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근(李重根) 부영(富榮)그룹회장 “후회한 일이 없다”
"고향 잘 지켜줘 고맙다"..이중근 부영회장 최대 1억씩 선물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고향 마을 친구와 동창생에게 통 큰 현금 선물을 해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는 지인들에게 선행을 베푼 건데 액수만도 수백억 원에 이릅니다.
【 기자 】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고향인 순천시 서면 죽동마을입니다.
이 회장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마을 주민 장찬모씨는 이달 초 통장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 회장이 현금 9천만 원을 보내왔기 때문입니다.
▶ 인터뷰 : 장찬모 / 순천시 운평리 죽동마을
- "이장님께서 통장 확인 한번 해주세요 그러더라고요. 선물이 와 있을 겁니다 그래서 보니까 진짜 들어와 있더라고요. 놀랬습니다. "
지난 한 달 동안 이 회장이 개인 돈으로 현금 선물을 한 고향마을 주민은 280명.
마을 거주 기간에 따라 적게는 2,600만 원에서부터 많게는 1억 원까지 개인 통장으로 입금했습니다.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초·중·고등학교 동창 80여 명에게도 최대 1억 원을 건넸습니다.
이렇게 고향 주민과 동창에게 전달한 현금은 3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회장은 그룹 홍보실을 통해 "고향을 잘 지켜준데 대한 고마움의 작은 표시라"고 밝혔습니다.
올해 82살인 이 회장은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어려운 학창 시절을 보내다 건설업에 투신해 재산 2조 원이 넘는 지금의 부를 이뤘습니다.
2023-06-28 21:20:09
KBC 박승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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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바로 알게 하는 게 나이 든 사람 의무”
이중근 회장 6·25저서 재조명
주관 철저히 배제·사실만 기록
사재 들여 1000만부 무료배포
photo“우리의 역사를 후손들에게 있는 그대로 바로 알게 하는 것이 나이 든 사람의 의무입니다.”
이중근(82·사진) 부영그룹 창업주는 10년 전 우정문고를 설립하고 ‘6·25전쟁 1129일’(위 사진)을 펴낸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올해 6·25전쟁 73주년, 정전협정(7월 27일) 70주년을 맞아, 주관을 철저히 배제하고 사실만을 기록한 그의 6·25 관련 저서가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이 창업주가 모두 사재를 들인 6·25전쟁 1129일은 영문본을 포함해 지금까지 1000만 부 넘게 발간됐다.
23일 부영에 따르면, 6·25전쟁 1129일은 1950년 6월 25일 전쟁 발발부터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까지 1129일간의 날씨, 전황, 국내외 정세 및 관련 국가들의 입장 등 전쟁과 관련한 내용을 기록했다. 부영 관계자는 “사진 245장과 통계, 도표, 비밀전문과 공문 등이 풍부하게 실려 있어 중요한 역사적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창업주는 아직도 6·25전쟁이 북침인지 남침인지 논쟁하고 있는 국내 현실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시작됐다는 게 명백한 사실인데 ‘이념적 잣대’로 판단하니 논쟁이 벌어진다고 본다. 6·25전쟁에 대한 학계의 각종 ‘주의’들이 혼란을 가중하고, 전쟁의 책임 주체를 더욱 모호하게 만든다는 입장이다.
그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해석은 제각각일 수 있지만, 본질인 사실은 바뀔 수 없다’는 생각에 따라 6·25전쟁 1129일을 집필할 때 매일매일 발생한 일을 가감 없이 일지 형식으로 기록하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이 창업주는 자신의 호인 우정(宇庭)을 따라 이런 기술 방식을 ‘우정체’로 이름 짓고, ‘광복 1775일’ ‘우정체로 쓴 조선개국 385년’ 등 이후 4권의 책도 같은 방식으로 저술했다.
6·25전쟁 1129일은 군부대, 학교, 도서관, 박물관, 해외 참전용사 및 후손에게 모두 무료로 전달됐다. 지금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는 모든 방문객에게 배포되고 있다.
부영 관계자는 “1000만 부 이상을 무료로 나누다 보니 국내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펴낸 책이 됐다”며 “특히 국방부는 기증받은 책의 전사편찬위원회 검증을 마치고 전군에 보급해 참고도서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문화일보
2023-06-23 11:48
김성훈 기자 tarant@munhwa.com
부영(富榮)그룹 이중근(李重根) 회장
“돼지는 아무리 크고 힘이 세어도 밭을 갈지 못한다”
⊙ 국내 재계 서열 13위 기업이지만 상장시키지 않고 경영하는 이유는?
⊙ 30대 기업 중 창업주가 직접 경영하는 기업은 부영이 유일
⊙ 앞으로 4~5년은 더 직접 경영할 생각. 후계자 다툼? 나는 자식들의 품성을 믿는다
⊙ 최고·최대·최상은 지속되지 않는 것이기에 목표로 세우지 않는다. 최적이 중요하다
⊙ 살아온 길을 돌아보지도 않고 후회하지도 않는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지금이다
⊙ 6·25 실상 바로 알리기 위한 《6·25전쟁 1129일》 요약본 1000만 부 발간해 무료 보급
이중근
75세. 건국대 정치외교학 수학, 고려대 행정학 박사
건국대 이사장, 한국주택협회 회장 역임.
대한노인회 부회장, 우정교육문화재단 이사장.
《6·25전쟁 1129일》
《광복 1775일》
《미명 36년 12768일》 등 편저
임시공휴일이던 5월 6일 오후, 이중근(李重根) 회장은 1년 365일 출근한다는 소문을 입증이라도 하듯 서울 서소문에 있는 부영그룹 사옥에 나와 있었다.
