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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C〕네팔인과 구르카 용병

Paul Ahn 2023. 6. 30. 16:52

PMC〕네팔인과 구르카 용병

(dkilbo.com)

 

네팔은 작아 보여도 우리 한반도 1.5배 크기의 영토를 지니고 있다.

인구는 3,000만이 좀 넘는데 하나의 민족이 아니고 크게는 30여 종족, 좀 더 자세히는 120개의 종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인도인 같은 사람, 파키스탄인 같은 사람, 혹은 티벳인이 같거나 한국인과 비슷해 보이는 이들도 있는 것이다. 이들 중에는 힌두교와 불교가 뒤엉킨듯한 종교인들이 많고 기독교인들도 5% 미만 있다고 하는데, 신앙심이 매우 깊어 매일 아침 촛불 앞에 기도를 하고, 각종 종교의식에는 많은 이들이 참석한다.

 

 

◇구르카(Gurkha)라는 명칭은

 

네팔 왕국의 지역이었던 '고르카(Gorkha)'에서 온 것으로, 이는 중세 인도의 전사이자 지도자였던 구루 고락나트(Gorakhnath)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후 고르카는 왕국 전체를 가리키는 별칭이 되어, '네팔 왕국' '고르카 왕국' 또는 '고르카 제국(Gorkha Empire)'이라고도 불렀다.

 

이에 관해 가장 널리 퍼진 오해는 이 명칭이 '네팔의 산간지대에 사는 어떤 한 민족인 구르카족'을 가리킨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실제로는 특정한 종족을 가리키는 명칭이 아니며, 영국에서 네팔인이나 셰르파, 인도 북부 지역에서 온 사람들을 두루 이르던 명칭이다.

 

 

◇구르카 용병은

 

1800년대 초 네팔과 군사적으로 대립했던 영국은 구부러진 모양의 네팔 전통 칼인 쿠크리(खुकुरी, Kukri)를 사용하는 구르카군의 전투력을 발견하고, 19세기 중반부터 구르카 군대를 고용하여 현지의 부족한 군사력을 보충하기 시작했다.

 

The Nusseree Battalion 1857

 

Gurkhas NavyAndArmyIllustrated 1896 

 

구르카 용병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군의 일부로 일본군과의 전투에 파병된 이래, 그리스와 시리아 등 영국의 해외 전선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었다.

 

5th Gurkha Japan 1946 

 

구르카 용병은 전통적으로는 네팔 산간지방 사람들로 이루어져있는데 체트리(타쿠리), 머거르 등 구릉의 사람들이 영국과 맞서 싸운 원조 구르카이다. 오늘날 구르카는 모든 네팔의 부족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면된다.

 

원래 영국은 각지의 식민지에 현지인으로 구성된 외인부대를 창설해 유지해 왔으나, 인도 및 홍콩, 아프리카 등 자국 식민지를 독립시켜주는 과정에서 대부분 해체되었다. 그러나 오직 구르카 용병 부대만은 해체하지 않은 채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영국 육군의 일부로 정글 등지에서 일본군을 기습하여 큰 손실을 입혔으며, 유럽과 아프리카 일부에서도 활약했다. 영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 나라들은 모두 이들을 두려워하게 된다.

 

포클랜드 전쟁 때는 일부 아르헨티나 육군 병력들은 구르카 부대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냥 항복하거나 도망쳐 버리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 파키스탄과 국경분쟁에서 인도 육군 소속 구르카병들이 파키스탄 육군과 대적하여 이름을 날렸다.

 

구르카 용병이 되기 위해 많은 네팔 젊은이들이 수백 대 일의 경쟁을 뚫기 위해 수년간 노력을 하는데, 가장 대우가 좋은 영국군이 되지 못하면 인도나 싱가포르의 용병으로 지원하게 된다.

 

외국의 용병으로 근무했던 구르카 군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오면 교사나 지역사회 지도자로서 서구 사상이나 기술을 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2개 대대 규모의 구르카 용병을 운영하고 있는 영국과 대규모의 구르카 용병 부대를 운영하는 인도에 이어 싱가포르 경찰도 구르카 부대를 고용, 운영하고 있다.

