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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의 성지 1호선 온양온천역

Paul Ahn 2023. 8. 21. 09:57

노인들의 성지 1호선 온양온천역

“왕복 6시간 지하철로 온천욕 하고 국수 사먹어생의 유일한 낙

 

217일 충남 아산시 온양온천역에서 내린 노인들이 대중 목욕탕으로 이동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빡빡한 출근시간을 갓 넘긴 오전 930. 신창행 1호선 열차에 모자를 쓰고 배낭을 둘러멘 여행자들이 하나둘 몸을 싣는다. 도심과 멀어질수록 듬성해지는 일반 좌석과 달리 양 끝 노약자석은 이들로 인해 내내 빽빽하다. 유선 이어폰을 꽂은 채 유튜브 영상을 둘러보고, 간혹 소설책이나 종이신문을 펼쳐 읽기도 한다.

 

꾸벅 졸기도 하고, 처음 만난 옆 사람과 어제 만난 듯 이야기하기도 한다. 안양-수원-오산-평택-천안을 지나며 오전 시간도 온전히 흘러간다. 종점에서 딱 하나 앞선 온양온천역에 다다라서야 이들은 굳은 허리를 편다.

 

줄지어 우대용 교통카드를 찍고 1번 출구로 나가 횡단보도를 건넌다. 그곳엔 5000원으로 즐길 수 있는 작은 대중목욕탕과 5000원으로 먹을 수 있는 시장 음식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그걸만원의 행복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1호선 풍경을 가능케 하는 건 만 65세 이상 노인들에 대한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다. 서울에서부터 이들의성지인 온양온천역까진 왕복으로 요금 6000원이 든다. 하지만 노인들은 몇 번이든 공짜로 오간다. 만원의 행복이 가능한 이유다. 역 근처 목욕탕 주인은평일, 주말 할 것 없이 탕이 꽉 찬다. 절반 이상이 서울에서 온 손님들이라며매일 여기 발도장 찍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대중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는 걸 이들도 잘 알고 있다. 기자가 1호선 열차에서 만난 노인들은우리 때문에 지하철 적자가 쌓인다고 하더라. 동네에서 놀지 뭣 하러 멀리 다니냐고 하는 것도 안다고 말을 먼저 꺼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들은지하철이 공짜라서 다행이라고 말한다. 수십 년 세월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갔는데 날마다 주어지는 하루는 어찌나 긴지, 매일의 지하철 여행이 그저 고마운시간 도둑이란 얘기다.

 

 

“집에 머물다 우울증건강과 행복 찾았다

 

서울 노원구에 거주하는 79세 김순찬씨(가명)도 매주 월··금 오전 9시 집을 나서 온양온천으로 향한다. 1호선 5-4칸 노약자석 끝자리는 그의 고정석이다. 그렇게 왕복 6시간 열차에 몸을 실은 지 6년이 되었다.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게 정확히 6년 전 일이었다. 마음 같아선 매일 나서고 싶지만 화·목은 반나절 노인 공공근로가 있다. 3일 온양온천행은 한 달에 20만원 남짓한 수입으로 부리는 유일한 사치다. 온양시장에서 5000원짜리 칼국수를 사먹거나, 온양온천역 내 맞이방(라운지)에 앉아 TV를 보며 집에서 싸온 빵과 삶은 달걀로 점심을 때우기도 한다. 의자 20여 개가 놓인 맞이방은 김씨와 비슷한 이들로 대부분 자리가 차 있다. 목욕까지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저녁 7, 하루가 훌쩍 지나 있다.

 

“집에만 있으면 시간이 4배로 느리게 간다.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던 코로나19 땐 몸도 아프고 우울증에 걸리기도 했다. 3일 동안 말 한마디 하지 않은 날도 있었다.” 은퇴 전 제약회사에서 영업일을 했던 김씨는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람을 만나야 힘을 얻는 성향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자신과 비슷한 노인들이 각지에서 모여드는 온양온천에서 건강과 행복을 되찾았다고도 말한다.

 

그는가끔 지하철 6시간 타기가 버거운 날도 있다. 새마을열차 타면 1시간에도 다녀올 수 있지만 그건 비용이 부담스럽다. 지하철도 공짜가 아니었다면 일주일에 한 번 겨우 다녀왔을 것이라며젊은 친구들한텐 미안하지만 혼자 사는 노인들 일상엔 지하철 여행만 한 낙이 없다고 전했다.

 

실제 한국교통연구원의 2014년 연구에선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제도가 노인들의 외부활동을 촉진시켜 우울증을 감소시키는 등 3206억원의 사회적 편익이 발생한다고 추산한 바 있다. 현재 첨예한 논쟁 속에서 전문가들 사이에서지하철 무임승차는 노인들에게 제공되는 가장고효율의 복지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지하철 적자 문제도 복지적인 시각으로 접근해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된다.

 

“미안하지만공짜 지하철이 있어 다행입니다

(sisajournal.com)

 

시사저널

2023.02.27 08:35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