민간기업 기준으로 국내 서열 13위라는 부영그룹을 이끄는 이 회장의 방은 소박했다. 보통 약속이 없는 날에는 점심으로 6000~7000원짜리 식사를 한다는 그의 검소함에 대해서는 이미 듣고 난 후의 방문이었지만 그래도 너무 소박했다.
회의를 할 수 있는 8인용 테이블과 응접세트, 책장과 벽면에 있는 몇 개의 그림이 사무실을 꾸민 도구의 전부였다. 집무를 하는 책상 맞은편 벽에 런던 등 전 세계 주요 도시의 현재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가 나란히 걸려 있었고 마치 대학 교수의 방처럼 책들이 쌓여 있었다. 잠시 후면 우리가 마주해야 할 8인용 테이블 위에도 책이 놓여 있었다.
회장실로 들어가자마자 큰 키(186cm)의 이 회장이 방 가운데 쯤에 서서 기자 일행을 맞이했다. 이 회장은 회장 직함과 함께 행정학 박사 학위가 함께 적힌 명함을 건넸다. 이 회장의 책상 쪽 벽면에 걸려 있는 가로 크기만 2m쯤은 돼 보이는 대형 산수화를 가리키며 기자가 물었다.
— 유명한 작가의 작품인가 봅니다.
이 회장이 웃으며 대답했다.
“김포공항에서 산 겁니다.”
— 김포공항에서요?
“네. 북한 작가가 그린 그림이랍니다.”
— 공항에서 사셨다니까 가격은 물을 필요도 없겠군요.
“그럼요. 계곡의 물이 흐르는 풍경이 시원해 보여서 샀으니까 아마 여름에 산 것 같네요(웃음). 저는 사실 그림 같은 거 잘 볼 줄 몰라요.”
《6·25 전쟁 1129일》 《광복 1775일》 등 역사 시리즈물을 편저자로 내고 있는 이중근 회장은 5월 하순경 조선 정조에서 1910년까지를 다룬 《여명 135년》을 출간한다.
이 회장은 기자 일행을 회의용 테이블로 안내했는데 입구에 들어서며 보았던 테이블 위의 책들은 여러 권으로 만들어진 가제본 상태의 《여명 135년》이라는 책이었다. 이 회장은 그동안 《6·25 전쟁 1129일》 《광복 1775일》 《미명 36년 12768일》 등의 역사서를 우정체(宇庭體)로 출간해 배포해 왔다. 서점에서 유료로도 판매하고 있지만 도서관 등 공공기관에는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특히 6·25 전쟁의 실상을 바로 알리기 위해 《6·25전쟁 1129일》은 요약본만 약 1000만 부 가까이 무료로 국방부, 대한노인회 등의 기관이나 단체를 통해 배포했다. 1000만 부 무료 보급은 우리 출판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1000만 부 이상 팔린 책은 운전면허시험문제집과 성경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작비만 현재까지 380여억원이 들어간 이 일은 이 회장이 자비를 들여서 하는 일이다. 일종의 역사 시리즈물인 셈인데 《여명 135년》은 조선 정조 시대부터 한일(韓日)병합조약이 있었던 1910년까지를 기록한 책으로 5월 하순에 출간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 회장은 오전에 출근해 기자가 그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여명 135년》의 교정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 세 번째 역사 시리즈물인 《미명 36년 12768일》의 발간이 지난해 12월이었는데 《여명 135년》을 5월 하순에 발간하는 걸 보면 작업에 노하우가 생겨서 속도가 빨라진 것 같습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이런 역사서 출판을 준비한 지가 벌써 햇수로 5년이 됐습니다. 노하우도 생길 만하지만 그 동안 준비도 해 온 것이죠. 먼저 발간한 책들이 매일매일의 기록이었던 데 비해 이번에는 조선 시대이기 때문에 월간 단위로 기록을 했습니다.”
— 《조선왕조실록》을 주로 활용한 건가요.
“《실록》하고 《승정원일기》 등 다양한 사료들을 참고해서 만들었습니다.”
— 이 역사서들의 기록 방식을 우정체라고 했는데요.
우정은 이 회장의 아호다.
“연도별로 기술을 했으니까 형식은 편년체(編年體)인데 그 시대에 벌어진 일에 대한 설명 등도 곁들였기 때문에 이 책의 기술 방법을 설명할 마땅한 체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독창적인 기술 방법이기도 하니까 주변에서 우정체라고 붙여준 거죠.”
부영그룹 이중근 회장이 2014년 12월 18일 오전 세종홀에서 열린 《광복 1775일》 출판기념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그동안 역사서 시리즈물 제작비 총 380억 중 《6·25 전쟁 1129일》에 들어간 비용이 345억원입니다. 6·25에 특별히 관심을 갖는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요약본을 1000만 부 이상 발행해서 무상으로 보급하다 보니까 비용이 많이 들었습니다. UN은 창립 후 최초로 침략당한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6·25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전쟁 중 200여만명의 국민이 희생됐지만 우리는 그분들의 고귀한 생명의 대가로 세계 10위권 내의 경제대국을 이룩했습니다. 대단한 일이죠. 우리가 그 전쟁을 기억하고 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여명 135년》에 이은 다음 시리즈도 기획하고 있습니까.
“준비하고 있습니다. 휴전협정이 있었던 53년 7월부터 2013년까지를 다룰 계획입니다. 제목은 ‘번영 60년’이라고 붙일 생각이고요. 보통 분단 60년이라고 하는데 저는 그 시기를 번영의 시기로 보기 때문에 그런 제목을 달 생각입니다.”
