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좋은글

〔各自圖死〕돌봄의 황무지에서 존엄의 사회로…신간 '각자도사 사회'

Paul Ahn 2023. 2. 16. 10:11

〔各自圖死〕돌봄의 황무지에서 존엄의 사회로신간 '각자도사 사회'

(yna.co.kr)

 

"생애 말기 사람들 각자도사하고 있어"

"좋은 죽음은 좋은 사회에 대한 고민과 분리될 수 없어"

 

"존엄한 돌봄과 임종을 희망하는 사람은 돈이 많거나 운이 좋아야 한다. 생애 말기 돌봄 앞에서 그렇게 사람들은 각자도생 혹은 각자도사(各自圖死) 하고 있다."

 

의료인류학자 송병기가 신간 '각자도사 사회'(어크로스)에서 쓴 말이다.

 

저자는 현대인이 경험하는 죽음의 문제는 마치 주사위 놀이와 같다고 말한다. 노화, 질병, 돌봄, 죽음이 일상에 들이닥치면 사람들은 행운을 기대하는 주사위를 던진다.

 

최대한 천천히 늙기를, 덜 아프기를, 깔끔하게 죽기를, 착하고 경제력도 갖춘 가족이 돌보기를, 다정하고 친절한 의료진을 만날 수 있기를, 헌신적인 간병인을 만나기를….

 

 

그러나 이런 바람대로 되기란 쉽지 않다. 시간을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진통제가 잘 듣지 않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있을 수도 있고, 돈이 많을 확률보다는 없을 확률이 조금 더 높으며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인 대학병원 교수들이 친절하게 상담해줄 가능성도 작다. 처우가 좋지 않은 요양보호사나 간호사들이 섬세한 돌봄을 해줄 여력도 많지 않아 보인다. 존엄한 죽음보다는 외로운 죽음에 가까운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존엄한 죽음의 문제는 2000년대 들어 본격화했다. 1990년까지만 해도 대부분이 집에서 죽었기 때문이다. 책에 따르면 1992년 사망자 약 23만 명 가운데 병원에서 임종한 사람은 4만 명(17.4%)에 불과했다. 당시 죽음은 의료와 행정의 절차라기보다는 '집안일'에 가까웠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분위기가 반전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08년 병원사 비율은 63.7%로 급증했고, 재택사는 22.4%로 하락했다. 2020년에는 병원사 비율이 75.6%로 증가했다. 이제 10명 중 약 8명은 병원에서 죽는다는 얘기다.

 

국가는 늘어나는 병원사에 대응해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시행했다. 이를 통해 노인 부양을 집급성기(急性期) 병원요양병원요양원이라는 전달체제를 확립하려 했다. 이제 돌봄이 필요한 노인은 집을 떠나 환자가 되어야 했다. 그렇다고 급성기 병원에 오래 머물 수도 없었다.

 

비용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국가는 요양병원 설립 허가를 완화했고, 치료와 돌봄이 필요한 노인들은 이제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요양병원은 2000 13곳에서 2019 1500곳으로, 요양원도 2008 1700곳에서 2019 5300곳으로 급증했다.

 

이 같은 요양 관련 업체의 난립 속에 요양보호사 1명이 입소자 20명을 돌보는 요양원이 나오고, 간호사 1명이 40명을 관리하는 요양병원도 등장했다. 이런 환경에서 "의료진과 돌봄 노동자가 노인들의 목소리를 주의 깊게 듣고 존중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밖에도 저자는 호스피스, 콧줄, 안락사, 무연고자의 죽음, 웰다잉 등 다양한 의료계의 이슈를 살피며 죽음을 둘러싼 개인과 국가의 관계, 관련 정책, 불평등 문제를 조명한다.

 

그는 "한국의 기이한 의료체계, 빈약한 사회 보장, 정의롭지 못한 돌봄의 배치에 대한 깊은 관심과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호스피스 확대, 왕진, 간병 급여화 같은 제도도 절실하다"고 덧붙인다.

 

저자는 존엄한 죽음을 위해서는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사회, 누구에게나 충분한 돌봄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시스템과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돌봄은 모든 시민의 문제, 즉 정치의 문제로 다뤄야 한다. 좋은 죽음은 좋은 사회에 대한 고민과 분리될 수 없다."

264.

 

의료인류학자 송병기

 

연합뉴스

2023-02-16 07:17

buff2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