 

Gurkha_IOC_1 

 

2018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 경비를 싱가포르 경찰과 함께 구르카 용병이 담당한다고 보도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대경일보

2022.12.25 13:53

구자문 한동대 교수

 

 

〈구르카 전사의 전설 같은 무용담〉

 

#18세기 중엽, 인도를 지배하고 있던 영국은 구르카 전사가 동인도회사의 점령지를 계속해서 약탈하므로 이를 토벌하고 네팔을 굴복시킬 목적으로 육군 정예 부대 1개 연대를 보냈다. 1개 중대 병력 밖에 되지 않는 구르카들을 찾아낸 영국 군대는 곧바로 전투에 임하였다. 그러나 영국 군대는 현대식 무기의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반나절 만에 대부분이 전사하고 겨우 1개 소대 병력만 살아남아 도망칠 수 있었다. 이때 살아남은 연대장의 구르카 전사에 대한 보고서를 읽은 영국군은 그 후에 구르카를 용병으로 채용하여 곳곳의 전투에 투입하였다.

 

#구르카 용병은 2차 대전에서 영국군으로 참전하여 북아프리카에서는 독일군과 싸우고 동남아시아에서는 일본군과 전투를 치루었다. 독일의 아프리카 군단 장병들의 증언에는 구르카 용병이 밤마다 독일군의 진지를 기습해 장병들의 목이나 귀를 베어가는 공포의 존재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구르카의 전과를 의심하는 영국 육군 장교 앞에 구르카 병사 하나가 적군에게서 따온(?) 귀를 한 바구니 보여 주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영국군이 일본군과 마주쳤던 인도의 동북부 임팔 전투에서는 구르카 소대가 일본군 정예 중대를 근접전으로 전멸시키는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당시 구르카 용병인 디마푸르 중사는 일본군 참호로 뛰어들어 쿠크리 단검 하나로 무려 24명의 일본군을 죽여 빅토리아 무공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1982년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 섬을 점령하면서 영국과 전쟁이 벌어졌다. 영국군은 전면전을 두려워하고 있는 아르헨티나를 향해 계속해서 심리전을 펼치고 있었다. 영국은 최정예 SAS 부대가 기습을 할 예정이며 특히 구르카 부대가 최선봉에 설 것이라는 정보를 흘렸다. 이에 아르헨티나 수비대는 영국군의 상륙정이 포클랜드에 도착하기도 전에 대부분 달아났는데, 일부는 상륙 지점까지 걸어 나와 항복을 하고 말았다. 항복할 당시 아르헨티나 수비대는 구르카 부대에게 우리를 넘기지 말아달라고 사정하기도 하였다.

 

#몇 년 전에 세계 토픽 뉴스를 장식했던 일화가 있다.

2014 9 2일 구르카 병사 비슈누는 인도 육군에서 전역하여 열차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열차가 산악 지대의 한적한 곳에 이르자 40명의 열차 강도가 열차를 빼앗았다. 강도들은 무차별로 승객들을 폭행하며 현금, 보석, 휴대전화, 노트북 등을 강탈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강도의 두목이 18세의 인도 여성을 성폭행하려고 하자, 그 때까지 가만히 있던 비슈누는 자신의 쿠크리 칼을 꺼내어 단신으로 강도들을 공격하였다.

 

그는 두목을 포함하여 주변에 있던 3명의 강도를 살해하였고 곧이어 달려드는 다른 강도들과 싸움을 벌였다. 용맹한 비슈누가 8명의 강도에게 부상을 입히며 제압하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머지 29명의 강도들은 빼앗은 물건들을 챙기지도 못한 채 도망치고 말았다. 구르카 한 명이 강도 40명을 물리쳤다는 믿기 어려운 이 이야기는 싸움의 무대가 넓은 공간이 아니고 비좁고 길다란 열차 안이었음을 고려하면 이해할 수 있다. 비슈누의 용감한 선행이 알려지자 인도 육군에서는 은으로 만든 쿠크리를 선물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