— 역사관이 다른 사학자들도 많은데 혹시 그런 차이 때문에 시비를 걸어 오는 학자는 없었습니까.
“저는 사실을 나열만 했고 재해석은 하지 않았잖습니까. 해석은 독자의 몫이라고 했는데 제게 뭐라고 그러겠습니까. 역사 해석은 각각일 수 있어도 그 기록은 바뀔 수 없는 겁니다.”
— 왜 이런 시기에 이런 책을 내느냐는 말들도 없었습니까.
“상당히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온 거라 발간 시기와 현재의 상황이 관련이 없다는 것을 잘들 아실 거예요.”
현재까지 우리 사회에 총 5000억 이상 기부
이 회장은 ‘교육재화는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1991년 순천 부영초등학교를 신축해 기증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전국 170 곳의 대학과 초·중·고에 기숙사, 도서관, 체육 시설 등 교육·복지 시설을 기증했다.
2003년부터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및 아프리카 등으로 영역을 확대해 17개국에 학교 600여 개교, 피아노 6만여 대, 칠판 60만여 개 등을 기부했다. 이 회장이 한 해에 이런 식으로 기부하는 액수는 300억~5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그가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위해 기부한 총액은 5000억원이 넘는다.
그런 그가 최근에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는 부영이 건설한 아파트 단지 내의 어린이집 운영이다.
—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 운영에 관심을 가지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습니까.
“저희가 지은 부영아파트에 어린이집과 노인정이 있는데 노인정은 임대료를 받지 않는데 어린이집은 임대료를 받고 있어 검토를 시켰죠. 어린이집도 임대기간 동안 임대료가 없는 방식으로 운영하면 어린이집 운영과 관련하여 이슈가 됐던 많은 부분들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린이집에 대해서는 임대기간 동안에도 시설 이용료를 안 받는 것으로 시행을 해 버렸습니다.”
— 그걸 금액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됩니까.
“꽤 될 겁니다. 지금 관리하고 있는 것이 매년 한 10억 정도 되더군요.”
— 어린이집 운영을 부영이 직접 하는 겁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화여대와 교육 지원을 약속하고 교육은 그 대학 유아교육과 출신 이기숙 교수가 고문으로서 관장하고 있습니다. 교육과 관련한 부분은 전적으로 이 교수에게 맡기고 우리는 어린이집 시설에 대한 임대료를 안 받는 것이죠. 그렇게 개원한 어린이집이 벌써 40여 곳 됩니다.”
— 올 들어서 시작한 일이죠?
“올 초에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더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연내에 20여 곳이 더 늘어날 것이고 매년 20~30곳 정도 늘어날 것으로 봅니다. 정부 지원으로 어린이집 교사 인건비와 아이들 간식비는 충당되기 때문에 부모들의 부담이 크게 줄어든 거죠. 체계적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요.”
— 부영에서 내는 연 300억원에서 500억원의 기부금이 대기업 중에서 매출액 대비 1위라고 하던데요.
이 회장은 기자의 질문을 바로잡아 주며 말했다.
“아니에요. 매년 그렇다는 건 아니고요. 한 번 그런 적이 있었어요.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그랬죠.”
공사 현장 아침 무료 식사비만 연간 약 100억원
2013년 11월 한국을 방문한 추말리 사야손 라오스 대통령 내외를 초청한 이중근 회장 부부가 사야손 대통령 부부에게 한국의 전통한복을 선물하고 있다. 이 회장은 동남아 등 해외 학교에 지속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 기부를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부영이 탄탄해진 다음입니까.
“부영을 반석 위에 올려놓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기부를 하려고 한 게 아니라 다목적이었습니다. 순천에 가서 부영초등학교를 처음 지은 게 학교 시설 기부의 시작이었는데 기부하겠다는 마음으로 지은 건 아니었어요. 아파트 단지는 조성했는데 학교가 너무 멀었어요. 교육청에서 땅을 줄 테니까 학교를 지어 주면 어떻겠냐고 해서 학교를 지었어요. 시작은 그렇게 했는데 지어 주고 나니까 거기 단지의 집들도 잘 팔리더라고요. 시청이나 교육청하고 관계도 좋아지고요. 인심도 얻고 장사도 되고 하니까 시작한 거예요. 그렇게 하나둘 하다 보니까 학교에 기부를 많이 했다고 그러는 거죠.”
— 자신의 선행에 대해 너무 겸양을 보이는 것 아닌가요.
“겸양은 아니지만 다른 좋은 점도 있더군요. 그렇게 기부를 하다가 보니까 그 기쁨이 정말 커지는 것만은 분명하더군요.”
— 기부는 계속할 거죠.
“그럼요. 다행히 국내 기부는 조세감면을 해 주고 있어요. 조세감면을 받으니까 국가가 반은 해 주는 셈이죠.”
— 외국에서도 기부를 통해 학교에 지원을 하는데 조세감면이 됩니까.
“외국에 대한 기부는 조세감면이 안 됩니다. 그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세법이 그러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죠.”
— 외국 학교에 대한 지원은 부영그룹의 해외 진출과도 관련이 있습니까.
“그런 목적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죠. 설사 우리가 진출을 못하더라도 대한민국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게 더 큰 목표입니다. 부영이 아닌 다른 기업도 우리가 그곳 국가들에서 쌓아 놓은 이미지를 활용할 수 있어야겠죠.”
— 공사 현장에서는 아침 식사도 무료로 제공한다면서요.
“현장은 아침 7시면 일을 시작합니다. 7시에 일을 하려면 보통 집에서 4~5시에는 일어나서 나와야 하니까 식사들을 안 하고 나오죠. 공복인 상태에서 작업을 하게 되면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 많기 때문에 위험해요. 안전관리에 문제가 생깁니다.”
