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의 사후세계(Afterlife of Data)
- ‘사람은 죽어 데이터를 남긴다’
- 망자의 계정 49억개
-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고인 추모의 ‘매개’ 등 상업적 활용에까지 광범위하게 쓰일 전망이다.
디지털 사후세계...故人 계정 49억개 어떻게 쓰일까
누구나 소셜미디어 쓰는 시대...
세상 뜬 뒤 남겨진 게시물로 상업적 활용까지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 人死留名).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고사성어는 앞으로 ‘사람은 죽어 데이터를 남긴다’로 바뀔 것 같다. 데이터는 시신과 달리 썩지 않기 때문에 고인(故人)들이 남긴 소셜미디어 계정을 어떻게 활용할지가 관심사다. 과거엔 학자들의 연구물이나 문학가의 작품, 유명인의 일기 등이 의미 있는 기록물이었다. 그러나 소셜미디어가 보편화된 이후에 일반인들도 소셜미디어에 자신만의 기록을 남기게 되면서, 망자의 게시물이 학자들의 사료(史料)이자,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고인 추모의 ‘매개’ 등 상업적 활용에까지 광범위하게 쓰일 전망이다.
◇망자의 계정 49억개
소셜미디어상의 고인 계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늘어날 전망이다. 가장 대표적인 소셜미디어인 페이스북은 2006년 9월부터 이메일 주소만 있으면 가입이 가능해졌는데, 인간의 평균 수명을 고려하면 21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고인 계정은 가파르게 늘 전망이다.
지난 5월 ‘데이터의 사후세계(Afterlife of Data)’란 책을 쓴 칼 외만 스웨덴 웁살라대 교수는 WEEKLY BIZ에 “소셜미디어 서비스인 페이스북에 죽은 사람의 계정은 2060년에는 12억개, 이번 세기 말에는 49억개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21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세상을 떠난 이들의 소셜미디어 계정이 더 빠르게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소셜미디어상에 거대한 ‘디지털 납골당’이 생겨날 것이라는 뜻이다. 22세기 초에 이르면 사망자 계정이 살아있는 사람 계정보다 더 많아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 같은 현상은 X(옛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같은 다른 소셜미디어 서비스에서도 유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인 계정을 없애는 건 불가능하지 않다. 현재 페이스북은 고인의 유가족 등 대리인이 위임장·유언장, 부고장 등을 제출하면 삭제할 수 있다. X나 구글 계정 등도 직계 가족 등이 별도로 계정 삭제 요청을 하면 없앨 수 있다. 그럼에도 망자의 계정이 차곡차곡 누적될 것으로 보이는 이유는 유가족들이 고인을 추모하는 디지털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계정을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도 있고, 굳이 삭제 요청을 하지 않아 계정이 사실상 방치되기 때문이다.
◇망자의 글과 사진은 디지털 사료로
학자들은 소셜미디어에 망자들이 올려둔 글과 사진이 훗날 사료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디지털 데이터, 유산, 큐레이션의 미래’의 저자 피오나 캐머런 웨스턴시드니대 교수는 WEEKLY BIZ에 “인스타그램이나 X에 올려진 게시물은 문화유산처럼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다”며 “예컨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소셜미디어에 올려둔 글은 임기 동안 대통령으로서의 통치 행위에 대한 기록으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오리타 아키코 간토가쿠인대 교수는 “세상을 떠난 이들이 남겨 놓은 정보들은 그 시대 사람들의 보편적인 감정이나 행동 양식, 트렌드를 담은 기록물로서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했다.
소셜미디어에는 아랍의 봄이나 미투(성폭력 고발) 운동,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캠페인 등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에 대한 게시물도 다수 존재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소셜미디어 게시물을 일종의 공공 데이터로 관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료기관에 기부된 생물학적 시신이 의학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처럼 디지털 시신(죽은 사람의 소셜미디어 데이터)은 사회과학 연구자나 역사학자에게 풍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으니, 이에 대한 접근 권한이 부여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학자들 생각이다.
◇'불멸의 데이터’ 심령술의 매개, 돈벌이까지
고인이 소셜미디어에 남긴 글을 활용해 세상을 떠난 가족이나 연인과 대화를 시도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데스봇(Deathbots) 혹은 새너봇(Thanabots)이라 불리는 AI 챗봇이 등장한 것이다. 죽은 사람의 데이터로 AI를 학습시킨 다음 실제로 고인과 문자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만든 서비스다. AI를 학습시킬 때 활용하기 좋은 정보가 고인이 소셜미디어에 남긴 게시물이다. 실제로 2020년 캐나다 토론토에 사는 조슈아 바보라는 한 남성은 챗GPT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게임 프로그램에서 8년 전 세상을 떠난 여자친구 제시카 페레이라와 대화를 시도했다. 이 남성은 프로그램이 여자친구의 말투를 잘 흉내 낼 수 있도록 페레이라의 페이스북 게시물을 활용했다.
그러나 고인의 동의 없이 ‘AI 심령술’을 시도하는 것에 대해선 “윤리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올 들어 중국판 틱톡인 더우인에는 2016년 세상을 떠난 중국 가수 차오런량의 AI 제작 페이크 영상이 올라와 ‘무단 AI 부활’에 대한 우려를 키우기도 했다. 유가족 항의에 해당 영상은 삭제됐지만, 더우인에는 “588위안(약 11만원)만 내면 AI 부활 영상을 만들 수 있다”는 식의 글이 떠돌기도 했다. 유가족이 설령 원하더라도 AI가 만들어 낸 고인과의 ‘영적 대화’는, 유가족이 꾸준히 지갑을 열도록 구미에 맞는 답변을 내놓는 ‘상술’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게 학자들 지적이다.
망자의 데이터는 앞으로 다양하게 상품화될 가능성도 있다. 오리타 교수의 ‘사망한 사람의 개인 정보 이용’ 논문에 따르면 일본 성인 2749명에 대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약 20%는 “적절한 보상이 있으면 소셜미디어 게시물 같은 디지털 개인 정보를 사후에 활용하도록 허락한다”고 답했다. 사망한 이의 정보가 앞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상업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뜻이다.
2024.07.25. 17:27
홍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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