한 다음, 북한을 상대로 최대한 많은 골을 넣어 골득실차를 높여야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최종전은 1993 10 28일에 열렸다.

 

 

*대한민국은 후반전에 득점을 몰아치면서 북한을 3:0으로 누르고 승리를 거뒀다.

*같은 시간,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경기는 사우디의 4:3 승리로 경기가 끝난 상황이었으며,

*일본은 이라크에 2:1로 앞선 채 후반 45분이 끝나고 추가 시간이 주어진 3분이 거의 끝나 가던 상황이었기에,

 

대한민국 대표팀의 진출은 거의 실패한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2:1로 앞서고 있던 일본이 경기 종료 10초 전에 내준 코너킥 상황에서 이라크의 자파르 움란이 헤딩한 것이 골문 아래 구석으로 들어가면서 점수가 2:2가 되었고, 경기는 무승부로 끝나게 되었다.

 

이 경기로 대한민국과 일본은 승점이 같아졌지만 골득실에서 대한민국 +5, 일본 +3으로 대한민국이 앞서게 되어, 마지막 10초 전에 들어간 이라크의 단 한 골로 인해 일본이 결국 미국 월드컵 본선에 탈락하고 대한민국이 진출하는 이변이 발생한다.

 

https://youtu.be/MVhXS2c1WDo

 

 

https://youtu.be/SzdVzV9LRIA

 

 

우리의 이 승전상황을 대한민국 축구계에서는 도하의 기적이라 부르며 감격스러워하지만, 반대로 일본 축구계에서는 '도하의 비극'이라고 부르며 매우 비통해한다.

 

이 도하의 기적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일본을 간신히 제치고 아시아예선 준우승(2)으로 24강 본선 진출 티켓을 차지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리고 일본을 몇 수 아래라면서 깔보고 무시했던 대한민국은 최종예선 도중 일본에게 0:1로 지면서 일본 축구계가 J리그 발족 등으로 실력이 크게 성장한 것을 몸소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이때부터 한국은 일본에 대한 라이벌 의식이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고, 2002 FIFA 월드컵 유치 경쟁과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최종 예선에서 같은 조로 편성되자 더욱 절정에 이르렀다. 그리고 뒷날 이는 도쿄 대첩으로 다시 한 번 승화되었다.

 

이때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2002년 월드컵 개최를 목표로 장기 계획을 세웠던 일본은 지금까지 한 번도 월드컵 본선 진출도 못 한 나라가 돈으로 본선 출전권을 사려고 한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이런 약점이 크게 작용하는 바람에 뒤늦게 유치에 뛰어든 대한민국과 벌인 유치 경쟁에서 힘을 크게 잃어 끝내 1996년에 양국 공동 개최 결정이라는 타협점으로 물러서야만 했다.

 

 

한국 구국의 영웅, 움란 자파르

(namu.wiki)

 

이 당시 극적인 헤딩 골을 넣었던 이라크의 선수는 스트라이커였던 움란 자파르 선수였다.

 

자파르 움란 살만(Jaffar Omran Salman, 1966 7 1 ~ )

 

이튿날, 주한 이라크 대사관에는 축구팬들에게서 온 감사 전화가 폭주했다. 이 당시는 걸프전이 일어난지 얼마 안 되어 국제사회에서 이라크의 이미지가 매우 형편없던 시절이라 당시 주한 이라크 대사관에서는 "이라크 정부가 몇 년을 노력해도 되지 못했던 것을 단 한 순간에 해냈다."고 극찬했다.

 

움란 자파르 선수는 훗날 대한민국으로 초대되어 영웅으로 환대를 받았으며, 대한축구협회에서는 감사의 표시로 이라크 축구 선수들에게 유니폼, 축구공, 축구화 등 여러 가지 장비들을 지원하기도 했다.

 

당시 인터뷰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국내(이라크) 팬들은 물론, 현장에서 직접 뛴 나 자신도 이 대회는 일본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부국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고 느꼈다. 심지어, 뇌물 공여나 심판 매수를 했다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라크는 이 같은 경기 외적인 요인 때문에 희생양이 됐다고 생각한다. 이라크의 명예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다면 승패에 관계없이 최선을 다한다는 각오로 경기에 임했으며, 우리가 본선 진출의 가능성이 희박해진 후에도 마지막까지 열심히 뛴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