— 현장마다 아침 식사를 제공하려면 비용도 만만치 않을 텐데요.
“연간으로 따지면 약 100억원 정도 됩니다. 아침 식사를 하고 일을 하게 되면 근로자들의 건강도 좋아지고, 안전 문제도 줄어들면 그것이 100억 이상의 가치를 할 것이라고 봅니다.”
— 일용직에게도 아침을 제공하는 겁니까.
“일용직을 비롯해 현장 근로자면 누구에게든 다 제공하죠. 협력업체 직원도 마찬가지고요. 식사 재료에도 원칙을 정했어요. 반드시 두부 반 모하고 계란 하나는 식사에 넣으라고 했죠. 그러고 나니까 현장에 일하러 오시는 분들이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해요. 식권을 주니까 인원 파악이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점이 있어 우리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태백 시민사회가 부영을 환영한 까닭
금년 들어 강원 지역 언론에는 부영그룹과 이중근 회장의 이름이 자주 오르내렸다. 태백 지역에 대한 부영의 투자 때문이다. 오투리조트비대위는 오투리조트를 차라리 파산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지만 태백 지역의 시민단체들은 공기업인 오투리조트를 인수한 민간기업 부영을 환영하는 플래카드를 내걸기도 했다. 부영이 인수한 후 오투리조트 노동조합은 자진 해체 선언을 하기도 했다. 민간기업의 공기업 인수에서는 볼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 지역 사회단체들이 공기업으로서 첫 파산위기를 맞았던 오투리조트를 부영이 인수하는 걸 환영하는 플래카드를 내거는 일도 있었던데요.
“태백시 입장에서는 오투리조트가 안 팔렸으면 시(市) 재정이 어려웠을 겁니다. 공무원들 월급 주기가 어려워질 정도라고 들었어요. 강원도 출신 여러분들이 고맙다고 하더군요. 도지사도, 특히 지역민들이 고마움을 많이 표시해 왔어요.”
— 잘못하면 아주 골치 아플 수도 있는 인수였는데요.
“김연식 태백시장이 아주 젊은 분이에요. 오투리조트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저한테 편지도 보내고 직접 찾아오기도 했어요. 지자체의 장이 자신이 이끄는 지자체를 위해 노력하는 걸 보고 저렇게 하면 뭐라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 젊은 태백시장한테 감동을 받아서 매입했군요.
“그런 표현이 적당한 것 같습니다.”
— 최근에 태백에 있는 KBS방송 부지도 매입했던데 무슨 용도로 사용할 계획인지요.
“태백시에서 그 땅을 사 놓고 못 팔다가 공개입찰을 할 때 저희가 구입했습니다. 오투리조트와 마찬가지로 그 부지 매각은 시 재정에 도움이 되죠. 거기에다 우리가 주택을 한 1000여 세대 지으면 시가 생동감 있게 돌아가지 않겠어요? 거주 여건은 이웃의 정선보다 태백이 좋아요. 태백에서 태백산맥 넘어 터널 서쪽으로 가면 정선인데 서쪽은 어딘가 좀 덜 밝은 것 같고 동쪽은 아주 밝아요. 거주 여건이 아주 좋아요. 가까우니까 정선에 있는 강원랜드 근무자들도 태백에서 많이 살아요.”
— 아파트는 임대아파트로 지을 예정이죠.
“임대로 해야 지역경제에 도움이 됩니다.”
— 아파트를 지을 때는 지역경제도 고려해서 임대냐, 분양이냐를 결정하나 보죠.
“대개 그렇습니다. 태백의 경우 경제 여건이 30평대는 좀 큰 것이고 20평대로 해야 할 것 같은데, 제 판단에는 임대로 해야 현지 사람들도 좋아할 것 같고요.”
풍수지리를 잘 모르지만
2014년 9월 24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인간상록수 추대식이 열렸다. 수상자인 이중근 회장이 부인 나길순 여사와 함께 추대패를 들고 있다.
— 풍수지리에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소리를 가끔 듣는 것으로 아는데 딱 보면 보입니까. ‘여기가 집 짓기 좋은 땅이다, 휴양지로서 좋다’ 뭐 이런 식으로요.
“사실 저는 풍수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데 주변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하더군요(웃음). 느낌이야 있지요. ‘좋을 것 같은데’ 하는 느낌이요. 그 외에 장사가 되고 안 되고, 부자가 되고 안 되고, 그런 것까지는 모릅니다. 한수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제가 가르쳐줄 게 없어요. 아는 게 없으니까(웃음).”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지세 등을 보며 좋다, 나쁘다 하는 느낌이 거의 다 적중한 거죠.
“모르겠어요. 좋았던 것만 제가 기억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실패한 기억은 잘 나지 않습니다.”
— 부영그룹 본사만 해도 부영그룹이 입주하기 전에는 원래 출입문이 지금은 옆면으로 돼 있는 대한통운 쪽으로 나 있었던 걸로 아는데요. 출입문 위치가 바뀐 것은 풍수지리 때문인가요.
“풍수지리 때문은 아니고요. 집은 길 오르막에 올라앉는 게 상식입니다. 길 위에서 내려오며 들어오는 것은 안 좋아요. 상식적인 얘기죠. 그런데 출입문을 바꿔 놓으니까 풍수지리 하는 분들도 보고 그게 맞다고들 해요(웃음).”
— 땅을 많이 보시니까 훈수를 두기 위해서라도 풍수 전문가들이 찾아오지는 않습니까.
