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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解力〕읽어도 이해 못하는 아이들

Paul Ahn 2023. 9. 19. 17:00

〔文解力〕읽어도 이해 못하는 아이들

(yna.co.kr)

 

"여러분 중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라는 속담에서 '선무당'이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 있나요?"

 

"서 있는 무당이요."

 

"선무당이 '서 있는 무당'이라면 선과 무당 사이를 띄어 써야겠지?"

 

"선생님, 선착순 할 때 '()' 아니에요?"

 

"()무당이라는 말이 있으면 '()무당'이라는 말도 있어야겠지? 후무당이라는 말이 있을까?"

 

최근 서울의 한 중학교 3학년 국어 시간에 교사와 학생들 간 이런 대화가 오갔다.

 

해당 교사는 "학생들이 이렇게 대답하는 건 장난을 치려는 게 아니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아이들 국어 수준의 현실을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고지식이 높은 지식인가요?"

 

일선 학교 교사들은 학생들이 금일(今日)을 금요일로 알거나 '고지식'이란 말을 높은() 지식으로 이해하는 등 단어의 뜻을 몰라 교과서를 올바르게 읽지 못하고, 시험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입을 모은다.

 

https://youtu.be/yU50KEXY0ns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청소년들이 원격수업의 장기화로 인해 디지털기기에 길들어 글 읽기 자체를 꺼리는 등 문해력 수준이 우려할 정도라고 지적한다.

 

 

 

◇ 원격수업으로 독서량 줄고 전자기기와 가까워져

 

유네스코는 문해력을 '다양한 내용에 대한 글을 이해·해석·창작할 수 있는 힘'으로 정의했다. '문해력 수준이 떨어진다'는 것은 단순히 글을 읽거나 쓸 줄 모르는 '문맹'과는 다르다.

 

시인이자 작가인 김원기 경기도의회 의원은 "문해력은 독서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과 어울려 의사소통을 하는 과정에서 길러진다" "이러한 문해력은 문제 해결 능력, 의사결정 능력, 협상 능력 등을 좌우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 이후 원격수업이 오랫동안 계속되면서 청소년들이 교사, 친구들과 단절된 채 영상 미디어에 더욱 익숙해졌다.

 

김기용 경기도 광주도평초 교사는 "지난해와 올해 학생들의 문해력 수준에 큰 차이가 없다" "초등학교 3학년은 문해력 수준이 크게 향상하는 시기인데 2학년 때와 비슷하게 읽기·쓰기를 어려워하고 단어의 뜻을 자주 묻는다"고 전했다. 김 교사는 지난해 2학년 담임을 맡았고, 올해는 3학년 담임을 하고 있다.

 

그는 원격수업을 할 때 실시간 화상 대화로 아이들과 소통하려 했지만,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유튜브나 텔레비전을 보는 경우가 많아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김 교사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아이들이 전자기기와 지나치게 가까워진 것을 문해력 성장 저해의 원인으로 꼽았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으로 수업하면서 아이들의 독서량이 크게 떨어졌어요. 특히 사회 이슈나 기사 등을 유튜브에서 다른 사람이 해석해주는 영상을 통해 접하다 보니, 직접 글을 읽고 어떤 내용인지 해석하는 걸 어려워하는 거죠."

 

이는 김 교사만의 생각이 아니다. 지난 5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전국 초중고교 교사 11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4명이 "학생들의 문해력 수준이 70점대(C등급)에 불과하다"고 답했다.

 

문해력 수준이 낮은 이유로는 '유튜브와 같은 영상 매체에 익숙해서(73%)', '독서를 소홀히 해서(54.3%)'를 꼽았다.

 

교육전문기업 '좋은책신사고'가 지난 6월 한 달간 전국 중학생 1천여 명을 상대로 코로나19 이후의 문해력을 진단한 결과, 글의 맥락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문제 지문과 선지가 길어질수록 오답률이 높았으며, 지문 속 단어가 어려울수록 문장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내용 이해·추론하기·적용하기 등 세 분야로 진행한 시험에서 중학교 1학년은 64.5, 중학교 2학년은 63.1, 중학교 3학년은 69.8점으로 전체 평균 점수는 65.8점이었다. 통상 50점 이상 80점 이하는 중학교 1학년 수준의 문해력에 해당한다. 중학교 2학년 수준은 90점 이상 100점 이하이며, 중학생 수준의 문해력을 어느 정도 갖췄다고 보려면 110점 이상을 받아야 한다.

