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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ximalism〕절제는 지루해… 비우기 가고 채우기가 왔다.

Paul Ahn 2022. 11. 29. 12:24

〔Maximalism〕절제는 지루해… 비우기 가고 채우기가 왔다.

(chosun.com)

 

팬데믹 시대 ‘맥시멀리즘’이 뜬다

 

거실 벽면 가득 액자가 걸려 있는 칼럼니스트 김도훈씨의 서울 마포 집. 맥시멀리스트를 자처하는 김씨의 집은 친구들 사이 ‘애오개 박수무당집’이라고 불린다. /김도훈 제공

 

감각 좋기로 유명한 문화 칼럼니스트 김도훈(45)씨의 서울 마포 집은 지인들 사이 ‘애오개 박수무당집’이라 불린다. 10여 년간 모아온 소품이 집 안 구석구석 빼곡하게 차있다. 액자 13개 걸린 벽엔 빈틈이 거의 없다. 김씨는 자신을 농반진반 ‘맥시멀리스트 호더(maximalist hoarder)’라고 한다. ‘병적으로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란 뜻이지만, 그의 집은 단지 못 버려 만든 결과물이 아니다. 확고한 취향으로 쌓아올린 성이다.

 

수년간 인테리어부터 삶의 태도까지 우리 사회를 강타한 미니멀 열풍이 뒷걸음질치고 있다. 단순함과 동의어로 인식됐던 북유럽식 스타일도 이젠 지겹다.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고 설파한 곤도 마리에 식(式) ‘비우기 열풍’은 힘을 잃고, 소품으로 집 안을 꽉 채우는 ‘맥시멀리즘(maximalism·최대주의)’이 화두로 떠올랐다.

 

한동안 신앙처럼 외쳤던 ‘Less is more(간결한 것이 아름답다)’는 ‘Less is bore(간결한 것은 지겹다)’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전자는 모더니즘 건축가 미스 반데어로에(1886~1969), 후자는 모더니즘에 반기를 든 포스트모더니즘 건축가 로버트 벤투리(1925~2018)의 명언이다.

 

홍익대 목조형가구학과 한정현 교수는 “역사적으로 디자인에선 미니멀리즘과 맥시멀리즘이 서로에 대한 반작용으로 부침을 반복했다. 10년 넘게 위력을 떨친 미니멀리즘에 피로감을 느끼면서 맥시멀리즘의 시대가 온 것”이라며 “최근 인테리어 키워드 중 하나가 클러터코어(cluttercore·잡동사니로 어수선하게 꾸미는 스타일)”라고 설명했다.

 

따뜻한 인테리어를 통해 코로나로 피폐해진 일상에 온기를 불어넣으려는 흐름도 맞닿아 있다. 이케아에선 팬데믹 상황을 반영해 올겨울 인테리어 키워드로 포근함을 뜻하는 스웨덴어 ‘mys(미스)’를 내세웠다. 안톤 호크비스트 이케아 코리아 인테리어 디자인 리더는 “팬데믹 이전엔 심플한 흰색 톤이 유행했지만,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친밀감을 주는 홈퍼니싱이 새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며 “신년엔 특히 식물 문양과 초록색 등을 이용해 자연을 집안으로 끌어오는 ‘바이오필릭 디자인(Biophilic Design)’에 대한 관심이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로 인해 집의 개념이 바뀐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김지영(비하우스 대표)씨는 “단순히 쉬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집이 코로나 이후 사무실, 학교, 헬스장 등 다양한 삶의 층위를 반영하는 공간이 됐다. 여러 기능을 담다 보니 자연스럽게 맥시멀해지는 경향이 생겼다”고 했다.

 

특히 원룸 등 좁은 공간에 사는 MZ세대들이 맥시멀리즘에 열광한다. 인테리어 플랫폼 ‘오늘의집’엔 인형포스터식물 등으로 방을 가득 채운 사진이 넘친다. 오늘의집 관계자는 ”MZ세대는 맥시멀리즘을 ‘어지럽히는 것’이 아닌 ‘개성’으로 생각한다”며 “소품으로 나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취향 사회가 됐다는 방증이다.

 

청소 안 해서 지저분한 집과 맥시멀 인테리어는 엄연히 다르다. 둘의 차이는 취향과 감각에 있다. 벼락부자는 있어도 벼락 멋쟁이는 없다고 했던가. 김지영씨는 “맥시멀 인테리어의 핵심은 유행하는 물건을 잔뜩 사서 채우는 것이 아니라 견고한 취향을 갖고 모아온 소품으로 꾸미는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와의 전쟁은 세계대전. 채우기 열풍 역시 세계적 유행이다. 팬데믹 발생 이후 ‘클러터: 깔끔하지 않은 역사(Clutter: An Untidy History)’를 쓴 작가 제니퍼 하워드는 “(팬데믹 이후) 사람들은 보호받고 보살핌받고 있다는 느낌을 원한다. 이때 물건(stuff)이 보호막처럼 작용한다”고 했다.

 

 

맥시멀리스트에게 취향 말고 뜻밖의 필수 조건이 있다. 다름 아닌 못 박기.

김도훈씨는 “맥시멀리스트의 숙명은 무언가 걸고 채우는 것. 그러려면 맘껏 못 박을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한데 현실은 녹록지 않다”고 했다. 그 역시 “전세 난민으로 살다가 6년 전 자가로 이사 오면서 맘껏 못 박을 수 있는 캔버스를 얻었다”고 했다.

 

김미리 기자

2021.12.27 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