“아휴, 별소리 다 하죠. 이리로 가면 금방 부자가 되고 이리로 가면 망하고 별소리를 다 하죠. 그런데 그분들 말을 다 들으면 뜨거운 솥 속에서 뛰는 개구리 짝이 되는 거죠. 말은 들어 주지만 결정은 제가 합니다.”
— 세계 태권도 평화봉사재단 총재를 맡고 있는데 태권도에 관심이 많았습니까.
“아뇨. 하라고 시켜서 했습니다.”
— 누가요.
“처음에 WTF(세계태권도연맹)를 지원 좀 해 달라고 문체부 등에서 부탁을 해 왔어요. 2020년까지 1000만 달러 지원하기로 했죠.”
— 저는 혹시 키도 크고 훤칠해서 태권도를 한 건 아닌가 했지요. 그럼 다른 운동을 하지는 않았습니까.
“키가 크다고 배구는 했어요. 제 자식들이나 손자들은 태권도를 많이 했어요. 사실 태권도가 우리의 국기(國技) 아닙니까. WTF는 삼성이 지원을 하다가 만 후 지원하는 곳이 없었어요. 우리 기업이 지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 술 담배는?
“담배는 많이 했었죠. 담배를 많이 피우면 오래 못 산다고 해서 쉰 살이 되기 전에 끊었습니다. 술은 체질적으로 안 맞았고요.”
— 골프장을 5개나 운영하는데 골프는 왜 안 하는 겁니까.
이 회장은 또 기자의 잘못된 질문을 바로잡아 주었다.
“5개가 아니고 7월에 문을 여는 광주 골프장을 포함하면 현재 운영하는 게 총 9개예요. 골프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배운 거죠.”
내가 사는 재미는?
이중근 회장은 동남아 지역 학교에 피아노 칠판 등을 기부하고 있다. 지난 2010년 9월 30일 말레이시아 푸트라자야의 알람샤 초ㆍ중학교 강당에서 이중근 회장과 무히딘 말레이시아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회장의 오른쪽)이 학생들이 디지털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 술, 담배도 안 하고 골프도 안 하면 무슨 재미로 삽니까.
“일을 하잖습니까.”
— 일하는 게 재미있습니까.
“재미있다기보다는 해야 하는 거죠. 제가 일을 하니까 제 일로 인해서 여러 사람이 일하게 되고, 그렇게 더불어 일하면서 살게 되는 거죠.”
— 일을 만들어서, 찾아서 하는 스타일입니까.
“만들기도 하고 찾기도 하죠. 땅이 좋은 게 있으면 집을 짓는 게 좋겠다고 해서 짓기도 하는 식으로, 그렇게 찾기도 하고 만들기도 하는 거죠.”
— 혹시 돈 버는 재미로 사는 거 아닙니까.
“우리 회사 직원이 몇 명인데 그 사람들이 다 일하면서 살고 있는 것만 봐도 행복한 일입니다. 제 고향이 전남 순천인데 어린 시절에 거기서 맨몸으로 서울로 올라와서 지금은 사대문 안에 사무실도 가지고 있고 아들 손자들 학교 보내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제가 56년에 서울에 올라올 때는 식사문제 해결하고 취직하는 게 최고 목표였습니다. 그거 해결했지, 처자식 다 먹여살렸지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 저는 사는 재미를 물어본 건데요.
“그것 자체가 매일매일 재미로 쌓이는 거죠. 제가 살아오면서 일 자체가 힘들다는 생각은 안 해 봤습니다.”
— 부영그룹이 재계 서열 13위라는 데 만족합니까.
“사실 재계 순위는 저도 잘 몰라요. 관심도 크지 않고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제가 지금까지 일해 오면서 우리 회사를 재계 순위 몇 위에 올려놓겠다는 목표를 정한 적이 없습니다.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죠. 제 나이로 봐서 순위에 그렇게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 국내 30대 그룹 중 창업주가 직접 경영하는 회사는 부영이 유일하다는데요.
“아, 그런가요? 여러 사람이 있다고 그러던데요. 제가 직접 경영을 하는 것은 맞고요.”
— 언론 보도가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그게 중요한 일인가요?”
— 자제분들이 후계자로서 경영수업은 하고 있습니까.
“하고 있습니다. 3남1녀가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 큰 기업들을 보면 경영권을 놓고 형제자매 간에 싸움이 종종 벌어지던데요.
“남의 회사 얘기를 할 필요는 없겠지만 저는 그런 다툼이 누구는 많이 주고 적게 주고 하는 데서 일어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후계 구도 장치를 잘해 놓았다고 해서 싸움이 벌어지지 않는 것도 아니라고 보고요. 저는 본성, 품성의 문제라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후계와 관련한 염려는 안 합니다.”
— 자제분들의 품성을 믿는 거죠?
“예.”
— 앞으로 직접 경영은 얼마나 더 할 수 있을 거라고 보는지요.
“글쎄요. 4~5년 정도요. 좀 더 상황을 지켜봐야죠.”
— 기업가의 길은 어린 시절부터 품었던 꿈입니까.
“아니에요. 제가 만 15세 때인 56년에 처음 서울에 왔는데 그때 무슨 꿈이 있었겠어요. 그냥 일을 열심히 하다가 보니까 주택 건설을 하게 됐고 이런 길을 걷게 된 거죠. 그때는 밥을 먹는 게 제일 큰 걱정이었고 그래서 그걸 해결해야 했고, 저녁에는 잠을 잘 수 있는 곳을 구하는 게 제일 큰 문제였어요.”
— 왜 상경(上京)했습니까.
“특별한 이유가 있었겠습니까. 시골에서 할 일이 없었으니까 일을 찾으러 서울로 무작정 온 거죠.”