 

조병영 한양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코로나19로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약 30%의 학력이 손실된 것으로 본다" "중학교 3학년 학생 2400여명이 참여한 어휘력 평가에서 10명 중 1명만 혼자 교과서를 읽고 공부할 수 있는 어휘력을 갖고 있었다"고 전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청소년의 문해력 성장 정체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스탠퍼드대가 코로나19 이후 청소년의 구두 읽기 유창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결과, 학교가 수업을 중단한 시기 학생들의 읽기 능력이 전혀 발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스탠퍼드대는 미국 22개 주에 있는 100개 학군의 학생을 추적했고, 코로나19 사태가 시작했던 2020년 봄과 팬데믹 상황이 점차 심화한 2020년 가을 학생들의 구두 읽기 능력을 비교했다. 대부분의 미국 학생들은 2020년 봄부터 여름까지 학교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다.

 

유네스코가 지난 3월 발표한 연구 결과에서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휴교로 인해 1억 명 이상의 어린이가 '최소 읽기 능력'에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가 유행한 이후 전 세계적으로 학교가 평균 25주 동안 부분 또는 전면 폐쇄됐으며, 특히 남미와 카리브해 지역, 중앙 아시아·남부 아시아에서 심각한 학습 손실이 예상됐다.

 

또 문해력이 저조한 어린이는 코로나 이전 46천만명에서 2020 58400만명으로 급증했다. 이러한 현상은 어린이 문해력 교육 수준을 20년 후퇴시켰다고 유네스코는 밝혔다.

 

 

"청소년 문해력 저하, 장차 사회에도 심각한 문제"

 

청소년 시기 문해력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단순히 학습력 손실을 넘어 고등교육 기회와 노동시장 참여 기회가 줄고, 종국적으로는 미래 소득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주민철 서울창원초 교사는 "긴 글을 읽고 정보를 습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은 향후 사회에서 낮은 계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실제로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2014년 진행한 성인문해능력조사를 보면 문해력과 소득 수준의 상관성이 확인된다. 문해력 테스트에서 월 가구 소득 100만원 미만은 평균 40.8, 100~299만원은 72.8, 300~499만원은 85.8, 500만원 이상은 90점으로 나타났다.

 

 

 문해력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3년 발표한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16~65세 대상)에서 문해력과 좋은 일자리 사이에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결과에 따르면 가장 높은 수준의 문해력을 갖춘 사람들이 최하위 수준에 비해 평균 시급은 60% 이상, 취업 가능성은 2배 이상 높았다.

 

문해력이 높을수록 더 건강하고, 신뢰도가 높았으며, 정치에 관심이 많고 자원봉사 등 지역사회 활동에 더 자주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병규 서울면중초 교사는 "자신의 힘으로 글을 이해하고 생각을 형성하지 못하는 사람은 미디어와 여론에 무비판적으로 휩쓸릴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주민철 교사는 "문해력이 나이에 맞게 길러지지 않으면 성인이 됐을 때 중요한 계약 체결 등에서 문제점을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 "사회적으로 코로나19가 심했을 때 청소년기를 보낸 세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만연해질 수 있다"고 했다.

 

문해력이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사고의 토대가 되기 때문에 문해력 약화는 개인·특정 집단뿐만 아니라 전 사회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있다.

 

일찍이 문해력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난독연구센터장 매리언 울프 교수는 그의 저서 '다시, 책으로'에서 "문해력 저하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민주주의의 가장 큰 걸림돌은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시민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며 "수준 높은 읽기를 할 수 없는 이들은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다"고 했다.

 

미국 시카고대학교 법학과 마사 누스바움 석좌 교수는 20여년 전 "기술적으로 발전한 국민에게 비판적 사고, 자신에 대한 성찰, 다양성을 존중하는 능력이 없다면 그 나라에는 재앙이 닥칠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

 

이러한 문제를 막으려면 무엇보다 문해력 수준이 떨어져 있는 학생들에 대한 교육당국의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조병영 교수는 "문해력이 길러지지 못해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위한 전담교사 제도 등을 도입함으로써 학생 간 문해력 격차를 좁히고, 다양한 학생의 문해력 수준에 맞는 교육을 제공할 수 있도록 교육 방식과 내용을 세분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슈&탐사팀] 문해력 리포트

연합뉴스 (Yonhapnews)

2021-12-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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