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사람 5명 중 한명은 60세 이상…‘워킹 시니어' 급증세
파주에 사는 최재임(64)씨는 쉬는 날 없이 일하는 주가 많다. 여성가족부 아이돌보미 사업에 참여한 그에게 일요일에도 아이를 봐 달라고 부탁하는 가정이 있어서다. 평일에는 7세‧9세 아이들을, 주말에는 7세 아이를 돌본다. 그럼에도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일하고 싶다”고 했다. 최씨는 “스무 살 때부터 이때까지 일을 놓아본 적이 없다”며 “아마 우리 세대는 일을 안 하면 오히려 불안하고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고 짚었다.
지난해 60세 이상 취업자 수와 증가 폭이 동시에 사상 최다·최대를 기록했다. 저출산·고령화가 본격화하면서 이제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 5명 중 한명은 최씨처럼 60세 이상이다.
17일 통계청과 중소벤처기업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60세 이상 취업자는 전년보다 45만2000명 늘어난 585만8000명이다.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63년 이후 가장 많다. 60세 이상 취업자 수는 2004년부터는 매년 늘긴 했지만, 지난해 처음으로 증가 폭이 40만명을 넘는 등 증가 속도가 가팔라지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전체 취업자 중 60세 이상 비중은 20.9%로 20% 선을 처음 웃돌았다. 이른바 ‘워킹 시니어’(Working Senior)가 이젠 일반화됐다는 의미다. 올해 들어서도 3월 기준 60세 이상 취업자는 613만4000명으로 지난해 동월보다 54만7000명이 늘었는데, 월 기준으로는 관련 통계가 있는 1982년 7월 이후 최대다.
고희(古稀ㆍ70세)를 넘은 나이에 일자리를 갖는 사람도 역대 최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70대 취업자 수는 171만8000명으로, 70세 이상 취업자를 따로 분류하기 시작한 2018년 이래 최대다. 지난달에는 182만2000명까지 늘었다. 전체 취업자 가운데 비중은 2018년 4.5%에서 지난달 6.5%로 늘었다.
70대 이상 취업자도 역대 최대
고령층은 취업뿐만 아니라 창업에서도 기록을 써가고 있다. 지난해 60세 이상 창업 기업(부동산업 제외)은 12만9000개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16년 이후 가장 많다. 지난해 수치는 6년 전인 2016년과 비교하면 76.1%나 증가한 것이다. 같은 기간 전체 창업 기업이 20.3%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4배 가까이 더 늘어난 셈이다.
한국 경제의 허리 격인 30대ㆍ40대 취업 사정이 장기간 부진한 데 반해, ‘워킹 시니어’는 나홀로 증가세를 이어가는 모양새다. 여기에는 사회 구조적인 요인이 크다. 우선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 인구로 진입하며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됐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체 인구에서 6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25.7%를 차지했다. 10년 전인 2012년 말(16.1%)에 비해 9.6%포인트나 오른 것이다. 60세 이상 인구가 많아진 만큼, 워킹 시니어도 함께 증가한 것이다.
의학 발전으로 건강하게 장수하는 노인들이 늘어난 점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모아둔 돈이 적다 보니, 나이가 들어서까지 생계를 유지하거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자녀로부터 경제적 부양을 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옅어지고, 되레 자녀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체력이 닿는 데까지 일하고 싶어하는 고령층도 많다.
경기연구원이 지난해 전국 60세 이상 근로자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를 보면 ‘계속 일하고 싶은 이유’로 가장 많은 46.3%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하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돈이 필요해서’(38.1%), ‘사회가 나의 능력을 필요하기 때문’(7.4%), ‘집에 있으면 무료해서’(5.9%), ‘건강을 유지하려고’(2.3%) 등이 뒤를 이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고령층 고용률 상승 요인 분석’ 보고서는 최근 고령 근로자가 급증한 원인으로 ▶자녀로부터 지원받는 사적 이전의 감소 ▶공적연금ㆍ자산소득 대비 생활비의 급격한 증가 ▶과거보다 개선된 건강상태 등을 꼽았다. 보고서는 “고령층의 고용률 상승이 생산연령인구(15∼64세) 감소 추세를 감안할 때 바람직하지만, 건강 문제 등에도 불구하고 일을 해야 하는 비자발적 노동은 줄여야 한다”고 짚었다.
정부의 공공 일자리 공급이 영향을 미친 면도 있다.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만든 단기 일자리인데, 주로 60세 이상이 지원하다 보니 고령 취업자가 수치상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공공 일자리 공급이 줄어들 경우 60세 이상 취업자가 줄고 대신 실업자가 증가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의 저출산ㆍ고령화 추이를 고려하면 앞으로 이런 워킹 시니어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김영선 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 노인학과 교수는 “건강하고, 지식이 풍부하며, 정보기술(IT) 능력을 갖춘 요즘 60대 중에서는 자기 성취를 위해 계속 일자리를 가지려는 사람이 적지 않다”라고 짚었다. 김영선 교수는 이어 “고령층의 경제활동 참여증대는 국가의 복지부담 증가를 줄일 수 있다”면서 "생산인구는 줄고 건강한 고학력 노인은 늘어나는 상황에서 고령자 인력이 계속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해졌다”라고 설명했다.
중앙일보
2023.04.17 11:42
손해용·서지원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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