배당을 많이 받든 적게 받든 내게는 의미 없는 일
— 그래도 어린 시절에 나는 커서 뭐가 되겠다는 생각은 있었을 것 아닙니까.
“제 형제가 7남매인데, 촌이지만 아버지는 면서기도 하시고 그랬거든요. 밥은 먹었죠. 그래도 항상 넉넉하지는 않았죠. 아버지를 보면서 항상 내가 아버지가 되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애들 밥이나 제대로 먹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죠. 아버지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자식들 밥은 먹이는데 내가 아버지가 되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을 해 왔어요.”
— 회사에서 배당을 잘 안 받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어느 인터넷 매체에서는 배당을 너무 많이 받아 간다고 욕을 하던데, 어디는 적게 받는다고 하고 참. 우리 회사는 비공개법인이기 때문에 배당을 받으나 안 받으나 그것이 그것이에요. 제가 사실상 소유주이니까요.”
— 상장을 안 하는 이유는 뭡니까.
“주식회사는 주주에 대한 배당을 해야 합니다. 주주배당을 하지 못할 것이면 상장하지 말아야죠. 상장했으면 거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거고요. 상장을 하면 사실상 두 개의 회사를 운영해야 합니다. 실제의 회사 하나와 주주의 이익을 내야 하는 회사. 회사는 실적을 내야 하고 주주의 이익도 보장해야 하고, 그 어려운 것을 어떻게들 하는지 대단합니다.”
— 다른 기업들은 다 상장을 하지 않았습니까.
“상장했으니 상장 취소를 못하죠. 미국에는 상장했다가 취소하는 경우가 더러 있어요. 돈 많은 회사는 주식을 다시 사들여서 상장을 취소하죠. 그런데 우리나라 회사 중에는 그럴 여력이 있는 회사가 없을 겁니다. 액면가가 실가치하고 차이가 너무 많이 나잖아요.”
— 주변의 사업하는 분들 중에 상장 취소하고 개인회사로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나요.
“그렇게 할 수 있는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분들이 없을 겁니다. 공개법인 치고 주식을 30~40% 가진 사람도 거의 없죠. 그 자금 가지고 회수가 되나요? 안 되죠.”
— 임대아파트 사업에 본격적으로 참여한 시기는 노태우(盧泰愚) 정부 때인가요.
“네. 주택 200만호 건설에 참여했죠. 그때 의무적으로 각 건설업체에 배당을 했어요. 현대, 삼성 다 했는데 분양하자마자 임대에서 손을 떼 버렸어요. 우리만 남아 있는 거죠.”
— 다른 건설사와 달리 임대사업을 지금까지 이어 오시길 잘했다는 생각이죠?
“애초에도 소신이 있었어요. 주택은 거주 목적이지 재산 증식 목적이 아니라는 생각이죠. 거주 목적이라면 임대주택으로 가야 하는 게 맞아요.”
— 역대 정부 중 주택정책을 가장 잘한 정부는 어느 정부입니까.
“다 잘하려고 했죠. 그러나 주택정책을 시장에 맡긴 정부는 아직 못 봤어요.”
회사 유니폼 입는 회장님
이중근 회장은 왼쪽 어깨 밑으로 ‘안전제일’이라는 구호가 적힌 마크가 부착돼 있는 담황색 계통의 회사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 부영은 전 직원이 유니폼을 착용합니까.
“아니에요. 입지 않는 사람도 있어요.”
— 회장이 입는데 안 입으면 눈치 보일 텐데요.
“눈치 보는 직원은 없어요. 그런 걸 왜 눈치를 봐요. 저는 이 옷이 편해서 입는 거예요.”
— ‘안전제일’이라는 마크가 올드해 보이지는 않나요.
‘안전제일’에 대한 이 회장의 생각은 확고했고 그 확고함을 긴 말로써 확인시켰다.
“아닙니다. 안전은 생명이죠. 어디를 가나 안전이 제일 중요합니다. 건설 현장에서만 안전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회사가 금융이 됐든 건설이 됐든 어디에서나 안전은 중요합니다. 안전이라는 게 당사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가족과 사회에 더 중요한 일이죠.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지만 안전을 안 지켜서 사고가 나 죽으면 당사자는 끝이지만 그 가족이나 사회는 그렇지 않잖아요. 건설 쪽이 좀 러프하니까 사고율이 높다는 것뿐이지 어느 분야에서나 안전은 중요합니다. 우리는 안전을 최고의 가치로 여깁니다.”
— 해외나 지방 출장 때를 빼 놓고는 사무실에 매일 출근한다면서요.
“해외 출장을 가도 그곳 현장으로 출근을 하는 거죠.”
— 그룹 회장이 출근하면 다른 직원들도 심적으로 출근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부담을 가지는 것 아닙니까.
“아니에요. 그런 부담을 주지도 않지만 갖지도 않아요. 제가 나오나 안 나오나 자기들 일은 자기들이 다 알아서 잘합니다.”
— 차가 밀린다고 직원들을 6시까지 퇴근하라고 했다던데 잘 지켜집니까.
“6시30분에 퇴근하면 차가 밀리는 것 같아서 6시까지 퇴근하라고 했어요. 저도 6시30분 이전에 회사에서 꼭 나갑니다.”
— 인터넷 매체에서 보도한 기사를 봤는데 부영그룹은 연초에 임직원들에게 연차를 안 쓰겠다는 서약을 받는 것으로 돼 있던데요.
“거짓말이에요. 정말 대꾸할 가치도 없는 거짓말이죠. 그런 식으로 우리를 헐뜯는 기사들이 간혹 있어요.”
아파트 이미지가 촌스럽다지만…
— 행정학을 공부하게 된 이유가 재미있던데요.
“사업을 하려면 우선 공무원들에게 어떻게 적응해서 살아남을 것인가를 배워야 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체험했기 때문이죠.”
— 도움이 되던가요.
“물론이죠.”
— 최고, 최대, 최상이라는 말을 구호나 목표로 삼지 않는데, 직원들 입장에서는 ‘우리 회사가 최고야, 최대야’ 이런 말을 들으면 자부심도 갖게 되고 그러는 것 아닌가요.
“그런 말은 안 되죠. 실현 불가능한 거니까요. 행정학에서도 최적모형은 있지만 최고모형은 없어요. 최상, 최대, 최고가 항상 유지될 수 있는 건가요? 순간적일 뿐이죠. 순간적으로 맛보고 사라지는 것을 위해서 목표를 정할 수는 없는 거죠.”
— 부영 아파트의 이미지가 촌스럽다는 거 압니까.
“우리 아파트 브랜드가 ‘사랑으로’인데 촌스럽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 ‘사랑으로’는 직접 작명한 거죠?
“네.”
— 시대에 맞게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바꿔 볼 계획은 있는 거죠?
“아파트의 질을 높여서 좋은 집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이미지를 고급화하는 게 목적이 아니에요.”
— 통풍 등을 이유로 판상형(板狀型·성냥갑을 쌓아 놓은 듯한 형태의 아파트) 아파트를 고집하시는데요. 앞으로도 쭈욱 그 고집을 가지고 가실 생각입니까.
“고집이 아닙니다. 그게 좋기 때문에 그렇게 짓는 겁니다. 직각이면 각종 가구를 들여놓을 때도 좋고 통풍도 잘됩니다. 타워형은 직각이 아니고 타원형이 많습니다. 가구를 가져다놓기가 어렵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타원형 가구는 별로 없잖아요. 대부분 직각 형태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판상형은 환기가 잘되고요. 저희는 환기가 목표입니다.”
— 그래도 입주자들은 자기가 사는 아파트의 내부 못잖게 외형도 중요시하는 것 같습니다. 멋진 외형에서 자부심도 느끼고요.
“그래서 이런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안에는 직각으로 하고 외부는 좀 모양을 갖추는 방식이요.”
— 그러면 건폐율 때문에 전용면적이 작아지는 등 아파트 공간 내에서 버려지는 부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멋지게 보이고 싶은 품위유지 비용이 그만큼 나가야 하는 것으로 생각해야겠죠. 홍콩이나 이런 데서는 고급주택이 일반 주택에 비해 2~3배 더 비싸잖아요. 예술주택이라고 해서요. 하지만 실용적인 것을 생각하면 직각이 가장 실용적입니다.”
본사 이전 계획 없어
부영그룹이 매입한 삼성생명보험 태평로 사옥. 삼성생명 태평로 사옥은 삼성그룹을 상징하는 건물이기도 했다.
부영은 금년 1월 삼성그룹의 상징인 삼성생명 태평로 사옥을 사들였다. 부영그룹과는 작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건물이다.
— 삼성생명 태평로 사옥은 평소에 사들이고 싶다는 생각을 해 온 겁니까.
“그런 생각을 평소에 가지지는 않았고요. 삼성이 팔 거라는 생각을 안 해 왔으니까요. 빌딩을 판다고 하니까 사게 된 거죠.”
— 구입 후 만족스럽습니까.
“글쎄요. 만족이라고 할까요. 크게 손해는 안 본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가치로 봐서는 비싸게 샀는데 그 대신 우리 회사가 유명해진 값이 있는 것 같아요.”
— 부영 본사를 삼성생명 빌딩으로 옮길 생각은 없습니까. 외관상으로는 삼성생명 빌딩이 더 좋아 보이는데요.
“내부 시설을 이용하는 거는 여기가 더 좋다고 봐요. 천장도 여기가 더 높고요. 공공 업무 시설은 천장 높이가 어느 정도 있어야 됩니다. 당장 본사를 그곳으로 이전할 계획은 없습니다.”
— 호텔, 리조트, 골프장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데 부영의 미래를 준비하는 거겠죠.
“아니에요. 새로운 사업 영역이 아니라 같은 유형의 사업을 계속 하는 겁니다. 호텔, 리조트와 주택은 하루 자는 것이냐, 한평생 자는 것이냐의 차이일 뿐 서로 연결돼 있는 사업입니다. 레저 분야도 마찬가지고요.”
— 주택 시장이라는 게 형태 변화만 있지 시장 규모가 급격히 축소된다든가 하는 일은 없다고 보시는 거죠?
“제 생각에는 휴대폰 같은 것은 엄청난 변화가 계속되겠지만 주택은 덜 팔리고 많이 팔리고의 차이지 인류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변천의 역사는 있겠지만 주택의 수명은 지속될 것입니다.”
이중근 회장은 인터뷰 시간이 1시간30분을 넘어서자 기자의 짧은 밑천을 다 들여다봤는지 한결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 사적인 질문들을 던져 봤다.
— 관상가로 유명한 신기원씨는 이중근 회장의 관상을 ‘귀상이고 격이 있는 관상’이라고 했는데요.
이 회장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저는 아무리 제 얼굴을 봐도 잘 모르겠는데요.”
— 지금도 그렇지만 젊은 시절에는 키도 훤칠하고 잘생겼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죠?
“군에 있을 때는 훤칠했죠.”
— 육군 병장 제대했습니까.
“아닙니다. 공군에 입대해서 하사로 제대했어요. 제가 5·16 직후에 군대를 갔는데 키가 1m80cm 이상이면 당시에는 군대를 못 갔어요. 맞는 군수품이 없어서였죠. 그래서 육군은 못 가고 공군을 지원했죠.”
— 군대는 왜 그렇게 꼭 가려고 했습니까.
“그때는 취직이 안 되니까요. 먹여 주고 재워 주고 하는 곳이 군대이기도 하고요. 군대 가게 해 달라고 탄원서를 낸 일도 있어요.”
— 공군 신체검사는 통과를 했네요.
“운이 좋았다고 할까요. 그냥 신체검사를 통과시켜 주는 거예요. 3개월 후 대전공군기술교육단에 입소해서 신체검사를 받는데 제 키가 문제가 됐죠. 키가 크니까 집으로 돌아가라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3개월 동안 갑자기 키가 큰 것도 아니고 처음에 합격을 시켜 놓고 이제 와서 불합격시키려는 거는 뭐냐’면서 따졌어요.”
나이의 많고 적음을 불문하고 남자에게는 군대 이야기만큼 신나는 게 없는 것 같다.
“결국 미제 군복을 입고 군생활을 했어요. 저는 훈련소 입교식도 못했어요. 남들보다 머리통 하나가 위로 솟아나오니까 빠져 있으라고 하더군요. 그때는 시내버스를 타도 환기통 있는 데 서 있어야 했죠. 버스 환기통을 위로 밀어올리면 그 부분은 버스 천장의 다른 부분보다 좀 높으니까요.”
— 그래서 천장 높은 사무실을 좋아하시나 봅니다.
“(웃음)”
고약하고 무서운 회장?
2013년 5월에 있었던 캄보디아 프놈펜의 ‘부영타운’건설 현장 기공식에서 이중근(왼쪽) 회장과 임춘림 캄보디아 국토부장관이 첫 삽을 뜨고 있다.
— 신입 사원을 뽑을 때 부영이 원하는 인재상은 어떤 겁니까.
“자기 앞가림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 앞가림하는지 안 하는지 어떻게 찾아냅니까.
“비결은 없어요. 운 좋으면 그런 사람 뽑게 되는 것이죠. 멀쩡하게 생긴 사람도 뽑아 놓고 보면 시원치 않은 사람이 있고요.”
— 직접 면접에 참여합니까.
“직접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요.”
— 인생을 살면서 제일 후회스러웠던 일은요.
“후회한 일은 없어요. 우리 나이인 사람들을 보면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다보는 사람도 많고 후회하는 사람도 많아요. 그런데 후회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저는 후회한 일이 없어요 언제나 중요한 것은 지금이죠.”
— 직원들은 어떤 회장이라고 보는 것 같나요.
“‘고약하다’, ‘무섭다’ 두 가지겠지요(웃음).”
— 그런 인상을 바꿔 볼 생각은 없습니까.
“직원들에게 강조를 하는 게 있어요. 숫자는 반드시 맞아야 하고 논리는 합리적이어야 합니다. 그걸 원칙으로 하고 있어요. 그리고 법과 규정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죠. 근거 있는 이야기를 하라고 하는데 그 근거는 법과 규정에 나오는 것이잖아요. 직원들에게 원칙을 강조하니 저에 대한 인상이 바뀌겠어요?”
— 다시 태어나도 사업가의 길을 갈 겁니까.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생각도 안 해 봤어요. 지금 제가 그룹의 회장인데 지나온 과정을 돌아보라고 하면 어떤 과정을 겪었겠습니까. 안 해 본 고생이 없겠죠. 다시 태어난다는 거 생각해 본 일이 없어요.”
— 기업가에게 조국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자기 몫을 다 하는 사람이 최곱니다. 그것이 가족이든 사회든 국가든 마찬가지죠. 집장수면 제대로 된 집 보급하고 그렇게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죠.”
— 가족들과 시간은 자주 갖습니까.
“자주 갖는 편은 아니죠.”
— 자제들은 말을 잘 듣습니까.
“어릴 때는 쫙 따라오더니 나이 드니까 이리저리 핑계 대고 안 따라와요(웃음).”
— 부인을 위해 만들 수 있는 음식은요.
“라면이죠. 두부 위에 꽁치 넣고 간장 부어서 지져 먹는 음식도 하죠. 어릴 적 먹었던 음식이라서.”
— 좋아하는 음식은?
“그 정도면 최고지. 두부 넣고 꽁치 넣고. 지금도 맛있어요.”
— 최근에 부인과 영화 같이 본 게 있는지요.
“좀 시간이 되긴 했는데 〈국제시장〉을 같이 봤어요. 보고 나서 우리 직원들한테도 보라고 권했지요.”
— 좋아하시는 말 중에 ‘돼지는 아무리 크고 힘이 세도 밭을 갈지 못한다’는 것이 있던데 직접 만드신 말인가요.
“네. 아마 우리 부영 초기에 한 말일 겁니다.”
— 인재를 적재적소에 쓰라는 말입니까.
“그런 뜻도 될 수는 있죠. 사람마다 한계가 있다는 거예요. 아무리 소가 작아도 소 몫이 있고, 돼지는 돼지 몫이 있다는 표현이죠.”
이 회장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여러 번 머릿속을 맴돌게 하는 그의 말이 있었다. “후회한 일이 없다”와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생각해 본 일이 없다”는 말이었다. 맨주먹으로 기업을 시작해 국내 기업 순위 13위까지 일궈 내기까지의 지난했을 그의 삶, 만 75년이 응축돼 있는 말 같았다.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글 : 김성동 월간조선 기자 ksdhan@chosun.com
사진 : 서경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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